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렬하다’ 전국구 유행어 될 줄이야
연예인 사업의 대다수는 연예인의 이름과 초상권을 메인으로 내걸고 실제 제품 제조와 유통은 계약을 체결한 업체가 맡아 하게 된다. 아예 판매하는 상품에 대한 이해도 없이 ‘사업가’라는 명패에 혹해 사업에 뛰어드는 연예인들도 적지 않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그러다 보니 상품에 문제가 생겼을 때에 대한 비난과 이미지 하락도 고스란히 연예인들의 몫이 된다.
지난 2월 3일 김창렬은 자신과 상표권, 초상권 이용 계약을 맺은 식품제조업체를 상대로 한 명예훼손 소송에서 패소했다. SBS ‘한밤의 TV연예’ 화면 캡처.
# 이름·얼굴 빌려줬다가 ‘웬 낭패’
이 사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최근 힙합그룹 DJ DOC의 멤버 김창렬(44)의 ‘창렬하다’ 소송 사건이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자주 이용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보거나 써 봤을 유행어 ‘창렬하다’는 김창렬이 2009년부터 자신의 이름과 초상권을 사용해 계약한 편의점 PB제품 ‘김창렬의 포장마차’로 인해 만들어졌다. 이 제품의 가격대비 부실한 양과 좋지 않은 품질이 문제가 되자 뿔이 난 소비자들이 김창렬의 이름을 붙여 ‘창렬하다’고 비난하면서 시작된 것. 8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창렬하다’는 ‘가격대비 제품의 품질이 좋지 않은 것’을 뜻하는 신조어로 쓰이고 있다.
김창렬은 줄곧 억울하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제조업체의 부실한 관리와 제조로 인한 피해를 고스란히 자신이 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제조업체를 상대로 명예훼손과 이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으나 재판부는 업체의 손을 들어줬다. 판매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정상적인 제품이 아니었고, ‘창렬하다’는 말의 부정적인 이미지는 악동으로 유명했던 김창렬의 그간 행실로 인한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름과 얼굴만 빌려줬을 뿐인데 졸지에 온갖 부정적인 의미는 다 담고 있는 ‘창렬하다’는 말의 산증인이 돼 버렸으니 김창렬로서는 타격이 이만저만 큰 게 아니다.
자신의 이름과 초상권을 빌려주고 제품 제조 과정에 관여하지 않았다가 낭패를 본 연예인은 과거에도 있었다. ‘간장게장’으로 유명한 중견배우 김수미(68)다.
2005년부터 간장게장 사업으로 홈쇼핑을 접수했던 김수미는 자신이 제조 과정에 관여하지 않는 동안 제조업체가 표시량보다 함량이 적은 부실 제품을 판매하거나, 동업자가 자신 몰래 질 낮은 게를 사용했다는 사실을 알게 돼 사업을 접었다고 밝혔다. 더욱이 그동안 낮은 품질의 제품이 홈쇼핑을 통해 다량 소비되면서 뿔이 난 소비자들이 ‘김수미 간장게장이나 X먹어라’ ‘김수미 간장게장에 빠뜨려 죽일 X’ 등 김수미 간장게장을 이용한 다양한 욕설을 만들어 인터넷 상에서 사용하기도 했다. 김수미로서는 자신의 이름과 얼굴을 이용한 브랜드라는 이유로 본의 아니게 전국구로 비난을 받아야만 했던 셈이다.
# 사기와 도의적 문제 그 어드메
최근 드라마 <사임당>으로 다시 한 번 날아오르고 있는 산소 같은 여자 이영애(45)는 ‘소송 부자’라는 별명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2015년 1월 기준으로 이영애와 남편 정호영 씨 앞으로 제기된 민·형사상 소송은 총 30건에 이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부분 이영애의 초상권 관련 사업이 문제가 된 사건들이다.
배우 이영애는 초상권 문제로 걸려있는 소송만 30여 건에 이른다. 채널 A 방송 화면 캡처.
2004년 드라마 <대장금>의 열풍에 힘입어 순식간에 아시아의 스타로 대두됐던 이영애는 자신의 이름과 초상권을 이용한 사업 확장에 나섰다. 이영애가 가진 브랜드 가치로 장밋빛 미래가 금방이라도 그려질 것처럼 보였지만 허상에 불과했다는 것이 사업 피해자들의 이야기다. 사업 가운데 계획대로 진행된 것이 전무하다시피 하고, 아예 착수조차 하지 않거나 이영애 측에서 계약 자체를 부정하는 경우도 있었다는 것.
이영애 측도 할 말은 있다. 계약상으로는 법적으로 문제가 될 부분이 없고, 다만 일부 이행이 늦어지는 부분을 이유로 상대방이 일방적인 계약 해지를 하거나 사기 혐의로 고소를 남발하고 있다는 것. 실제로 “계약대로 식당·카페 사업을 진행하지 않고 독자적인 비누 사업만 진행하면서 빌려준 부동산을 계속 점유하고 돌려주지 않는다”라며 소송이 걸렸던 ‘대장금 수라간’의 경우는 사업 착수까지 리모델링 공사 등 준비 기간이 예상 외로 오래 걸렸던 탓을 들었다. 계약 이행이 늦어졌을 뿐이므로 이를 사기로 볼 수는 없다는 논리다.
사기로 보기에는 애매하지만 도의적인 문제를 제기하기에 충분한 연예인 사업 사건이 최근 또 하나 터졌다. 그룹 JYJ의 김준수(32)의 경우다. 2014년 9월 제주 토스카나 호텔을 개장한 김준수는 ‘한류스타의 지역 투자’라는 명목으로 제주도로부터 투자진흥지구 지정을 받아냈다. 이를 통해 관세, 취득세, 개발부담금 등이 전액 면제됐으며 법인세·소득세 3년간 면제, 재산세 10년간 면제 등 파격적인 특혜를 손에 넣었다.
제주도가 토스카나 호텔에 이 같은 특혜를 베푼 것은 당시 김준수 측이 투자진흥지구 지정을 신청하면서 제시했던 K-팝 행사의 덕이 컸다. 중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제주도로서는 김준수와 토스카나 호텔을 통해 세계의 K-팝 팬들을 밀집시켜 또 한 번 한류 관광 붐을 꿈꿨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김준수가 지난달 1일 비밀리에 호텔을 약 240억 원에 부산소재의 한 부동산 업체에 매각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제주도가 꿈꿔왔던 장밋빛 미래가 깨지게 됐다. 제주도 측은 “김준수라는 연예인 브랜드를 보고 그에 따른 다양한 행사를 통해 관광객을 유치할 것을 기대하고 도 차원의 투자를 한 것이나 다름없는데 혜택만 받고 호텔을 매각해 시세 차익을 거둔 것은 결국 ‘먹튀’한 것이나 다름없지 않냐”라며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면제됐던 세제 혜택에 대해서는 김준수 측으로부터 받아낼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한편 지난 9일 입대한 김준수는 입대 직전까지 ‘먹튀 논란’에 대해 해명했으나 대중들은 “실질적인 피해에 대한 해명이 아니라 감정에 호소하는 글”이라며 싸늘하기만 한 반응을 보였다.
# 동업했다가 덤터기 쓰기도
이름과 얼굴만 빌려주는 것에서 더 나아가 경영 일선에 뛰어드는 연예인들도 많다. 그러나 이들도 혼자 힘만으로는 사업을 끌어나가기 역부족이기 때문에 보통 지인이나 친구, 친척, 그 분야 전문가와의 동업을 통해 사업을 시작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이처럼 타인과 타인이 만나 사업이 잘 굴러가기만 한다면 다행이지만 결국에는 진흙탕 싸움으로 번지기도 한다. 이 경우에도 가장 큰 타격을 입는 것은 물론 연예인이다.
개그맨 중심 엔터테인먼트 회사 ‘코코엔터테인먼트’의 공동 대표로 재직하던 개그맨 김준호(42). 같은 공동대표이자 CEO였던 김우종 씨가 회사 자본금 수억 원을 빼돌리고 잠적하면서 회사 경영이 악화일로에 빠졌다. 잠적했던 김 씨가 붙잡혀 기소됐지만 확인된 것만 36억 원 상당에 이르는 부채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코코엔터테인먼트는 2015년 폐업되고 만다.
그런데 코코엔터테인먼트의 또 다른 대표이사 유 아무개 씨가 “회사가 폐업 혹은 파산을 한 사실이 없는데 김준호의 일방적인 언론보도로 잘못 알려진 것”이라며 김준호를 배임혐의로 고소하면서 또 다른 진흙탕 싸움이 펼쳐졌다. 유 씨 등 코코엔터테인먼트 창립 주주들은 김준호에 대해 “회사 설립 초기부터 회사의 이익과 발전보다는 개인적인 이익만 추구하고 코코엔터 소속 연기자들을 자신의 신설 법인으로 이동시킬 계획을 세워 이를 유도했다”라고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김준호를 공격했다.
김준호가 코코엔터 폐업 이후 동료 개그맨인 김대희와 함께 ‘JD브로스’를 설립, 코코엔터 소속 개그맨들을 영입한 사실이 좋은 먹잇감이 됐다. 일부러 폐업을 유도해 JD브로스를 설립했다는 것이 고소 상대방들의 주장이었다. 다만 지난해 1월 사건을 수사하던 서울남부지방검찰청이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김준호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리면서 어느 정도 마무리된 상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불거진 ‘새로운 회사를 만들어 운영하고자 한 김준호의 계획된 파산’이라는 의혹은 김준호에게 상당한 이미지 손상을 가져왔다. 결국 폐업의 시발점이 됐던 김우종 대표의 횡령 및 배임 혐의는 뒤로 감춰지고 김준호에 대한 의혹만이 남고 말았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