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객음식까지 DIY…“알뜰 넘어 궁상”
여기까지는 기존에도 많은 신자 부부들이나 알뜰한 부부들이 진행하던 예식이라 한다면, 더 나아가 아예 장소부터 본식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이 모두 선택하고 결정하는 ‘DIY(Do It Yourself) 결혼’을 하는 부부들이 늘고 있다. 펜션을 빌려 식장처럼 꾸미고, 출장 뷔페 대신에 본인들이 직접 만들거나 저렴하게 구입한 대중적인 음식으로 하객들을 대접하는 식이다. 하객들은 가족과 친한 친구들을 불러 50명이 넘지 않도록 한다. 셀프 웨딩과 스몰웨딩이 결합된 이른바 ‘한국형 스몰웨딩’이다.
강원도 정선의 한 밀밭에서 작은 결혼식을 올린 원빈-이나영 커플. 사진제공=이든나인
2013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용어가 정립된 스몰웨딩은 최근 3~4년 사이 장기적인 경제 불황으로 인해 신혼부부들 사이에서 ‘가성비가 높은 결혼식’이라는 이유로 각광받아 왔다. 그런데 이같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한국형 스몰웨딩이 사회의 신 풍속도로 안정적인 자리 잡기를 할 때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 ‘결혼식 문화’가 갖는 의미를 떠나 가성비와 합리성을 이유로 너무 급격하게 유행한 결과 기존 한국의 결혼 문화와는 동떨어진 방식이 문제가 됐기 때문이다.
오는 6월 결혼을 앞두고 있는 김 아무개 씨(여·35)는 예비 신랑과 스몰웨딩으로 결혼식을 진행하기로 했지만 양가의 반대에 부딪쳐 결국 웨딩플래너를 끼고 결혼식을 준비하기로 마음을 바꿨다. 당시 김 씨는 하우스 파티 전문 펜션을 빌려 식장으로 꾸민 뒤 가족과 친구를 부를 애초의 계획을 밝혔는데, 양가 부모님은 모두 “남들에게 부끄럽다”며 반대했다. 여기에 도심 속 예식장이 아니라 시골의 펜션이기 때문에 교통편도 좋지 않아 하객들을 부르기 애매하다는 이유도 더해졌다. 좀 더 노골적으로 속내를 들여다보자면 결국 뿌린 축의금에 비해 받을 수 있는 축의금이 적기 때문에 반대한다는 것이다.
김 씨는 “한국에서 결혼식은 부부 둘만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과 가족의 결합이라는 게 아직까지도 강하게 자리 잡은 인식”이라며 “부모님들 사이에서 자식들의 결혼식은 부모님의 능력이나 인망을 보여주는 자리이기도 하기 때문에 잘해봐도 본전치기일 뿐 손해 볼 위험이 더 큰 스몰웨딩을 꺼려하시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웨딩업체가 전혀 관여하지 않는 스몰웨딩을 진행한 한 신혼부부의 후기는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를 강타하며 거대한 토론 불판을 만들기도 했다. 알뜰해서 보기 좋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인생 단 한 번뿐인 결혼식인데 너무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지방의 한 펜션에서 진행된 이 스몰웨딩 후기에서는 신부가 식 전날 하객들의 음식을 만들기 위해 늦게까지 자지 못 하고 요리를 했다거나, 대접한 요리의 대부분이 시가 1만~2만 원 상당의 저렴한 음식이었던 점, 축의금을 받는 함도 버려진 쇼핑백을 이용해 재활용했다는 점에서 알뜰하다기 보다는 “궁상맞다”는 의견을 더 많이 받았다. 대다수의 네티즌들은 “스몰웨딩이면 하객들도 정말 친한 사람이나 가족들을 불렀을 것인데 저런 대접을 받고 축의금까지 내야 하는 결혼식이라면 초대받지 않느니만 못할 것”이라며 비난하기도 했다.
서울의 한 웨딩 컨설팅 업체의 한 아무개 실장(44)은 “우리나라에서 결혼은 부부의 새 출발을 축하하는 자리이기도 하지만, 부부가 자신의 인생에 도움을 준 가족이나 친지들에게 그 고마움을 알리는 자리라는 의식도 강하다”라며 “이 때문에 결혼식 규모를 아무리 크게 잡아도 하객 대접이 시원치 않으면 그 결혼식은 부정적인 인식을 남기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실제로 최근 3~4년 간 웨딩플래너를 끼고도 80만~100만 원 상당의 스몰웨딩 패키지를 선택하는 부부들이 급증했는데 패키지 선택 과정에서도 양가 부모들의 반대가 심하고, 우여곡절 끝에 진행하더라도 소홀한 하객 접대로 좋지 않은 뒷말을 듣기도 한다”고 지적하며 “보통 대중이 많이 찾는 웨딩업체는 식대를 통해 이익을 발생시키기 때문에 스몰웨딩을 택하면서도 이런 뒷말을 우려하는 부부들을 위해 본식 가격대는 줄이고 하객 접대비용을 추가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꼼수를 부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경우도 발생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한국형 스몰웨딩이 유행하면서 결혼의 풍속도가 서서히 긍정적으로 바뀔 가능성은 있을까? 웨딩업계 현직 종사자들은 “그렇지는 않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서울의 또 다른 웨딩 매니지먼트 관계자는 “2013년에 처음 스몰웨딩이라는 용어가 국내에 들어왔을 때에는 ‘스몰 럭셔리 웨딩’을 뜻하는 말이었다. 하객 수나 규모는 조금 작더라도 고급스러움은 갖고 싶은 부부들의 소규모 호텔 웨딩이 바로 그것”이라고 설명하며 “그런데 최근의 스몰웨딩 역시 고급스러움을 원하는 부부들은 ‘스몰 럭셔리 웨딩’으로, 가성비를 우선하는 부부들은 ‘셀프 스몰 웨딩’으로 향하고 있다. 이름만 새로 달았다 뿐이지 웨딩의 양극화 현상은 똑같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웨딩업계에서는 실속형 스몰웨딩 패키지 외에 특별한 결혼식을 원하는 부부를 위해 다양한 테마별 스몰 럭셔리 웨딩 패키지를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