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권력’ 벗고 ‘이웃’으로 변신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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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임식 다음날인 26일 편한 차림으로 밖에 나선 노 전 대통령. 연합뉴스 | ||
노무현 전 대통령이 5년 임기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간 것은 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이다. 10년 진보 정권을 지키지 못하고 또 아직도 참여정부에 대한 비판이 여전하기는 하지만 굴곡진 5년을 뒤로 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야인’ 생활을 시작하는 전직 대통령의 모습도 일면으로는 새로운 정치실험이기도 하다. “지난 5년간 대통령직을 좀 잘했으면 어떻고 못했으면 어떻냐. 그냥 열심히 했으니 예쁘게 봐 달라”는 노 전 대통령의 야인 생활 1주일을 현장에서 지켜봤다.
귀향 첫날 떠들썩했던 환영행사도 끝나고 고향 사저에서 첫날밤을 보낸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맨손체조로 고향의 첫 아침을 열었다. 오전에는 비와 눈이 많이 내린 탓에 사저에 머물렀다. 당초 봉하마을 인근에 있는 선영을 참배할 계획이었으나 날씨가 좋지 않아 27일로 미뤘다. 노 전 대통령은 오후 2시 30분쯤 회색 윗옷에 밤색 바지, 타이도 매지 않은 와이셔츠를 입고 담장 너머로 모습을 드러냈으며 얼마 후 사저 앞길까지 나와 관광객들에게 손 인사를 했다. 발가락 양말에 슬리퍼를 신은 채였다. 노 전 대통령은 20여 명의 관광객에게 “안녕하세요”라며 밝은 표정으로 손을 흔들었고, 관광객들은 “앗, 노 대통령이다”를 외치며 화답했다. 노 전 대통령은 “(사저가) 볼 게 너무 없죠”라고 물은 뒤 “볼거리를 많이 만들어 놓겠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27일에는 선영을 찾아 참배했으며 28일에 다시 담장 너머로 회색 점퍼를 입고 나타났다. 현관에 서서 손을 흔드는 노 전 대통령을 향해 관광객들이 “수고 많으셨습니다”라고 외치자 그는 “감사합니다”라고 답하고는 사저로 들어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외부에 공식적으로 모습을 나타낸 것은 28일 저녁 부산 롯데호텔에서 열린 모교인 개성고(옛 부산상고) 총동창회 정기총회였다. 고교 선·후배 600여 명이 참석한 이날 모임에서 노 전 대통령은 환한 미소를 띤 채 연단에 올라 “5년 내내 저 때문에 ‘너그 동문 그래빼이 몬하나(너희 동문 그것 밖에 못하나), 가서 좀 잘해라 캐라(해라)’라는 타박을 많이 받았을 것 같아 미안했다”면서 “저도 불만이 있었는데 잘 참아줬다”고 감회를 피력했다.
노 전 대통령의 평소 일상생활 모습을 엿보기는 어렵다. 겉으로 보기에 알 수 있는 부분은 아침 5시경이 되면 사저 2층에 불이 켜지고 창문 사이로 경호원들의 모습이 보인다는 것. 6시쯤 되면 보일러를 때는 것인지 음식을 준비하는 것인지 연통에 연기가 가득 피워 올라온다는 정도의 단편적 정보뿐이다.
노 전 대통령과 직접적인 접촉이 가능한 그의 친인척들도 정보에는 지극히 인색하다. 노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 씨에게 “노 대통령이 사저 내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느냐”고 물어봐도 묵묵부답이다. 그는 동생의 귀향한 것에 대해 소감을 묻자 그제야 “당연히 좋기야 하지”라면서도 “당분간 기자들과 인터뷰는 하지 않기로 했다. 한마디 하면 여기저기서 다 써버리니 대답도 못 하겠다”고 말했다. 노 씨의 부인 민 아무개 씨 역시 노 전 대통령의 근황과 사저의 내부 모습을 묻자 “어떻게 지내는지 잘 모르겠다. 사저에 한 번 들어가 본 적도 없어서 어떻게 생겼는지도 잘 모른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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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5일 봉하마을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퇴임식으로 떠들썩했다. 사진=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사저 내부의 모습 역시 관광객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부분 중 하나지만 아직까지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져 있다. 사저 내부를 살펴볼 수 있을 만한 장소에는 여지없이 전·의경들이 자리 잡고 있다. 사저 뒤쪽 산과 입구 등 주변을 지키고 있는 전·의경의 수만 10여 명이 넘는다. 사저 인근 창고에 자리 잡은 전·의경의 20인승 콤비차량과 30인승 버스를 볼 때 많게는 50여 명에 이르는 병력이 교대로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마을 초입에서부터 전봇대 높이의 CCTV 카메라 두 대가 설치돼 있다. 사저와 경호동 주변에는 10여 대에 이르는 CCTV가 사저 주변을 감시하고 있는 중이다.
노 전 대통령이 외부로 나올 때도 상당한 경호가 따른다. 노 전 대통령이 차량을 이용해 외부로 나설 때면 그가 이용하는 에쿠스 차량 한 대에 경호원들이 이용하는 12인승 스타렉스 차량 한 대, 8인승 카니발 차량 등이 따라 붙는다.
노 전 대통령 사저는 29일에도 여전히 외벽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담 너머로 보이는 외벽에도 인부들이 페인트칠을 하는 장면이 보인다. 노 대통령의 짐이 들어오기 전 사저에 들어가 봤다는 ‘노무현 퇴임식 행사추진위원회’의 선진규 위원장에 따르면 “황토 등을 사용해서 집이 친환경적으로 지어졌고 겉보기보다 내부가 아담하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 귀향 이후 봉하마을은 ‘야인 노무현’을 보기 위한 관광객들로 북적이고 있다. 봉하마을의 안내데스크 직원은 “26일 2500~3000명이 왔고 27일 3700명의 관광객이 왔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이 고향에 내려오기 전 안내데스크에서 밝혔던 봉하마을 평일 방문객 수의 5배가 넘는 수치다. 마을의 한 주민이 운영하고 있는 매점은 요즘 매출이 배로 늘었다. 퇴임식 당일에는 물건이 동이 나 못 팔았을 정도다. 노 전 대통령의 사저 바로 앞에 위치한 실제 생가의 액세서리 판매도 부쩍 늘었다. 곧 완공될 주민들을 위한 마을회관 역시 노 전 대통령 탓에 마을 주민들이 누리는 상당한 혜택이다.
지난해 11월 기자가 봉하마을을 찾았을 당시에 “봉하마을 사람들이나 동네 개발된다고 (노 전 대통령을)좋아하지”라고 말했던 봉하마을 주변의 이 아무개 씨도 “막상 내려오고 나니 인간적인 면도 돋보이고 측은하기도 해서 싫어하다가도 좋다는 사람이 많다”고 달라진 지역민심을 전했다.
김해=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