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분 감추고 쫄병으로 입대…‘왕따’ 당하기도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조선인민군 제233군부대직속 군부대를 시찰했다고 19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연합뉴스
김정은은 2005~2006년까지 2년 남짓한 하급병사 생활을 거쳤다. 그 배경에 친모 고영희(고용희)가 있다. 북한에서 자녀교육의 주도권을 쥔 쪽은 모친이다. 이는 한국과 비슷하다. 고영희 역시 여느 어머니들처럼 아들 김정은의 교육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고영희는 재일교포 출신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장했고, 교육을 받았다. 고영희의 이런 경험은 아들 정은에게 투영된다. 정은과 정철, 여정 모두 초중등 교육은 유럽 자본주의 사회에서 받았다.
하지만 고등교육 이후부터는 달랐다. 고영희는 해외서 초중등 교육을 마친 자녀들 모두 본국으로 불러들였다. 본국의 고등교육과정을 통해 권부에 진입하는 것이 후계자 경쟁에서 훨씬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더군다나 고영희는 김정일의 본처가 아니었다. 원칙적으로 김정은을 비롯한 고영희의 친자녀들은 ‘곁가지’나 다름없었다.
이 때문에 고영희는 자녀들의 후계자 경쟁에 힘을 북돋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불리한 조건이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다른 이복형제들과의 경쟁은 불가피했다. 특히 일찌감치 다른 형제와 비교해 ‘싹’이 보였던 정은에게 큰 관심을 뒀다.
김정은의 첫 캠퍼스 생활은 훗날 수학하게 되는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이 아니었다. 김정은은 2001년 스위스에서 본국으로 귀국한 이후 이듬해 10월 김일성종합대학 사회과학부 정치경제학과 ‘특설반’ 과정에 입학했다. 하지만 김정은은 필수적으로 이수해야 하는 기초고등교육, 특히 과학과목에 흥미를 잃었다. 이 시기 김정은은 수업 참여보단 농구, 당구, 탁구, 음악 등 스포츠 및 예술분야 여가 생활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북한 내부관계자에 따르면, 김정은은 2003년 결국 학교를 그만뒀다고 한다. 무엇보다 본인 스스로 가장 의지했던 모친 고영희의 지병이 악화돼 병석에 눕게 된 것이 큰 원인이었다고 한다. 이 시기 김정은은 방황했고, 담배와 술을 가까이했다는 후문이다. 결국 고영희는 2004년 8월 김정은이 후계자로 지목되기 전에 숨을 거뒀다.
고영희는 죽음 목전에서도 아들(정은)의 장래를 걱정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아들의 학습실패가 자꾸 맘에 걸렸다. 실패에 대한 만회가 필요했다. 고영희는 정은이 후계자로서 경쟁에 앞서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뭘까 고민했다. 그 답은 ‘군사’였다. 훗날 김정은이 김일성군사종합대학에 입학하게 된 배경도 이와 무관치 않다. 고영희는 죽기 전 당 조직지도부 군사담당 주요간부인 리용철 당시 제1부부장, 김경옥 책임부부장에게 아들을 부탁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게 기획된 것이 바로 김정은의 하급병사 입대 프로젝트다. 고영희가 죽기 전에 일종의 승부수를 띄운 셈이다. 김정은은 2005년 초 휴전선 중부에 위치한 제5군단 직속 독립여단 포병중대(오성산 지역)에 현역 하급병사로 입대한다.
김일성종합대학에 학적이 있었던 김정은은 탄원병 자격이었다. 탄원병 제도란 군복무 면제 대상임에도 본인이 자원하여 3년간 군복무를 이행하는 일종의 자원입대 제도다. 북한에서는 김일성종합대학을 포함해 5개 중앙 핵심대학의 재학생 및 졸업생들은 군복무 면제 대상이다.
김정은이 배치된 포병중대도 특별한 곳이었다. 주로 만경대혁명학원 출신을 포함한 혁명 유자녀 가문과 고위급 핵심 간부들의 자녀들이 훗날 군 간부가 되기 위해 복무하는 특별 부대였다.
2012년 6월 10일 일본 ‘마이니치 신문’이 입수해 공개한 고영희 관련 영상 중 한 장면. 어린시절 김정은을 지도하고 있는 고영희(왼쪽)의 모습.
김정은은 군 입대 과정에서 자신의 신분을 철저히 숨겼다. 당국은 김정은을 비밀리에 입대시키기 위해 특별 이벤트를 진행했다. 김일성청년동맹 산하 평양시위원회는 2005년 2월 평양 거주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입대탄원운동’을 기획했고, 김정은은 여기에 지원한 지원자들과 자연스럽게 묻어가며 군에 입대했다.
당국은 김정은의 신변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장치는 마련해 뒀다. 김정은이 군에 입대하는 과정에서 특별하게 선발한 호위대원 세 명을 같은 중대 다른 소대에 극비 배치해 둔 것이다. 김정은 본인은 물론 주변에서도 이 호위대원들의 정체를 전혀 몰랐던 것으로 파악된다.
김정은은 군 입대 당시 김철수라는 가명으로 신분을 세탁했다. 또한 김철수라는 가상 인물은 대남공작원의 자식으로 부모 모두 대남공작 수행 도중 희생된 것으로 각색됐다.
그렇게 김정은의 군 생활은 시작됐다. 김정일의 아들로서 남부럽지 않게 자란 김정은에게 하급병사 생활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오랜 기간 자본주의 사회에서 교육을 이수하고 수도 평양에서 지낸 김정은으로서 폐쇄된 군 생활은 여간 고역스러운 일이었다.
군복무 초창기 김정은은 주변 병사들과 전혀 어울리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무엇보다 상식적으로 맞지 않는 서투른 발언과 평양 말투가 문제였다. 남들보다 비대한 몸도 한몫했다. 느릿한 행동이 걸림돌이었던 것. 자연스럽게 김정은은 상관으로부터 반복훈련 명령을 받는 한편, 기합이 이어지기도 했다. 이 시기 김정은은 부대 내 왕따나 다름없었다.
김정은의 하급병사 생활은 최소한 남들과 똑같이 했다. 통나무 나르기, 화장실 청소, 농사철 논밭 김매기, 상급자들의 목 달개(북한 군복의 깃)와 발싸개 세탁은 기본이었다. 심지어 상급자들의 명령으로 초여름 감자와 옥수수 같은 농작물 도둑질 지시까지 받았다고 한다. 이 같은 농작물 서리 명령은 북한 군 사병들이 꼭 거치는 부조리다.
적잖은 기간 동안 부침을 겪었던 김정은도 적응기를 거치고 난 뒤엔 한 부대원으로서 나름 정착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김정은은 몇몇 상급자 및 부대원들과 연을 맺게 된다. 물론 그 연은 두 갈래다. 악연이 있기도 했고, 좋은 인연이 있기도 했다. 김정은이 군에서 만난 일부 인연은 훗날 귀하게 쓰이게 된다. 반대로 김정은의 신분을 모르고 악의적으로 대한 군내 인사들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날벼락을 맞기도 했다.
다음 연재에선 김정은이 군에서 만난 인사와 돌연 제대를 하게 된 숨겨진 과정을 살펴본다. <下편 계속>
이윤걸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대표
정리=한병관 기자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