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오르고 싶다, 지지율” 예능 뺨치네~
남경필 경기지사 유튜브 공식 채널 캡처(왼쪽)와 손학규 국민주권개혁회의 의장 페이스븍 캡처.
남경필 경기지사 측은 2월 28일 색다른 느낌의 영상을 유튜브 공식채널에 공개했다. 남경필 얼굴 가면을 쓴 한 남성이 “서둘러 올라가야 한다. 그들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며 뛰고 있는 영상이다.
웅장한 배경음악이 레이스를 돋보이게 만들지만 반전 요소가 숨어 있다. 그가 에스컬레이터를 계속 올라가며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장면이다. 영상의 주제는 “나도 오르고 싶다. 지지율”이다. 연일 지지율 답보에 머물고 있는 남 지사 측이 셀프디스 전략으로 힘겨운 현실을 풍자한 것이다.
캠프 관계자는 “남 지사 지지율이 1~2%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워낙 낮아 우리 쪽에선 콘트리트 지지율이라고 부른다.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도 중요하다. 돈을 들이지 않고 ‘웃픈(웃기지만 슬픈)’ 현실을 영상에 담아 재미있게 전달하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남 지사 측은 내부적으로 고민이 깊다는 후문이다. ‘남경필 욕심쟁이’ 등 유머 넘치는 영상들을 내놓고 있지만 화제를 일으키기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도 오르고 싶다, 지지율’ 유튜브 영상의 조회수는 3월 16일 현재 43개에 불과하다.
남 지사 측은 사흘 뒤 페이스북 ‘남경필을 응원해’ 페이지에 같은 영상을 게시했지만 ‘좋아요’ 수는 25개에 그쳤다. 누리꾼들의 댓글도 찾아볼 수 없다. 야권 잠룡들의 SNS 영상에 수백 개의 댓글이 달리는 것과 상반된 모습이다.
남 지사 측근은 “오히려 힘겨운 상황을 즐기자는 의미에서 셀프디스 영상을 만들고 있지만 관심이 낮아 걱정이다. 다른 캠프는 대형 선거 컨설팅 업체와 함께 작업하고 있지만 우리는 소수정예다. 영상을 많이 만들기보다는 창의적인 영상 제작에 집중하고 있다. 앞으로는 남 지사 고유의 콘텐츠를 보여줄 것”이라고 밝혔다.
손학규 국민주권개혁회의 의장 역시 셀프디스 대열에 합류했다. 손 의장은 2월 18일 페이스북에 “젊은 친구들이 이런 걸 만들었네요. 요즘말로 웃프다고 하죠”라는 글과 함께 “인생은 타이밍이다. 눈에서 땀이 ㅠㅠ”라는 제목의 사진을 올렸다.
사진은 ‘손학규가 결단하는 날엔 무언가 터지는 웃픈 현실’이라는 부제와 함께 손 의장을 묘사한 캐릭터가 울고 있는 모습을 담고 있다. 감옥에서 탈옥을 하는 순간 특별사면을 받은 스토리의 영화 <광복절특사>를 패러디한 것이다.
이른바 ‘손학규 징크스’를 빗댄 셀프디스 사진이다. 손학규 징크스는 손 의장이 정치적 승부수를 던질 때마다 대형 이슈가 터지는 상황을 풍자한 키워드다. 2006년 10월 9일 손 의장이 민심 대장정 100일을 마치고 서울로 복귀한 날, 북한은 제1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2010년 10월 손 의장은 MB 정부의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에 맞서 서울역 장외투쟁을 결심했으나 이튿날 북한의 연평도 포격 사건이 일어났다. 전남 강진의 만덕산을 하산해 정계복귀를 선언하자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했다. 심지어 손 의장의 국민의당 입당식 당일인 1월 17일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됐다.
손 의장 측 관계자는 “우리 내부에서도 한동안 손학규 징크스는 금기어였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손 의장이 직접 징크스를 언급하면서 ‘이제는 즐기자’고 했다. 의장이 스스로 마음을 비운 뒤 보좌진들도 편한 분위기에서 즐기기 시작했다. 보좌진들이 함께 밥을 먹다가 우연히 나온 아이디어를 사진에 담았다. 생각보다 많은 관심을 받아 2탄과 3탄을 준비했지만 정무적 판단을 거쳐 공개를 보류했다. 경선 국면에서 악수가 될 수 있다. 손 의장의 딱딱한 이미지를 희석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정반대의 이미지를 터뜨렸을 때 고유의 정체성이 흐려질 수 있어 고민이다”고 설명했다.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도 ‘망가짐’을 불사하고 있다. 최근 유 의원은 개그맨 양세형이 진행하는 모바일 전문 예능 <양세형의 숏터뷰>에 출연했다. 투수 역할을 맡은 양 씨가 타석에 선 유 의원과 승부를 겨루는 모습이 영상의 첫 장면으로 나왔다. 양 씨는 자신의 공을 받아치는 유 의원을 향해 “지지율은 1할도 안 되면서 타율은 10할이네”이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야구광으로 알려진 유 의원이 자신의 지지율 답보 상태를 유쾌하게 풀어낸 셈이다.
유 의원의 최측근은 “대선 주자가 노출할 수 있는 접촉면이 늘어나고 있다. 앞으로도 ‘인간 유승민’을 최대한 어필할 생각이다. 지지율 침체를 겪고 있지만 앞으로 의미 있는 변화들이 일어날 것이다. 황 대행의 대선불출마 선언으로 보수 지지층이 다시 대안을 찾고 있다. 태극기 시위로 대변되는 극보수들은 강하게 의사표현을 하고 있지만 샤이 보수들이 유 의원을 선택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천정배 국민의당 의원은 ‘MC 정배’로 변신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천 의원 측은 ‘내 이름 기억해-MC정배 랩송’이라는 제목의 랩 배틀 영상을 공개했다. 래퍼가 스냅백 모자를 거꾸로 쓴 천 의원을 향해 “실례지만 그대 성함은 뭔지”라며 랩으로 공격하는 모습을 담았다. 천 의원은 “내 이름은 천정배, 아직도 내 이름을 모르다니 섭섭해”라고 바로 응수했다.
천 의원 최측근은 “젊은 층에서 랩배틀이 유명했기 때문에 천 의원이 젊은 층과 소통을 강화하겠다는 측면에서 기획했다. 가사도 의원이 직접 썼다”고 말했다. 하지만 천 의원은 3월 14일 “앞으로 국민의당의 대선 승리, 개혁정부의 창출 및 소외된 호남의 권익 회복을 위해 밀알이 되겠다”며 불출마를 선언했다.
전문가들은 “셀프디스는 권위주의 해체의 단면”이라고 분석했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권위의 해체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이제 대중은 정치인을 ‘선망’의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대중과 ‘공감’하는 정치인이 뜨고 있다. 공감은 옆 사람의 처지를 돌아보는 것인데 공감과 유리된 지도자가 박 전 대통령이었다. 박 전 대통령과 정반대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선거 전략이 흡인력이 강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미지 전문가들은 “셀프디스는 실보다 득이 많은 전략’이라고 했다. 정연아 이미지컨설턴트협회 회장은 “유 의원은 수재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대중은 똑똑한 척하는 대선주자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 반대로 똑똑한 정치인들이 깨지고 망가지면서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면 친근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