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이 뉘 땅인데…’ 아직 통할까
▲ 지금도 호남에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 연합뉴스 | ||
“아이고 이번엔 증말 모르갔소! 통합민주당 후보 찍자니 DJ선생이 걸리고…그날 가봐야 알것소.” (전남 목포서 만난 50대 상인)
“선거 날 되믄 그래도 DJ 편에 서서 투표헐 거여. 지금이야 다들 언제쩍 DJ냐고 하는디 그 선상 무시할 수 있간디.”(무안에 사는 60대 할머니)
DJ의 복심으로 통하는 박지원 전 장관과 차남인 김홍업 의원이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전남 목포와 무안·신안의 민심은 한마디로 ‘민주당 후보를 찍자니 DJ가 걸리고, DJ맨들을 찍자니 민주당이 걸리고’다. 민주당 개혁 공천에 지지를 보내면서도 한편으론 DJ 측근들의 낙천에 대한 동정론이 공존하고 있는 분위기다. 호남권 전체 의석 31석을 모두 석권하겠다던 민주당의 목표에 강력한 제동을 건 이들 지역에선 박 전 장관과 김 의원의 무소속 돌풍이 예상되고 있다.
특히 ‘호남정치 1번지’로 불리는 목포는 박 전 장관과 공천 탈락 후 무소속 출마를 강행한 현역 이상열 의원, 민주당 공천을 받은 정영식 전 목포시장 등이 치열한 각축을 벌이는 호남권 최대 격전지로 부상하고 있다. 호남권 현역 의원 ‘30% 물갈이’를 통해 당 이미지를 쇄신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민심 이반’이라는 역풍을 맞을지가 이 지역 판세의 최대 변수가 되고 있다. 마찬가지로 DJ 차남인 김 의원이 출마하는 전남 무안·신안은 민주당 황호순 후보와의 접전이 예상되고 있다. ‘DJ의 아들’이라는 타이틀 아래 김 의원이 얼마나 선전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광주 북갑은 민주당 강기정 후보가 공천을 받으면서 ‘여의도행’이 거의 확실시됐지만 한화갑 전 구 민주당 대표가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면서 선거판도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또 광주 남구에서는 민주당 후보인 지병문 의원을 상대로 무소속 강운태 후보가 지지율 격차를 크게 벌리고 있고 광산갑에서도 무소속 송병태 후보가 민주당 김동철 의원을 위협하고 있다.
광주시내에서 택시를 운전하는 김 아무개 씨(42)는 “전반적 여론은 역시 민주당인데 몇몇 무소속 후보들이 DJ의 간접적 지원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이들은 당선되지 않겠냐는 얘기가 많이 나온다” 고 말했다. 이에 반해 20대 회사원 최 아무개 씨(29)는 “민주당이 한나라당에 맞설 개헌 저지선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한 석이라도 더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제는 우리 광주도 DJ라는 커다란 정치적 그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교동’으로 상징되는 DJ 측근과 현 민주당, 구 민주당 세력 간의 정치적 세 대결이 펼쳐지고 있는 광주·전남 선거구는 이른바 ‘김심’(金心)의 영향력이 유효한가를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예전부터 전북지역은 광주 전남만큼 정치 바람이 세지 않아요. 이번에도 일부 무소속 후보들의 약진이 예상되지만 전남에서 출마한 박지원 김홍업 한화갑 후보들 같은 거물급이 없어선지 선거 열기가 뜨겁지 않아요. 그러나 정동영 전 대선후보의 영향력이 커서 이른바 ‘정동영 계보’ 들이 어쨌건 신승이라도 하리라 예상됩니다.”
전북지역 일간지 정치부 한 기자는 “전북은 DJ라는 큰 그늘 아래 정동영의 힘이 실질적으로 작용하는 곳”이라며 “일부 지역 공천과정에서 현역의원들이 탈락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 전북지역 11개 선거구 중 정동영 라인으로 분류되는 대표적 현역의원은 남원·순창 이강래 의원과 고창·부안 김춘진 의원이고 큰 틀에선 전주완산갑 장영달 의원, 무주·진안·장수 정세균 의원, 군산 강봉균 의원, 전주덕진 김세웅 후보, 전주완산을 장세환 후보 등이 정 전 통일부 장관의 영향력 하에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이번 총선에서 사실상 당선이 유력시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 이른바 무소속 연대인 ‘민주연합’소속 후보들의 약진이 예상되고 있으나 대체적으로 민주당 공천을 받은 후보가 유리한 입지를 선점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북지역에서 접전이 예상되는 대표적인 곳은 모두 4개 지역구다. 민주당 강봉균 의원과 무소속 강현욱 전 전북지사가 맞붙은 군산과, 민주당 장영달 의원과 역시 무소속으로 출마한 이무영 전 경찰청장이 격돌한 전주완산갑, 민주당 김세웅 후보와 무소속 이창승 후보가 대결하는 전주덕진, 민주당 장기철 후보에게 무소속 유성엽 후보가 도전장을 던진 정읍 등이다.
지역정가 사정에 밝은 한 소식통은 “전남지역은 이번 총선이 DJ의 ‘김심’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정치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만 전북은 현역의원 중심으로 공천이 이뤄져 이에 대한 역풍이 일 경우 무소속 후보들이 이변을 연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했다.
광주=김미화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