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 과징금 폭탄 세례…제조사 최초로 애플까지 소송전 가세
기사를 읽기 전 기억해야 할 팩트 1. 4G LTE 통신 표준을 지원하는 모든 스마트폰은 퀄컴이 보유한 특허를 사실상 피해갈 수 없다. 2. 애플, 삼성을 비롯한 대부분 제조사들은 퀄컴이 특허를 앞세워 부당하게 많은 특허 사용료를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3. 퀄컴은 지난해 과도한 로열티와 특허 끼워팔기 등을 이유로 중국 정부로부터 60억 8800만 위안(약 1조 444억 원), 한국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1조 300억 원의 과징금을 부여받았다. 4. 퀄컴은 지난 18일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로부터 반독점법 위반 혐의로 제소당했다. |
손톱보다 작은 크기지만 차지하는 원가는 대단히 높다. 사진=퀄컴 홈페이지
[비즈한국] ‘소송의 아이콘’ 애플이 세계 최대 스마트폰 시장 미국과 중국에서 퀄컴을 상대로 천문학적인 규모의 소송전을 개시했다. 우리나라 공정거래위원회 조사에 애플이 협조했다는 이유로, 원래 주기로 한 리베이트를 주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특허 사용료를 다른 기업에 비해 5배가량 비싸게 책정한 것이 부당하다는 주장도 더해졌다. 퀄컴은 스마트폰 제조사에 제품 판매가의 3~5%를 로열티로 받고 있다.
애플은 지난 20일(현지시각) 미국에 이어 25일 중국에서도 같은 논리와 근거로 퀄컴을 제소했다. 손해배상액은 미국과 중국에서 각각 10억 달러(1조 176억 원)와 1000만 위안(1698억 원)이다. 애플은 삼성을 상대로도 세계 각국서 줄소송을 불사한 전례가 있다. 매우 집요하고 치밀하기로 정평이 나있다. 마침내 애플과 퀄컴의 전면전이 시작된 것이다.
# 퀄컴-애플 리베이트의 비밀
기본적으로 애플은 퀄컴에 특허 사용료를 지불하는 관계다. 10억 달러에 달하는 리베이트는 애플이 아이폰과 아이패드에 퀄컴이 만든 통신칩만 사용하는 대가로 지불하는 일종의 ‘뒷돈’이다.
특허 사용료를 받고 리베이트를 주는 것은 사실상 할인이다. 할인을 해주는 첫 번째 조건은 다른 회사의 통신칩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이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하면 일찌감치 경쟁사의 싹을 잘라놓겠다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애플이 이번 소송을 제기하면서 폭로한 또 다른 계약 조건은 애플이 퀄컴에 관한 정부 및 감독기관의 조사에 응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애플은 한국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에 협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퀄컴은 계약대로 애플에게 10억 달러에 달하는 리베이트 지급을 보류했다. 계약을 근거로 한 보복성 조치로 해석된다. 애플은 이러한 퀄컴의 조치가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 퀄컴은 정말 ‘갑’인가
애플이 퀄컴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에 전 세계 통신 전자업계가 주목하는 이유는 퀄컴을 상대로 감독기관이 아닌 제조사가 반기를 든 최초의 사례이기 때문이다.
애플 이외에도 그동안 제조사들은 퀄컴의 과도한 특허료 요구에 대해 골머리를 앓아왔다. 하지만 그 누구도 적극적으로 부당함을 주장하지 않았다. 자칫 관계가 틀어질 경우 스마트폰 사업에 막대한 피해를 입을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대부분 부품 공급사는 특허 사용료를 부품 공급가에 포함시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퀄컴은 제품 판매가격의 일부를 가져가는 라이선스 계약을 맺어왔다. 이러한 계약 자체가 불법은 아니지만, 전 세계 모든 부품사 중 유일하게 퀄컴이 아니면 맺을 수 없는 불공정 계약이기도 하다.
퀄컴은 스마트폰 판매액에 무려 3~5%를 라이선스 비용을 받는다. 이는 제조업에서 영업이익에 해당할 정도로 높은 비율이다. 로열티 주고 나면 남는 것이 없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다.
이러한 가운데 애플은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원가를 더욱 절감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2001년 이후로 처음 매출이 감소한 만큼 이익을 더 내야 하는 상황에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퀄컴에 지불하는 과도한 특허 사용료를 줄이는 것이라는 판단이 깔렸다.
미국 샌디에이고에 있는 퀄컴 본사. 사진=연합뉴스
결국 애플은 독점공급 계약을 깨고 지난해 최초로 아이폰7에 퀄컴과 함께 인텔이 만든 통신 칩을 탑재하는 결정을 내렸다. 물론 인텔 역시 퀄컴이 보유한 특허를 사용한다. 그러나 제조 공정에서 기술특허료는 딱 한번밖에 받을 수 없다. 따라서 애플이 20달러에도 못 미치는 인텔 칩을 구입하게 되면 퀄컴에 최저 650달러에 달하는 아이폰 대당 가격의 3~5%인 특허 사용료를 주지 않아도 된다.
이는 퀄컴을 견제하기 위한 포석이지만, 인텔이 제공하는 통신칩이 퀄컴에 비해 성능이 현저히 떨어졌다는 점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심지어 애플은 제품을 균일하게 공급하기 위해 퀄컴 통신칩의 성능을 일부러 제한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그만큼 현재 시장에서 퀄컴의 기술력이나 영향력은 독보적이다.
게다가 퀄컴은 경쟁 통신칩 제조업체에 라이선스를 주지 않은 것으로도 확인됐다. 특허는 권리를 보장하는 제도이지, 독점을 합리화하는 제도가 아니다. 따라서 어떤 사업에 있어 필수 불가결한 특허에 대해서는 프랜드(FRAND·공정하고 합리적이고 비차별적인) 조항을 적용 받는다. 따라서 특허권자는 경쟁업체 누구에게나 공정하고 합리적인 라이선스 비용을 받고 특허 사용을 허가해야 한다.
그런데 공정위 조사 결과 퀄컴은 적어도 2009년 11월부터 경쟁사에 라이선스 요청을 거절한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로 지난 2008년 독일의 도이체방크가 선정한 세계 11개 주요 통신용 반도체 기업 중 9개가 현재 폐업 상태다. 또 퀄컴은 전 세계 LTE 모뎀칩셋 시장 점유율이 2010년에 34.2%에 불과했지만, 2015년에는 69.4%로 두 배 이상 성장했다.
# 퀄컴은 왜 억울해 할까
퀄컴은 즉각 논평을 내고 반발했다. 돈 로젠버그 퀄컴 수석 부사장 겸 법률고문은 “애플이 우리와 맺은 계약 및 협상 내용을 의도적으로 잘못 해석하고 있다”며 “약속한 리베이트를 주지 않은 이유는 애플이 한국 공정위와 미국 FTC에 허위 진술을 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또 그는 “애플이 전 세계 각지에서 퀄컴을 상대로 규제 공격을 선동하고 있다”며 “이러한 애플의 무익한 주장을 법정에서 가리게 된 것을 환영한다”고 비꼬기도 했다.
퀄컴 주장의 핵심은 휴대폰 판매가격의 일부를 특허료로 받는 것은 통신업계 오랜 관행이며, 경쟁업체에 라이선스를 주지 않은 것은 협상 조건이 맞지 않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과도한 특허 사용료를 받는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지난 수십 년간 천문학적인 연구 개발비가 들어간 만큼, 당연한 권리 행사라는 설명이 곁들여졌다.
애플은 이러한 퀄컴의 관행 주장에 대해서는 떳떳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최근 애플이 삼성전자와 디자인 특허 소송에서 배상액을 휴대폰 판매가 기준으로 받겠다고 주장하다가 미국 대법원에 기각당한 선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퀄컴의 앞날은 순탄치 않아 보인다. 이미 처분을 내린 중국과 우리나라에 이어 미국까지 퀄컴의 독점 행위를 규제하기로 나선 가운데 대만과 유럽연합(EU) 역시 이 문제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패트릭 무어 무어 인사이트 앤 스트레티지 애널리스트는 “(애플의 소송은) 어마어마한 시장 점유율과 기술력으로 앞서나가는 퀄컴에게 확실한 골칫덩이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봉성창 비즈한국 기자 bong@bizhanko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