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원은 바른정당에 귀속” 문제 조항 지웠지만 잡음 여전
왼쪽 사진은 1월 18일 바른정당 랩배틀 공모전 포스터, 오른쪽 사진은 저작권 귀속 규정을 삭제했다는 내용의 게시물.
1월 18일 바른정당은 공식 페이스북에 “깨끗한 정치, 따뜻한 정치에 대한 제안을 랩으로 표현하실 분들의 많은 공모를 바란다”며 ‘SHOW ME THE 바른정당 랩 배틀’의 포스터를 공개했다. 주제는 ‘바른정당에 바라는 정치’이고 1월 30일까지 동영상 및 음원을 이메일로 접수해 예선이 진행된다.
총상금은 350만 원이다. 1등에겐 200만 원의 상금을 주어진다. 2월 5일 예선 통과자를 대상으로 본선이 열릴 예정이다. 주최 측이 밝힌 심사 기준은 음악성, 가사의 참신성, 퍼포먼스다. 바른정당 관계자는 “바른정당이 나아갈 방향과 바른 정치가 무엇인지에 대해 랩 배틀 형식으로 국민의 의견을 모으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바른정당 랩 배틀은 음악 방송 Mnet의 인기 프로그램 ‘Show Me The Money(쇼미더머니)’ 형식을 빌렸다. ‘쇼미더머니’는 힙합 오디션이다. 심사위원들은 ‘프로듀서’로 불리는데 예선이나 본선 초기에 심사를 담당한다. ‘쇼미더머니’ 우승자는 억대의 상금을 받고 무료로 개인 음원을 발매할 수 있다.
랩 배틀에 대해 누리꾼들은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나는 펜을 잡겠다. 너는 비트를 부탁한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영입하지 말라고 가사에 써야겠다” 등 다양한 반응을 쏟아냈다.
하지만 랩배틀 공모전은 초기부터 도마에 올랐다. 바른정당은 공모전 포스터에 작은 글씨로 “응모하신 동영상 및 음원은 바른정당에 귀속됩니다”는 단서 조항을 명시했다. 바른정당이 응모자들의 동영상과 음원을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일부 누리꾼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이 아무개 씨는 “그 와중에 영상이랑 음원을 귀속한다니…, 솔직히 이것만 봐도 앞으로 어떨지 예상이 된다”는 반응이었다. 송 아무개 씨는 “저작권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 한다. 저작권 단서 조항은 문화체육관광부의 콘텐츠 공모전 표준 가이드라인에 위배된다”고 비판했다. 바른정당이 전제한 동영상과 음원 귀속 규정을 ‘저작권 귀속 규정’으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문체부가 2014년 발표한 ‘창작물 공모전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저작권 등 일체의 권리는 응모자에게 있다. 문체부의 공모전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공모전에 출품된 응모작의 저작권 즉, 저작재산권과 저작인격권은 저작자인 응모자에게 원시적으로 귀속된다(저작권법 제10조)”고 적시돼 있다.
랩배틀 공모전 응모자가 ‘양도’나 ‘이용’에 동의하지 않는 이상 동영상과 음원이 응모자에게 원시적으로 귀속된다는 의미다. 문체부는 저작권 귀속 단서 조항의 잘못된 예로 “접수된 작품에 대한 지적 재산권은 주취 측에 귀속됨”을 들고 있다.
랩배틀 참가자의 동영상과 음원 귀속 규정은 “출품자의 저작권을 보호한다”는 시대흐름과도 맞지 않는다. 지난해 8월 마사회는 ‘서초부지 활용 국민 아이디어 공모전’에서 “응모작에 대한 저작권, 소유권 등 모든 권리는 한국마사회에 귀속된다”고 명시했다.
일부 언론에서 저작권법 위반 문제를 지적하자 마사회 측은 뒤늦게 “문체부의 공모전 가이드라인에 부합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며 저작권 귀속 규정을 수정했다. 더불어민주당도 지난해 8월 ‘NO, 사드 스마트폰 영화제’를 주최했지만 응모자들에게 ‘모든 공고조건에 동의한다’는 동의서를 개별적으로 받았다. 저작권법 위반 논란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조치였다.
전문가들은 “바른정당이 나중에 홍보용으로 랩배틀 동영상이나 음원을 사용할 경우 분쟁의 소지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변리사 출신인 법무법인 강의 구주와 변호사는 “랩배틀 공지를 읽고 특별한 언급 없이 응모하였다면 바른정당 소유라고 해석할 여지가 있다. 하지만 향후 다툼의 여지가 상당히 많다. 저작권 자체를 넘기는 것으로 보면, 응모자도 추후 자신의 동영상 및 음원을 사용할 때 바른정당의 허락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법적 분쟁 여지가 크다”고 설명했다.
법조계에서도 “저작권 귀속 규정이 문제가 있다”는 견해가 적지 않다. 법무법인 덕수의 임애리 변호사는 “약관규제법상 불공정약관과 민법 104조의 불공정거래행위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 바른정당이 차후에 귀속 규정을 근거로 동영상 및 음원을 복제 배포하거나 변형하여 사용한다면 저작권법 위반이 될 수 있다. 동영상과 음원에는 저작권뿐만 아니라 공연자의 실연권, 동영상의 경우 초상권 등 여러가지 법적 권리가 있는데 바른정당의 귀속 규정은 너무 추상적이다. 어떤 권리에 대한 양도인지를 알 수가 없어 불공정한 규정”이라고 설명했다.
랩배틀을 기획한 바른정당 관계자는 “당선자와 협의해서 하겠다는 차원에서 동영상과 음원 귀속 규정을 넣었다. 문체부의 가이드라인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가이드라인에 따라 고치도록 하겠다”고 해명했다.
이튿날 바른정당은 “‘응모하신 동영상 및 음원은 바른정당에 귀속됩니다’는 부분을 삭제했다”고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바른정당은 초기에 공지한 랩배틀 관련 포스터를 페이스북에서 삭제하지 않았다. 참가자들이 저작권 귀속 규정과 관련해 혼란을 겪을 수 있는 부분이다.
바른정당 랩배틀 관련 동영상과 음원의 저작권을 둘러싼 논쟁의 불씨도 여전히 남아 있다. 앞서의 임애리 변호사는 “저작권 귀속 규정 없이 랩배틀과 같은 공모전을 주최한다면 문제 소지가 적을 수 있다. 하지만 바른정당이 앞으로 동영상과 음원을 저작자들의 동의를 얻지 않고 다른 용도로 사용한다면 저작권법 위반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