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높이톡·사이다톡…귀에 ‘쏙쏙’ 가슴 ‘뻥뻥’
편수는 늘었고, 형식은 변화한다. 2012년 치러진 18대 대선 때만 해도 방송사의 정치 프로그램은 대부분 토론식. 정치, 학계, 언론계 인사들이 패널로 나서 대선 정국을 분석하거나 후보들을 검증하는 방식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정치를 주제로 하지만 형식은 자유분방하다. 심지어 개그맨 양세형까지 대선 주자들을 ‘검증’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포털사이트로 공개되는 이 프로그램의 제목은 <숏터뷰>. 이에 출연한 안희정 충남지사는 양세형과 채소 쌈을 나눠 먹으며 인터뷰를 진행한다.
종합편성채널의 움직임은 더욱 활발하다. 지상파보다 유연한 제작 환경에 힘입어 정치와 대선을 다루는 프로그램의 성격을 자유롭게 변주하고 있다. 현재 3파전을 벌이는 프로그램은 JTBC의 <썰전>을 비롯해 최근 신설된 MBN의 <판도라>, 채널A의 <외부자들>이다. 저마다 화려한 패널을 섭외한 점은 같지만 시청률과 화제를 노리는 접근 방식은 조금씩 다르다. 그 차이를 결정짓는 인물은 각 프로그램을 이끄는 진행자다.
사진출처=MBN ‘판도라’ 방송 화면 캡처
# <판도라> 배철수…20년간 쌓은 ‘신뢰’로 승부
배철수가 정치 관련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나선다고 했을 때 방송 관계자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라디오 DJ 등 음악 프로그램을 진행할 뿐 그 이외 분야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던 그가 소용돌이치는 대선 정국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배철수는 2월 16일 방송을 시작한 MBN의 <판도라>를 진행한다. 정청래, 차명진, 박찬종 전 의원이 고정 패널로 출연하는 가운데 첫 회 시청률은 1.9%(닐슨코리아 집계·이하 동일기준)를 기록했다. 출발부터 돋보인 성적은 아니지만 종합편성채널인 점을 고려하면 그리 낮은 수치도 아니다. 향후 상승곡선도 기대해볼 만하다.
<판도라>는 정치 토크쇼를 표방한다. 딱딱한 분석보다 자유롭게 현안을 이야기하자는 취지다. 날카로운 ‘분석’보다 ‘희망’에 방점을 두고 있기도 하다. 제작 관계자는 “새로운 시대의 출발선에 선 우리가 어떻게 정치를 바라보고 이해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하려 한다”며 “정치의 민낯을 들여다 보면서 새로운 희망을 꺼내는 기획”이라고 밝혔다.
배철수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균형감각을 내세운다. 특히 MBC 라디오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햇수로 26년 동안 변함없이 진행해온 저력도 간과할 수 없는 강점이다. 대중과 소통하며 쌓은 신뢰를 첫 정치 토크쇼 진행의 승부수로 삼겠다는 각오다. 배철수는 “정치 전문가가 아니라서 모르는 부분이 많다”고 인정하면서도 “공정과 신뢰를 바탕으로 시청자의 눈높이에 맞는 정치 토크쇼를 만들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사진출처=채널A ‘외부자들’ 방송 화면 캡처
# <외부자들> 남희석…‘개그계의 JP’
개그맨 남희석은 정치와 사회 문제가 해박한 지식과 분석력을 갖춘 대표적인 연예인으로 꼽힌다. 정치 토크쇼 진행이 조금은 낯선 배철수에 비해 남희석의 등판은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보이는 이유다.
남희석은 채널A가 지난해 12월 27일 시작한 <외부자들>의 진행을 맡고 있다. 정치를 기반에 둔 시사 프로그램이지만 풀어가는 방식은 예능에 가깝다. 때문에 <외부자들>은 스스로의 장르를 ‘시사 예능’이라고 규정한다. 시작부터 시청자와 통했다. 방송 4회 만인 1월 17일 6.19%를 기록했고 최근 3~4%대를 유지하고 있다.
충청남도 보령 출신인 남희석은 평소 고향 사랑을 적극적으로 드러내왔다. ‘지역주의’라기보다 ‘애향심’에 가깝다. 남희석은 자신의 딸 이름을 ‘보령’으로 짓기까지 했다. 이번 <외부자들> 진행에 나서면서 그는 “충청도 출신으로 이쪽, 저쪽 다 아우를 수 있다”고 자신했다. 제작진은 그런 남희석을 ‘개그계의 JP(김종필)’이라고 칭했다.
<외부자들>의 패널은 누구 한 명 뒤처지지 않는 ‘센 캐릭터’들. 정봉주, 전여옥 전 의원과 진중권 동양대 교수 등이다. 남희석은 개성 강한 이들을 융화시키는 역할. 이미 각 패널들에 대한 ‘진단’도 마쳤다. 남희석은 정봉주 전 의원에 대해 “웃음과 활력을 주는 동시에 엉뚱한 위력이 있다”고 평했다. 진중권 교수를 두고는 “진중권이 까지 않으면 ‘꺼리’가 없다”고 했다. 또한 “전여옥 전 의원은 대통령을 직접 겪으며 느낀 점을 토로하는 모습에서는 쾌감과 슬픔이 함께 느껴진다”고 했다.
남희석의 내공은 풍자로도 이어진다. 위트를 더한 비틀기도 주특기다. 최근 방송에서 그는 대선 후보들을 ‘밥’에 비유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두고 “다된 밥”이라고 하자, 이를 받은 정봉주 전 의원은 “이재명 시장은 설익은 밥”이라고 묘사했다. 그러자 남희석은 다시 한 번 “그렇다면 콩밥은 누구냐”고 되묻는 등 웃음을 동반한 풍자의 맛을 프로그램에 더하고 있다.
사진출처=JTBC ‘썰전’ 공식 홈페이지
# <썰전> 김구라…‘공·수’ 활약
새로운 얼굴이 등장하고 있지만 여전히 정치 토크쇼에서 부동의 1위 자리는 JTBC의 <썰전>과 그 진행자인 김구라다. 2013년 2월 시작한 이래 평균 7%대의 안정적인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기도 하다. 지난해 11월에는 한국갤럽이 조사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TV프로그램’에서 MBC <무한도전>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드라마와 예능을 제치고 시사, 교양 장르로는 이례적으로 최상위에 올랐다. 그만큼 폭넓은 지지를 얻고 있다는 의미다.
<썰전>에서 김구라는 막강 공격수와 철벽 수비수를 겸한다. 상황에 따른 위치 변화가 노련하다. 때로는 패널을 상대로 호통도 친다. 패널인 전원책 변호사가 JTBC의 대선 프로그램에 출연해 독단적인 자세로 논란을 빚자, 시청자에게 사과해야 한다는 지적과 함께 실제 사과를 유도하기도 했다. 시청자 사이에서는 ‘질주하는 전원책, 날카로운 유시민을 컨트롤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김구라’라는 평가도 나온다.
패널이 4명 이상인 다른 프로그램에 비해 <썰전>은 보수 대표 전원책 변호사와 진보 대표 유시민 작가 둘이 맞붙는다. 그만큼 정치 현안은 물론 대선 주자들에 대한 분석과 평가에서도 첨예한 대립을 빚을 때가 잦다. 이들 사이에서 김구라는 ‘중도’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극과 극인 두 패널의 사이에서 그는 주로 ‘듣는 입장’이다. 논쟁이 가열될 때는 ‘정리’의 몫도 맡는다. MBC <라디오스타> 등 출연하는 또 다른 예능 프로그램에서 상대의 치부를 공격하는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그런 김구라를 두고 전원책 변호사는 “김구라의 얼굴은 우파, 생각은 좌파”라고 정의했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