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값 상한 풀렸다’ 일본과도 경쟁 OK…영입 희망 리스트 만들어 수년간 지켜보다 낚아채기
외국인 선수들은 대부분의 팀에서 사실상 전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특히 외국인 에이스들의 활약에 따라 정규시즌과 포스트시즌의 명암이 확연하게 갈리는 일이 부지기수다. 지난 2년간 KBO리그 정규시즌 최우수선수는 외국인 타자 에릭 테임즈(NC·2015년)와 외국인 투수 더스틴 니퍼트(두산·2016년)였다. 두산은 6년째 에이스인 니퍼트에다 마이클 보우덴이라는 18승 투수가 한 명 더 합류하면서 역대 정규시즌 최다승으로 우승했다. 갈수록 외국인 선수들의 성적과 팀 성적이 비례하는 일이 많아진다. 각 구단이 외국인 선수 영입에 더 신중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 외국인 리스트의 비밀
모든 구단은 외국인 선수 영입 희망 리스트를 보유하고 있다. 한 번에 작성하는 게 아니라 꾸준히 수시로 업데이트한다. 여러 네트워크를 통해 후보군에 오를 만한 선수의 영상과 정보를 수집하고, 외국인 선수 담당 스카우트가 1년에 1~2회 미국 출장을 떠나 그 선수들이 출전하는 마이너리그 경기를 돌아보고 온다. 그 안에서 팀 상황에 따라 우선순위가 매겨진다.
닉 에반스. 사진출처=두산 베어스
사실 각 구단의 리스트 안에는 대부분 비슷한 선수들의 이름이 올라 있다. 심지어 일본 프로야구 팀들과도 겹치는 선수들이 많다. 정말 탐낼 만한 외국인 선수라면 프로야구 10개 구단과 일본 프로야구 12개 구단이 동시에 저울질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메이저리거에 버금가는 실력을 갖고 있지만 40인 로스터 진입이 불발된 선수들의 에이전트는 직접 아시아 구단들을 상대로 적극적인 어필을 하기도 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당연히 일본이 1순위였다. 한국 리그에서 뛰는 것을 일본 진출을 위한 징검다리로만 여기는 선수들도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한국 야구도 위상이 달라졌다. 수준뿐만 아니라 몸값의 격차가 좁혀지고 있어서다. 일본 구단의 최우선 영입 대상이라면 여전히 ‘머니 게임’에서 이기기 어렵지만, 2순위나 3순위 선수라면 한국 구단도 충분히 붙어볼 만하다.
무엇보다 외국인 선수 보유 한도가 없는 일본은 아시아 야구에서 검증되지 않은 선수에게 첫 시즌 연봉을 그리 많이 주지 않는다. 외국인 선수들끼리 치열한 생존 경쟁도 해야 한다. 일본에서 뚜렷한 성과를 보여줘야 몸값이 훌쩍 뛰어오를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은 팀 별로 3명까지만 보유할 수 있는 한도가 있다. 첫 해 연봉도 점점 후해지고 있고, 1군 등록은 무조건 보장이다. 같은 값이면 한국에서 뛰는 게 더 편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 눈치와 타이밍, 그리고 운의 싸움
상황이 이렇다 보니 외국인 선수 한 명이 여러 구단과 동시에 협상을 벌이기도 한다. 실제로 올해 kt가 새로 영입한 왼손 타자 조니 모넬은 국내에서도 영입 경쟁이 치열했던 선수였다. 그 가운데 NC가 가장 적극적이었고, 입단이 유력해 보였다. 그러나 kt가 협상 막바지에 금액을 더 불렀다. 모넬은 NC 대신 kt와 사인했다. 물론 선수만 중복 협상을 하는 건 아니다. 이런 상황을 대비해 구단들도 1순위 선수에게만 매달리지는 않는다. 후보군에 든 선수들의 에이전트와 꾸준히 연락하고, 어느 선수가 어떤 팀과 협상하고 있는지 정보도 수집한다. 계약할 생각도 없으면서 몸값을 올리기 위해 이 팀 저 팀을 오가며 ‘장난’을 치는 에이전트들을 걸러내는 건 필수. 눈치와 타이밍의 싸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니 모넬. 사진출처=kt 위즈 홈페이지
한국행을 망설이는 선수들의 마음을 사로잡기도 어렵다. 한 지방 구단 관계자는 리스트 상위 순번에 있는 선수를 데려오기 위해 외국인 관중이 관중석에서 응원하는 영상과 연고지 시청에서 제작한 지역 홍보 영상까지 미국으로 들고 가 직접 보여줬다. 생소한 지역에 대한 선수들의 두려움을 최소화하려는 의도였다. 아예 외국인 선수 코디네이터를 외국인으로 고용한 구단들도 나왔다. SK는 넥센 외국인 투수 출신인 브랜든 나이트를 스카우트로 기용했었고, 롯데도 소속 외국인 투수였던 라이언 사도스키에게 해외 스카우트 담당 업무를 맡기기도 했다. 삼성도 현재 메이저리그 베테랑 스카우트 출신인 마크 위드마이어가 외국인 코디네이터로 활약하고 있다. 최근 외국인 타자 다린 러프를 영입할 때도 위드마이어가 좋은 영향을 미쳤다.
# 외국인 선수 몸값 200만 달러 시대로
어쨌든 한국 프로야구의 외국인 선수들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젊어지고 강해졌다. 예전에는 30대 후반의 노장 선수들이 은퇴를 앞두고 찾아왔지만, 요즘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젊은 선수들이 한국 야구의 문을 두드린다. 수년 전이 아닌 바로 전 시즌에 메이저리그에서 뛰거나 40인 로스터에 이름을 올렸던 선수들도 자주 볼 수 있게 됐다.
몸값이 높아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올해는 마침내 외국인 선수 몸값 200만 달러 시대가 ‘공식적으로’ 열렸다. 첫 장을 연 선수는 지난해 22승을 올린 니퍼트. 모두가 납득할 만한 이름이다. 니퍼트는 올해 210만 달러를 받는다. 공식 발표액 기준으로 KBO 리그 역대 외국인 선수 최고 몸값이다. 종전 기록은 지난해 한화 에스밀 로저스가 받은 190만 달러였다.
알렉스 오간도. 사진제공=한화 이글스
물론 총액 200만 달러가 넘은 외국인 선수 계약은 이전에도 있었다는 게 야구계의 정설이다. 실제로 올해 한화와 재계약한 외국인 타자 윌린 로사리오가 공식 발표 금액보다 돈을 100만 달러나 더 받았다는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한화는 로사리오를 150만 달러에 잡았다고 발표했지만, 한 메이저리그 전문기자가 자신의 SNS에 “로사리오가 한화와 250만 달러에 계약해 팀에 남았다”고 쓴 것이다. 안 그래도 올해 메이저리그 재도전이 충분히 가능했던 로사리오가 보장금액 150만 달러만으로 만족했다는 사실에 의혹이 쏟아지던 참이었다. 한화는 “협상 초기에 로사리오가 구단 제시액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요구했던 게 현지에서 와전됐던 것 같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이런 의혹을 받은 선수는 그동안 로사리오만이 아니었다. 다만 구단들은 200만 달러 돌파의 첫 번째 케이스를 앞장서 남기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다. 니퍼트는 다행히 그 최초 사례의 적임자로 평가 받았다. 동시에 앞으로 몸값 200만 달러를 넘어서는 외국인 선수가 더 늘어날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
메디컬 테스트의 중요성…삼성 9위 추락 배경엔 외국인 선수들 부상이 좋은 선수를 뽑는 건 중요하다. ‘건강한’ 선수를 뽑는 건 그보다 더 중요하다. 제아무리 야구를 잘하는 선수도 아파서 뛰지 못하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프로야구 구단들이 외국인 선수 계약 전에 반드시 거쳐가는 과정이 있다. 메디컬 테스트다. KBO 야구 규약 외국인 선수 고용 규정에는 “구단은 계약 전에 구단이 지정하는 병원에서 신체검사를 요구할 수 있으며 신체검사 후 신체적 또는 정신적 결함이 발견되면 계약을 무효화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일반인들이 받는 종합 건강 검진은 물론 엑스레이와 MRI(자기공명영상) 촬영이 이 안에 모두 포함된다. 부상 없이 한 시즌을 뛸 준비가 돼 있느냐를 테스트하는 것이다. 투수는 어깨와 팔, 타자는 허리와 무릎, 발목을 중점적으로 살핀다. 수술 경력이 있는 선수는 더 정밀하게 검사한다. 대부분 외국인 선수들은 미국 병원들 가운데 야구 선수의 몸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의료진과 의료 장비를 보유한 전문 기관에서 테스트를 받는다. 검사비는 구단이 지불한다. 팔꿈치 인대접합수술로 잘 알려진 LA의 조브 클리닉이 대표적인 병원이다. 중남미 선수들은 카리브해와 가까운 마이애미대학교 의학대학 부속 병원을 주로 선택한다. 선수들이 자신의 부상이나 통증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의료진의 눈썰미와 능력이 그래서 중요하다. 지난해 삼성을 거쳐간 외국인 선수 다섯 가운데 넷은 모두 부상으로 2군 신세를 졌다. 외국인 투수 두 명과 타자 한 명이 ‘마침내’ 모두 1군에 함께 모습을 보인 날, 다른 선수들이 “이제야 좀 프로팀 같다”고 했을 정도다. 외국인 선수 세 명이 동시에 1군 엔트리에 이름을 올린 날은 손에 꼽아야 했다. 전년도 정규시즌 우승팀이 1년 만에 9위로 떨어진 결정적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이 때문에 삼성은 올해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외국인 선수 셋을 모두 새로 영입하면서 이례적으로 메디컬 테스트를 모두 국내에서 진행했다. 다른 구단들이 메디컬 테스트를 해외에서 하는 이유는 왕복 항공권에 대한 부담 때문이다. 과거에는 선수가 보내온 진단서나 검사 사진으로 대체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삼성은 올해 계약할 선수들을 모두 대구로 불러들였다. 구단 지정 병원인 서주미르 영상의학과에서 종합적인 진단을 받게 했다. 지난해의 경험에서 교훈을 얻었다. 투수인 앤서니 레나도와 재크 패트릭은 무사히 메디컬 테스트를 통과했다. 계약도 일찌감치 했다. 그런데 외국인 타자를 데려오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지난해까지 3년간 한신에서 뛴 마우로 고메스와 계약 직전까지 갔지만, 고메스가 돌연 마음을 바꿔 “한국에서 메디컬 테스트를 받고 싶지 않다”고 버텼다. 삼성은 개인 훈련을 하다 부상을 입은 것 같다는 추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고메스 영입을 포기했다. 전화위복이 됐다. 처음부터 1순위로 생각했던 다린 러프를 영입하는 기회가 됐다. 삼성은 지난해 러프가 트리플A에서 20홈런을 칠 때부터 눈여겨봤지만, 올해 다저스 40인 로스터에 포함된 선수라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러나 고메스와 줄다리기를 하는 사이 다저스에서 러프의 입지가 좁아졌다. 삼성이 다시 적극적으로 나섰다. 러프는 당당하게 대구에서 정밀검진을 받고 무사히 삼성 유니폼을 입었다. 재비어 스크럭스. 사진출처=재비어 스크럭스 인스타그램 이와 반대 사례도 있다. NC는 지난 연말 테임즈가 떠난 자리에 새 외국인 타자 재비어 스크럭스를 데려온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선 스크럭스가 메디컬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당시 그가 신혼여행 중이라 정밀 검진 일정을 잡기가 어려웠다. 물론 NC는 이미 스크럭스의 몸 상태에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파악한 뒤였다. 미국에서도 부상으로 장기 결장한 경험은 없는 선수였다. 구단은 고심 끝에 먼저 계약 사실을 밝히고 스프링캠프 전에 메디컬 테스트를 완료하기로 결정했다. 대신 스크럭스의 계약서에는 ‘메디컬 테스트에서 문제가 발생할 경우 계약을 파기할 수 있다’는 조항을 넣었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스크럭스는 1월 중순 미국에서 진행된 메디컬 테스트를 예상대로 무사통과했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