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그림 그리다 뒤탈…‘자사주의 마법’ 사라지고, 중간금융지주사 신설 요원
구속된 이재용 삼성 부회장이 자유의 몸이 된다고 하더라도, 진행 중인 승계 작업을 다시 추진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사진=박정훈 기자
최순실 사태 전 삼성이 그린 ‘빅 픽처’는 삼성전자를 투자회사와 사업회사로 인적분할 한 뒤 투자 부문을 삼성물산과 합병해 삼성물산을 그룹 전체 지주회사로 세우는 방향이었다.
이를 위한 첫 단계가 이미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다. 삼성은 이재용 회장에게 유리한 방향의 합병비율을 성사시키기 위해 국민연금공단 등과 접촉하는 등 전방위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그 노력들은 이 부회장 구속이라는 치명적인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두 번째 단계가 삼성전자 인적분할이다. 삼성전자를 투자회사와 사업회사로 인적분할한 뒤 투자회사를 삼성물산과 합병해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높이려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기준 이 부회장 등 오너일가와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은 10%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12.78%의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다. 삼성전자를 인적분할한 후 삼성물산이 삼성전자 투자회사를 합병하면 최종적으로 삼성물산이 삼성전자 사업회사 지분을 20% 이상 보유하게 되어 ‘지주회사-자회사’ 요건을 만족시키게 된다.
그러나 이런 ‘자사주의 마법’은 대기업 총수 일가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도구가 되어 왔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제20대 국회 들어 ‘자사주의 마법’을 막는 법안이 야당 의원들에 의해 다수 발의되어 있다. 자사주 보유를 아예 금지하는 법안, 인적분할 전 자사주를 먼저 소각하도록 하는 법안, 인적분할 시 자사주의 지배력을 인정하지 않는 법안 등이다.
과거에는 이런 ‘반삼성법’ 발의에 여당이 합의하지 않아 구호에만 그친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의 정치 상황은 법안이 선언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통과되어도 이상할 게 없는 분위기다.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과 대한상공회의소가 ‘반재벌법’에 대한 반박자료를 연이어 내고 있는 것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다.
마지막 단계는 삼성생명을 중간금융지주로 만드는 것이다. 현재는 산업자본이 금융자본을 소유하지 못하게 되어 있으나, 공정거래위원회는 산업자본이 중간금융지주사를 소유할 수 있도록 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중간금융지주사가 허용되면 삼성생명은 삼성카드, 삼성증권, 삼성자산운용, 삼성화재를 아우르는 지주사가 되고, 삼성물산이 삼성생명을 지배하는 형태가 삼성이 그리는 그림의 완성으로 알려진다.
박영수 특검은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 재청구 시 삼성이 청와대와 접촉해 공정위를 통해 중간금융지주사를 허용하는 법안을 추진하도록 요청했다는 혐의를 포함했다. 중간금융지주사 역시 삼성의 필요에 의해 추진되는 ‘청부 법안’이라는 것이다. 현 상태에서 중간금융지주사 신설의 득을 보는 유일한 대기업이 삼성이고, 추진 과정에서의 불법이 전 국민에 알려진 이상 이를 다시 추진하기는 쉽지 않다.
이 부회장의 구속을 계기로 야권은 이 기회에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을 것을 사회적 의제로 제기하고 있다. 삼성이 협박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청와대와 정치권 등 전방위적으로 불법을 저질러 왔다는 것이 드러났다는 이유에서다.
구속된 이 부회장에게는 추가 수사와 그에 따른 재판이 이어지게 된다. 이 과정들을 다 거치고 자유의 몸이 된다고 하더라도 삼성의 승계 작업이 제대로 이뤄질지는 불투명하다. 삼성이 그린 큰 그림과 그 과정의 편법성이 다 알려졌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국내 대기업 총수의 자녀 승계는 일반적인 것으로 여겨져 왔지만, 앞으로는 일반적이지 않게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우종국 비즈한국 기자 xyz@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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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부자가 최순실에 휘둘린 현실 씁쓸” 2008 삼성특검 핵심 관계자가 본 이재용 구속 [비즈한국]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철창신세를 지게 되면서 ‘삼성그룹 총수 첫 구속 사례’라는 불명예를 얻게 됐다. 삼성 79년 역사에서 창업주인 이병철 초대회장부터 아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손자 이재용 부회장까지 총수들은 수차례 검찰 수사선상에 올랐지만, 구속까지 이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 부회장이 첫 사례가 된 것이다. 10년여 전 삼성 총수를 구속 직전까지 내몬 경우는 있었다. 2008년 조준웅 특별검사가 이끈 삼성특검이다. 당시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을 지낸 김용철 변호사가 “이 회장의 지시로 비자금을 조성, 임직원 명의의 차명주식 형태로 숨겼다”고 폭로해 특검 수사가 진행됐다. 당시 삼성특검과 관련한 인사들의 소회는 남다를 터. 삼성특검 핵심 관계자 A 씨는 ‘비즈한국’과의 통화에서 “새벽부터 주변사람들에게 ‘축하한다’는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 이제 나와 상관없는 일인데 왜들 그러는지 모르겠다”며 운을 뗐다. 이 부회장의 구속에 대해 그는 “‘참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 부회장은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부와 권력을 누리고 있지 않느냐. 그럼에도 그것을 활용하지 못하고, (최순실 씨와 연루되는) 그런 어리석은 선택을 했는지 모르겠다. 왜 그렇게밖에 못 살았을까”라고 담담히 말했다. 2008년과 달리 박영수 특검이 이 부회장을 구속할 수 있었던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A 씨는 “이번 특검팀에는 삼성그룹에서 얻어먹은 사람들이 적어서 그런 것 아니겠느냐”고 농담을 하더니 “이제 금전으로 막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닌 거다. 이번 사태는 온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누구의 표현에 따라 ‘온 우주의 기운이 모여’ 이뤄낸 일 아니겠느냐”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A 씨는 “재계 1위 삼성 이 부회장마저 구속됐다고 난리지만 우리 사회는 하나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며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는 것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이 부회장 구속으로 경영공백 등 ‘글로벌 기업’ 삼성그룹이 흔들리는 것이 아니냐는 걱정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A 씨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비판했다. 그는 “과거 다른 대기업들도 총수들이 구속된 바 있지만 망하지 않았다”며 “삼성그룹은 상장사고 주식회사다. 주주가 주인이다. 경영인은 바뀔 수도 있다. 이제 기업은 오너 중심의 아닌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구조로 바뀌었다. 이 부회장이 구속됐다고 삼성이 망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그는 “삼성그룹 이 부회장의 최측근이라고 하는 몇몇 임원들은 경영을 잘해서 그 자리에 올라간 것이 아니다. 총수의 재산을 지키고, 경영권 승계 작업을 위한 가신에 가깝다. 이 부회장이 물러나면 오히려 삼성이 투명해질 수 있다”고 보탰다. 민웅기 비즈한국 기자 minwg08@bizhankook.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