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정권 파헤쳐 성난 ‘황소 민심’ 덮나
▲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 직후 봉하마을에서 열린 환영행사에 참석한 모습. | ||
서슬 퍼런 사정 칼날이 구 여권을 정조준하자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적 노림수와 맞물린 의도적 사정 작업이 아니냐는 의혹도 증폭되고 있다. 잇따른 인사파동과 당내 갈등, 물가상승과 쇠고기 전면개방에 따른 민심 이반 등 집권 초부터 총체적 위기상황에 직면한 이 대통령이 여론 환기와 정국 반전을 꾀하기 위한 승부수로 노무현 정권의 치부에 대대적인 메스를 들이대고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공기업 경영진에 대한 사퇴 압박과 맞물려 구 여권을 겨냥한 고강도 사정몰이에 나선 이 대통령과 청와대의 거침없는 사정 드라이브 속으로 들어가 봤다.
청와대가 진두지휘하고 있는 고강도 사정 플랜에는 감사원을 비롯한 국정원 검찰 경찰 등 핵심 사정기관이 모두 참여하고 있다. 청와대 민정팀과 국정원은 공기업과 공공기관 비리 등 구 여권 핵심인사들이 연루된 의혹을 받고 있는 권력형 비리에 대한 전 방위적인 정보 취합에 나서고 있고 감사원은 이들 기관의 경영 실태 등에 대한 대대적인 감사를 진행하고 있다. 또 검·경은 청와대와 국정원, 감사원 등에서 넘겨받은 비리 파일을 토대로 실질적인 사정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청와대를 정점으로 핵심 사정기관이 잘 짜인 각본에 따라 역할을 분담해 고강도 사정몰이에 나서고 있는 듯한 분위기다.
이와 관련, 4월 29일 기자와 만난 국정원의 한 관계자는 “새 정부가 공기업 등 공공기관에 대한 대대적인 경영혁신을 기치로 내걸고 있는 만큼 국정원 내부에서도 공기업 혁신과 관련한 기초 작업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해 새 정부 차원의 사정작업이 은밀히 진행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자신을 ''공기업 파트 담당자''라고 소개한 이 관계자는 “말이 공기업 개혁이지 그 이면에는 과거 정권에서 임명된 공기업 경영진에 대한 사퇴 압박과 함께 구 여권의 권력형 비리를 파헤치기 위한 목적이 내포돼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감사원도 공기업과 공공기관에 대한 대대적인 감찰을 벌이고 있다. 감사원은 지난 3월부터 50여 명의 감찰요원을 투입해 시장형 공기업 31곳과 자회사 52개를 대상으로 전 방위 감사를 실시한 바 있고 현재는 준정부형 공기업에 대한 고강도 감사를 벌이고 있다. 감사 결과 공기업 임직원의 부실경영과 인사전횡 등 갖가지 비리행태가 드러났고 이중 5~6개 공기업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비리사실을 첨부해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기도 했다.
감사원이 검찰에 고발 또는 수사의뢰한 대표적인 공기업은 대한석탄공사, 증권예탁결제원, 한국석유공사 등이다. 특히 일부 공기업 비리와 관련해 구 여권 핵심 실세가 개입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어 검찰의 수사 추이에 따라서는 구 여권 권력형 비리 사건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구여권 핵심 실세로 통했던 A 의원이 연루된 의혹을 받고 있는 석탄공사 부실 대출 사건에 정가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석탄공사의 부도 건설사 특혜 지원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는 4월 25일 석탄공사 본사와 특혜 지원 의혹을 받고 있는 M 건설 등 3~4곳에 대한 압수수색을 동시다발적으로 실시했다. 석탄공사는 부도 직전인 M 건설사에 담보도 없이 1000억 원대의 자금을 지원해줘 특혜 시비와 함께 구 여권 실세였던 A 의원의 개입 의혹을 부추기고 있다.
검찰 관계자들은 강원도 정선 군수 출신인 김원창 석탄공사 사장과 A 의원이 각별한 친분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선 김 사장이 지난해 2월 석탄공사 사장에 발탁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A 의원의 보이지 않은 입김이 작용했을 것이란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검찰은 M 건설 측이 지난해 석탄공사에서 자금을 지원받을 당시 A 의원뿐 아니라 또 다른 구 여권 실세를 대상으로 전방위 로비를 펼친 정황을 잡고 내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 로비 연루의혹을 받는 정상문 전 청와대 비서관. | ||
하지만 이 사건이 참여정부 때 불거졌고 당시 여권 핵심 인사들이 다수 연루된 의혹을 받았던 때문인지 이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는 별다른 진척을 보이지 못했다. 로비를 주도한 핵심 인사로 지목된, 정 씨의 전 사위 이재철 씨, 법무사 출신 권 아무개 씨, 신성해운 이 아무개 씨 등 3명만이 구속됐을 뿐 정 씨나 참여정부 실세 정치인 등에 대한 검찰 수사는 답보상태를 면치 못했던 것.
이처럼 용두사미로 끝나는 듯했던 감세로비 사건은 이명박 정부의 사정 드라이브와 맞물려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이 사건을 수사해온 서울중앙지검은 3월 21일 전담 부서를 조사부에서 권력형 비리 전담 부서인 특수부로 재배당하고 구 여권 정·관계 인사들의 연루 의혹을 규명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참여정부 핵심 실세로 통했던 이광재 통합민주당 의원의 부인을 4월 24일 전격 소환 조사하는가 하면 정 씨와 국세청 전 고위간부들을 상대로 한 수사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검찰은 또 신성해운 측이 2004년 총선 직전에 노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 4명에게 각각 3000만 원을 후원했다는 진술과 함께 당시 정·관계 핵심 인사들을 상대로 전방위 로비를 벌였다는 정황을 포착한 만큼 배후를 규명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검찰 주변에서는 감세로비 사건에 연루된 의혹을 받고 있는 L, S, B, L 의원 등 이른바 '사정 리스트'가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관련, 검찰의 한 관계자는 “감세로비 사건이 본격화되고 있는 만큼 참여정부 핵심 실세들의 줄소환은 불가피하고 권력형 비리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구 여권 인사들을 겨냥한 대대적인 사정태풍이 몰아칠 것”이라고 전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구 여권 비리에 대한 일련의 수사가 퇴임 후 인기몰이에 나서고 있는 노 전 대통령을 겨냥한 의도적 사정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이 대통령이 지난해 대선에서 과반에 가까운 득표율로 당선된 배경에는 '노무현 정권 심판론'이 한몫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노 전 대통령의 주가 상승은 상대적으로 이 대통령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 이러한 배경 때문에 노무현 정권과 구 여권 핵심 실세들을 겨냥한 고강도 사정작업을 펼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것.
여권 주변에서 이 대통령과 청와대가 사정라인을 총가동해 노무현 정권의 또 다른 대형비리를 파헤치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는 것도 이러한 관측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여권의 권력 암투와 대외적인 악재 등 내우외환에 시달리면서 '온라인 탄핵'에 직면한 이 대통령이 노무현 정권의 각종 비리와 실정을 부각시켜 여론을 환기시키는 동시에 정국 반전 카드로 활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부 여권 핵심 관계자들은 '북풍 공작설' '2차 정상회담 대가설' '아프간 피랍인 몸값 지불설' 등 노무현 정권 당시 불거졌던 초대형 의혹 사건을 재조명해 베일에 가려진 노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검은 커넥션과 치부를 파헤쳐 위기정국을 돌파하는 지렛대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대통령과 구 여권 핵심 인사들을 겨냥한 이명박 정부의 고강도 사정 플랜이 언제 어떤 식으로 모습을 드러낼지 또 그 파괴력은 어느 정도일지를 두고 구 여권 주변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