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령님 닮았으니 배우 해라”…형처럼 챙겨준 상관들 훗날 초고속 승진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인민군 제1314군부대를 방문해 둘러보고 있다. 북한 조선중앙TV가 1월 22일 방영한 김정은의 시찰 모습. 김정은이 군부대를 찾은 것은 올해 들어 두 번째다.
2005년 초 중부전선을 담당하는 5군단(강원도 오성산 지역) 산하 독립여단 직속 포병중대에 하급병사로 입대한 김정은은 2006년 우여곡절 끝에 중급병사로 승급한다. 아무리 힘들고 고된 병영생활에서도 어느 누군가는 따뜻한 손길을 내미는 법이다. 이 과정에서 ‘평양촌놈’ 김정은에게 남몰래 도움을 줬던 사람들이 존재했다.
내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부대를 관할하는 A 중대장과 B 부중대장(1소대장 겸직)은 여러모로 부족했던 김정은에게 따뜻한 격려를 해주는 한편 많이 다독여줬던 인물들이었다. B 부중대장은 어느 날 군 생활에 익숙치 못한 김정은을 두고 나무라는 대신 “평양 출신이 군대 나와서 참 고생이 많다”고 따뜻한 격려를 건넸다.
A 중대장은 아마도 눈썰미가 있었던 모양이다. A 중대장은 김정은의 남다른 외모에 주목했다. 그는 김정은을 두고 “배우처럼 잘생겼다”라며 “넌 수령님(고 김일성 주석)처럼 생겼으니 1호 배우(북한 영화 및 드라마에서 김일성 주석의 대역을 맡는 배우)도 할 수 있겠다. 제대하면 꼭 유명한 배우가 되라”고 덕담을 건넸다고 한다. 물론 A 중대장은 김정은의 신분을 전혀 몰랐다. 그저 적응 못하는 평양 출신 대남공작원 유자녀로만 알고 있었을 뿐이다.
A 중대장과 B 부중대장이 온화하고 따뜻한 상관이었다면, 그의 직속상관인 C 분대장은 그야말로 힘든 군 생활 과정에서 맘속 깊은 곳까지 터놓았던 진정한 전우였다. C 분대장은 자신의 부대원인 김정은을 유독 살뜰하게 챙겼다. C 분대장은 다른 부대원이 부대 인근 농장에서 훔쳐온 감자나 옥수수를 남들 안 보이는 곳에서 슬쩍 찔러 주는가 하면, 전투훈련 시 제식동작을 자주 틀리던 김정은을 보고도 몇 차례 눈감아주기도 했다.
C 분대장은 황해도 농장원 출신이었다. 말 그대로 별 다른 배경조차 없는 인물이었다. 부대에서 허둥대던 김정은을 보고 아마 ‘막냇동생’ 같은 짠함을 느꼈을 듯싶다. 평양 출신인 김정은에 대한 선망도 작용했다.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C 분대장은 어느 날인가 김정은에게 “내 꿈은 평양에 있는 대학에 추천을 받아 입학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는 시골 농장원 출신에서 벗어나 도시로 나오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어지간히 맘을 터놓는 사이가 아니라면 굳이 일러줄 말이 아니었다. 그만큼 C 분대장은 분대원 김정은과 아주 가까운 사이었다.
반면 부대 내 악역들도 존재했다. 부대 D 정치지도원과 E 소대장(중대 2소대장)은 집요하게 김정은을 괴롭혔던 인물들로 알려졌다. 북한의 군대는 지휘관만큼이나 정치지도원의 힘과 역할이 세다. 북한군 총정치국장의 지위가 인민무력부장이나 총참모장보다 높은 것과 비슷한 원리다. 이 때문에 북한 일선 부대에서 지휘관인 중대장과 정치지도원 간에 알력 다툼을 벌이거나 패가 갈리는 것이 일상사다.
아마도 김정은이 속한 부대는 김정은을 배려하고 아꼈던 A 중대장과 B 부중대장이 한 축을 이뤘고, 그렇지 않았던 D 정치지도원과 E 소대장이 또 다른 축을 형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D 정치지도원과 E 소대장은 평소 행동이 느린 김정은을 두고 ‘백돼지’ ‘평양 무식쟁이’ 등 모욕적인 별칭으로 불렀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김정은에게 “불도 제대로 지필 줄 모르느냐” “어떻게 잘하는 것이 하나도 없느냐”고 닦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D 정치지도원과 가까운 중대 사관장(한국의 원사 급)도 김정은의 근무복장이나 상황발생시 느릿한 행동을 두고 꽤나 괴롭혔던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이들에 대한 엇갈린 평가와 그에 대한 대응은 김정은이 전역한 후 극적으로 이뤄진다. 김정은의 전역 과정도 매우 극적이었다. 김정은이 군 생활 2년차였던 2006년 말경 그가 속한 포병중대에 큰 과제가 떨어진다. 상급 군단이 부대 인근에 건설 중인 소형 수력발전소 건설공사장에 철강재 조달을 분담하게 된 것이다. 북한의 군대는 건설 사업을 진행할 때, 중앙에서 필요한 자재가 공급되지 않는다면 ‘자력갱생’의 미명하에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당시 철강재 조달 과제를 떠안은 A 중대장은 무거운 중압감에 시달렸다. 결국 철강재 조달은 부대원들의 인맥관계를 총동원해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도 어려우면 결국 주변 민간 공장이나 기업소의 자재들을 몰래 훔쳐오는 방법 말고는 없었다.
이때 A 중대장은 부대원 김정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평양 출신인 김정은 주변에 최소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친인척은 있지 않겠느냐는 추측이었다. 평소 자신을 아껴온 A 중대장의 부탁에 김정은은 흔쾌히 수락했다. A 중대장은 김정은과 곧바로 평양 출장길에 나선다.
두 사람은 부대를 떠나 마식령줄기를 낀 원산-평양 고속도로에 이르렀다. 그러던 중 황해북도 곡산군 인근에서 누군가 보낸 신형벤츠(S600)와 마주한다. 영문을 모른 두 사람은 그 차를 타고 평양으로 이동했다. 차량을 보내 두 사람을 맞이한 사람은 다름 아닌 김정일이었다. 평양 출장길에 올랐다는 아들 소식을 전해들은 김정일이 계획적으로 일을 벌인 것이다.
A 중대장은 그제야 자기 부대원이었던 김철수(김정은이 사용했던 가명)가 김정일의 삼남 김정은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당시 김정일은 “중대장이 내 아들을 맡아서 수고했다”는 격려와 함께 부대로 떨어진 과제도 해결해 줬다. A 중대장은 김정은의 신분을 숨기라는 당 조직지도부의 명령을 받고 홀로 군에 복귀했다.
북한군이 건설현장에 투입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사진은 북한-평양시 주택건설공장. 연합뉴스
평양 출장길을 나온 김정은은 다시 부대로 복귀하지 않았다. 김정은의 조기 제대 배경에는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온다. 다만 그 발단은 장성택 당시 당 행정부장에게 있었다는 후문이다.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2006년께 장성택은 김정일을 대동하고 정은이 속한 포병중대를 시찰했는데, 그곳에서 우연찮게 정은을 발견해 아는 체를 했다는 것이다. 주변에는 부대 고위간부들이 있었고, 신분이 탄로 날까봐 어쩔 수 없이 정은을 제대시킬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발단의 요지다.
김정은이 제대한 후 A 중대장은 2007년 김일성군사종합대학 포병 고위지휘관 연구반 과정에 입학해 2010년 학위를 마쳤다. 형식은 총정치국 추천이었지만, 사실상 김정은과 김정일의 배려였다. A 중대장은 학위 이수 후 김일성종합군사대학 포병학 강좌 교원을 거쳐, 2011년 12월경 518훈련소 작전부장(대좌)으로 초고속 승진했다.
역시 김정은에게 살갑게 대했던 B 부중대장도 군 제대 후 김일성고급당학교 전문교육과정을 거쳐 중앙당 군수공업부 부원으로 배치됐다. B 부중대장은 2013년 경 자강도 내 군당 급 당위원회 책임비서를 거쳐 현재는 당위원장을 역임하며 승승장구 중이다.
가장 주목해야 할 인물은 C 분대장이다. 한낱 시골 농장원이었던 그는 김정은의 배려로 자기의 평생소원을 성취했다. C 분대장은 군 제대 후 김일성종합대학 정치경제학과에 입학했다. 김정은은 C 분대장이 대학에 재학했을 시기(2010년 9월 공식 등장 전)에도 그를 몰래 찾아가 환담을 나누는 등 매우 가까이 했다. C 분대장은 졸업 후 국방위원회 소속으로 배치돼 현재까지도 김정은의 지근거리에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더 놀라운 점은 C 분대장의 결혼 상대다. C 분대장의 현재 부인은 바로 현송월 모란봉악단 단장이다. 한때 김정은의 내연녀라는 설이 나돌기도 했던 현송월의 남편이 다름 아닌 김정은의 직속 분대장이었던 C 분대장이었던 것. 필자는 이와 관련해 지난 2015년 12월 22일 제1232호 기사를 통해 이미 언급한 바 있다. 김정은은 자신이 총애했던 두 남녀를 부부의 연으로 연결시켜줬던 것이다.
이 밖에도 김정은이 2005년 입대했을 당시 같은 중대 다른 소대로 몰래 배치된 세 명의 호위대원 역시 제대 후 김정은의 직속 호위부대원으로 함께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이윤걸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대표
정리=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김정은, 군에 대한 불신임 왜? 병영생활 트라우마 탓 김정은의 병영생활 과정에서 그를 챙겼던 직속 중대장, 소대장, 분대장이 훗날 과분한 처우를 받은 것과 달리 그렇지 못한 인사들은 말 그대로 보복을 당했다.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김정은에게 군사규정을 들이대며 괴롭혔던 D 정치지도원과 E 소대장은 훗날 김정은에 의해 강제 제대됐다는 후문이다. 강제로 제대 조치된 이들은 가족들과 함께 정치범 수용소로 보내졌다. 개인적인 복수 치고는 비상식적으로 엄한 셈이었다. 김정은은 집권 이후 유독 군 고위급 지휘관들, 특히 정치 간부들에 대해 강경한 인사 조치를 취하고 있다. 리영호, 현영철 등 군부인사 숙청은 물론 이전 김정일 시대와 달리 잦은 군 내 정치간부 인사 개편으로 혼란을 자초한 바 있다. 군단급 정치위원의 실권을 낮추고 지휘관의 실권을 높이는 조치도 이전과는 다른 점이다. 김정은 시대 두드러지고 있는 군 간부들에 대한 잇따른 불신임은 김정은이 과거 2년간 현장에서 목격한 군부의 실상에서 비롯됐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군부를 너무나 잘 알게 된 까닭이다. 일종의 ‘트라우마’인 셈이다. [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