감찰커녕 제보자 색출…피해자 두번 세번 짓밟아
추락 사고가 발생한 8층 높이(약 30m)의 서울특공대 레펠 교육장. 교관 잘못이 교육생 과실로 떠넘겨진 정황이 가족에 의해 뒤늦게 발견됐다.
지난 2015년 초 임용된 부산특공대 소속 이 아무개 순경(여‧29)은 장래가 촉망받는 경찰이었다. 아마추어 복싱 선수 출신인 데다 여자 지원자 중 유일하게 특공대 임용시험 실기 부분 만점을 받았다. 가족은 물론 동료들과 선배 직원들이 거는 기대도 높았다. 이 순경의 한 동료는 “특공대 입직에 앞서 1년간은 지구대 근무를 해야 하는데, 실적이 우수해 1년을 채우기도 전 이례적으로 승진 심사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 이 순경은 다리가 불편하다. 왼쪽 다리 전체가 저리고, 일부는 감각이 없다. 의사는 신경이 끊어졌다고 했다. 이를 악물고 재활치료를 해도 손상된 신경이 회복될 가능성은 낮다고 했다. 이 순경은 대학 졸업 후 경찰 특공대를 목표로 4년 동안 도전한 끝에 입직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꿈을 이루자마자 그 꿈을 포기해야만 했다. 한 순간 일어난 사고가 그의 인생을 바꿔버린 것.
# 예견된 사고
이 순경은 입소 다음날인 지난 2016년 1월 12일, 레펠 교육 중 약 30m 높이에서 추락했다. 착용했던 레펠 장비에 안전줄이 제대로 걸리지 않아 그대로 바닥에 곤두박질친 것. 이 씨는 중상을 입고 병원에 이송됐고, 당일 교육은 모두 취소됐다. 얼핏 이 순경의 과실로 볼 수 있지만, 실제 사고 원인은 다른 데 있었다.
이 순경의 가족과 기자가 접촉한 사고 당시 목격자(동료)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전말은 이렇다. 지난 2016년 1월 11일, 이 순경은 3주 과정의 신임 경찰특공대원 배치 집체교육을 위해 서울 특공대에 입소했다.
문제는 첫날 야간교육에서 시작됐다. 당시 교육생들은 레펠 장비를 빠르게 착용‧해제하는 훈련을 받았는데, 이 과정에서 서울특공대 소속 김 아무개 교관이 이 순경의 장비를 점검하다 레펠 하강 시 안전 줄을 거는 ‘D형 고리’를 잘못된 위치에 걸어줬다. 레펠 장비는 착용하는 하네스(벨트)에 D형 고리를 걸고, 고리에 다시 제동줄을 거는 구조다. 고리가 잘못 걸리면 레펠 하강 과정에서 사실상 제동이 불가능하다는 게 특공대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당시 이 순경이 착용한 장비는 서울특공대에서 사용하지 않는 장비로, 부산특공대에서 지원된 장비였다. 이날 처음으로 장비를 착용해본 이 순경은 물론 주변의 다른 교육생들도 잘못된 위치에 고리가 걸렸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부산특공대에서 지원된 장비는 이 순경을 제외하고 다른 교육생 2명도 착용하고 있었지만 앞서의 김 교관은 이 순경의 장비만 수정했다. 교관 역시 이 장비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했다는 얘기다. 이때부터 이미 이 순경의 사고는 예견됐다는 게 가족과 동료들의 주장이다.
사고 당시 이 순경이 착용한 레펠 장비와 뜯겨진 고리 및 끈.
레펠 하강 교육은 다음날인 12일 오전에 시작됐다. 교육 시작 전 별다른 이론 교육은 없었다. 한 경찰특공대 관계자에 따르면 교육 커리큘럼에는 레펠 제동법과 하강 방법 등에 대한 이론 교육을 실시하고, 시범 교육 뒤에 하강 실습이 시작된다. 하지만 당시 교육생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한 차례의 조교 시범을 제외하면 별다른 교육은 없었다.
또한 앞서의 김 교관은 교육생들의 레펠 장비를 재차 점검했지만 이 순경의 장비가 잘못됐다는 것을 이때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또 다른 당시 교육생은 “김 교관은 얼굴이 빨개진 채로 장비를 점검하며 ‘전날 늦게까지 마신 막걸리가 깨지 않는다’고 웃었다”고 귀띔했다. 이는 <일요신문>에 증언한 다른 교육생들에게서도 공통적으로 나왔으며, 이들이 최근 경찰청 감찰조사를 앞두고 작성해 이 순경 가족에게 전달한 진술서에도 기재돼 있다.
추락 사고는 이후 발생한다. 레펠 교육은 서울특공대 소속 박 아무개 교관의 주관으로 진행됐다. 당시 이 순경의 뒤에서 하강 교육을 위해 대기하고 있던 동료는 “이 순경은 제동법을 정확히 모르고 있었다. 잠시 멈칫하자 박 교관은 욕설과 고성을 섞어 떠밀듯이 내려보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문제는 두 번째 하강 교육 때였다. 이 순경이 난간에 손을 잡은 채로 ‘방법을 알려 달라’고 요청하자 박 교관이 ‘그냥 내려가라’며 손을 강제로 떼어냈다. 이 순경이 중심을 잃고 내려갔는데 동시에 박 교관은 레펠에 매달린 이 순경의 제동줄을 흔들었다. 그러다 박 교관의 ‘아이씨, 안전줄!’이라는 외침과 함께 ‘쿵’소리가 들렸다”고 설명했다.
이 순경의 동료는 또 “처음부터 고리가 잘못 걸려있어 줄을 걸고 매달리면 풀릴 수밖에 없었다. 제동법을 잘 알고 있었어도 사고는 일어났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동료 역시 “사고의 결정적 원인은 고리를 하네스(벨트)에 잘못 걸었던 것”이라며 “교관과 현장 안전관리자(레펠 교육 교관) 등의 명백한 실수였다”고 강조했다.
이후 교육은 전면 중지됐고, 이 순경은 훈련장에 대기하고 있던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후송됐다. 이 과정에서 교육생들은 교관의 지시에 따라 사고현장을 등지고 대기했다. 이 순경이 병원에 후송된 이후 앞서의 김 교관은 “부산특공대에서 보낸 이 순경의 장비에 문제가 있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가, 오후 교육생들을 모아 “레펠 장비의 구조를 잘못 알고 고리를 잘못 걸어줬다. 걸면 안 되는 곳에 걸었다. 오늘 내가 여럿 죽일 뻔했다”며 사과했다. 교관이 과실을 인정했고, 이 순경은 공상처리 되면서 사고는 일단락되는 것처럼 보였다.
# 사고자 과실
그런데 지난해 12월 중순, 가족들은 충격적인 사실을 접했다. 이 순경의 공상처리 기간이 1월 6일에 만료돼, 공상연장신청을 준비하던 중 석연치 않은 점이 발견된 것. 이 순경의 동생은 “공무원연금공단으로부터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받은 공상처리서류 가운데 사고경위서가 상당히 부실했다”며 “육하원칙에 의거해 작성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었으나, 사고 원인을 알 수 있는 ‘어떻게’ ‘왜’ 부분이 빠져있었다. 전반적으로 본인이 안전 확인을 하지 않은 것처럼 작성돼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서류에 첨부돼 있던 목격자 진술서 또한 교관들의 이야기가 하나도 들어있지 않았다”고 말했다. <일요신문> 확인 결과 목격자 진술서를 쓴 이 순경의 동료는 당시 사고 상황을 전혀 목격하지 못했으며, 단지 현재 부산 특공대에 함께 근무하고 있다는 이유로 진술서 작성을 지시 받았다. 진술서에 날인된 본인 확인 도장도 앞서의 동료가 아닌, 특공대 간부가 임의로 만들어 찍었던 사실도 확인됐다. 여기에 이 순경의 사고 직후 서울특공대 직원 두 명이 진술서를 쓴 앞서의 동료를 따로 불러 “이 사고에 대해 외부나 부산특공대에 복귀해 발설하지 말라”고 지시한 정황도 드러났다.
또한 가족들은 지난해 1월 말, 사고와 관련해 감찰 요청을 했으나 서울특공대 자체 사실조사로만 끝났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앞서의 이 순경의 동생은 “부산특공대를 거쳐 부산지방청, 서울지방청에 감찰 요청이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확인해보니 감찰이 아니라 서울특공대 자체적으로 사실조사만 했다는 사실을 서울지방청 감찰관으로부터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이는 동생이 <일요신문>에 보내온 녹음 파일로도 확인된다.
가족들은 앞서의 석연치 않은 점들을 토대로 지난해 12월 중순께 경찰청에 민원을 넣고 사이버경찰청 ‘청장과의 대화’에도 편지를 썼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감찰이 시작되려면 ‘2개월’은 기다려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지난 1월 4일 이 순경의 이야기가 페이스북 경찰인권센터 페이지에 게시되면서 결국 SNS를 중심으로 논란이 불거졌다. 경찰청은 해당 글이 게시된 당일 오후 즉각 정식 감찰에 착수했다.
# 감찰조사 과정서도 은폐 축소 정황
하지만 조사 과정에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진다. 가족들에 따르면 경찰청으로부터 조사 지시를 받은 서울지방청 관계자는 이 순경에게 전화를 걸어 사실 관계를 확인했다. 가족들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이 순경은 서울지방청 관계자로부터 “본인이 (경찰인권센터에) 제보했느냐”는 질문을 받아야 했다. 사실관계 확인보다 먼저 나온 질문이었다.
또한 사실관계 확인은 밤을 지나 새벽 5시까지 이어졌고, 출근 이후에도 똑같은 질문을 지속적으로 받았다. 이 순경이 “이미 지난해 사실 관계에 대해 이야기했고 정리된 서류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비슷한 질문은 계속 이어졌다. 이 순경의 동생은 “본인이 직접 서울에 올라가 진술하겠다고 하자 서울지방청 관계자는 ‘그건 됐다’며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었다”고 말했다.
서울특공대에서도 별도의 ‘제보자 색출’에 나섰다. 페이스북에 논란이 된 글이 올라온 직후 서울특공대 간부가 이 순경을 잘 알고 있는 서울특공대 직원을 따로 부른 뒤, 앞서 가족이 사이버경찰청 ‘청장과의 대화’에 쓴 편지글과 비교하며 “이 순경이 제보한 거 맞네. 내용이 똑같네”라며 추궁한 것이다. 이 순경의 동생은 “이 상황에서 사실 확인보다 제보자를 찾는 게 왜 먼저인지 모르겠다”고 답답해했다.
가족들은 또 서울지방경찰청이 이 순경에게 합의를 종용했다고 주장했다. 가족들에 따르면 서울지방청 감찰관계자는 이 순경에게 “가족들이 요청한 대로 1월 인사 발령 시 근무지 변경을 하고, 공상처리 서류를 다시 써주겠다. 그러면 이의제기 하지 않겠냐”는 취지로 설득했다는 것이다. 가족들은 “단순히 공상처리 서류를 수정해달라는 게 아니다. 사고를 감추고 축소한 담당자 전원이 엄격한 처분을 받길 바란다”고 말했다.
여기에 가족들은 감찰 조사가 정확히 진행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고 있다. 서울특공대 교관 등에 대한 처분 등은 논의조차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앞서의 고리를 잘못 걸어준 서울특공대 소속 김 아무개 교관이 지난 9일께 직원들 앞에서 공식적으로 “일이 잘 마무리됐다”는 취지로 말한 내용이 확인됐다.
또한 지난 11일 서울지방청 감찰관계자는 “이 순경 가족들과의 전화 통화 과정에서 김 교관이 교육 전날 술을 마셨던 점, 목격자 진술서 도장이 임의로 찍혔던 점을 알고 있었냐”는 가족들에 질문에 뒤늦게 “몰랐다. 이 사실도 본청에 알리겠다”고 답변했다. 가족들은 “지난해 12월 민원을 새로 접수하면서 당시 사고 목격자들의 진술서 등을 첨부했고, 앞서의 내용이 모두 들어가 있다. 이를 전혀 살펴보지 않았다는 얘기 아니냐”며 답답해했다.
이 순경의 사고를 현장에서 목격한 동료들은 최근 직접 탄원서 및 진술서를 작성해 가족들에게 전달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교관의 과실이 명백하다는 점, 과실 교관이 전날 술을 많이 마셨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 교관과 안전관리 교관 등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감찰조사를 담당한 서울지방경찰청은 조사가 마무리 될 때까지도 이 순경의 동료들이 지적한 내용을 모르고 있었다고 가족들에게 밝혔다.
‘감찰조사’에 대해 전국 각지에 흩어져 근무하고 있는 이 순경의 동료들조차 반발하고 있다. 이 순경의 한 동료는 <일요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올해도 신임 특공대원들이 서울특공대에서 집체 교육을 받는다. 이대로 지나치면 언제 어떤 사고가 재발할지 모른다.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그동안의 관행을 깨고 은폐‧축소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본청에서 엄격한 처분을 내렸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가족들은 “공무상 요양 승인이 자신 과실로 처리돼 그 부담을 온전히 이 순경이 져야 한다. 향후 인사에서도 불이익이 있을까 걱정된다”며 “퇴원 이후 본인이 어떻게든 극복하겠다며 특공대 내근직으로라도 남겠다고 했다. 그동안 행정업무를 하며 재활치료를 받아 왔지만 최근 스스로 특공대는 포기해야 한다고 결심한 것 같다. ‘극단적 위험에 처한 인명을 보호하고 구조해야 하는데 이 다리로 어떻게 하겠냐’는 말을 듣고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지방청 감찰관계자는 “서울청은 조사만 담당했고, 최근 결과와 자료를 모두 본청에 넘겼다. 별도의 답변은 어렵다. 본청에 문의해 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 12일과 13일, 수차례 경찰청 감찰담당자와 연락을 시도했으나 외근 중이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경찰청 홍보실과 내근직 직원에게 메시지를 전달해 달라고 요청 했으나 역시 담당자는 답변이 없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