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 뚫린 샴페인 김 빠지는 중’
▲ 지난 12일 한나라당 당사에서 열렸던 공천 신청자들의 집단 면접 모습. 당내 최다선 의원인 7인방도 전원 공천을 신청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4·9 총선에 대한 한나라당의 압승 기대가 말 그대로 희망에 그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는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를 통해서도 확인이 된다. 지난 2월 5일 실시된 <한겨레신문>의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들이 점차 이명박 당선인에 대한 지지보다는 견제를 하려는 쪽으로 생각이 변하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조사에 따르면 4월 9일 치러지는 18대 총선 투표를 기준으로 ‘안정을 우선해야 한다’는 의견(48.5%)과 ‘견제를 중시해야 한다’는 의견(43.4%)이 오차범위에서 팽팽한 것으로 나타났다.
만약 국민들이 인수위 활동에 대해 호의적인 평가를 했다면 새 정부에 대한 기대도 높아 안정 중시 의견이 높게 나왔을 가능성이 있다. 한나라당 또한 ‘이번 총선에서는 200석도 가능하다’는 오만에 가까운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인수위의 활동이 사실상 마감되면서 설익은 정책 남발에 대해 부정적 여론이 형성되고, 이명박 당선인의 독선주의적 행보에 대해서도 야당이 적극 견제해야 한다는 논리가 점차 세를 얻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 당선인의 측근인 A 씨는 지역구 활동을 하면서 바닥 민심이 생각보다 더 악화된 것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다. 그는 “이 당선인에 대해서는 경제를 살릴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호의적이다. 하지만 인수위의 영어 몰입교육 정책으로 사교육비를 걱정하는 주부들이 많다. 이러다가 이 당선인 측근들이 총선에서 고전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이동통신 요금 인하 연기 등의 인수위 헛발질에 대해 국민여론이 악화되면서 한나라당 일부 예비후보들은 자신들의 명함에 인수위 직함을 한나라당 당직 뒤로 집어넣는 일도 있다고 한다. 수도권 공천을 신청한 인수위 전문위원은 “당선인 효과가 이제 어느 정도 진정되는 추세인데다, 인수위에 대한 일부 비판도 있어 당초 인수위 직함을 명함 맨 앞줄에 넣으려다가 뒤로 뺐다”라고 말했다.
이명박 당선인의 ‘설화’도 총선에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며 걱정하는 후보들도 있다. 이 당선인이 ‘숭례문 국민성금 복원’ 발언이 전해진 뒤 역풍이 거세게 일자 당장 당내에서는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의 노인 폄하 발언과 비교하며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야당에서 말꼬투리를 잡아 총선 이슈로 부각시킬 경우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번 총선에 도전하는 한 의원은 이에 대해 “정부와 지자체가 관리 소홀로 국보 1호를 불태워 먹은 직후에 국민성금 운운하니 좋게 받아들일 국민이 몇이나 되겠냐”라고 이 당선인의 정치력 부족을 탄식했다.
한나라당의 한 보좌관은 이에 대해 “한나라당이 대선에서 압승한 뒤 너무 오만해지고 있다. 지난 17대 총선 공천 때는 그만큼 절박한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막연히 국민들이 새 정부를 지지해줄 것으로 믿고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하지 않고 있다. 예전부터 친이 그룹과 친박 그룹이 나눠먹기식 공천 리스트를 만들어놓았다는 이야기도 떠돌고 있다. 공천 결과를 봐야 하겠지만 대폭적인 물갈이가 없으면 이번 총선에서 크게 고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계파 나눠먹기식 공천이 총선에서 역풍을 맞을 것이라는 지적도 많다. 현재 한나라당은 크게는 친이, 친박으로 나뉘지만 좀 더 들어가 보면 복잡해진다. 이재오 그룹, 강재섭 그룹, 정두언 그룹 등으로 세분화된다. 일각에선 이상득 국회부의장을 정점으로 한 원로 그룹과 이방호 그룹까지 언급하고 있다. 이들은 짧게는 오는 7월의 당 대표 경선을, 길게는 4년 뒤의 차기 대권 경선을 겨냥하고 있다. 2010년의 시·도 지사 경선을 목표로 하는 이도 있다. 차기 대권에 뜻을 둔 일부 시·도 지사까지 공천권 확보 전쟁에 끼어들고 있다는 소문도 들린다.
이렇게 계파끼리 나뉘어져 공천권이 행사되었다는 지적이 나올 경우 그 후유증은 고스란히 총선의 결과로 나타날 수 있다. ‘낙하산 공천’이 현실화된다면 한나라당 우세지역이라도 총선 경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공천 탈락에 반발한 인사들이 무소속 출마를 감행할 경우 표 분산으로 그 이득은 고스란히 ‘통합민주당’(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의 합당 이름) 후보와 자유선진당 후보가 가져갈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런 점에서 야당의 단결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의 합당으로 과거 범여권은 하나로 뭉쳐지는 추세인 반면 보수세력은 자유선진당과 국민중심당이 한 몸이 되면서 한나라당의 고정 지지층이 분산되기 때문이다. 최근 대통합민주신당이 정부조직 개편에 대해 쉽게 합의를 해주지 않았던 것도 신당이 도약을 할 공간이 생기면서 나온 일종의 자신감 표출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의 총선 위기론은 이미 진단을 넘어서 늦겨울 강추위처럼 당을 휘감고 있다. 3선인 홍준표 의원의 발언은 이런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지금 같으면 쉽게 총선에서 이길 것 같지만 서울의 경우 강남권을 제외하면 반드시 이긴다는 보장이 없다. 탄핵 역풍이 불었던 2002년 총선 때 수도권에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승부가 몇 천표로 갈린 대목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예전에는 선거판 분위기가 바뀌는 데 보름 정도 걸렸지만 요즘은 1주일이면 확확 뒤집어진다. 우리가 웃고 다닐 때가 아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