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든지 죽든지 ‘귀향 전쟁’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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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학규, 정동영 | ||
민주당의 이러한 흉흉한 분위기는 각종 여론조사 결과 당초 목표로 삼았던 100석 의석 확보가 어려울 것이란 진단에 따른 위기감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당권 및 차기 대권을 겨냥해 ‘서울 출마’ 카드로 승부수를 띄웠던 손학규 대표와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등 거물급 인사들의 생사 또한 불투명한 상황이어서 향후 당의 세력 재편과 권력구도는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형국이다.
개혁공천 과정을 통해 당내 주류 세력으로 급부상한 손 대표 진영은 어떤 식으로든 당내 주도권을 장악하겠다는 전략인 반면 비주류로 전락하거나 고사 위기에 처한 정동영계와 동교동계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맹주 자리를 되찾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는 분위기다. ‘적군’을 상대로 한 총선 전쟁이 끝나자마자 본격적인 내부 권력투쟁 모드로 진입하고 있는 민주당의 새 권력지도 속으로 들어가 봤다.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민주당 비례대표 공천에서 떨어진 정 전 장관의 측근 A 씨가 던진 일성이다. 4·9 총선의 빅 매치 지역 중 한 곳인 서울 동작을에서 정 전 장관의 선거를 지원하던 A 씨는 2일 기자와 만나 “손 대표가 개혁공천을 명분으로 정동영계와 동교동계에 대한 ‘고사’작전을 치밀하게 추진하고 있지만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며 “인내에 한계를 느끼고 있는 만큼 총선 후 손 대표 진영과 일전도 불사할 방침”이라고 울분을 토로했다.
A 씨는 또 “손 대표는 정 전 장관과 사전 조율도 없이 일방적으로 종로 출마 선언을 하면서 정 전 장관을 사지(동작을)로 몰아넣었다”며 “정 전 장관의 동작을 출마를 기다렸다는 듯이 한나라당이 정몽준 의원을 맞불 카드로 내세운 배경도 석연치 않다”고 말했다. 정 전 장관은 한나라당 입장에서 볼 때 가장 껄끄러운 야당 지도자이고 손 대표 입장에선 당내 대권 라이벌이라는 점에서 양측이 ‘정동영 죽이기’에 암묵적 합의를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A 씨의 주장이다.
A 씨의 주장은 그 진위를 떠나, 공천 갈등과 총선 과정을 거치면서 손 대표 진영과 정 전 장관 측 사이에 ‘앙금의 골’이 깊게 패였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 이는 향후 당권 및 당내 주도권을 놓고 피 말리는 암투가 전개될 것을 시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특히 지역구는 물론 비례대표 공천에서도 철저하게 외면받으면서 고사위기에 직면한 정동영계와 동교동계의 ‘분노’는 극에 달해 있는 모습이다. 핵심 측근인 박지원 전 장관과 차남 김홍업 의원의 공천 배제에 한동안 말을 아꼈던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민주당 지도부에 직격탄을 날리는가 하면 정 전 장관이 “인내에 한계를 느낀다”고 말한 것은 이러한 분위기를 잘 반영하고 있다.
이 때문에 향후 손 대표를 정점으로 한 ‘신주류’와 DJ·정 전 장관을 매개로 한 호남권 ‘대주주’ 세력이 민주당 패권을 놓고 총선보다 피 말리는 생존게임을 벌일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DJ의 측근인 박 전 장관과 김홍업 의원은 각각 전남 목포와 무안 신안 지역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손 대표의 정체성을 비난하는 등 민주당 지도부에 맹공을 퍼붓는가 하면 이희호 여사까지 선거전에 뛰어들어 그야말로 ‘올인’ 승부를 펼치고 있다. 박 전 장관과 김 의원은 ‘민주당 뿌리론’과 ‘DJ 명예회복론’을 강조하면서 “당선 후 반드시 민주당에 복귀하겠다”는 입장이어서 두 사람이 국회 입성에 성공할 경우 당내 권력암투는 더욱 복잡하고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손 대표 측은 DJ와 정면으로 맞서는 것은 자칫 호남민심을 자극해 역풍을 몰고올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해 적극적인 대응은 자제하고 있으나 내심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여론조사 결과 두 사람의 생존 가능성에 힘이 실리고 있는 만큼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손 대표 진영의 신주류 부상에 강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정 전 장관 측은 총선 후 당권 전쟁에서 다시 한 번 승부수를 띄운다는 전략이다. 정 전 장관을 포함한 측근들이 얼마나 생존할지 지켜본 뒤 3개월 내에 치르게 될 전당대회에 ‘올인’하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이번 총선을 거치면서 세력이 급격하게 위축된 정동영계와 동교동계가 살아남기 위한 생존 전략 차원에서 ‘반 손학규 연대’를 구축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이처럼 민주당이 총선 후폭풍과 맞물린 본격적인 당내 권력투쟁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가운데 손 대표와 정 전 장관, 박 전 실장, 여타 잠룡들의 ‘생사’가 초미의 관심사로 급부상하고 있다. 이들 거물급의 ‘여의도 귀환’ 여부가 향후 민주당 당권 및 주도권 향배를 가늠하는 척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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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대표의 경우 자신의 당선 여부도 중요하지만 민주당 개혁공천과 전체 선거전을 진두지휘했다는 점에서 민주당의 총선 성적표 또한 그의 정치생명을 좌우하는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이 강세를 보였던 ‘정치 1번지’에서 승리할 경우 그는 명실상부한 야당 대표로 자리매김하는 동시에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민주당 내부에 대권 입지를 확고히 구축하는 동력을 얻게 될 것으로 관측된다.
반면 종로에서 패하고 민주당이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표(70석 이하)를 받았을 경우 거센 책임론에 휩싸이면서 정치생명까지 위협받는 위기상황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대선 참패에 따른 후유증과 쇄신 공천을 거치면서 세력이 급격하게 위축된 정 전 장관은 동작을 선거 결과에 따라 자신의 정치적 진퇴를 결정해야 하는 코너에 몰려 있다. 한나라당이 히든카드로 투입한 ‘대어’(정몽준 의원)를 낚을 경우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는 동시에 향후 전당대회 때 직접 당권에 도전하거나 대리인을 내세워 당권 장악에 나설 수 있는 호기를 맞게 된다. 반면 패할 경우 대망론은 물론 차세대 호남맹주 자리까지 내놓고 긴 세월 정치권 주변을 방황하는 신세로 전락할 가능성도 크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정 전 장관이 이번 선거에서 패할 경우 2~3년 외국 유학 등 정치적 시련기를 보낸 뒤 2010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 복귀를 시도할 것이란 다소 이른 관측을 내놓고 있는 실정이다. 92년 대선 패배 후 정계은퇴를 선언했다가 95년 지방선거 때 민주당이 압승을 거두자 정계에 복귀한 뒤 97년 대선에서 승리한 DJ의 대권도전기를 모델로 삼지 않겠느냐는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박지원 전 장관과 김홍업 의원,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 등 동교동계 3인방의 생사 또한 당내 권력투쟁에서 적잖은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DJ의 분신과도 같은 이들 동교동계 인사들의 총선 성적표는 DJ와 동교동계의 생존 전략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고 호남권에서의 ‘DJ 영향력 지수’를 판단하는 바로미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정치권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들 세 사람 중 두 사람 이상이 당선될 경우 동교동계는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게 되고, 동시에 호남권 맹주와 민주당 패권을 둘러싼 당내 권력투쟁은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반면 두 사람 이상이 패할 경우 DJ는 더 이상 호남의 절대 강자로 군림할 수 없고 동교동계 또한 쇠락의 길을 걷게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민주당 내 잠룡으로 분류되고 있는 김근태 천정배 정세균 한명숙 의원과 추미애 전 의원 등의 당락도 민주당 세력 재편과 역학구도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일까지의 여론조사 결과 이들 잠룡들은 생존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어 이들의 향후 행보가 당내 권력 향배를 결정하는 또 다른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들 잠룡들 대부분은 개혁 성향이면서도 DJ의 직·간접적인 후광을 등에 업고 거물급으로 성장한 이력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이들이 ‘호남 정당’ 이미지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손 대표를 지원할 수도 있고 DJ와의 인연을 매개로 동교동계와 손을 잡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이들 잠룡들 또한 나름대로 차기 대권을 노리고 있는 만큼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득실과 중장기적인 대권 전략을 바탕으로 노선을 결정하게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과연 10년 만에 야당으로 전락한 민주당을 이끌 새로운 맹주 자리는 누가 차지할까. 민주당의 향후 권력 향배를 가늠하는 1차 분수령이 될 총선 결과에 정가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