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권형 개헌 세력을 야합세력 낙인찍어 개헌 프레임 사전 차단 전략
문 전 대표 측은 여론 추이를 예의주시하면서 ‘포스트 탄핵 로드맵’ 마련에 나섰다. 그러나 고심이 적지 않다. 문 전 대표 특유의 ‘전략적 모호성’ 때문이다. 문 전 대표는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 등을 놓고 전략적 모호성에 갇히면서 정치적 국면마다 궁지에 몰리고 있다.
8일 오전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주관하는 세계여성의 날 33회 한국여성대회기념식에서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임준선 기자
문 전 대표의 전략적 모호성은 최대 아킬레스건이다. 특히 ‘포스트 탄핵 정국’에서 첫 번째 고비인 박 대통령에 대한 구속 수사 여부와 맞물릴 땐 파장이 일파만파다. 캠프 공보팀에서도 이 문제를 놓고 연일 난상토론이 벌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내부에선 의견 일치를 보지 못했다. 앞서 문 전 대표는 박 대통령의 ‘명예로운 퇴진론’을 꺼냈다가 야권 지지층으로부터 뭇매를 맞고 후퇴한 바 있다.
문 전 대표 측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내부적으로 고민이 많다”고 귀띔했다. 캠프 내 ‘비둘기파’에선 ‘법과 원칙에 따른 수사’ 수준에서 그쳐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지만, ‘매파’의 분위기는 강경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우에 따라 구속 수사 원칙을 천명한 이재명 성남시장의 거센 공세에 시달리면서 당내 경선 내내 발목이 잡힐 수도 있다. 문 전 대표가 ‘섀도 캐비닛’(예비 내각)에 준하는 조직을 띄웠지만, 대권 9부 능선을 넘기까지 적지 않은 산이 존재하는 셈이다.
여기에 ‘김종인 탈당’도 문 전 대표 발목을 잡았다. 문 전 대표는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탈당한 3월 7일 포스트 탄핵 플랜의 얼개를 공개했다. 섀도 캐비닛에 준하는 캠프 내 경제·안보·사회 조직의 풀가동이 핵심이다. ‘경제대통령 프레임’ 선점을 위해 대선 경선캠프 경제조직인 비상경제대책단의 첫 경제현안점검회의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었다.
비상경제대책단은 ‘정책통’ 이용섭 전 의원이 이끈다. 문 전 대표도 첫 회의에 참석, 경제팀에 힘을 실어줬다. 이 자리에서는 학계·전직 관료 등 분야별 전문가 13명을 공개했다. 박원순 서울시장 최측근인 하승창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의 깜짝 영입도 발표했다. ‘박원순의 사람’ 원투인 임종석 전 의원과 하 전 부시장을 껴안은 셈이다.
그러나 김 전 대표의 탈당으로 반쪽짜리 행사로 전락했다. 문 전 대표는 김 전 대표의 탈당에 대해 “대단히 안타깝다”면서도 “경제민주화 정신만큼은 어떠한 경우에도 지켜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대표가 자신이 주도한 상법 개정안이 2월 임시국회에서 무산된 직후 탈당으로 틀었다는 주장을 염두에 둔 말이다.
김 전 대표는 탈당 의사를 밝힌 당일 “당에서 아무런 할 일이 없다”, “이번 임시국회를 보면 잘 아실 것 아닌가”, “남이 써준 공약을 읽는 후보는 안 된다”라며 당 대주주인 문 전 대표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김 전 대표는 다음 날인 8일 탈당계를 당에 제출했다. 탈당의 변은 “고난의 길을 마다치 않고 나라를 위해 제 소임을 다하겠다”였다. 앞서 밝힌 ‘순교의 길’이다.
당 지도부 핵심 관계자는 김 전 대표가 탈당계를 제출하기 전까지도 “탈당은 없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하지만 김 전 대표가 십자가를 졌다. 문 전 대표 측을 비롯해 당 지도부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김 전 대표 탈당 직후 진영·이언주·최명길 의원 등의 탈당설이 불거진 상황에서 당내 개헌파 의원 35명의 요청으로 김 전 대표 탈당 다음 날 개헌 의원총회를 열었다. 이종걸 의원은 비문계와 함께 ‘6년 단임·내각구성 총리’를 골자로 하는 자체 개헌안으로 ‘문재인 포위작전’에 나섰다. 문 전 대표 측 내부에선 ‘포스트 탄핵 로드맵’ 플랜을 다시 짜야 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애초 문재인 캠프와 친문계인 당 지도부 실무진들은 투 트랙으로 ‘포스트 탄핵’ 구상에 돌입했다. 탄핵이 카운트다운에 돌입하면서 어젠다 세팅을 통해 프레임 선점 효과를 노린다는 복안이었다. 문 전 대표 측은 ‘적폐 청산 vs 적폐 세력’ 프레임으로 기존의 대청소론을 한층 키울 계획을 세웠다. 한 실무진은 “적폐 청산이 핵심 프레임이 될 것”이라며 “보수진영이 이분법적으로 ‘통합 vs 분열’ 프레임으로 공격할 수 있다고 보고 ‘적폐 청산=통합’ 논리를 펴면서 정치 프레임을 격차 해소 등 경제 이슈로 끌고 갈 것”이라고 말했다.
당에서는 ‘준비된 당 vs 급조 정당’ 프레임으로 당 후보를 지원 사격할 방침을 정했다. 추미애 대표 측 관계자는 “민주당을 제외한 거의 모든 정당은 대선용 정당”이라며 “급조된 당의 후보는 곧 준비 안 된 후보”라고 꼬집었다. 야권의 익숙한 프레임인 ‘이명박근혜’도 여전히 살아있는 카드다.
문제는 설에 그쳤던 3월 빅뱅의 현실화로 문재인 대세론이 새 국면을 맞았다는 점이다. 기존의 ‘패권 세력 vs 반 패권세력’을 넘어 ‘개헌 vs 호헌’ 구도가 짜일 경우 문 전 대표 대세론이 치명적인 독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한 ‘김종인 발 탈당’으로 대선 구도 역시 ‘민주당 vs 제3지대 vs 자유한국당’ 구도에서 양자 구도로 좁혀질 수도 있다. 한 여론조사 분석가는 “‘김종인 탈당’은 곧 홍준표 경남도지사 등 친박(친박근혜)계와 전략적으로 거리를 둘 수 있는 후보군의 연합작전을 의미한다”고 잘라 말했다.
문 전 대표 측의 시급한 과제는 개헌 프레임의 ‘사전차단 전략’이다. 이 경우 문 전 대표 측은 원칙적으로 개헌에 찬성하되, 비문계의 ‘개헌 vs 호헌’ 프레임에 맞서 분권형 개헌(이원집정부제)을 주장하는 개헌세력을 ‘나눠먹기식의 야합 세력’으로 낙인찍는 전술을 쓸 것으로 보인다.
또한 판 흔들기에 나선 기성 정치권이나 대선 후보 중심이 아닌 ‘국민 중심의 질서 있는 개헌’을 내걸고 ‘선 대선후보 공약-후 차기 정부 추진’ 플랜을 공개할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당이 개헌 의총에서 대선 주자들에게 ‘2018년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를 권고키로 한 것도 이런 맥락과 무관치 않다.
실제 이른바 ‘개헌 문건’인 당 산하 민주연구원의 ‘개헌 논의 배경과 전략적 스탠스 & 더불어민주당의 선택’ 보고서에도 “선 개헌 추진 반대가 아닌 원칙적 추진에 동의하고, 후 2017년 대선 공약화 및 차기 정부 초기에 실현해야 한다”며 “박근혜 대통령 개인과 정부형태, 그리고 기성 정치권의 폐해에 대한 전반적인 개혁을 요구하라”고 명시했다. 개헌 공세 시 선거구제 개편을 비롯해 민생과 개혁 의제를 병행해야 한다는 논리인 셈이다.
또한 임기단축 개헌에 대해선 “직접 단호하게 반대하지 않는 대응 방식인 전향적인 입장이 장기적으로 긍정적”이라고 밝혔다. 민주당 범주류 한 관계자는 “개헌 지대는 결국 영합(제로섬) 게임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며 “내부 권력 분점에 실패하면서 지리멸렬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문 전 대표가 개헌의 파고를 넘는다 해도 또 다른 산이 기다린다. ‘타이밍 정치’다. 문 전 대표는 3월 초까지 대선 공식 출마 선언 날짜와 장소, 형식 등을 정하지 못했다. 확정된 것은 안철수 전 국민의당 공동대표보다 늦게 한다는 것뿐이다. 안 전 대표 측은 내부적으로 헌재 선고 시점으로부터 D-5일을 데드라인으로 잡았다. 문 전 대표 측 전략에는 안 전 대표에 이어 대선 출마 선언 피날레를 장식하겠다는 속내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지지도 1위를 달리는 후보가 지나치게 눈치 보기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지난 대선 때 캠프에 몸담았던 민주당 한 관계자는 “후보의 뜻이다. 문 전 대표가 ‘지난 대선 때 출마 선언을 먼저 했더니, 정책을 알릴 수 없었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현재 출마 장소로는 서울 여의도 국회를 비롯해 광화문 세종문화회관과 부산 등이 거론된 것으로 전해졌다.
광화문은 지난해 대선 당시 손학규 전 대표에게 선점당해 문 전 대표가 양보한 곳이다. 부산은 5년 전 대선 때 문 전 대표의 마지막 유세 지역이었다. 국회에서 할 경우 유튜브나 페이스북 생중계가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비문 관계자는 “지지도가 높을 땐 전략적 모호성과 늦은 타이밍 등이 가려졌지만, 3월 빅뱅에서 하락 추세로 전환한다면 약점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했다.
윤지상 언론인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으로? 김병준 ‘반문진영’ 선봉 설까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국무총리 내정자로 지명을 받았던 김병준 국민대 교수가 차기 대권 도전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김 교수는 참여정부 정책실장 출신으로, ‘원조친노’(친노무현)로 분류된다. 정치권 복수의 관계자에 따르면 김 교수는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문재인 전 대표가 최종 후보로 선출되는 직후 ‘반문(반문재인)’을 기치로 차기 대권 행보에 나설 예정이다. 자유한국당 친박(친박근혜)계와 민주당 친문(친문재인)계를 제외한 모든 세력이 판을 짜는 제3지대에 합류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직접 등판과 제3지대 판 구축 등 역할을 놓고는 고심 중이다. 김 교수는 2012년 대선 당시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에서 ‘친노 비주류’ 김두관 후보를 지지한 바 있다. 18대 대선과 19대 대선 모두 문 전 대표와 대척점에 서는 셈이다. 현재 김 교수는 국민의당뿐 아니라 자유한국당 등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다. 김 교수는 3월 3일 국회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국회의원·당협위원장 토론회에서 참석, 대선 후보 역할론 질문에 대해 “패권정치를 막는다는 입장에서 압박이 오면 쉽게 거절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탈당을 선언한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와 마찬가지로 직접 ‘킹’에 도전하거나 최소 제3지대 세 규합의 조력자 역할을 마다치 않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한 측근은 “김 교수의 대권행에는 ‘문재인 후보’ 확정이란 전제가 깔렸다”며 “그 이후 제3지대로 방향을 틀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김 교수가 대선 과정에서 ‘문재인 저격수’ 역할을 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 경우 양측은 ‘루비콘 강’을 건널 전망이다. 문 전 대표와 김 교수는 참여정부 때만 해도 ‘친노 동지’였다. 문 전 대표는 2003년 참여정부 초대 민정수석 시민사회비서관을 거쳐 대통령 비서실장 등을 역임했다. 김 교수는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캠프 정책자문단장을 한 뒤 대통령인수위원회 정무분과 간사로 참여정부 정부조직개편의 얼개를 그렸다. 이들은 2004년∼2006년까지 3년간, 청와대에서 시민사회수석 민정수석(문재인)과 정책실장(김병준) 등으로 호흡을 맞췄다. 정무는 문 전 대표가, 정책은 김 교수가 각각 맡으며 노무현 정부의 양 날개 역할을 한 셈이다. 순탄치 않은 시기도 있었다. 김 교수는 참여정부 때인 2006년 7월 교육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으로 내정됐다. 그러나 13일 만인 8월 2일 낙마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각을 세웠던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은 당시 김 교수 내정을 반대했고, 이 과정에서 문 전 대표 등 친노 인사들이 적극적으로 방패 막이를 하지 않으면서 소원해졌다는 말도 나온다. 이들은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후 혁신과통합 전신 격인 ‘시민주권’ 운영위원회에 합류하는 등 공조 행보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이 시기를 끝으로 2012년 대선과 그 이후 엇갈린 운명의 주인공이 됐다. 지난해 4·13 총선 때 민주당 입당을 거절한 김 교수는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합류 직전 박 대통령으로부터 국무총리로 지명받았다. 이후 문 전 대표가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등 악연은 계속됐다. 김종인 발 정계개편에서 문 전 대표와 김 교수의 대립각은 극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