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총리급 등 5~6명이 고정멤버…탄핵 심판·특검 수사·주요 현안 은밀히 조언
박근혜 대통령이 직무정지 23일 만인 1월 1일 청와대 상춘관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있다. 연합뉴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박근혜 대통령은 세 차례 대국민담화를 열었다. 그리고 새해엔 기자들을 상대로 깜짝 회견을 가졌다. 연일 언론과 정치권에서 숱한 의혹을 쏟아냈지만 침묵했던 박 대통령은 그때마다 회심의 카드를 들고 나왔다. 지난해 11월 29일 3차 대국민담화에서 박 대통령이 “임기 단축을 포함해 거취를 국회 결정에 따를 것”이라고 밝힌 게 대표적 예다. 이를 두고 누군가가 박 대통령을 ‘코치’ 해주고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제기됐다. 박 대통령이 이들과 전략을 짠 뒤에 공개석상에 나타났을 것이란 얘기였다.
최순실 청문회, 검찰 및 특검 수사 등에서 나타난 여러 증인들의 조직적 대응들도 이러한 의심을 부채질했다. 청문위원들은 이영선 윤전추 청와대 정관의 석연치 않은 불출석,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 머리를 손질했다는 미용사 자매의 답변서 등에 대해 ‘보이지 않는 손’이 움직이고 있다는 주장을 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청문위원은 “박 대통령 옆에서 큰 그림을 그리는 세력이 있는 것 아니냐고 우리끼리 얘기를 했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여러 증인들이 이처럼 일사불란하게 대응하긴 어렵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그동안 정치권에선 국정의 동반자나 다름없는 최순실을 잃은 박근혜 대통령이 어떤 그룹으로부터 도움을 받는지에 대해 여러 소문이 무성했다. 친박계 전현직 의원 7인으로 구성된 이른바 ‘신 7인회’도 그중 하나였다. 2012년 대선 당시 박 대통령을 도운 원로들의 회의체 ‘7인회’의 새로운 버전이었다. 이들이 박 대통령과 대응책을 논의하는 한편, 분당 위기에 빠졌던 새누리당을 추스르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는 게 골자였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이들 중 대부분과 별다른 교류를 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져 이는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와 관련 여권의 한 원로 인사는 흥미로운 말을 들려줬다. 이 인사는 박근혜 정부 출범에 큰 공을 세운 핵심 친박으로 꼽힌다. 그는 “박 대통령에게 공식 변호인단이 있긴 하지만 이들이 실권을 갖고 있진 않다. 대부분의 결정은 다른 팀과 의논해서 한다. 전직 총리급 인사가 좌장을 맡고 있고 전직 검찰 간부와 현직 친박 의원, 그리고 최순실 일가 중 한 명 등이 참여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어 “관저에 칩거하고 있는 박 대통령이 기대고 있는 거의 유일한 라인”이라고 덧붙였다.
여기에 참여하고 있다는 최순실 일가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처음부터 작정하고 모인 것은 아니었다. 다만, 박 대통령과 이 상황이 걱정돼서 평소 친분이 있는 사람들과 만나 논의를 하다 보니 이렇게까지 온 것이다. 박 대통령 옆엔 아무도 없지 않느냐. 모임이 부적절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삼청동에 아지트 개념의 사무실이 있다. 5~6명이 고정 멤버이고 변호사 등 몇몇 관계자들이 가끔 참석해서 전략을 짠다. 신년에 있었던 박 대통령 기자간담회 아이디어도 우리 쪽에서 낸 것”이라고 했다. 사실상 ‘박근혜 구하기’를 위한 비선 팀이 가동되고 있다는 것을 시인한 셈이다.
<일요신문>은 1월 18일 모임이 열린다는 삼청동 사무실을 직접 찾아가 봤다. 총리 공관에서 불과 5분 떨어진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문이 닫혀 있어 사무실로 들어가진 못했지만 1층 커피숍 관계자에게 모임 참석자 사진들을 보여줬더니 일부가 이곳을 드나든다고 했다. 그 관계자는 “일주일에 두 세 차례 오는 것 같다. 누군지 알지 못했는데 유명한 국회의원이라는 말을 나중에 들었다. 실세라고 하더라. 또 사진 속 인물(전직 검찰 간부)도 본 기억이 있다. 이들이 무엇을 하는지는 모른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최순실 게이트 정국에서 박 대통령 측의 법적 대응뿐 아니라 주요 정치 현안 등에 대해서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앞서의 친박 원로는 “탄핵 표결, 새누리당 분당, 이정현 대표 거취 문제 등의 사안을 두고 그 모임에서 ‘오더’가 여러 차례 내려간 것으로 알고 있다. 사실상 당보다 위에 있는, 박 대통령 직속기구나 다름없었다. 박 대통령은 본인의 운신 폭이 좁아진 상황에서 이들에게 힘을 적극적으로 실어주며 여권 내 영향력을 유지하려 했다”고 했다.
최순실 일가 역시 “박 대통령은 몇몇 참모들이 이번에 배신을 했다고 생각한다. 원래 갖고 있던 ‘트라우마’가 더욱 심해졌을 것이다. 본인의 처지를 믿고 논의할 참모가 거의 없다. 더군다나 이번 재판이나 수사는 박 대통령의 지극히 사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다. 박 대통령으로선 변호인에게조차 털어놓기 힘든 내용들이 있다. 그래서 믿을 만한 소수의 측근 그룹과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모임에서 주고받은 견해들을 간단히 정리해 박 대통령게 유선으로 보고하거나 관저로 방문해 설명을 드린다”고 털어놨다.
이러한 내용들을 접한 야권 의원들은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국민의당의 한 의원은 “대통령도 반론권이 있고, 개인적 차원의 지인들에게 대책을 구할 순 있다. 이를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면서도 “그런데 이번 사태가 왜 발생했느냐. 비선 때문이다. 그런데 또 비선이냐. 더군다나 박 대통령은 검찰 수사를 거부하는 등 제대로 협조를 하지 않고 있다. 여러 증인들은 조직적으로 청문회에서 위증을 했다. 이러한 것들이 그 모임에서 나온 전략이라면 박근혜 대통령을 구하는 게 아니라 범죄를 모의하는 수준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