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본선은 문 vs 안 양자대결’…“샤이보수 잡는다면 승산 있다”
일요신문 DB
지난해 4·13 총선 직전 안철수 국민의당 전 상임공동대표는 더불어민주당이 제안한 야권연대를 거절했다. 당시 민주당은 야권 분열로 인한 새누리당의 총선 압승을 우려하고 있었다.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는 “역사에 죄를 짓는 것이다”며 안 전 대표를 힐난했지만 안 전 대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안 전 대표는 “총선 목표 의석수는 40석”이라고 호언장담했다.
총선 결과 국민의당은 38석을 얻었고, 민주당은 수도권을 휩쓸었다. ‘야권분열=필패’라는 공식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여의도 정가에선 “안스트라다무스(안철수 노스트라다무스의 합성어)의 예언이 적중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안스트라다무스’의 예측은 대선 국면에서도 빛을 발했다. 안 전 대표는 반기문 유엔 전 사무총장의 불출마 선언을 점쳤다. 안 전 대표는 1월 18일 전북 전주 전북도의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설 명절 후 반기문 유엔 전 사무총장이 대선 출마를 포기할 가능성이 많다. 결국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명예를 지키고 싶어 할 것이다. 반 전 총장의 최근 행보를 보면 여러 가지로 애매하다”고 밝혔다.
안 전 대표 예측대로 반 전 총장은 2월 1일 돌연 대권 불출마를 선언했다. 반 전 총장 불출마는 그의 최측근들조차 알지 못했던 깜짝 발표였다. 온라인상에서는 ‘안철수의 5대 예언’이라는 제목의 게시물이 화제를 일으켰다. 총선 국민의당 40석 달성, 반 전 총장의 불출마, 새누리당 분열, ‘문-안’ 양자대결 전망 등이 포함돼 있다.
안 전 대표는 새누리당 분열도 예상했다. 안 전 대표는 지난해 새누리당 공천 파동과 관련해 “새누리당의 강고한 지지층 가운데 개혁적 보수 지지층도 있다. 새누리당이 유승민 의원을 내치면 당이 분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박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뒤 유 의원은 비박계 의원들과 탈당을 결행했다.
누리꾼들이 안 전 대표의 ‘입’을 주목하고 있는 배경이다. 한 누리꾼은 “우연이라고 할 수 없다. 안 전 대표의 마지막 예측은 ‘문-안’ 대결이다. 결국 이것도 그대로 들어맞을 것”이라고 밝혔다. 다른 누리꾼도 “안 전 대표의 별명은 안파고다. 지지율은 더욱 폭발할 것”이라고 했다.
안 전 대표는 반 전 총장의 불출마를 점치면서 “본선은 문 전 대표와 저의 양자 대결일 것”이라고 자신했다. 당시 정치권에선 반-문 양자 구도가 유력한 시나리오로 회자했고 안 전 대표 지지율은 한 자릿수에 불과했다. 민주당 관계자들 사이에 “안 전 대표의 예측은 허무맹랑하다. 안희정 대 문재인의 대결을 잘못 말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퍼지기도 했다.
하지만 대선 정치 지형도는 ‘안스트라다무스’의 예측과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다. 최근 보수의 유일한 대안으로 떠올랐던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보수 진영 유력 주자가 사라진 형국이다. 국민의당 관계자는 “지금 구도를 봐라. 안 전 대표의 예측이 들어맞고 있다. 손학규 국민주권개혁회의의 입당으로 반문 주자들이 국민의당 중심으로 뭉치고 있다. 안 전 대표가 경선에서 이긴다면 문 전 대표와 안 전 대표의 양자대결은 기정사실이다”고 말했다.
제3지대를 포함한 빅텐트 구상의 전망이 밝지 않은 점도 같은 맥락이다. 당초 김종인 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와 정의화 전 국회의장, 손 의장 등 외곽의 대선 주자들은 개헌을 고리로 제3지대론을 구축할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손 의장은 국민의당에 입당했고 일부 주자들이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내면서 제3지대가 동력을 잃었다는 것이 정치권의 중론이다.
채진원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는 “유력 후보가 정당에 이미 전부 들어왔다. 제3지대에서 빅텐트를 칠 수 있는 공간이 좁아졌다. 단일화는 가능하겠지만 빅텐트 안에서 후보를 결정하는 것은 어렵다. 나중에 각 당의 주자들이 각자도생을 하다가 반문연대를 만들 수 있겠지만 제3지대와는 다른 형태가 될 것이다”고 했다.
안 전 대표 지지율도 ‘반등’을 찍었다. 여론조사 전문업체 리얼미터 3월 3주차 주간집계에 따르면 문 전 대표(36.6%)가 우위를 달리는 가운데 안희정 충남지사(15.6%) 안 의원(12.0%) 이재명 성남시장(10.8%), 홍준표 경남지사(9.8%)가 각각 뒤를 이었다. 안 전 대표의 지지율은 2주 연속 상승했다.
(이번 주간집계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불출마 선언 이후인 2017년 3월 15일부터 17일(금)까지 3일간 전국 19세 이상 유권자 2만 3611명에 통화를 시도해 최종 2025명이 응답을 완료, 8.6%의 응답률을 나타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2%p였다. 자세한 조사개요와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http://www.nesdc.go.kr) 참조)
안 전 대표 대권가도의 변수는 홍 지사의 약진이다. 홍 지사는 최근 여론조사에서 마의 10%를 돌파하며 안 전 대표를 추격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의당 한 의원실의 비서는 “홍 지사는 확장성이 없는 후보다. 태극기 지지층이 홍 지사를 중심으로 결집하고 있지만 본선 경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국정 농단의 책임이 있는 정당의 주자에게 누가 표를 주겠나”고 반문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국민의당 중진 의원들 중에 숨죽인 ‘샤이 안철수’가 많다”는 소문도 들리고 있다. 국민의당 관계자는 “안 전 대표가 호남 중진 껴안기 작업에 실패했다는 얘기는 사실이 아니다. 언젠가 모습을 드러낼 ‘샤이 안철수’ 중진들이 꽤 많다. 박지원 대표도 지난 원내대표 선거 때 호남당 이미지를 빼기 위해서 김성식 의원을 찍으라고 하고 다녔다는 얘기도 들었다. 원내에 우군이 압도적으로 많다”고 귀띔했다.
안 전 대표 측도 이러한 ‘샤이 보수’들의 결집에 기대를 걸고 있다. 국민의당 당직자는 “어차피 민주당은 문 전 대표로 정리된다. 하지만 안 지사의 우클릭을 지지했던 중도보수, 즉 샤이보수들은 문 전 대표를 절대로 찍지 않는다. 비문 성향이 강한 이들은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에 대해서도 거부감이 강하다. 결국 이들의 대안은 안 전 대표다. ‘샤이 안철수’들이 점점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 역시 “문-홍-안 본선 가상대결시 중도보수층이 안 전 대표로 결집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채진원 교수는 “침묵하는 보수들이 20~30% 정도 있다. 중도 무당파들은 양 극단에 대한 거부감이 심하다. 안 전 대표가 문 전 대표를 이길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들에게 기대를 걸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총선 때 양당 기득권 프레임으로 공세를 펼쳤던 것처럼 프레임을 정교하게 다시 짠다면 안 전 대표에게도 승산이 있다”고 분석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