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첫날부터 몰아붙인다
▲ 이명박 대통령은 고강도 개혁으로 취임 초반 기선을 제압하며 국정 운영의 고삐를 쥘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지난 19일 한승수 총리 내정자, 청와대 수석 내정자 등과 가진 국정운영 워크숍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 ||
그런데 정치권에선 “이명박 대통령이 정권 출범 초반 6개월 안에 모든 것을 바꾸지 못하면 그가 열망하는 대한민국 재개조도 힘들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 대통령 자신도 “개혁에 대한 저항이 많이 있을 것”이라고 했듯이 정권 초반에 확실히 개혁에 대한 토대를 쌓지 못하면 이명박식 개혁은 구두선에 그칠 것이란 얘기다.
이런 점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정권 초반 힘이 있을 때 관료주의, 구태 정치, 권력형 비리와의 3대 전쟁을 통해 국민의 지지를 얻고 동시에 개혁의 동력도 확보할 수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이명박 정권이 그 연착륙을 위해 펼치게 될 ‘3대 전쟁’을 미리 살펴보았다.
지난 2월 25일 청와대로 입성한 이명박 대통령의 발걸음은 그리 가볍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두고 1차 홍역을 치른 바 있다. 야당과의 협상 과정에서 일방적인 밀어붙이기로 일관해 대타협의 명분도 잃고 ‘작은 정부’의 실현도 이뤄내지 못했다는 냉혹한 평가를 받기도 했다. 여기에 지지율까지 하락 조짐을 보이고, 신임 장관 내정자들 일부가 부동산 투기 등의 의혹에 시달리면서 “이러다가 이명박 정부가 초기 연착륙에 실패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정치권 안팎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 후보들은 이러한 일련의 불안한 징후들이 4·9 총선에까지 영향을 줄지 모른다며 걱정을 하고 있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이 정부조직법 협상에서 난항을 겪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정권 초반에 너무 무리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었느냐”는 지적이 나왔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정부조직 개편은 향후 10년 후의 행정수요까지 정확히 예측해야 하는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그래서 이번에 무리하게 강행하지 말고 국정홍보처 폐지처럼 국민적 공감대가 있는 부분부터 손질한 뒤 총선 결과에 따라 국민 여론도 수렴해 오는 9월 정기국회에서 통과시키고 2009년 1월 1일부터 시행해도 충분했다. 이럴 경우 야당과의 충돌도 막고 작은 정부의 구현도 실질적으로 이뤄졌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정부조직 개편은 어중간한 정치적 타협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도 앞서 지적한 문제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가 정부조직 개편을 강행한 배경은 무엇일까. 정치권에서는 “이 대통령이 정권 초반에 관료조직을 잡지 못하면 개혁은 물 건너갈 것으로 보고 정부조직 개편을 강행했다”고 보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관료들의 개혁 저항에 대해 일종의 강박관념이 있다고 진단하는 사람도 있다.
이 대통령을 잘 아는 한 인사는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은 그동안 기업에 있으면서 늘 을의 입장에서 갑의 입장인 공무원들을 상대해봤기 때문에 그들의 속성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꿰고 있다. 그래서 정권 교체기에 혁명적인 방법으로 조직 개편을 처리하지 않으면 공무원들의 반발이 거세 개편이 힘들다고 봤을 것이다”라고 밝히면서 “만약 정부조직 개편이 늦어져 관료사회에서 ‘이명박 대통령도 별 수 없다’는 평가가 나오게 되면 가장 먼저 반응하는 곳이 경제계다. 기업들은 이 대통령 체제가 들어선 뒤 관료들이 ‘기업 프렌들리’로 확실히 바뀌었다고 판단하면 일자리 창출과 투자를 대대적으로 늘리려 할 것이다. 하지만 ‘이번 정권도 별 수 없구나’ 하는 평가가 나오면 기업들도 역대 정권에서처럼 적당히 투자 제스처만 할 것이다. 결국 관료와의 전쟁이 기업 투자를 이끌어내는 핵심 요소인 것이다. 이 대통령은 관료주의와의 전쟁 승리가 경제 활성화를 위해 필수 불가결한 사항으로 인식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정치권은 “이 대통령이 취임 초기 대대적인 관료사회 개혁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그 징후는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취임식 전 장관 내정자들과의 워크숍에서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측면에서의 변화를 주문했다. 공직사회의 비효율을 지적하며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등의 시스템은 물론, 사무실 자리 배치와 일하는 문화까지 바꿔야 “글로벌 국가로의 비약이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 측에선 “아내 빼고는 다 바꿔야 하는 긴장된 분위기”라고 설명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정권 초기 또 하나 확실하게 짚고 갈 가능성이 큰 것이 바로 구태정치 청산 작업이다. 그리고 그것의 대표적 타깃은 ‘김경준 기획입국설’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 대통령의 측근들은 그동안 “지난 2002년 대선에서는 김대업 사건으로 큰 피해를 봤다. 하지만 당시에는 정치적 배후에 대한 수사가 제대로 안 되고 넘어갔다. 그런데 이번만은 적당히 넘어가선 안 된다. 철저히 그 배후를 추적해 끝까지 정치적 책임을 물을 것이다. 그래야 다시는 선거에 구태정치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라고 누누이 밝혀왔다.
사실 이 대통령 측근들은 김경준 기획입국설에 대해 이를 갈 정도로 철저한 진상 규명 의지를 밝혀왔다. 여기에는 두 가지 노림수가 있다. 먼저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을 ‘정치공작 세력’으로 몰아 선거에서 유리한 키를 쥘 수 있다. 그리고 최근 조각 과정에서 불거진 국무위원들의 재산 및 지역편중 문제의 초점을 흐리려는 의도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런데 일각에선 이 대통령 측이 노무현 정권의 거물 실세였던 A 씨를 잡기 위해 김경준 기획입국설을 대대적으로 파기 시작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여권의 대표적 거물 정치인인 A 씨의 경우 한나라당 내에서도 정권이 바뀌면 대표적으로 손 볼 인사의 하나로 꼽고 있을 정도로 콕 찍힌 인물이다. 여기에 A 씨가 김경준 기획입국설에 관여됐다는 소문도 대선 기간 내내 끊임없이 나돈 바 있다. 그래서 김경준 기획입국설 진상규명은 A 씨를 잡기 위한 ‘맞춤수사’라는 말도 나온다.
세 번째로 이명박 대통령 측이 전쟁을 치를 부분은 바로 노무현 정권의 권력형 비리를 다시 파헤치는 것이다. 사실 한반도 대운하 건설 강행은 반대 여론이 높아 부담스럽지만 권력형 비리 수사는 국민들의 지지를 쉽게 받을 수 있는 ‘대중적’ 이슈다.
이에 대해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최근에 확정된 청와대 비서실의 인선을 보면 대통령실장과 함께 민정수석의 역할을 주목하는 사람들이 많다. 앞으로 민정실은 참여정부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파워가 막강해질 전망이다. 이런 점에서 앞으로 민정수석실이 사정 국면의 컨트롤 타워가 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이 대통령은 노무현 정권 때 임명된 임채진 검찰총장보다는 이종찬 신임 수석을 앞세워 검찰 조직을 간접 지휘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검찰 내부에서도 강경파로 통하는 이 수석의 등장은 앞으로 고강도 사정이 있을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민정실 비서관에 대검 중수부 과장이 임명된 것도 참여정부에서 약화되었던 민정실의 사정기능을 대폭 강화하겠다는 포석으로 보인다. 청와대 민정수석의 행보를 보면 이 대통령의 고강도 사정 의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이명박 정부 초기 권력형 비리의 타깃이 부산 건설업자 김상진 로비 사건일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최근 부산지법 형사5부는 정상곤 전 부산지방국세청장과 정윤재 전 대통령 의전비서관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된 건설업자 김상진 씨에 대해 징역 6년에 추징금 1억 원을 선고한 바 있다. 그런데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현재 당에서는 구속된 김상진 씨보다 더 윗선이 있었을 것이라는 얘기가 계속 나온다. 그는 노무현 정권의 핵심 실세였다고 한다. 그리고 김상진 씨 로비 사건은 단순한 로비가 아니라 노무현 전 대통령 세력이 총선을 준비하기 위해 자금을 모으는 과정에서 일어난, 전형적인 권력형 비리라는 소문도 당 안팎에서 나돌고 있다. 만약 이 사건을 민정수석실이 스크린을 다시 하고 있다면 고강도 사정 국면이 김상진 로비 사건 재수사에서 터져 나올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역대 대통령들은 정권 출범 초반 압도적인 지지율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90%의 지지율이 오히려 이상하다”라며 취임 초기 ‘저조한’ 지지율에 연연해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그럼에도 관료주의와의 전쟁, 구태 정치와의 전쟁, 그리고 권력형 비리와의 전쟁은 한반도 대운하 건설 같은 ‘비인기 종목’보다 훨씬 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이들 3대 전쟁의 결과가 주목된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