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만으로는 ‘제3지대’ 명분 약해 경제로 공통분모 찾기
선거철이 되면 주가를 높이는 여의도 한 전략통은 2월 28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열린 ‘한국 경제의 길을 묻다’ 경제토론회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같은 민주당 내에 있지만 문 전 대표를 대통령감이라 보지 않는 ‘경제민주화 전도사’ 김 전 대표가 사회자로 나서, 유 의원과 정운찬 전 국무총리가 경제 현안에 관해 토론하게 한 장면에서 ‘비문재인 연대’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 공간에서 세 사람은 강력한 재벌 개혁의 공통분모를 찾아나갔다. 이번 토론회는 어떻게 성사됐고, 어떤 의미가 있을까 짚어봤다.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이 2월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열린 ‘한국경제의 길을 묻다’ 긴급토론회에 참석해 기초발제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발을 담그고 있는 진영이 각각 다른 세 정치인의 일합은 정 전 총리의 도발에서 출발했다. 2월 초 중소기업 강화 정책에 대한 로드맵을 밝힌 언론 인터뷰에서 정 전 총리가 “대선주자들이 선심성 공약을 대신해서 현실에 바탕을 둔 공약을 낼 수 있도록 문재인·안철수·유승민 등과의 시국 대토론을 제안한다”고 말하면서다. 정 전 총리는 그러면서 “자신 없으면 안 나와도 된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대선주자로서는 아직 존재감이 미약한 탓에 정 전 총리의 당시 인터뷰 내용은 크게 회자하지 않았다. 그렇게 열흘 뒤쯤 유 의원 측이 정 전 총리의 시국 대토론 제안 이야기를 건너건너 듣게 됐고, “경제 분야 공약의 디테일에 대해 진검승부를 벌이자”며 정 전 총리 측에 화답한 게 계기가 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동반성장을 내 건 정 전 총리와 혁신성장의 유 의원의 만남은 그렇게 성사됐다.
문제는 문 전 대표와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대표의 합류 여부였다. 정 전 총리로선 대세론을 형성한 문 전 대표와 나란히 앉은 장면만으로도 체급을 높일 수 있는 기회였고, 게다가 자신의 주무기인 ‘경제 분야’ 아닌가. 유 의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문 전 대표는 응하지 않았고, 안 전 대표도 합류 쪽으로 가닥을 잡다 최종적으로 불참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정 전 총리와 유 의원만으로는 토론회의 주목도를 높이기가 쉽지 않았다. 같은 보수 진영 후보인데다 두 사람이 모두 경제통이라는 사실은 흥미롭지 않았다. 그러다 “김종인을 모시자”라는 아이디어가 정 전 총리 측과 유 의원 측에서 동시에 나왔다. 기자들 사이에서도 인터뷰하기가 까다롭기로 소문 난 김 전 대표의 목에 누가 방울을 달 것인가. 이 미션은 유승민계로 불리는 이혜훈 김세연 의원이 맡은 것으로 전해진다.
바른정당 최고위원으로 3선인 이혜훈 의원은 17대 국회 재정경제위원회(현 기획재정위)에서 김 전 대표와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선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 김태호 전 내무부(현 행정자치부) 장관의 며느리인 이 의원의 정계 입문을 도운 이가 바로 김 전 대표라는 얘기가 들린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울산 중구에 당선된 김 전 장관은 2002년 골수암으로 별세하기 전 자신의 아들(김영세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에게 의원직을 물려주고 싶어 했다. 그리고 절친이었던 김 전 대표에게 넌지시 물었는데 김 전 대표는 “아들보다는 며느리가 정치를 더 잘할 것 같다”고 답했다고 한다. 그렇게 며느리인 이 의원이 국회의원이 됐다.
유 의원과 함께 바른정당을 탈당한 김세연 의원은 유승민 대선캠프에서 정책을 총괄하고 있다. 1972년 부산 출생으로 젊다. 5선의 고 김진재 전 한나라당(자유한국당 전신) 부총재의 아들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이종사촌언니인 홍소자 씨와 한승수 전 국무총리의 사위다. 김 전 대표와 김 전 부총재의 인연도 있지만 김 전 대표가 김 의원을 각별히 아낀다는 얘기는 공공연하게 전해진다.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대선캠프를 진두지휘한 김 전 대표의 경제민주화에 공감한 의원들이 ‘경제민주화실천모임’(경실모)를 조직했고 김 의원이 대표를 맡았었다. 당초 열댓 명이 목표였는데 현역 40명과 전직 의원 8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공부모임이 됐다. 새누리당 최대 모임을 이끌어갔던 김 의원을 두고 김 전 대표가 “신분을 뛰어넘을 인재”라고 말했다는 이야기는 지금까지 회자한다. 정치인의 아들이자 동일고무벨트 대표로 자산가인 김 의원이 ‘금수저’ 딱지를 떼고 큰 정치인으로 클 것이란 이례적인 칭찬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김 의원은 김 전 대표와의 인연을 바탕으로 토론회의 진행을 맡아달라는 청을 했고 김 전 대표가 흔쾌히 승낙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 전 대표와 유 의원의 인연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꽤나 깊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17대 국회에서 유 의원은 434호실이었다. 그리고 그 맞은편이 김 전 대표 사무실(433호)이었다. 김 전 대표는 당은 달랐지만 한국개발연구원(KDI) 출신으로 한나라당의 전략통인 유 의원을 자주 자기 방으로 불러 티타임을 가졌다고 한다. 대구 출신답게 유 의원도 김 전 대표를 깍듯하게 모셨다.
2015년에는 김 전 대표 측이 유 의원실에 전화를 걸어 정치후원금을 내고 싶다고 계좌번호를 물어오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이미 후원금 계좌가 차버려 후원받지는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 전 대표는 ‘안보는 보수, 경제는 개혁’ 기조의 유 의원의 노선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말도 여기저기서 들린다.
토론회는 순조롭게 끝났다. 200여 명의 청중이 모였고 자리에 앉지 못한 이는 서서 경청하기도 했다. 유 의원은 “김 전 대표는 17대 국회에서부터 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많은 가르침을 주셨고, 정 전 총리는 제가 1981년 제대 후 조순 선생 경제학 특강을 듣는데 기말고사 때 시험감독으로 들어오셨던 기억이 난다”는 인연을 전하기도 했다.
김 전 대표는 “유 의원의 경제 진단에 공감한다”며 “다음 대통령이 되는 사람이 이런 문제 인식을 잘 하느냐에 따라 한국 경제의 미래가 달렸다고 생각한다”고 화답했다. 유 의원은 또 “정 전 총리는 10년 선배이신데 국무총리에다 동반성장위원장까지 하시면서 늘 경제를 걱정하시는데 모시게 돼 영광스럽게 생각한다”며 “바른정당으로 오시면 좋겠다”고 인사했다.
토론회를 성공적으로 평가한 이 3대 진영은 2차 토론회도 기획 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는 안철수 전 대표까지 합류할 수 있도록 관련 분야도 논의 중이다. 그리고 유 의원이 토론회 이후 기자들과 만나 밝힌 대목이 의미심장하다. “김종인 같은 분은 민주당 기존의 경제노선하고 조금 다르다. 보수 쪽에서도 받아들일 부분이 많다. 김 전 대표가 결단을 내려서 3지대로 간다면 바른정당도 긍정 검토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개헌보다는 가치, 경제나 중요한 다른 정책 등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제3지대의 동력이 하나둘 늘어나는 분위기다.
이정필 언론인
한국당내 인명진 재평가 기류…“박지원·김종인 상대할 인물은 인 위원장뿐” 최순실 사태로 많은 것을 잃은 집권여당 자유한국당. 하지만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을 추앙하는 당내 세력이 점차적으로 늘면서 분위기가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고 전해진다. 한평생 종교인으로 살아왔던 인 전 갈릴리교회 목사가 자유한국당을 치료하는 수술대에 올라선 뒤 웰빙정당 시스템이 바뀌고 있고, 흡족해 하는 인사들이 늘고 있는 얘기가 들리는 것이다. 기존 정치인보다 더 정치적인 언변과 돌파형 리더십을 두고 당내에서 “국민의당에 박지원, 더불어민주당에 김종인을 상대할 유일한 사람이 한국당의 인명진”이라는 말까지 돌고 있다. 그가 온 뒤 무엇이 바뀌었을까. 자유한국당은 그동안 언론이 아무리 비판적인 논조로 보도해도 일절 대응하지 않아왔다. 유일한 보수정당으로 그러 보도한가 지지율 변동을 부를 만큼 충격이 크지 않다고 자신했기 때문이다. 대세에 지장을 줄 만한 보도가 아니라면 무대응 원칙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인 위원장 체제가 들어선 뒤 아주 적극적인 언론 대응에 나서면서 사실 확인이 제대로 되지 않은 언론사가 힘겨워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자유한국당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인 위원장은 새벽 기상 직후부터 본인이 직접 언론 보도를 모니터링해오고 있다. 언론이 이끌어가는 정치를 못마땅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하루는 인 위원장이 새벽 5시에 당 고위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관계자는 자느라 전화를 받지 않았고 몇 시간 뒤 콜백을 했을 때 불호령이 떨어졌다. 왜 자유한국당에 좋지 않은 취재가 생겼을 때 미리 바로 잡지 않고 방치하느냐는 질책이었다. 그리고 공보실과 관련한 대대적인 인사에 착수했다. 당 소속 의원들의 신문 방송 인터뷰를 모두 모니터링하면서 ‘해당(害黨) 발언’에는 강하게 문제를 제기해오고 있다. 한국당 관계자는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하다 보니 최순실 사태에서 코너에 몰려도 나설 사람이 없더라”라며 “인 위원장이 언론모니터링을 강화하면서 나쁜 보도가 크게 줄고 있다”고 했다. 실제 언론중재위원회에 수십 건을 제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인 위원장은 적절한 비판에는 화답하지만 막무가내식 비난에는 무관심으로 대응하며 대인배 면모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최근 김무성 바른정당 의원이 인 위원장을 ‘야누스’라 칭하며 “당의 법인카드로 비싼 호텔에서 밥을 먹는다. 교회로 돌아가라”고 비판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 발언이 나오자 자유한국당 내부에서 김 의원이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전신) 대표일 당시 쓴 법인카드 사용내역을 출력해 인 위원장에게 대응하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또 인 위원장이 당내 현안 때문에 호텔에서 식사를 해온 것이지 사적인 일로 밥을 먹지 않았다는 증명을 해보이자는 의견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인 위원장은 “괜찮다. 알 사람은 다 안다”는 말로 직원들을 달랬다. 이밖에도 인 위원장은 원외당협위원장에게 대변인 등 당의 중책을 맡기고 있다. 원외당협위원장 정례모임도 만들어졌다. 또 당의 대선주자가 정해지진 않았지만 당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모두를 도와주자는 의견도 피력했다고 한다. 당 관계자는 “처음에는 고개를 갸웃거렸던 많은 의원들이 인명진식 진단과 처방에 한번 맡겨보는 것도 괜찮겠다고들 한다”며 “무대(김무성 대장의 줄임말)를 거치며 사라졌던 강력한 리더십이 부활한 모습”이라고 전했다. [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