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급락부터 주한美상의 9년만 재가입까지···현대차그룹 ‘동분서주’ 내막
‘트럼프 악재’에 휩싸인 현대기아차=연합뉴스
[일요신문] “미국에 공장이라도 지어야 하나” 새해 들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보호무역주의 공세가 글로벌 경제를 연일 강타하고 있다. 이에 현대·기아차도 ‘트럼프 악재’에 휘청거리는 모습이다. 현대차그룹은 신년외신기자간담회에서 5년간 31억 달러의 미국 추가 투자를 발표했다. 그럼에도 트럼프 미 대통령은 미국에서 물건을 팔려면 미국에 공장을 지어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이에 “현재로선 미국내 공장 신축은 계획이 없다”며, 못 박은 현대·기아차만 ‘속앓이’를 하고 있다. 최근 기아차의 주가가 52주 만에 최저가를 경신하는 등 급락했다. 현대차그룹과 다른 계열사의 상황도 녹록치 않은 상태다.
물론 주가 등의 반응이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 정책에만 기인했다고 단정지을 순 없지만, 지난해 11월 트럼프가 미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에 기아차의 주가는 5일 연속 하락해 시가 총액만 1조8000억 원이 줄어들었다. 트럼프가 올 1월16일(현지시간) 멕시코 공장 등을 운운하며, 국경법을 거론하자 이후 설 연휴가 시작되기 전인 19일부터 31일까지 하락폭이 12%에 달했다. 트럼프의 입에 기아차의 시가총액이 2조 가까이 좌지우지되고 있는 셈이다.
현대차그룹 전체도 마찬가지다. 그룹전체가 올해 판매 목표를 공격적으로 제시하며, 임직원들의 임금삭감 및 동결에 나서면서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연초 판매 목표가 제시된 이후 15만 원에 이르던 주가는 13만 원선으로 떨어졌으며, 현대위아와 현대모비스 등도 연초대비 10% 선의 주가 하락률을 기록하고 있다. 현대글로비스 역시 하락을 면치 못하고 있다.
결국 현대차그룹의 주가 반응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보호무역주의 강화 속에 외부 환경에 대한 리스크가 커진 것이 가장 주요하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후발 완성차 업체들의 거센 도전에 내부 긴장감도 확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무엇보다 트럼프 악재가 현대기아차의 입지를 흔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기아차는 멕시코를 대미 수출 기지로 삼고 지난해 1조원의 비용을 들여 생산공장을 준공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으로 수출품 관세 면제와 멕시코의 인건비가 미국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하기 때문이다. 기아차는 멕시코에서 K3 모델 40만대를 생산해 이 중 80%를 미국과 캐나다시장 등지에 수출할 계획이었다.
미국 자동차제조회사 빅3와 토요타와 BMW등 일본과 독일 등의 자동차회사들도 잇달아 멕시코를 대미수출기지로 삼고 멕시코에 공장을 짓고 자동차를 생산 중이다.
이에 트럼프가 강한 제동을 건 것이다. 당선 이전부터 NAFTA로 인해 미국 내 일자리가 빼앗겼다며 NAFTA 탈퇴 혹은 재협상을 주장해왔다. 이에 대한 조치로 가중한 국경세를 부과하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미국에 자동차 공장을 짓지 않으면, 징벌적 국경세를 부과한다는 논리다.
취임 직후 가장 먼저 트럼프는 미국 빅3를 압박해 포드의 공장신축을 얻어내기도 했다. 토요타와 혼다, BMW, 벤츠 등을 직접 거론해 압박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다음차례가 바로 현대기아차라고 지적한다. 특히, 기아차의 경우 난처한 입장에 직면하게 된다. 당초 계획했던 멕시코 공장 생산량을 대거 축소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대·기아차의 자동차 시장은 중국에 이어 미국이 2위로 미국 자동차 시장은 중요하다. 그렇다고 미국내 공장을 신축하기에는 투자대비 손익분기점이 좋지 않다. 현대차그룹의 미국공장 생산규모(2016년)는 중국에 3분의 1수준이며, 유럽공장과도 큰 차가 없는 수준이다. 무엇보다 미국과 멕시코 등의 공장 설비투자와 인건비 수준차가 커 기업 입장에선 손해를 감내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 사옥 전경=연합뉴스
반면, 트럼프의 갑질에 대한 대안은 보이질 않는다. 이에 현대자동차가 9년 만에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주한미상의) 재가입을 신청하는 듯 미국과의 소통 채널을 확보하기 위해 나섰다. 한미 양국 경제의 가교 역할을 하는 주한미상의에 가입한 것은 당연하다는 입장이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 강화에 대비한 것이란 성격이 짙어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현대차가 주한미상의에 가입해 1년간 회원사로 활동했을 당시에도 자동차 업계의 최대 화두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진행 중이었다. 한미 양국간 주요현안에 대처하기 위한 대응책이었다.
현대·기아차는 올해 글로벌 자동차 판매목표로 825만대를 제시했다. 이는 지난해 달성하지 못한 판매목표(813만대)를 넘어서는 것으로 지난해 788만대 수준으로 떨어진 글로벌 판매량을 올해 공격적으로 만회하겠다는 의지를 반영했다. 주가 반등을 위해선 자동차 판매 목표 달성만이 트럼프 악재를 뛰어 넘을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로 보이는 대목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 미국과의 협상이 중요하다. 트럼프의 ‘갑질’에 일본과 유럽은 아베 총리와 유럽연합 EU 등이 직접나서 미국을 설득하는 것이 그런 연유다. 보호무역주의로 치닫는 글로벌 경제에서 정부의 도움 없이 현대·기아차 등의 기업은 속수무책일 수 밖에 없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서동철 기자 ilyo100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