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 도덕성 흠집 내 여론전 활용 또는 거래 시도 가능성
지난 2월 3일 오전 청와대 방문객 주차장에서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차량이 취재진에 둘러싸여 있다.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박 대통령 주변에선 박영수 특검에 대한 원성이 여과 없이 새어나온다. 한 청와대 참모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이게 무슨 수사냐. 박영수는 검사가 아닌 정치인이다. 여론에 휩쓸려 수사를 하고 있지 않느냐. 나중에 정권 바뀌면 한 자리 차지하려는 속셈 아니냐는 의심도 든다. 이러니 우리가 압수수색이나 대면조사 등을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다. 이번 박영수 특검은 공정성을 잃었다. 편파적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검 수사에 대응하는 박 대통령 측 태도는 이를 잘 나타낸다. 지난 1월 25일 박 대통령과 최순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특검 수사를 강하게 비난했다. 박 대통령은 한 보수 인터넷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최순실은 조사를 받기 위해 특검 사무실로 소환되는 자리에서였다. 최순실은 기자들에게 “민주주의 특검이 아니다”라며 강압수사를 받고 있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박 대통령 변호인단인 손범규 변호사도 2월 9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탄핵과 연계시킨 정치적 특검이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예 (대면조사에) 응하지 않았으면 한다”며 특검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대면조사와 관련해 날짜가 유출되자 청와대 관계자들은 “특검과 대화 중단을 선언해야 한다” “야당이 추천한 박영수 특검의 정치적 의도가 불순하다” 등의 발언을 하며 특검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
이러한 친박 핵심부 인식은 민심과는 다소 동떨어져 있다는 게 정치권 반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 측이 특검 행보에 상당한 피해 의식을 갖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는 국민 정서가 반영되는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란 우려와 맞닿아 있다. 청와대 내부에선 헌재 역시 신뢰할 수 없다는 기류가 포착되긴 하지만 공공연히 드러내진 못하고 있다. 대신 그 화력을 특검으로 집중해 보수 진영 결집 및 탄핵 심판 대비에 나선 셈이다.
그런데 올해 초부터 몇몇 사정기관 관계자들이 박영수 특검 개인에 대한 첩보를 은밀히 수소문 하고 다녔던 것으로 전해진다. 박영수 특검의 변호사 시절을 비롯해 가까운 친인척에 대한 내용도 여기에 포함돼 있다고 한다. 이는 보고서 형식으로도 작성됐다. 다만 어느 선으로 보고됐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러나 대통령 수사를 진행 중인 특별검사의 비리 정보를 캐고 다녔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논란의 소지가 높다. 다음은 한 사정당국 고위 인사의 말이다.
“사정기관에서 흔히 하는 정보 수집 차원으로 볼 순 없을 것 같다. 지금과 같은 시국에서 박영수 개인에 대한 자료를 모은다는 것이 과연 ‘오더’ 없이 가능하다고 보나. 공직사회에서 불가능한 일이다. 지금 몇몇 인사들이 그 지시를 내린 당사자로 거론되고 있다. 모두 박 대통령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인사들이다. ‘박영수 파일’이 만들어진 것은 맞는데 아직 공개되거나 흘러나오진 않은 것 같다. 일각에선 별 내용이 없다는 말도 들린다. 이와는 별개로 특별검사 뒷조사를 했다는 것은 앞으로 또 다른 파문을 낳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정당국 안팎에선 이러한 과정이 정상적인 지휘 체계에서 이뤄지진 않았을 것이란 의혹도 대두된다. 청와대 민정에서 오래 근무한 경력이 있는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지금 박영수 특별검사 자료를 모을 만한 이유가 뭐가 있겠느냐. 박 대통령을 위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 박 대통령은 집무가 정지된 상태다. 박 대통령이 사정기관에 지시를 할 수 없고, 또 보고를 받을 수도 없다는 얘기다. 따라서 박 대통령 측으로선 믿을 만한 사정라인을 동원했을 것이고, 이는 결국 비공식적인 업무가 된다. 법 위반 여부도 따져봐야 할 사안”이라고 귀띔했다.
정치권에서도 박영수 특검에 대한 비리 수집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이뤄졌는지에 대해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박영수 특검을 압박하기 위해서 자료를 모으려 하지 않았겠느냐. 이것도 심각한 문제지만 무엇보다 어떤 사정라인이 왜 집무가 정지된 박 대통령을 돕는 업무를 진행했는지 밝혀내야 할 것이다. 이들 역시 최순실-박근혜 게이트에 연루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박 대통령 측이 박영수 특검에 대한 자료를 모은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박영수 개인에 대한 도덕성에 흠집을 내 향후 전개될 특검 조사를 피하기 위한 ‘명분 쌓기용’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앞서의 민주당 중진 의원은 “특검을 믿을 수 없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 같다. 그래서 특검 초반인 1월부터 박영수 특검 비리를 찾아다닌 것 아니겠느냐”면서 “어차피 수사 자료로 활용될 수는 없는 것들이다. 특검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조성하기 위한 차원일 것으로 본다”고 했다. 한 검찰 관계자는 “특검 수사를 대비해 만든 것은 확실해 보인다. 이를 어떻게 활용하려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박영수 특검과 딜을 하려는 의도도 있을 수 있지 않겠느냐”라고 반문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