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여론조사 비율 올리기vs손 현장투표 비율 올리기 ‘벼랑 끝 싸움’
대선 경선 룰을 비롯해 본선 후 연대 전략 등 2차·3차 전쟁의 화약고들이 즐비하다. 당 내부에서도 양측이 예상 밖으로 강하게 맞붙자 판돈을 어디로 걸어야 할지 갈팡질팡하는 모양새다. 대선 ‘잭팟’의 극적 변화 때문이다. 이들은 친문(친문재인) 패권주의에 무릎을 꿇은 비문(비문재인) 후보다. 계파 패권 희생양인 이들이 또 다른 패권주의와의 전쟁 선포에 나섰다.
손학규 국민주권개혁회의 전 의장(왼쪽)이 2월 17일 국회 본청에서 열린 국민의당 입당식에서 당 대권주자인 안철수·천정배 전 공동대표와 함께 구호를 외치고 있다.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더 이상의 양보는 없다.”
국민의당 대선 경선에 뛰어든 안 전 대표 행보는 이 한마디로 정리된다. 한때 안 전 대표는 ‘양보 정치’의 대명사였다. 2011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50% 이상 지지도를 보였던 그는 5%에 불과하던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통 큰 양보를 했다. 2012년 대선 야권 후보 단일화 땐 전격 불출마를 선언했다. ‘간만 보다가 끝난다’는 간철수 논란에 휩싸인 것도 이쯤이다.
그러던 그가 ‘강철수’, ‘독철수’로 변모했다. 대선 전 개헌 불가론을 앞세워 ‘자강론’을 펼친 데 이어 룰 협상에서도 통 큰 양보는 없었다. 제3 후보론 원조 격인 박찬종·문국현 전 의원의 전철을 밟을 것이란 시선을 걷어차고 ‘사즉생 생즉사’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안 전 대표 측은 “이번엔 끝까지 간다”고 잘라 말했다. 야권 관계자들도 “이번 대선에서 안 전 대표가 낙마할 경우 국민의당은 소멸의 길로 접어든다”며 “정치인 안철수도 마찬가지다. ‘안철수 현상’만이 유산 상속자를 찾아다닐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손 전 대표도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2007년과 2012년 대선 경선에서 연거푸 패배한 그는 2014년 7·30 재보선에서 참패를 끝으로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이후 2년간의 강진 칩거를 끝내고 복귀했지만, ‘흘러간 물은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다’는 정치권의 명언처럼 현재 지지도는 3% 미만이다. 손 전 대표가 믿는 것은 ‘룰의 역습’이다. ‘100% 현장투표’에 근접할수록 지지도 대비 비교우위에 선 조직력을 기반으로 뒤집기가 가능하다고 전망한다.
손 전 대표 측 관계자는 “국민의당 입당 이후 이른바 ‘컨벤션효과’가 미미해 당 실무진들이 손 전 대표에게 ‘사고 좀 치십시오’라고 충언했다”며 “그 이후 나온 첫 번째 작품이 문 전 대표와 대립각을 세운 2월 24일 대구 최고위원회의 등에서 나온 발언”이라고 말했다. 당시 손 전 대표는 오전 대구 최고위회의에서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수사기간 연장을 위한 개정안이 무산된 데 대해 “전적으로 민주당 지도부와 문 전 대표의 잘못”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의 특검 연장안 수용 거부가 민주당이 ‘선 국무총리 교체-후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거부한 결과라는 것이다. 안 전 대표와 손 전 대표의 광폭 행보 속에서 룰의 전쟁은 막이 올랐다.
애초 룰의 전쟁에 임하는 양측의 자세는 ‘로우키’였다. 완전국민경선제(오픈프라이머리)만 원칙적으로 합의한 채 세부적인 룰 쟁점에 대해선 눈치싸움만 했다. 손 전 대표는 2월 7일 국민의당 입당 당시만 해도 룰 협상에 대해 “별것 아니다. 실무진에서 잘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 전 대표 측도 2월 중순까지 룰 논쟁에 함구령을 내렸다. 삼고초려한 손 전 대표 측을 자극, 경선이 누더기로 전락할까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도 역력했다.
양측 기류가 바뀐 것은 본격적인 룰 협상을 사흘 앞둔 2월 19일이다. 국민의당은 당일 안산 문화예술의 전당에서 60개 경기 지역위원회 당원들과 함께 ‘10만 당원 만들기, 경기도에서 대통령을 만듭니다’라는 슬로건 아래 경기도당 10만 전사 출정식을 개최했다. 손 전 대표 측 경기지역 조직력을 풀가동한 자리였다. 출정식 이후 당 안팎에선 안 전 대표 측이 당황해했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앞서 손 전 대표가 2월 17일 기자들과 만나 “모바일 투표는 절대 안 된다”고 할 때까지만 해도 공식적인 반응을 자제하던 안 전 대표 측은 이후 물밑에서 모바일 투표를 강하게 밀어붙였다.
룰 협상 데드라인 D-1인 2월 27일 후보 측 대리인단이 머리를 맞대고 기 싸움에 돌입했다. 안 전 대표 측에선 김철근 캠프 대변인, 손 전 대표 측에선 윤석규 전략특보가 협상자로 나왔다. 천정배 전 공동대표 측에선 부좌현 전 의원을 내보냈다. 안 전 대표 측은 이 자리에서 모바일투표가 가미된 ‘현장투표 50%+여론조사 50%’를 제안했다. 지지도 등 대중성에서 우위를 점하는 안 전 대표 측은 ‘경선 흥행’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이에 맞서 손 전 대표 측은 당원과 국민의 1표를 골자로 하는 ‘100% 현장투표’를 주장했다. 모바일 투표의 불공정성과 함께 내부에선 “당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데, 사람이 모이겠느냐. 민주당에 비해 턱없이 부족할 경우 흥행에 독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천정배 전 공동대표는 ‘숙의 배심원제’를 제3의 선택지로 제시했다.
다만 양측 모두 ‘여론조사 수용’을 마지노선으로 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안 전 대표 측은 손 전 대표가 반대하는 모바일투표 대신 여론조사 비율을 높이고, 반대로 손 전 대표는 100% 현장투표를 앞세워 여론조사 비율을 낮추는 게 룰 전쟁의 핵심이었다. 하루 뒤인 2월 28일 당 경선룰 태스크포스(TF)는 세 후보 측 대리인을 불러 협상을 이어갔다. TF는 모바일 투표를 제외하되, 현장투표에 여론조사 결과를 반영하는 중재안을 제시했다.
그러자 안 전 대표 측은 이 자리에서 그간 주장했던 모바일투표를 전격 제외한 ‘현장투표 40%+여론조사 30%+공론조사 30%’를 골자로 하는 플랜B를 제안했다. 손 전 대표 측도 물러서지 않았다. ‘무작위의 공론조사=여론조사’라는 주장을 펴면서 ‘현장투표 50%+세 후보 측이 3분의 1씩 뽑은 배심원단 50%’안을 주장했다. 이번엔 안 전 대표 측이 거부했다. 경선 룰 데드라인을 넘긴 채 3월 2일 재협상에 돌입했다. 3월 25~26일 당 대선후보 선출 일정에도 차질이 불가피하게 됐다.
룰 협상 과정에 ‘평행선’을 달리는 사이 양측의 감정은 곪을 대로 곪았다. 손 전 대표 측은 3월 1일 안 전 대표 측의 차떼기, 이른바 ‘독수리 5형제 프로젝트’를 폭로했다. 안 전 대표 측이 현장투표에 대비 차원에서 지역캠프를 동원해 승용차에 5명씩 태워서 현장투표장으로 가자는 문자메시지를 살포했다는 것이다. 또한 안 전 대표 측이 조직위원장들의 줄 세우기를 통해 조직적인 동원 운동에 나섰다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안 전 대표 측은 “터무니없는 비방”이라며 “조직위원장의 경선 참여는 당연하다”고 잘라 말했다.
양측의 충돌 지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룰 전쟁이 ‘경선 전’ 갈등 진원지라면 대선 연대론은 ‘경선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불거질 화약고다. 그간 안 전 대표는 연대론에 대해 “흘러간 노래”라며 자강론을 폈다. 이에 대해 손 전 대표는 “우리는 스스로 문을 열어야 한다”며 연립정권·공동개혁정부’ 구성을 촉구했다. 천 전 대표도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제 세력이 모여 국회선진화법(180석)을 무력화하는 대오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선 연대론은 필연적으로 ‘개헌론’과 직결한다. 이 지점 역시 대선 전 개헌 반대를 피력한 안 전 대표와 개헌을 고리로 포위작전에 나선 손학규·천정배 전 대표 간 권력암투의 핵심 관전 포인트다.
양측은 3월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결정에 대비, 존재감 확보를 위한 프로젝트 가동에도 나섰다. 안 전 대표는 헌재의 탄핵 심판 결정 후 ‘5일 내’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할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 4차 산업혁명과 결선투표제 등을 전면에 내걸고 이번 대선을 ‘과거 세력 vs 미래 세력’의 구도로 끌고 간다는 복안이다.
손 전 대표 측도 ‘올드보이’의 귀환 비판 불식을 위해 친근함이 가미된 이미지 전쟁을 준비 중이다. 내부에선 ‘도깨비 손’, ‘손 과장’ 등이 아이디어 차원에서 제기, 친근한 이미지를 내세워 준비된 개혁적 후보라는 점을 강조할 계획이다. 메이저리그(민주당)에 오르기 위한 마이너리그(국민의당) 전쟁은 이제 시작이다.
윤지상 언론인
국민의당? 바른정당? 어디로…정운찬 행보 주목받는 까닭 차기 대선 주자인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의 거취가 중대 갈림길에 섰다. 정 이사장은 ‘안철수-손학규’로 이어지는 국민의당 중심의 제3지대 마지막 퍼즐로 평가받았지만, 최근 안 전 대표와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국민의당과 거리를 둔 모양새다. 일각에선 국민의당 입당을 접었다는 얘기도 나온다. 대신 바른정당을 포함한 ‘개헌지대’, 경제민주화를 고리로 한 ‘경제연대’ 행보에 속도를 붙였다.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의 거취 결단 등에 따라 정 이사장이 제3의 선택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전망이다. 시기는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 전후다. 정 이사장은 그간 거취와 관련해 “탄핵 전후로 입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해왔다. 정 이사장은 3월 3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동반성장국가혁신포럼의 창단대회를 열고 대권 도전을 공식 선언했다. 이후 헌재의 탄핵 결정 시점까지 독자 세력화를 한 뒤 ‘당 대 당’ 통합에 나설 계획이다. 정 이사장 선택지는 ▲비패권지대 중심의 빅텐트 ▲국민의당 입당 ▲독자 세력화 ▲민주당행 등 4가지 정도다. 이 중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는 비패권지대 빅텐트다. 야권의 복수 관계자 말에 따르면 정 이사장은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 공동대표·유승민 바른정당 의원과의 3자 경제 토론회가 무산된 이후 국민의당과의 연락망이 사실상 끊겼다. 안 전 대표 홀대 및 국민의당의 언론플레이 등이 단초로 작용했다. 실제 정 이사장은 2월 20일 서울 한 호텔에서 안 전 대표와 단독 회동하고 경제 토론회 마무리 작업에 나설 예정이었다. 이 회동은 안 전 대표 측이 약 일주일 전쯤 정 이사장 측에 요청하면서 성사 직전까지 갔다. 그러나 최종 불발됐다. 원인은 양측이 회동 속내가 달랐기 때문이다. 정 이사장 측은 앞서 제안한 조속한 시국 경제토론 개최를 위한 회동에 방점을 찍었으나, 안 전 대표 측은 국민의당 입당 약속을 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안 전 대표 측 핵심 관계자는 “언제까지 토론만 할 것이냐. 정치적 제스처를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3자 토론에서 양자 토론으로 전락할 위기를 맞은 경제토론회는 김 전 대표가 양측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하면서 ‘김종인이 묻고 정운찬·유승민이 묻는’ 형식의 경제 토론으로 마무리됐다. 유 의원과 토론회를 마친 정 이사장은 같은 날 박순자 바른정당 의원 주최로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비정규직 차별 해소 토론회’에 참석, 남경필 경기지사를 만났다. 정 이사장의 바른정당 입당이 가닥을 잡은 게 아니냐는 관측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 유 의원은 이와 관련해 확대 해석을 경계하면서도 “경제에 대한 철학 등 유사한 점이 많다”며 협력 가능성에 긍정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다만 김 전 대표는 “경제를 고리로 무슨 연대가 되겠느냐”라며 “사람 개인의 거취에 대해서는 자꾸 안 물어보는 게 예의”라고 함구했다. 정 이사장 측은 이와 관련해 “안 전 대표는 단독 회동 이후 더는 연락이 안 오는 상황”이라며 “정 이사장이 토론회 직후 박 의원 토론회에 갔다고만 말하겠다. 맥락을 봐 달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민주당이 국무총리직 제안을 고리로 입당을 타진했다는 설도 나오지만, 정 이사장은 “내가 국무총리 한 번 더 하려고 정치를 하겠느냐”라고 일축했다. 정 이사장은 이명박(MB) 정부 때인 2009년∼2010년 제40대 국무총리직에 오른 바 있다. 앞서 그는 지난해 4·13 총선 직전 문재인 전 대표 측으로부터 민주당 입당을 타진받았지만, 끝내 고사했다. [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