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프 초반에 자리 잡아라’ ‘먼저 다가가라’ ‘어린 통역 구해라’ 노하우 전달
흥미로운 것은 불과 1년 전, 이대호가 황재균과 같은 처지였다는 사실. 소속팀 없이 친정팀 롯데 전지훈련지에 합류해 훈련하다 보니 이대호의 옷차림은 대표팀 시절 입었던 훈련복이었다. 1년 후 시애틀이 아닌 롯데 선수로, 또 롯데가 아닌 샌프란시스코 선수로 환경 변화를 이룬 두 선후배는 서로에 대해 애틋한 마음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 더욱이 황재균은 이대호가 없는 롯데에서 10번을 달았고, 올 시즌 롯데에 합류한 이대호는 자연스레 황재균이 놓고 간 10번(원래 이대호 번호)을 다시 달 수 있었다.
미국 애리조나 피오리아 스포츠콤플렉스의 롯데 자이언츠 스프링캠프에서 훈련 중인 촹재균
황재균으로선 정식 캠프가 시작되기 전 이대호와 함께 훈련할 수 있다는 사실이 행운이나 다름없었다. 자신과 똑같이 스플릿계약을 맺고 초청선수 신분으로 메이저리그 캠프를 경험했던 이대호이기 때문에 이대호는 후배에게 자신의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수할 수 있었다. 이대호가 전한 메시지 중에 눈에 띄는 내용 세 가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무조건 캠프 초반에 자리를 잡아라. 이것은 이대호가 절실히 경험한 부분이다. 1루수치곤 다소 큰 체격과 체중으로 시애틀 매리너스 관계자들에게 수비에 대한 의문점을 안겼던 이대호는 어떤 상황이 발생해도 자신의 실력을 보여주고 인정받아야만 했다. 수비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모든 훈련을 마친 후 따로 수비 훈련을 받았고, 그런 노력들이 시애틀 감독 및 코칭스태프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줬었다. 이대호는 황재균에게 그 메시지를 전한 것이었다.
둘째, 선수들에게 먼저 다가가라. 이대호는 시애틀 캠프에 처음 합류한 이후 일본인 투수인 이와쿠마 히사시와 시애틀의 리더 격인 로빈슨 카노와 친분을 쌓았다. 이와쿠마에게 먼저 다가가 정중히 인사를 건넸고, 카노한테는 “우리 동갑내기이니 잘 지내고, 많이 좀 도와 달라”는 말로 카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카노는 이후 이대호가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많은 배려와 도움을 줬고, 이대호는 그런 카노에게 진심을 담아 고마움을 전했다. 이후 카노는 시애틀을 떠난 이대호에게 따로 카드를 보낼 정도로 아쉬운 마음을 표현했고, 이대호도 자신을 잊지 않고 챙기는 카노에게 최고의 친구라고 찬사를 보냈다. 이대호의 경험담은 황재균에게 굉장히 중요한 조언이 될 수밖에 없다. 샌프란시스코 선수들 중 황재균과 동갑내기는 버스터 포지가 있다.
셋째, 나이 어린 통역을 구해라. 이대호가 시애틀에서 동고동락했던 통역은 35세의 이대호보다 나이가 훨씬 많았다. 긍정적인 사고와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형님’ 통역 덕분에 시애틀에서의 생활이 즐겁긴 했지만 정도를 따지는 이대호로선 ‘형님’ 통역에게 뭘 시키거나 부탁하는 게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온 조언이 가급적이면 황재균보다 나이 어린 통역을 찾으라는 것.
황재균은 애리조나에 입성하면서 글러브를 3루, 1루, 외야까지 3개를 챙겨왔다. 주 포지션인 3루 외에도 1루, 외야 수비도 가능하다는 것을 어필하기 위해 3개의 글러브를 준비해온 것. 롯데 선수들과 훈련할 때도 그는 3루와 1루, 외야를 오가며 수비 훈련을 했다.
황재균은 자신이 ‘도전자’ 신분임을 결코 잊지 않았다. 한국에 있는 집과 차까지 모두 처분하고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을 정도로 각오가 대단하다.
“나에 대해 걱정과 기대의 시선이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난 걱정보다 기대를 안고 스프링캠프에 합류할 것이다. 올 시즌은 배운다는 마음가짐으로 어떤 상황에 처해도 최선을 다해 적응해 나갈 예정이다. 하루 빨리 샌프란시스코 스프링캠프에 합류해서 동료들과 인사도 나누고 친분을 쌓고 싶다.”
미국 애리조나 캐멀백랜치 LA 다저스 마이너리그 구장의 LG 트윈스 스프링캠프를 방문해 류현진을 만난 황재균
2월 10일 황재균은 롯데 선수단이 휴식일을 맞이하자 인근의 LG 캠프를 방문해 양상문 감독을 비롯해 코칭스태프 및 선수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눴다. 절친 류현진과도 만나 장난을 치는 등 모처럼 훈련 없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점심시간 무렵이라 식사하고 가라는 LG 선수들의 이야기에 황재균은 “(롯데)선배들 모시고 어디 가야 한다”며 렌트한 차를 끌고 LG 훈련장을 벗어났다.
황재균은 14일 샌프란시스코의 메디컬 체크를 위해 롯데 캠프를 떠나 샌프란시스코 훈련지인 스코츠데일로 이동할 계획이다. 그때부터 황재균의 본격적인 생존 경쟁이 시작된다.
미국 애리조나=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