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다니는 40%’ 잡는 당이 웃는다
▲ 부동층이 40%가 넘을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전문가들은 이번 총선이 그 어느때보다 예측하기 어렵다고 한다. | ||
하지만 선거전문가들은 이번 총선이 그 어느 선거보다 예측하기 어렵다고 얘기한다. 전체 투표율이 낮을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선거 며칠 전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부동층이 표심을 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실제 부동층은 40%가 넘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부동층의 표심이 전체 선거 판세를 좌우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실제 각 당에서 내놓는 선거 전략도 부동층을 끌어오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여론조사에 따라 1, 2위 순위까지 뒤바뀌는 접전지역이 속출하는 것 또한 부동층의 표심이 흔들리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와 같은 상황은 후보들이 다소 우세를 보이는 지역에서조차 선거 시점까지 잠시도 안심할 수 없게 만드는 원인이기도 하다.
과연 민심은 어느 당의 손을 들어줄까. 여야 각 당과 여론조사 전문가들이 내놓은 선거 직전 마지막 판세 분석을 들여다봤다. 이들의 전망이 실제 선거 결과와는 어떤 차이를 보이게 될지 대조해보는 것도 마지막 남은 관전 포인트가 될 듯하다.
여론조사 공표 시한 하루 전인 지난 2일 각 언론사와 방송사는 공식적으로 공개할 수 있는 ‘마지막’ 여론조사 결과를 쏟아냈다. 이를 살펴보면 한나라당은 전국 245개 선거구 중 120여 곳에서 우세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 1, 2위 간 경합지역으로 분류되는 70여 곳에서 목표치인 20석 가량을 이기고 비례대표 28명 정도를 당선시킨다면 한나라당이 얻게 되는 총 의석수는 168석. 이는 당에서 1차 목표로 삼고 있는 안정적 과반의석(170석)에 근접한 수치다.
하지만 관건은 경합지역으로 분류되고 있는 선거구의 승패다. 특히 한나라당과 통합민주당이 목표 의석 확보를 위해 교두보로 삼고 있는 수도권에는 접전 양상을 보이는 지역구가 가장 많다. 한나라당이 목표로 하고 있는 수도권 의석수는 총 111석 중 70석가량. 2일 현재까지 한나라당 후보가 우세를 보인 곳은 55곳 내외다. 하지만 수도권 30~40곳에서 한나라당 후보가 다른 당 후보와 접전을 벌이고 있고 이 가운데 20여 개 지역은 하루가 지나면 순위가 달라지는 ‘초접전’ 지역이라 목표치에 어느 정도 근접한 결과를 얻을지가 관심사다.
한나라당 내부에선 수도권 목표치(70석) 달성이 ‘무난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상황. 그러나 늘어나고 있는 부동층이 역시 고민거리다. 한나라당의 한 전략팀 관계자는 “큰 이변이 없는 한 원하는 의석수를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1, 2위 간 표차가 크지 않은 지역은 안심할 수 없는 지역이 많다. 이 지역에 대한 집중적인 선거운동 지원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나라당의 ‘텃밭’이던 영남권에서는 친박연대 및 친박 무소속 연대 후보들과의 경쟁 결과가 주목된다. 한나라당은 애초 영남권의 68개 의석 ‘전부’를 목표로 삼았으나 ‘박풍’(박근혜 바람)이 일면서 궤도 수정이 불가피하게 됐다. 지난 2일까지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대구 서구 홍사덕 후보, 부산 남을 김무성 후보, 부산 서구 유기준 후보, 진주 갑 최구식 후보, 경북 안동 김광림 후보 등 친박연대 및 무소속 후보들의 지지율이 상승세에 놓여 있는 상황. 현재 한나라당 내에서도 역대 선거에 비해 영남권 목표치를 5~6석 낮게 내다보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친박 측 인사들의 당선가능성을 내다봤을 때 영남권의 한나라당 의석수는 60석가량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이처럼 ‘접전지역’이 많은 원인에 대해서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부동층이 많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서치플러스의 임상열 대표는 “여론조사시의 무응답층, 즉 부동층은 선거가 임박해오면서 줄어드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서는 선거가 다가오면서 다시 늘어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민감한 선거 국면에서 그 어느 당도 선거 판세를 좌우할 만한 ‘무언가’를 던지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분석이다.
문제는 이러한 부동층이 과연 어떤 성향을 갖고 있으며 실제 투표 당일에도 부동층으로 남을 것인가에 있다. 임 대표는 “부동층이 투표시의 기권층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또 ‘투표의향’은 있으나 ‘지지자’를 확정하지 않은 이들 역시 여론조사 때와는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여론조사에서 ‘무응답층’으로 나타나는 사람들 중에 실제의 표심을 숨기는 이들이 포함돼 있는 것도 하나의 변수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즉 ‘침묵의 나선효과’가 반영될 수 있다는 것. ‘침묵의 나선효과’란 1970년대 독일학자 노엘레 노이만이 제시한 이론으로 ‘자신의 생각이 일반적인 여론과 다르다고 생각될 경우 침묵함으로써 자기 의견을 숨기려는 경향’을 말한다. 즉 여론조사에서도 지지율이 적은 후보를 지지하는 경우 사실과 다르게 답하는 경향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리서치앤리서치의 배종찬 팀장은 “지난 2004년 총선에서 출구조사와 실제 개표결과의 차이가 컸던 것도 ‘침묵의 나선효과’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중장년층들이 표심을 드러내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탄핵정국을 불러온 야당에 대한 전국적인 촛불시위 분위기로 인해 한나라당 지지자들이 속마음을 감추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부동층의 표심은 통합민주당에게도 절대적 관심사다. 통합민주당의 경우 개헌 저지선인 의석수 100석을 목표로 내걸었으나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지난 2일까지의 각종 여론조사를 종합해보면 민주당은 비례대표를 포함해 90석가량을 얻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변수는 접전 지역. 특히 수도권에서 한나라당 후보와 접전을 벌이고 있는 지역이 많아 부동층의 향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통합민주당의 수도권 목표 의석수는 50석 가량. 하지만 통합민주당 후보가 우세한 지역은 20석 내외여서 역시 접전을 벌이고 있는 지역구의 승패에 따라 의석수가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통합민주당이 수도권에서 35~40석 정도를 얻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영남권 싹쓸이’ 목표와 마찬가지로 통합민주당 역시 애초 호남의 31석 석권 계획을 세웠었다. 하지만 김홍업 의원과 박지원 전 비서실장 등 무소속 후보들의 돌풍이 관건이다. 지난 2일까지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전북 정읍의 유성엽 후보는 민주당 후보에 앞서고, 전남 목포의 박지원 후보는 상대 후보들의 단일화라는 새 변수를 만났으나 선전하고 있으며, 무안·신안의 김홍업 후보는 민주당 황호순 후보를 바짝 추격하고 있는 상황.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호남권에서 무소속 후보가 2~3석 정도 당선될 가능성이 있고 나머지 의석을 민주당이 가져가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각각 충청권과 영남권을 주요 공략지역으로 삼고 있는 자유선진당과 친박연대(친박 무소속연대 포함)의 경우 원내 교섭단체 구성 의석(20석)을 최소 목표로 삼고 있다. 2일 현재까지 두 당이 우세를 보이는 지역은 각각 6~7곳 정도여서 목표를 낙관하기 어려운 상황. 각 당은 경합지역 위주로 유세 지원에 나서는 한편 더 많은 비례대표를 당선시키기 위해 당 지지도 확보에 몰두하는 모습이다.
충청권은 한나라당과 민주당, 자유선진당의 ‘삼국대첩’ 결과가 주목되는 지역. 자유선진당의 경우 애초 충청권 24석 중 22석을 목표로 삼았으나 지난 2일 여론조사 때까지 확실한 우세를 보인 곳은 충남 예산·홍성을 비롯해 6~7곳, 치열한 경합이 벌어지는 곳은 10여 곳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나 판세를 점치기 어려운 상황이다. 충청권에서 8~10석을 노리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선전 여하에 따라 총선 이후 이회창 대표의 정치적 입지도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특히 이번 총선에서 친박연대가 갖게 될 영남권 의석의 무게감에 주목해야 한다고 분석한다. 지난 2일까지의 여론조사 결과로는 친박연대가 부산·경남 지역 4~5석, 대구·경북 지역 2~4석 정도를 얻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영남권 싹쓸이를 노리고 있던 한나라당이 친박연대에게 6~9석가량 내줄 경우 총선 이후 박 전 대표의 당 내외 위상이 사뭇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한나라당의 전통 지지기반인 영남권 민심을 흔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친박연대는 한나라당에게 두고두고 골칫거리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민주노동당과 창조한국당, 진보신당 등 이른바 ‘스몰(small) 3’ 정당의 경우 각 당 후보가 여론조사상 우세를 보인 곳이 각각 1곳 내외에 불과해 미니정당으로 남게 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크다는 분석. 결국 정당 지지도에 따른 비례대표를 얼마나 배출하는가에 따라 이들 3당의 명암이 서로 엇갈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총선 당일까지 선거 판세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남은 이슈’는 무엇이 있을까. 이에 대해 선거전문가들은 “유권자들이 매우 경미한 사안에 대해 민감하게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한다. 리서치플러스의 임상열 대표는 “현재의 부동층들은 선거를 며칠 앞두고 지지자를 결정할 가능성이 크다. 심지어 일부 유권자들은 투표 당일에 표심을 결정할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굉장히 다이내믹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며 “이들의 표심을 잡을 사안은 정책이나 비전, 철학과 같은 거대 사안은 아닐 것”이라고 내다봤다.
선거가 임박해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다소 상승세를 탄 것 역시 ‘사소한’ 사안에 의한 것이었다는 분석도 있다. 리서치앤리서치의 배종찬 팀장은 “총선이라는 지엽적인 경쟁구도에서 대운하 문제는 전국적인 이슈가 될 수 없다. 대운하에 대한 논란이 반 한나라당 정서에 크게 영향을 미치진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논란은 불러왔으나 50개 항목 생필품의 가격을 관리하라고 지시한 것이나 일산 초등학생 성폭행 미수사건 수사를 질책하기 위해 일산경찰서를 방문한 일 등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친서민적 정서’를 불러일으킨 일들이 오히려 총선 정국에 도움이 되었다는 분석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명박 대통령이 일산경찰서를 방문한 일이 2~3%가량의 지지율 상승 효과를 가져왔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또 한편으로는 ‘반 한나라당’ 정서가 ‘바닥을 치고 올라섰다’는 분석도 있다. 당내 공천 잡음 및 장관 인선문제 등으로 인해 최고조에 달했던 한나라당에 대한 반감이나 비호감 정서가 일종의 ‘침체기’에 들어선 대신 ‘여권 프리미엄’으로 인한 지지도 회복이 시작되었다는 분석이다.
이에 대해 리서치앤리서치 배종찬 팀장은 “대선 직후 한나라당 지지도가 50% 이상 고공행진을 보이다가 40% 초중반대로 내려앉았었다. 이때 빠져나간 지지층이 다른 당으로 옮겨가지 않고 무응답층으로 머물러 있다가 한나라당으로 되돌아오는 ‘컴백타임’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배 팀장은 “지지도 회복이 V자 곡선은 아니지만 U자 곡선을 그리면서 상승 중이다. 이 상승세가 총선까지 이어진다면 한나라당이 정국을 안정적으로 끌어갈 수 있는 의석수를 확보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근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남북관계 역시 총선 정국에 하나의 변수가 되었다는 분석이다. 선거전문가들도 “한나라당의 보수적 대북정책이 꼭 불리하게 작용하는 것만은 아니다”라고 설명한다. 이에 대해 배종찬 팀장은 “남북 간의 긴장모드가 현재의 통합민주당 등 야권에게 유리한 측면이 거의 없는 반면 영향이 크진 않지만 오히려 한나라당이나 MB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갖가지 변수와 그 결과에 따른 여러 가지 예측이 나오고는 있으나 이번 총선을 지켜보는 선거분석가들의 공통된 의견은 ‘널뛰는’ 여론의 흐름을 따라잡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 정치컨설턴트는 “솔직한 민심을 있는 그대로 읽어내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일임을 정치인들은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