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반대서 유보로 선회…탄핵국면 입장 번복 등 반대진영 공격 빌미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7일 오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대한민국이 묻는다-완전히 새로운 나라, 문재인이 답하다’ 출판기념 기자간담회를 열고 취재진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금까지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스탠스를 취해왔다. 지난해 7월 1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국익의 관점에서 득보다 실이 더 많다. 재검토와 공론화를 요청한다”고 했다. 같은 해 10월 9일에도 “사드 배치 절차를 중단하고 외교적 노력을 다시 하자”며 반대의 뜻을 명확히 밝혔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한 이후 문 전 대표의 입장에 미묘한 변화가 생겼다. 12월 15일 문 전 대표는 “사드 배치 문제는 다음 정부로 미루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문 전 대표는 1월 15일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선 “사드 배치 결정을 취소한다는 방침을 가지고 다음 정부로 넘기라는 것이 아니다. 한미 간 이미 합의가 이뤄진 걸 쉽게 취소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이를 놓고 정치권에선 쓴소리가 쏟아졌다. 김영우 바른정당 의원은 1월 17일 “사드 배치와 같은 중대한 문제를 갖고 우유부단한 입장을 취하면 문 전 대표는 대통령이 되더라도 ‘남자 박근혜’가 되거나 ‘제2의, 제3의 최순실 사태’를 벌어지게 할 수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1월 15일 이재명 성남시장도 자신의 SNS에 “사드 관련 문 대표님 입장이 당초 설치 반대에서 사실상 설치 수용으로 왜 바뀌었는지 설명이 필요하다. 한반도 운명에 지대한 영향이 있는 이런 심각한 문제에 대해 충분한 설명도 없이 오락가락하는 건 국민 특히 야권 지지자들을 혼란에 빠트리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박원순 서울시장 또한 SNS에 “정치적 표를 계산하며 말을 바꿔서는 안 된다. 국민 편에 서는 정치인이라면 누구 앞에서라도 어떤 상황에서도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비판에 가세했다.
논란이 거세지자 1월 17일 문 전 대표는 “제가 사드 배치를 취소하라고 했다면 그렇게 (입장을 바꿔) 주장하는 것인데, 취소를 다음 정부로 미뤄서 하라는 것도 아니고 반드시 강행하겠다는 입장도 아니다. 저는 사드 문제는 처음부터 일관되게 똑같은 주장을 해왔다”고 했다.
문 전 대표는 박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도 입장을 번복해 구설에 올랐다. 문 전 대표는 지난해 11월 21일 “대통령이 명예롭게 퇴진할 수 있도록 퇴로를 열어주고 돕는 것이 국민들이 대통령에게 해야 할 하나의 예우”라며 ‘질서 있는 퇴진’을 요청했다. 그러나 새누리당이 당론으로 ‘4월 퇴진 6월 조기대선’을 채택하자 문 전 대표는 12월 2일 “정계개편, 개헌 논의, 4월 퇴진론 등은 모두 우리 발목을 잡으려는 낡은 정치의 발버둥”이라고 입장을 선회했다. 이정현 전 새누리당 대표는 “질서 있는 퇴진을 먼저 끄집어 낸 것은 문 전 대표와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등 야당의 주요 인사”라고 응수했다.
참여정부 시절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을 지낸 문 전 대표는 한미 FTA와 제주 해군기지에 대해서도 입장을 번복한 적이 있다. 참여정부는 해군 전력 강화를 위한 핵심 사업으로 해군기지 건설을 추진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제주 해군기지를 추진하자 문 전 대표는 “참여정부 때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책임이 있다”며 반대로 돌아섰다.
2007년 최종 타결된 한미 FTA에 대해서도 찬반 논란이 뜨거웠지만 국정의 중심에 있던 문 전 대표는 반대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하지만 2011년 인터넷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에서 FTA 협상에 대해 “세상에 무슨 이런 조약이 다 있나. 지금 현 상태에서 비준하는 것은 결단코 반대”라고도 비판했다.
일각에선 문 전 대표가 국가 주요 현안을 두고 정치적 상황에 따라 말을 바꾸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 한 보좌진은 “문 전 대표가 워낙 신중한 성격이다. 게다가 문 전 대표 주변엔 공식적·비공식적으로 전략을 논의하는 그룹이 다양하게 포진해있다. 최재성 전 의원, 진성준 전 의원, 참여정부 시절부터 함께 해 온 3철 그룹(전해철 민주당 의원, 양정철 전 홍보기획 비서관,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 다양한 곳에서 의견을 듣다보니 그렇게 보일 수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문 전 대표의 ‘갈지자(之)’ 행보를 향후 대선을 위한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중도 진영 또는 보수 진영의 표심에 직접적인 영향이 있다고 보고 사드 ‘신중론’에서 ‘수용론’으로 입장을 바꾼 것이다. 자기 가치와 철학이 반영됐다기 보단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선거에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하나의 선택이라고 봐야 된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비롯한 중도 보수 진영의 모든 후보가 사드 배치를 찬성하는 마당에 본인만 사드 배치에 반대하면 고립될 수 있고 오히려 그게 대선에서 쟁점이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손해를 감수하고 정치적인 선택을 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허성무 정치평론가는 “사드 배치에 대한 명쾌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모호한 전략을 취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국익에 보탬이 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배치를 반대한다고 하면 미국과의 관계 악화가 우려되고 배치에 찬성한다고 하면 중국과 러시아에서 반발이 있을 수 있다. 신중한 스탠스를 취하면서 최대한 국익을 지켜내겠다는 계산이 보였다”고 평했다.
다만 입장을 번복하는 모습이 아킬레스 건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우려의 시선도 존재했다. 전계완 평론가는 “다만 대통령 후보 자신의 가치와 철학이 반영돼야 하는데 때에 따라 유·불리를 따지면서 말을 바꾸는 것은 단기적으로 유리할지 모르지만 긴 대선 레이스에서는 상당히 불리 할 수도 있다. 또한 오히려 국민들로 하여금 정책의 일관성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역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김경민 기자 mercur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