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케네디의 숨겨진 아들이라고 주장하고 나선 사람은 리처드 킬크 크룸미트라는 남자. 190cm의 거구인 그는 오는 7월1일 서른아홉 번째 생일을 맞는 중년의 기능공이다.
미국 버지니아주와 메릴랜드주 사이에 걸친 대서양 연안 체사피크만에 살고 있는 그는 실제 케네디의 생김새와 놀랄 만큼 흡사하게 닮았다. 턱선과 몸매, 신장 등 케네디의 생전 모습을 빼다 박았다고 평가할 정도. 특히 눈과 볼만 보면 동일인이라고 해도 될 만큼 똑같은 모습이다.
과연 그는 ‘비운의 영웅’이자 ‘절세의 호색한’이었던 존 F. 케네디가 이 땅에 뿌리고 간 또 다른 씨앗일까.
▲ 젊은 시절의 존 F. 케네디 대통령. 오른쪽사진은 자신을 케네디 대통령의 아들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리처드 | ||
마리는 케네디의 말년에 공공연하게 ‘대통령의 애인’으로 알려진, 당시 워싱턴 사교계를 주름잡던 유명 여류인사였다. 케네디와는 중고등학교와 하버드대학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던 그녀는 케네디와 사귀던 당시, 헤어진 첫 번째 남편과의 사이에 세 명의 아들을 두고 있었다. 케네디와 마리는 마리가 42세이던 1962년부터 케네디가 암살당하던 1963년 11월까지 지속적인 섹스관계를 가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리처드가 세상에 태어난 것은 케네디가 암살당한 지 8개월 뒤인 1964년 7월1일. 하지만 리처드는 메이어의 자식도, 케네디의 자식도 아닌 제3자의 자식으로 자라나야 했다.
1987년 사망한 리처드의 법적 아버지 레이몬드 킬크 크룸미트는 전화회사의 수석엔지니어였다. 1955년 레이몬드는 제니퍼와 결혼했는데 아내가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병원 판정을 받고 세인트앤가톨릭양육원에서 아이를 입양시키려 했다. 그러나 1958년 제니퍼가 리사라는 여자아이를 낳으면서 이들 부부의 입양은 없던 일이 되었다. 다음은 제니퍼의 말.
“나는 그때 더 이상의 입양에 대한 미련을 버렸어요. 근데 1964년 어느 토요일 아침에 미세스 레일리라는 여자로부터 전화가 왔어요. 그녀는 나에게 아직도 입양을 할 의향이 있느냐고 물었어요.”
제니퍼는 “남편과 상의를 해 봐야겠다”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남편인 레이몬드는 “입양하겠다”고 나섰다. 두 부부와 미세스 레일리라는 여자는 세인트앤가톨릭양육원에서 만났다. 레일리는 털실로 짠 윗도리를 입고 있는 40대 초반의 만삭의 여인이었다. 레이몬드와 제니퍼는 그녀가 레일리가 아니라 사교계의 스타인 마리 메이어라는 사실을 첫눈에 알아 보았다.
마리는 두 부부에게 “아무한테도 나를 보았다는 것을 말하지 말아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그 해 9월 레이몬드 부부는 생후 2개월 된 사내아이인 리처드를 양육원을 통해 자기 자식으로 입양했다. 그런데 입양을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어떤 낯선 여자가 찾아왔다. 갈색머리를 지닌 아름다운 이 여자는 스테이션 왜건을 타고 나타나 “조니(존의 애칭)를 보러 왔다”고 말했다.
당시 상황에 대한 제니퍼의 증언은 이렇다.
“나는 그녀에게 우리 집에는 조니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없다고 말을 했다. 하지만 그녀는 리처드를 보더니 ‘저기 조니가 있네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나에게 리처드의 원래 이름은 존이며 그의 조부모가 대학 등록금을 남겼다고 말을 했다.
충격을 받은 나는 그녀에게 ‘그럴 만한 돈이 있는 가정이 왜 아이는 남의 집에 입양시켰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조니의 입양은 다른 종류의 입양’이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그녀는 ‘시간이 없다’고 나가 버렸다.”
이후 제니퍼는 가톨릭양육원에 리처드의 출생과 관련한 구체적인 사항을 물어보았지만 그들은 “모른다”고만 대답했다.
이들 부부가 더욱 놀란 사건은 리처드를 입양한 지 한 달여 만에 발생했다. 리처드의 생모로 알고 있던 ‘사교계의 여왕’ 마리 메이어가 산책길에 잔인하게 총에 맞아 죽은 채 발견된 것. 그녀가 피살당한 후 레이몬드 집 근처에는 상복 같은 검은 색 옷을 입고 서성이는 사람들이 종종 목격됐다. 그러나 그들은 막상 레이몬드네 사람들이 나타나면 차에 올라 황급히 가 버렸다.
리처드의 양모인 제니퍼는 더 이상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가톨릭양육원에 가서 리처드의 출생관련 서류를 요구했다. 수녀는 서류를 제니퍼에게 보여 주지 않은 채 리처드의 이름 밑에 메이어라는 이름이 적혀 있다는 것만 확인해 주었다.
제니퍼의 주장에 따르면 이때 훔쳐본 리처드의 출생서류에는 그의 본명이 존 피츠제럴드 케네디 주니어로 되어 있었으며, 출생장소는 워싱턴 D.C.의 프로비덴스병원이라고 적혀 있었다고 한다. 제니퍼는 그때 너무 당황스러웠다고 한다. 이미 케네디와 재클린 사이에 적자인 존 F. 케네디 주니어가 태어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리처드는 여섯 살 때 자신의 배다른 형인 존 F. 케네디 주니어를 직접 만난 적이 있다고 한다. 1970년 어느 날 케네디가의 에델 케네디가 보낸 운전기사가 리처드를 찾아왔다고 한다.
이 운전기사는 리처드를 태워서 어딘가를 갔는데, 거기에는 에델과 케네디 주니어 등이 기다리고 있었다. 리처드는 이복형과 말을 타고 놀았는데, 주변에 있던 여자들이 자신을 보며 계속 눈물을 훔쳤다고 한다. 당시까지만 해도 리처드는 그 같은 상황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고 한다.
자신이 케네디의 아들임을 확신하는 리처드는 더 늦기 전에 JFK의 딸인 캐롤라인과 DNA테스트를 받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 그러나 따뜻하지만은 않은 세간의 의심스러운 눈초리들이 부담스러운지 이런 자신의 의도를 곡해하지 말아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나는 거의 돌아버릴 것 같은 혼란 속에서 반평생을 살아왔다. 내가 이러고 나서는 것은 케네디가의 거대한 유산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고 내 부모와 형제가 누구인지를 알고 싶을 뿐이다. 나는 내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형제들이 너무 보고 싶다.”
문암 해외정보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