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나올 구멍 있나’ 페북·카스 샅샅이…시효 지난 채권 헐값에 사 빚독촉도
가계부채가 1300조 원을 돌파하면서 불법 사금융 이용 증가에 따른 불법추심 등 부작용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권 씨는 빌린 돈으로 카드빚을 갚고 가압류를 푼 뒤, 집을 처분해 마련한 돈으로 사채를 갚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땅한 소득이 없는 상황이라 손에 쥔 돈은 나가기가 바빴다. 이후 한두 번 이자가 연체되기 시작하면서 악몽은 시작됐다.
처음 돈을 빌려줄 땐 부드럽던 사채업자의 말투가 거칠어졌고, 전화기 너머로 심한 욕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추가 이자에 더해 ‘1시간마다 연체이자 10만 원’도 붙었다. 권 씨가 무리한 독촉에 항의라도 하면 사채업자는 남편과 동생,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고 권 씨의 아들이 다니는 초등학교 이름을 수차례 언급하며 협박했다. 권 씨는 사채라도 털어내려고 다시 신용카드사로부터 돈을 빌려 ‘돌려막기’를 했다. 그 와중에 권 씨의 집은 경매로 넘어갔다. 경매 뒤 그의 손에 남은 것은 60만 2400원. 그나마 채무가 청산됐다는 점이 다행이었다.
최근 제1금융권에 이어 제2금융권도 대출 심사가 강화되면서 그 빈자리를 대부시장이 빠르게 채우고 있다. 제도권 금융에서 대출을 받기 어렵게 된 사람들이 ‘간편 대출’을 미끼로 접근하는 불법 대부시장으로 밀려든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한국대부금융협회의 ‘불법 사금융 이용에 관한 전화 설문조사’를 보면 응답자 5023명 중 54명(1.07%)은 불법 사금융 이용 경험이 있었다. 우리나라 20세 이상 성인 인구(4050만 명)에 대입해 환산하면 약 43만 명이 총 24조 1000억 원의 불법 사금융을 이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불법 사금융 이용목적은 사업자금(48.8%), 가계생활자금(36.1%), 대출금 상환(10.2%) 등 대부분 급전이 긴급한 상황이었다.
문제는 불법 대부업 이용이 늘면서 불법 추심도 덩달아 늘었다는 점이다. 경찰청과 금융감독원은 지난 2016년 12월 12일부터 2017년 1월 말까지 불법 대부업을 포함한 ‘투자사기·불법사금융 특별단속’을 벌였다. 50여 일 만에 붙잡힌 민생 경제 침해 사범은 총 5225명으로, 이 가운데 불법 대부업과 채권추심 등을 하다 적발된 피의자는 총 641명이었다. 금감원 역시 지난 2월 6일 “지난해 미등록 대부업체로부터 돈을 대출받는 과정에서 피해를 받았다는 신고는 2306건으로 전년(1220건)과 비교해 89% 급증했다”고 밝혔다.
금감원과 경찰 관계자 등에 따르면 불법 대부업체는 소규모 조직 형태로 운영된다. 사채업자 직원 2~3명이 작은 사무실을 차려놓고 암암리에 대출과 추심을 병행한다. 대부업체는 대부업법에 따라 지방자치단체에 등록해야 하지만 이들은 대부분 ‘무등록’ 업체다. 존재 자체가 불법인 셈이다. 여기에 이자제한법에서 정한 대부업 법정 최고금리(연 27.9%)를 비웃듯 살인적인 고금리로 돈을 빌려주고 채권추심법이 금지하는 불법행위를 한다. 특히 업체들은 이 과정에서 하청에 재하청을 주면서 법망을 피한다.
업체들은 채무자의 직장이나 사업장을 찾아가 망신을 주거나, 앞서의 권 씨의 사례처럼 가족을 빌미로 협박을 하는 수법을 주로 쓴다. 하지만 최근 불법추심에 대한 단속과 처벌이 강화되면서 추심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불법과 합법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것. 한 추심업계 관계자는 “보통 주위 사람들에게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정도까지만 행동한다. 이 정도로도 채무자에게 상당히 큰 심리적 압박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가족이나 지인 등에 빚독촉을 하거나 자녀를 거론하며 협박을 하는 일은 보통 채무자와 단둘이 남는 경우에 이뤄진다”고 덧붙였다.
또한 최근 합법적으로 재산조회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제한되면서 채무자의 재산이나 소득활동 파악에 대한 불법 추심원들의 수법도 달라졌다. 이들은 페이스북이나 카카오스토리와 같이 SNS를 분석하고, 구글 사이트의 서칭(구글링)을 통해 부수적 정보를 파악한다. 이 과정에서 알게 된 일부 개인정보를 통해 추가 정보를 파악한다. 앞서의 업계 관계자는 “직장에 나타나거나 소득원을 파악하고 있는 사실을 알면 채무자들이 크게 놀란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불법 대부업체가 아니라 은행이나 등록된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린 사람들도 불법 추심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카드나 통신요금, 납품대금 등을 연체한 경우도 마찬가지다. 불법 채권추심 일당이 시효가 소멸된 채권을 대량으로 사들인 뒤 법원에 위조한 서류를 제출해서 받은 채권지급명령을 근거로 채무자에게 돈을 뜯어내는 수법이다. 지난 1월 19일 부산에서 검거된 이들은 채권소멸시효가 표시되지 않는 대법원 전자소송시스템의 맹점을 악용했다.
이들은 채권 브로커를 통해 소멸시효가 지난 채권을 헐값에 사들였다. 이후 유통회사를 설립해 신용정보회사에 가입한 뒤 채무자와 거래한 것처럼 허위 서류를 만들어 법원의 채권지급명령을 받아냈다. 추심행위 없이 3년이 지나면 채권은 소멸되지만 전자소송시스템에는 채권의 소멸 시효가 확인되지 않는다. 피해자들은 과거 채무 사실을 잊고 있었지만, 법원의 채권 추심명령과 채무독촉 전화에 놀라 이 일당에게 돈을 보냈다.
불법 대부업뿐만 아니라 최근 신용카드 업계도 다양한 방법으로 채권추심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채무자가 카드를 연체하는 경우 이용하던 다른 카드도 연체가 되기 때문에, 카드사는 다른 카드사가 채권추심에 나서기 전에 먼저 채권을 회수하려 든다.
8년차 채권추심원 B 씨는 최근 한 카드사의 채권회수 업무 방식을 예로 들며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B 씨에 따르면 이 카드사는 추심직원들에게 태블릿PC를 지급하고, 채무자의 집이나 회사를 방문할 때 꼭 갖고 다니라고 했다. 직원들은 단순히 채무자에게 채무내역을 설명해주는 용도로 사용해왔지만 사실 이 태블릿에는 GPS(위치파악시스템)가 설치되어 있었다. 추심원이 채무자의 집이나 회사에 방문했을 때 방문사실 기록을 확인하는 용도였다.
B 씨는 “추심원들도 채무자 집이나 직장 방문은 꺼린다. 주로 전화, 문자, 문서로 독촉을 하는데 회사가 GPS를 통해서 추심원들을 감시하기 때문에, 더 세밀하게 채권추심을 해야 한다”며 “방문 장소에 얼마동안 머물렀는지도 센터 전산망에 표시된다. 형식적으로 방문 장소만 둘러보고 오는 식으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 카드사 관계자는 “편의상 추가된 기능일 뿐 다른 의도는 없다”고 짧게 설명했다.
한편, 불법 추심 피해에 대해 경찰청 관계자는 “빌린 돈은 꼭 갚아야 하지만, 갚지 못한다고 해서 협박을 당하거나 불법 행위에 따른 피해를 받아야 하는 건 아니다”라며 “빚과 관련 없는 제3자에게 독촉을 하거나 법원, 검찰로 오인할 수 있는 표시를 넣는 행위 등은 모두 불법으로 신고 대상이라는 점을 알아둬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채무독촉이 부담스럽다고 또 다른 사채를 끌어 쓰면 막다른 길로 가는 것”이라며 “신용회복위원회의 채무조정제도나 법원의 회생·파산 등 법적 절차를 활용하라”고 당부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