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법 위반이냐, 살아있는 역사 교육의 장이냐”
- 추진위, 유동 인구 많은 ‘동성로’ 선호
- 중구청, ‘국채보상공원’ 또는 ‘3·1만세운동길’ 제시
- 민·관 합동 평화 소녀상, ‘구청 기부 방안’ 고려
[대구=일요신문] 남경원 기자 = “한복을 입은 단발머리의 소녀는 의자에 앉은 채 두 손을 꼭 쥐고 있다. 아무런 표정없는 얼굴과 눈에는 슬픔이 가득해 보인다. 쓸쓸히 비워둔 옆 자리에 앉은 소녀의 왼쪽 어깨에는 새 한마리가 앉아 있다. 자세히 보면 소녀는 맨발이다. 그리고 무엇이 불안한지 발꿈치를 든 채 잔뜩 움츠려져있다. 바닥에 깔린 소녀의 그림자에는 세월로 드리워진 흔적이 엿보인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을 회복하고, 전쟁의 아픔을 담으며 평화를 기원한다는 의미로 탄생된 ‘평화의 소녀상’이 대구에도 정착될 전망이다. 그러나 소녀상이 있어야 할 장소가 마땅치 않다. <일요신문>이 그 전말을 살펴봤다.
대구지역 평화의 소녀상에 대한 모금액은 7000만원이 넘어섰다. 참가자만 2150명이다.평화의 소녀상은 조각가인 김운성·김서경 부부 손에 제작 중에 있다.
대구에도 ‘평화의 소녀상’ 건립이 추진되고 있는 가운데 위치선정 문제를 두고 행정당국과 민간 단체간 다소 마찰이 빚어지고 있다. 최근 대구소녀상건립범시민추진위원회와 중구청은 소녀상의 건립 장소를 두고 논의를 수차례 거쳤으나 의견이 달라 설치 장소는 현재까지 미정이다. 추진위 측은 평화의 소녀상 설치장소로 대구 중구 대구백화점 앞 광장을 꼽았다. 이곳은 넓은 광장과 함께 대형 야외무대도 설치돼 있다. 대구에서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곳이기도 하다.
추진위 관계자는 “유동인구가 많은 동성로 대구백화점 앞 광장에 소녀상을 세워 많은 시민들은 물론 젊은 층들이 소녀상을 보며 역사적 의미를 되새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중구청 측은 난색을 표하고 있는데, 현행법상 해당 장소에 설치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평화의 소녀상은 민간단체 설치물이며, 현행 도로법 55조에 따르면 공공시설 설치만 가능하며 민간단체 설치물로 분류된 평화의 소녀상은 설치할 수 없다는 것이 줄구청 측의 입장인 것.
설치 반대를 주장하고 있지는 않다. 중구청은 평화의 소녀상 설치 장소로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중앙도서관 구간과 3·1운동길 주변 쌈지공원 등 2곳을 제시하고 있다. 역사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장소이면서 통행 피해를 줄이고 훼손 위험도 적다는 것이다. 중구청 관계자는 “추진위가 꼽은 대구백화점 앞 광장은 수시로 많은 행사가 열려 현재도 수많은 인파가 몰려 복잡한 구간이다. 평화의 소녀상 설치 시 시민들의 통행에 불편을 줄 수도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소녀상을 동성로 광장에 설치해야 한다는 추진위의 입장은 변함이 없다. 오히려 구청이 밝힌 이유를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추진위는 동성로 앞 무대 정면을 바라보는 벤치 한 개를 걷어내면 소녀상 설치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구에서 가장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나 최대면적 가로 250cm, 세로 150cm의 소녀상은 통행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것이다. 살아있는 역사교육의 장이 공원 한 귀퉁이의 유물로 박제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 제기했다. 보여주기만 하는 박물관식 교육이 아니라 일상 가까이에서 역사의 아픔을 잊지 말자는 것이 추진위의 뜻이다.
법 문제와 관련해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평화 소녀상 설치가 도로법 55조로 본다면 엄연히 불법이지만 중구청이 제시한 공원도 ‘도시공원및녹지에관한법률’에 따르면 이 또한 불법이라는 것이다. 추진위 관계자는 “현행법상으로 동성로든 공원이든 양쪽 다 설치에 문제가 있다. 공원 또한 위법적인 요소가 상당하다. 다른 지역에서도 공원에 평화의 소녀상 설치가 쉽지 않았다”라며, “중구청이 평화의 소녀상 설치를 반대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지만 공익과 대의를 생각해 폭넓은 입장으로 이를 받아들였으면 한다”고 전했다.
대구지역 평화의 소녀상에 대한 모금액은 7000만원이 넘어섰다. 참가자만 2150명이다.
이미 협의는 3차례에 걸쳐 진행됐으나 현재까지 장소 문제는 서로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고 있다. 게다가 설날 전으로 예정된 협의 역시 중구청의 거부로 불발됐다. 이로 인해 오는 3월1일, 제막식을 예정한 대구 지역의 ‘평화의 소녀상’ 건립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현재까지(1월20일) 평화의 소녀상에 대한 모금액은 7000만원이 넘어섰다. 참가자만 2150명이다. 소녀상의 제작도 이미 들어간 상태다. 평화의 소녀상은 조각가인 김운성·김서경 부부 손에 제작 중이며 제작 기간은 2달이 소요된다. 결국 장소만이 남았다.
추진위 관계자는 “평화의 소녀상을 중구청에 기부하는 것도 고려 중이다. 이는 소녀상을 중구청에서 세우는 것으로 하겠다는 것으로, 역사의식의 고취를 위해 민·관이 협동해 평화의 소녀상을 세운다면 이것만큼 모범적인 대안이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소녀상 설치는 시민의 참여와 요구를 지역 사회가 어떻게 반영하는가에 대한 행정 의지의 문제인 만큼 중구청의 폭넓은 행보를 기대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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