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병 맞물려 러시아로부터 전력 공급 가능성…지뢰 매설·도로 폭파 이어 또 “남쪽에 아쉬울 것 없단 의미”
북한은 11월 24일부터 파주에서 개성으로 이어지는 송전탑 철거에 돌입한 것으로 파악됐다. 송전탑은 개성공단에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한국 정부 예산으로 지어진 시설이다.
한국전력이 개성공단 옥외변전소인 10만kw급 평화변전소로 전기를 보내면, 이는 개성공단을 가동시키는 데 주로 쓰였다. 2016년 북한이 제4차 핵실험을 통해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켰고, 박근혜 정부는 개성공단을 전면 폐쇄했다. 그러면서 대북 송전도 전면 중단됐다.
송전탑은 이내 다시 쓰였다. 2017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남북 평화무드가 조성됐다. 2018년 세 차례에 걸친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다. 2018년 남북연락사무소가 설치된 뒤 개성공단 가동 때와 비슷한 양의 전기가 다시 공급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연락사무소를 운영하고도 한참 남는 양의 전기였기 때문에, 개성 현지 상수도 시스템 가동에 한국 측 전기가 일조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당시 고질적인 전력난에 시달리던 북한 입장에서는 한국으로부터 제공받는 전력이 ‘가뭄의 단비’ 격이었던 셈이다(관련기사 암암리에 보내다 폭파 직후 ‘뚝’…대북 전기 공급 차단 조치 내막).
2020년 6월 북한이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하면서 남북관계는 다시 급랭했다. 연락사무소 폭파 30분 만에 한국 정부는 북한으로 보내던 전기 공급을 완전히 차단했다. 그로부터 4년 5개월여 동안 송전탑은 방치돼 있었다.
11월 27일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11월 24일부터 북한군이 맨몸으로 경의선 인근 송전탑에 올라가 송전선을 자르고 있는 정황이 포착됐다. 합참 관계자는 “(남쪽과 연결된) 북한에 있는 첫 번째 송전탑 선을 잘랐고, 끊은 선을 송전탑 밑에 쌓아뒀다”면서 “송전탑들을 철거하려는 작업 일부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고 밝혔다.
2024년 ‘적대적 두 국가론’을 꺼내든 북한이 남북 군사분계선 인근 지뢰매설 작업, 남북 연결도로 폭파에 이어 남북으로 연결된 송전탑 철거에 나서는 형국이다. 한 대북 소식통은 “전기가 끊긴 지 4년 5개월 만에 북한이 송전탑 철거에 나서고 있다”면서 “북한이 송전탑을 재활용할 일말의 여지라도 있었다면, 철거 작업엔 나서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소식통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내버려뒀던 송전탑을 철거하는 건 남쪽과의 연결고리를 완전히 차단하는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면서 “남쪽에서 전기를 받아쓰지 못하더라도 아쉬울 게 없다는 의미로 보이기도 한다”고 했다.
전직 정보기관 관계자는 “북한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파병을 결정한 뒤 러시아와 각종 협업체계를 새롭게 구성하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전력 공급에 대한 로드맵도 러시아와 어느 정도 합의를 봤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바라봤다.
이 관계자는 “이미 러시아에서 북한에 전력 공급을 추진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외신을 통해 소개된 바 있다”면서 “최근 러시아 여행객들이 찍은 북한 현지 영상을 보면 예상과 달리 활력이 넘치는데 전력난 문제 등이 일부 해결된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관련기사 ‘우리가 알던 북한 맞아?’ 러시아 유튜버가 찍은 색다른 평양의 가을).
러시아는 2015년부터 북한에 전력망을 공급하는 사업에 눈독을 들여왔다. 당시엔 북한 현지에 있는 지하자원과 전력망을 맞바꾸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2024년 들어선 북한이 러시아에 무기 및 병력을 지원하는 것을 대가로 전력공급 등이 이뤄졌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러시아에 지원할 포탄을 생산하는 군수공장은 풀가동 태세를 갖추고 있다는 소식이다. 기존 북한 현지 군수공장 가동률은 30% 수준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군수공장 가동에 필요한 전력 등을 북한이 충분히 공급 받았고, 잉여 전력이 북한 곳곳에 공급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8월엔 러시아 전력망 전문가들이 북한을 방문했다는 소식이 알려지기도 했다. 8월 30일 미국의 북한 전문매체 ‘NK뉴스’가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러시아 에너지그룹 대표들이 8월 26일 러시아 무역대표단과 함께 평양을 찾았다.
전력선 장비 생산 전문 기업인 포레네르고사 측은 “북한의 전력산업 개발, 현대화 경향과 설계, 건설 및 전력선 운영 등을 논의했다”고 했다. 전력 공급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는 러시아 국영회사 로세티도 북한 방문단에 포함돼 국제사회 이목을 끌었다.
북한은 전력망 노후화 등으로 송전 중 소실되는 전기가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러시아가 북한과 군사협력을 더욱 깊은 수준으로 가져가는 대가로 통 큰 선물을 줬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또 다른 전직 정보기관 관계자는 “러시아 쪽에서 북한 전력망을 최신화하는 데 적지 않은 협력을 할 것”이라면서 “전력망 최신화를 통해 전력 공급 시스템이 갖춰지게 되면 북한 생활상도 많은 변화에 직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관계자는 “북한이 확실하게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에 남쪽으로부터 오는 송전탑을 차단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러시아와 전력망 최신화에 대한 협력을 하게 되면 한국으로부터 올 수 있는 전력 공급과 관련해 ‘혹시나’라는 생각도 필요 없어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