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심판 선고 전 토론회 두 차례만 열어…“하위 후보들 역전 기회 막는 셈”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들과 추미애 대표가 지난해 정국 상황 논의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김부겸 의원은 대선 경선을 중도 포기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당 선관위 측은 “정치권이 탄핵에 집중해달라는 민심을 반영한 것”이라며 “탄핵심판 결과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대선체제로 너무 빨리 전환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탄핵 결정 전 최소한 두 차례 이상 토론회를 개최해야 한다고 요구해온 안희정 충남지사와 이재명 성남시장, 최성 고양시장 등은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를 제외한 모든 후보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당 선관위는 인터넷 방송 예비토론회를 한 차례 추가하겠다고 밝혔지만 논란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이재명 시장 측은 ‘깜깜이 선거’로는 정권교체의 적임자를 가릴 수 없다며 한때 경선 보이콧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입장까지 밝혔다. 민주당 홈페이지에는 당의 결정을 비판하는 게시 글이 수백 건씩 올라오면서 서버가 일시적으로 마비되기도 했다.
<일요신문>과 만난 민주당의 한 대선후보 캠프 관계자는 “누가 봐도 문 전 대표를 위한 결정”이라며 당 선관위의 공정성을 의심했다. 이 관계자는 “선거를 여러 번 치러봤지만 이런 당 선관위는 처음 본다. 지난 2012년 대선 경선 때에는 후보들끼리 합의하지 않은 사항은 당 선관위가 함부로 결정하지 못했다. 문 전 대표를 제외한 다른 후보들은 모두 토론회 횟수를 늘리자고 주장했는데 당 선관위는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문 전 대표는 우리 당 대선 후보들 중 유일하게 토론회를 기피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누가 봐도 문 전 대표만을 위한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당 선관위가 이재명 시장이나 안희정 충남지사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토론 능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받는 문 전 대표에게 유리한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문 전 대표는 앞서 KBS 방송토론회와 광주에서 열린 민주당 대선후보 초청 합동토론회 등에도 불참해 논란이 됐다.
문 전 대표 측은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문 전 대표 측 관계자는 “당시 토론회는 다른 일정이 겹쳐 부득이하게 불참했던 것일 뿐”이라며 “문 전 대표는 이미 한 차례 대선을 치러본 경험이 있다. 토론에서 결코 밀리지 않았다. 변호사 출신인 문 전 대표가 토론에 약하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 문 전 대표를 깎아내리기 위한 모함”이라고 말했다.
당 선관위는 토론회 일정을 결정하기 전 각 후보 캠프에 의견을 물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문 전 대표를 제외한 나머지 후보들은 모두 토론회 횟수를 늘리자고 했지만 문 전 대표 측은 탄핵 심판이 선고되기 전 토론회를 갖는 것에 대해 ‘우려스럽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 선관위가 다른 후보들 의견은 무시하고 문 전 대표 측 주장과 비슷한 결정을 내린 것 아니냐는 지적에 문 전 대표 측 관계자는 “우리는 당 선관위 측에 어떠한 요구도 한 적이 없다. 단지 우리의 의견을 물어 와서 ‘우려스럽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일 뿐”이라며 “당 선관위가 자체적으로 내린 결정이기 때문에 우리와는 상관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다른 후보 캠프 관계자는 “그렇다면 당이 번번이 문 전 대표 측에 유리한 결정을 내리는 것이 모두 우연이라는 것인가. 믿기 힘든 해명”이라면서 “이번 사건 외에도 당 지도부가 문 전 대표에게 유리한 결정을 자주 내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앞서 박원순 서울시장과 김부겸 의원의 ‘야권공동경선’ 주장을 일축하며 일방적으로 대선후보 경선 룰을 확정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박 시장과 김 의원은 일방적인 경선 룰 확정에 불쾌감을 표시하며 경선 룰을 보류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묵살당했다. 이후 두 사람은 경선을 중도 포기했다. 정치권에선 민주당 지도부의 이 같은 일방적인 태도가 두 사람이 경선을 포기한 원인 중 하나가 됐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이 관계자는 “당 선관위가 대선 후보 등록 기간을 이례적으로 길게 잡으면서 문 전 대표가 오랫동안 대선 후보 등록을 하지 않고 선거운동을 했다. 문 전 대표 측은 토론회에 불참하면서 ‘아직 정식 후보 등록을 하지 않았으니 참석할 의무가 없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후보 등록 기간 문제도 문 전 대표를 위한 배려가 아니었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탄핵이 인용되고 나면 60일 이내 대선을 치러야 하는데 탄핵 후 8차례 토론회를 갖겠다는 약속도 믿을 수가 없다. 실제로는 3~4번 정도로 토론회 횟수를 크게 줄일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리고 있다. 하위 후보들로서는 토론회를 통해 역전의 기회를 노려야 하는데 라디오 토론이나 인터넷 방송 토론의 경우 시청자 수가 제한돼 큰 효과를 얻기 힘들다”면서 “탄핵심판 결과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대선 체제로 전환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일정도 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 대선 일정은 모두 소화하면서 토론회만 하지 말자는 주장을 이해할 수가 없다”고 꼬집었다.
또 다른 후보 캠프 관계자도 “이런 방식으로 경선이 치러진다면 문 전 대표가 경선에서 승리한다고 해도 다른 후보들이 본선에서 적극적으로 돕지 않을 것”이라며 “아무리 문 전 대표가 대세라지만 다른 후보들 도움 없이 본선에서 쉽게 이길 수 있겠나. 또 이긴다 해도 같은 당 정치인들로부터도 인정받지 못하는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는가. 문 전 대표가 대세 후보인 만큼 통 큰 포용력을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치권의 한 인사도 “이번 대선은 민주당 경선에서 승리한 후보가 대권으로 직행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경선 관리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크다”면서 “지난 2012년 민주당 대선 경선 당시 지지자들 간 몸싸움까지 벌어져 난장판이 됐는데 당 선관위가 중립을 지키지 못한다면 이번 대선 경선에서는 훨씬 더 심한 꼴불견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아름다운 경선이 치러지지 않으면 대선 본선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