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은 “제2의 3당 야합…승산 없으니 꼼수 부려” 맹비난
3당은 4년 중임제를 명시한 구체적인 개헌안도 마련했다. 합의한 개헌안이 통과되면 19대 대통령 임기를 3년으로 줄이는 대신, 이번에 당선된 대통령은 20대 대선과 21대 대선에도 출마가 가능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를 지켜보는 시선은 그다지 곱지만은 않다.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왼쪽)와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오른쪽)가 지난해 11월 국립현충원에서 열린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1주기 추모식에서 악수하고 있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개헌 국민투표 실현가능성에 대해선 회의적 반응이 적지 않다.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조차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문재인 민주당 전 대표가 반대하고 있기 때문에 과연 현실적으로 200석 이상을 확보할 수 있을까”라며 부정적인 전망을 내놨다. 개헌안이 국회를 통과하려면 국회의원 200명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원내 3당이 연대할 경우 개헌안을 발의(150명 이상 찬성)할 수는 있겠지만 통과는 어렵다는 얘기다.
또 대선까지 두 달도 남지 않았는데 3당이 내실 있는 개헌안을 마련할 수 있겠냐는 비판도 팽배하다. 개헌에 동의하는 의원들 사이에서도 구체적인 방식에 대해서는 의원내각제, 이원집정부제, 4년 중임 대통령제 등으로 의견이 갈린다. 우상호 민주당 원내대표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개헌안 내용도 나오지 않았는데 통과시기를 먼저 못 박은 것은 졸속 합의라고 꼬집었다.
우 원내대표는 “일반적인 법안 하나 통과시키는 데도 보통 1년에서 2년이 걸린다. 한 나라의 큰 운영의 틀을 바꾸는 헌법을 제정하면서 2~3개월 만에 뚝딱하겠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했다. 또 민주당 내 일부 개헌파 의원들이 찬성해 개헌안이 통과된다고 해도 원내 1당인 민주당을 배제한 채 마련된 개헌안은 정치적 정당성을 가질 수 없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정치권에선 이러한 3당의 움직임을 두고 개헌에 소극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 문 전 대표를 겨냥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3당이 문 전 대표를 압박하기 위한 매개체로 개헌을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재인 캠프 특보단 소속 의원의 한 보좌진은 “개헌합의는 대선을 위한 포석이라고 본다. 이번 대선을 개헌 대 반개헌 세력의 대결로 프레임을 짜보려는 의도”라고 말했다. 이 인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보수 진영이 사실상 몰락했다. 이번 대선은 민주당 대 국민의당 후보의 맞대결 양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그런데 국민의당 세력만으로 문 전 대표를 이길 수 없으니 개헌을 고리로 보수진영까지 끌어안으려는 얄팍한 수”라고 했다.
과거 한국당 대선후보 공보특보를 맡았던 한 인사도 비슷한 해석을 내놨다. 그는 “대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면 문재인만큼은 떨어뜨리자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나온다”며 보수진영이 어떤 형태로든 국민의당과 연대할 가능성이 높다고 점쳤다. 실제로 안상수 한국당 의원은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문 전 대표가 대통령이 되면 피바람이 불 것”이라며 “편향된 진영논리에 휩싸인 문 후보는 결코 통합의 대통령이 될 수 없다. 문 후보의 집권을 막는 최전선에 서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박지원 대표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안희정 충남지사가 제발 민주당 대선후보가 안 되길 빈다. 안 지사가 민주당 후보가 되면 굉장히 어려운 싸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던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개헌이나 대연정 등을 적극 주장하고 있는 안 지사가 민주당 대선후보로 선출될 경우 보수진영으로선 굳이 국민의당과의 연대만 고집할 필요가 없게 된다. 양측의 연대 동력이 떨어지는 셈이다.
이변 없이 민주당 대선후보로 문 전 대표가 선출될 경우 이번 대선이 보수 대 진보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문재인 개인 대 나머지 정치세력의 연합이라는 구도로 치러질 가능성이 높다.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거론되고 있는 제3지대 빅텐트론이나 대연정, 개헌론 모두 결국은 문 전 대표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분석이다. 국민의당에서는 문 전 대표와 맞대결을 할 경우 민주당 내 개헌파 일부 의원도 국민의당 후보를 지지하고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다.
친문 진영에선 이를 두고 지난 1992년 대선 때의 3당 합당과 다를 것 없다며 격한 반응을 보인다. 13대 총선에서 헌정사상 첫 여소야대 국회를 맞은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90년 정치적으로 대립관계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 등과 3당 합당을 했다. 그리고 2년 뒤 치러진 대선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승리했다. 정청래 민주당 전 의원은 개헌합의에 대해 “제2의 3당 야합”이라며 “아예 당을 합치라”고 비판했다.
금태섭 민주당 의원도 3당 연대는 국민의당의 정치적 자살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국민의당이 한국당, 바른정당과의 후보 단일화에 나설 경우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이번 합의에 대해 당장 국민의당 지지기반인 호남에서부터 야합이라는 비판이 들린다. 합의 직후 일부 시민단체는 국민의당 광주시당사 앞에서 ‘박근혜 부역세력과 야합한 개헌 합의를 즉각 철회하라’며 항의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국민의당 유력 대선 주자인 안철수 전 대표도 “한국당은 대통령 파면에 대해 석고대죄해야 할 사람들”이라면서 “이런 사람들이 개헌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국민의당은 한국당이 후보를 내지 않고, 그 대신 보수 지지층이 자연스럽게 국민의당으로 향하는 그림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3지대 빅텐트론을 주장했던 김종인 전 민주당 비대위원장이 인명진 한국당 비대위원장을 만나 ‘한국당이 이번 대선에서 후보를 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일각에서는 국민의당 중진 의원들이 3당 연대를 염두에 두고 안철수 전 대표 대신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를 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경선룰이나 경선일정 조정 과정이 대체로 손 전 대표 측에 유리하게 결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당의 경선룰 결정에 반발해 안 전 대표 측 이용주 의원과 송기석 의원 등은 캠프 직책에서 사퇴했다.
안 전 대표는 자강론을 앞세우며 후보 간 연대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반면 손 전 대표는 개헌을 위한 3년 임기 단축에도 찬성하는 등 개헌을 고리로 연대를 주장하는 당내 인사들에게는 안 전 대표보다 매력적인 인물이라는 평가다. 최근 호남 중진 의원 몇 명이 손 전 대표 캠프에 합류하기도 했다.
호남에 지역구를 둔 국민의당 한 의원은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개헌합의를 그렇게 정치적으로만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개헌 논의는 정권이 바뀌어도 당파 싸움만 반복되는 현 정치체제를 개선하려는 노력”이라며 “문 전 대표도 과거에는 개헌에 동의했다. (개헌을 고리로 한) 3당 연대가 우려된다면 지금이라도 개헌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될 일이다. 오히려 높은 지지율로 대선 승리 가능성이 높아지자 마음을 바꾼 것은 문 전 대표 아닌가. 누가 욕심을 내고 있는 것인지 국민들이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