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애슬론·크로스컨트리·스키점프…‘목표는 대한민국 설상 최초 메달’
크로스컨트리 대표팀. 사진제공=대한스키협회
[일요신문] 평창올림픽 개최를 약 1년 앞두고 있는 우리나라는 1948년 스위스 생모리츠에서 열린 대회에 최초로 참가한 이후 동계 올림픽 참가 69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1992년 프랑스 알베르빌에서 최초로 메달을 획득한 우리나라는 이후 매 대회 종합순위 10위 내외의 뛰어난 성적을 거둬왔다. 이처럼 동계 올림픽서 두각을 드러내 온 대한민국이지만 ‘반쪽짜리 강국’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종합 순위표의 높은 자리를 차지하지만 스키, 스노보드 등 설상종목에서는 역대 동계올림픽 사상 단 한 개의 메달도 따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최초로 국내에서 치러지는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설상 종목 선수들은 “이번만큼은 다르다”는 각오를 보이고 있다. 각 종목 대표팀에서는 외국인 코치 영입, 선수 귀화, 해외 전지훈련 등으로 평창을 위한 담금질에 한창이다.
# “귀화 선수로 역사 바꾼다” 바이애슬론
동계올림픽서 눈 위에서 펼쳐지는 종목은 알파인스키, 크로스컨트리, 스노보드, 스키점프 등 50개 이상의 세부 종목이 있다. 하지만 그간 동계올림픽에서 대한민국은 금메달만 50개가 넘게 걸려있는 설상 종목에서는 힘을 쓰지 못했다. 1984년 대회부터 꾸준히 올림픽에 참가해온 바이애슬론도 마찬가지다. 독일, 노르웨이, 러시아 등 유럽이 위세를 떨치고 있어 성적을 내는 데 어려움을 겪어 왔다.
바이애슬론은 크로스컨트리와 사격이 접목된 종목이다. 스키와 총 등 세밀한 장비관리와 체계적 훈련이 필요하기에 저변이 넓지 않은 우리 대표팀에게 세계의 벽은 높아만 보였다. 평창이 동계올림픽 유치를 추진하고 확정하는 과정에서 새 경기장이 지어지고 대표팀 스태프가 증원되는 등 바이애슬론에 대한 지원이 늘어갔다. 그럼에도 오랜 역사와 탄탄한 인프라를 구축한 유럽의 아성을 깨지는 못했다.
국내에서 치러지는 올림픽이 남의 나라 잔치가 되는 것을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이에 대한바이애슬론 연맹이 집어든 키워드는 ‘세계화’였다. 이를 위해 연맹은 역대 동계올림픽에서 24개 메달을 획득한 바이애슬론 강국 러시아와 손을 잡았다.
러시아는 전통적으로 좋은 성적을 거둬오던 국가 중 하나인 데다 직전 대회인 소치올림픽 개최를 위해 많은 투자와 선수 육성이 이뤄졌다. 연맹은 러시아바이애슬론연맹과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유능한 지도자를 추천 받았다. 러시아로부터 추천 받은 코치와 스태프들 중 그간의 이력을 고려해 알맞는 이들을 대표팀으로 데려왔다.
이전까지 대표팀 상황은 선수에 비해 지도자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바이애슬론은 특히 지도자나 스태프가 많이 필요한 종목으로 해외에서는 대표팀 지도자·스태프와 선수의 비율이 1 대 1을 넘어가기도 한다. 러시아 스태프의 충원 이후 현재는 우리 대표팀도 스태프와 선수 비율이 유사한 구성을 갖췄다.
스키 종목은 ‘왁싱 담당 스태프’가 존재하는 것이 특징이다. 눈 덮인 코스를 미끄러지듯 부드럽게 달리는 것이 중요하기에 눈이 닿는 스키 아랫면에 왁스를 어떻게 바르느냐에 따라 기록에 큰 영향을 미친다. 장거리를 달리는 바이애슬론이나 크로스컨트리는 발라놓은 왁스가 손실되기에 경기 중 왁싱처리된 스키로 갈아 신기도 한다. 바이애슬론은 이처럼 선수들의 경기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왁싱 전문 스태프도 러시아에서 데려왔다.
세계적 수준의 지도자와 스태프의 합류로 선수들도 만족감을 표했고 기량 발전으로 올림픽에서 상위권 기록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메달권 진입은 높아만 보이는 산이었다. 연맹은 이에 반전을 준비했다. 러시아연맹으로부터 코치뿐만 아니라 선수를 추천받아 대한민국 대표팀으로의 귀화를 추진한 것.
현재 대표팀에는 법무부 심의를 거쳐 특별귀화를 통해 알렉산드르 스타로두벳츠, 안나 프롤리나, 예카테리나 에바쿠모바가 합류해 함께 훈련하고 있다. 티모페이 랍신도 귀화 절차가 진행 중이다. 귀화선수들의 합류는 대표팀에 더욱 가시적인 성과를 가져다 주고 있다. 안나는 지난해 8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며 바이애슬론 역사상 세계대회 첫 메달을 대한민국에 안기기도 했다.
대한바이애슬론연맹 관계자는 “귀화선수들이 바이애슬론 강국 출신으로서 동료 선수들에게 경험을 전수해준다”며 “국내는 선수층이 얇아 한 선수가 오랜 기간 1위를 차지하기도 하는데 귀화선수들의 합류로 그동안 1위에 있던 선수에게 자극이 되기도 한다”며 ‘귀화선수 효과’를 전했다.
또한 귀화선수 합류는 그간 무관심 속에 묻혀 있던 바이애슬론을 대중에 알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동계 종목에서 ‘세계화’가 화두가 되고 있지만 바이애슬론이 가장 적극적 태도를 취하며 언론에 오르내린 것. 연맹에서도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종목에 대한 관심이 느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들의 귀화를 놓고 “평창올림픽만을 위한 성적 지상주의”, “대표팀 분위기를 저해할 수 있다”는 지적을 한다. 이에 연맹 관계자는 “코칭스태프들도 같은 러시아 출신이 많은데 감독님이 항상 팀으로서 결집을 강조하기 때문에 팀 분위기는 좋다”고 설명했다. 당사자인 안나는 올림픽 이후로도 한국 바이애슬론에 기여하고 싶다는 의사를 수차례 내비치기도 했다.
국내선수들도 귀화선수 합류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었다. 대표팀 박지애는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다보니 적극적인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기는 하다”면서도 “말하는 것은 어려워도 기량이 뛰어난 선수들이라 보고 배울 점은 많다. 합숙생활에서도 크게 불편한 점은 없다”고 설명했다. 예카테리나는 “평창에서 메달을 따는 것이 목표다. 나에게 기회를 준 한국에 메달로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다”라고 했다. 그는 “평창에서 지내는 것도 마음에 든다. 조용하고 운동하기 좋은 곳”이라며 국내 생활에도 만족감을 드러냈다.
오스트리아로 출국하는 바이애슬론 대표팀. 일요신문DB
바이애슬론 대표팀은 훈련과 대회 참가 등 1년 앞으로 다가온 올림픽 준비에 여념이 없다. 이들은 지난 1월 31일 전국동계체전 사전경기에 참가한 직후인 다음날 세계선수권 참가를 위해 오스트리아로 떠났다. 세계선수권 이후에는 곧장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에 나선다. 박지애는 “평창올림픽을 위해 이번 세계선수권이 중요하다. 이번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서 국가순위를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라며 각오를 다졌다. 여자부문 국가순위 23위인 대한민국은 이번 대회로 20위 이내 진입을 노리고 있다. 20위 이내 순위의 국가는 올림픽에 4명의 선수가 참가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
# 마지막이 될 영화 <국가대표> 세대의 올림픽, ‘스키신동’ 김마그너스에 거는 기대
바이애슬론 외에 다른 스키 종목인 스키점프나 크로스컨트리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중들에겐 종목 자체가 생소했고 얇은 선수층과 열악한 환경도 마찬가지였다. 스키점프는 2009년 개봉한 영화 <국가대표>의 흥행으로 그나마 알려졌지만 관심은 잠시였다.
실제 이야기를 토대로 만들어진 <국가대표>의 주인공인 선수들은 여전히 대한민국 스키점프 대표팀의 주축으로 활약하고 있다. 어느덧 30대 중후반의 나이에 이른 이들은 사실상 마지막 올림픽이 될 것으로 보이는 평창 대회에 임하는 각오가 남다르다.
평창올림픽 준비과정에서 그간 붙박이로 활약하던 ‘스키점프 4인방’의 신상에 변화가 있었다. 대표팀 내 자극이 필요하다는 스키협회의 의견과 선수 본인의 의지가 맞아 떨어지며 4인방 가운데 강칠구가 스키점프 선수 생활을 접고 노르딕 복합 대표팀의 트레이너로 새 출발을 한 것. 대한스키협회 관계자는 “본인이 진로를 고민한 끝에 그런 결정을 내렸다. 이전부터 지도자 자격증을 취득하는 등 철저히 준비를 해왔다”고 설명했다. 강칠구의 빈자리에는 여자 선수인 박규림이 발탁됐다. 올해 한국나이로 19세가 된 박규림은 성장세가 돋보이는 유망주다.
스키점프 대표팀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국가대표’의 한 장면.
눈 쌓인 들판을 달려 ‘설상의 마라톤’이라고도 불리는 크로스컨트리에도 유망주가 있다. 주인공은 2013년부터 ‘스키 신동’으로 화제를 모은 김마그너스다. 노르웨이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부산 출신 김마그너스는 어린 시절부터 크로스컨트리, 바이애슬론 등 다방면에서 재능을 보였다. 스키협회 관계자는 “올림픽 메달리스트인 전이경 대한체육회 위원으로부터 스케이팅도 배운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여러 종목을 오가던 김마그너스는 협회의 유망주를 잡기 위한 노력으로 대한민국 크로스컨트리 대표팀으로 뛰게 됐다. 이를 통해 이중 국적자인 김마그너스는 노르웨이의 구애를 마다하고 대한민국 국가대표를 선택했다.
역대 올림픽에서 가장 많은 107개의 메달을 휩쓸었을 정도로 노르웨이는 크로스컨트리 강국이다. 크로스컨트리는 노르웨이에서 가장 흔하게 즐기는 스포츠 중 하나이며 학생들이 스키를 신고 등하교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김마그너스도 ‘노르웨이 DNA’가 있는 덕인지 국내에서 압도적 기량을 뽐내고 있다. 동계체전에서 4관왕을 차지한 바 있고 세계무대인 동계 유스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아직 성인무대에서 거둔 성과는 뚜렷하지 않지만 한창 성장중인 올해 20세의 어린 선수이기 때문에 평창에서의 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
이외에도 설상종목에서는 월드컵 14위를 기록했던 알파인 스키 정동현, 스노보드 월드컵 4위를 기록한 바 있는 이상호 등에 많은 이들이 기대를 걸고 있다. 이들의 기록은 한국 스키와 스노보드 역사상 최고 기록이기에 스포츠팬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있다. 프리스타일 모굴에서는 최재우가 체조 양학선의 ‘양1·양2’와 같이 자신만의 기술을 개발해 올림픽 메달을 노리고 있다. 스키협회에서도 “평창에서 열리는 대회이기에 홈 코스의 이점이 더해진다면 입상을 노릴 만하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바이애슬론 유망주들 대회선 화약총, 연습은 공기총 “적응 안돼” 바이애슬론 대표팀은 러시아 출신 선수들이 특별귀화로 팀에 합류하며 전에 없던 관심을 받았다. 이에 더해 귀화 선수들이 세계무대에서 성적을 내며 대표팀에 대한 관심은 더욱 증폭됐다. 대표팀은 현재의 좋은 흐름을 이어가며 올림픽에서도 결실을 맺어 바이애슬론의 발전까지 이끌어 낸다는 계획을 짜고 있다. 그동안 바이애슬론 얇은 선수층과 대중들의 무관심 속에서 국제적으로는 미미한 성과를 내왔다.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대한바이애슬론연맹에서는 세계적 선수 배출을 위해 먼저 해결해야 될 문제로 총기를 꼽았다. 종목 특성상 스키 주행 못지않게 사격 성적도 중요하지만 국내에서는 청소년 선수들이 화약총이 아닌 공기총을 사용하고 있는 것. 연맹 관계자는 “국내에서는 안전상 문제와 총기 관련 법률이 엄격해 선수들이 고교 졸업까지 공기총으로 경기를 치른다”며 “선수들이 성인이 되면 바이애슬론에서 원래 쓰이는 화약총을 처음 접하기 때문에 기량 향상에 어려움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해외의 경우 아주 어린 유소년만 전자총을 쓸 뿐 일정 나이가 지나면 화약총을 사용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와 같은 적응 문제가 없다”고 덧붙였다. [상] |
스키점프 대표팀과 강원 FC의 공존…스키점프대를 축구장으로 조성 ‘한 지붕 두 살림’ 알펜시아 스키점프센터에 조성된 축구경기장. 사진출처=강원 FC 홈페이지 지난해에 이어 2017년에도 스키점프 대표팀과 프로축구 K리그의 강원 FC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게 됐다. 올해에는 이들의 관계가 더욱 가까워질 것으로 보인다. 평창올림픽 경기장이자 대표팀의 훈련장이기도 한 국내 유일의 스키점프대 알펜시아 스키점프센터 일부가 축구장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강원 FC는 일부 홈경기를 스키점프센터에서 치렀다. 점프대 아래 선수들이 착지하는 부분을 축구경기장으로 조성했다. 축구팬들에게는 이색적인 분위기와 쾌적한 관전 환경으로 호평을 받았다. 다만 일부에서는 스키점프 선수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까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이에 대한스키협회에서는 큰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내다보면서도 긴밀한 업무 협조가 필요하다고 했다. 지난해에도 양측의 훈련 스케줄이 겹치며 서로의 배려가 필요한 상황이 일어나기도 했다. 협회 관계자는 “강원 FC 측에서 소속 트레이너를 스키점프 팀에 지원하고 스키점프센터에 일부 시설을 새롭게 설치해 함께 사용하자는 제안이 오기도 했다”며 “강원도 측에서도 올림픽 이후 경기장의 사후 활용에 대해 골머리를 앓고 있었을 텐데 양측의 협조가 원활하게 이뤄져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