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든 아니든…목마른 홈팬은 열광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15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2017 한반도미래포럼 대선주자 특별대담>에서 ‘천하대란, 어떻게 풀 것인가’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일요신문 DB
2012년 10월경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에게 NLL(북방한계선)을 포기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른바 ‘NLL 대화록 논란’은 18대 대선 정국을 강타했다. 박근혜 후보 측과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은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의 안보관 문제를 제기하며 맹공을 폈다. 일각에서는 18대 대선을 “박정희와 노무현의 대결”로 빗대기도 했다.
대선은 박근혜 새누리당 전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 승리로 끝났지만 후유증은 가시지 않았다. NLL 대화록 공개 여부를 두고 국회는 파행을 거듭했다. 국가정보원이 2013년 6월 24일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전문을 공개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도 일어났다. 문 전 대표는 NLL 대화록 논란으로 끊임없이 공세에 시달렸다. 아이러니하게도 참여정부 당시 노 전 대통령 비서실장 출신 문 전 대표의 아킬레스건은 노 전 대통령이었던 셈이다.
본격적인 대선 정국에서 ‘노무현’ 키워드가 다시 거론되고 있다. 2월 28일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자유한국당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과 오찬 회동에서 “지금 민주당 1등 후보는 뇌물 먹고 자살한 대장(노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이다. 바로 옆에 있던 비서실장이 그런 내용도 몰랐다면 감이 아니다. 그 당의 2등 후보는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실형을 선고 받은 사람이다”며 원색적 비난을 쏟아냈다. 홍럼프(홍준표+트럼프)가 노 전 대통령을 보좌한 문 전 대표와 안희정 충남지사를 향해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고용진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막무가내, 제멋대로 홍 지사의 막말과 궤변, 국민을 조롱하는가. 홍 지사가 연일 막말을 쏟아내는 것도 부족한지 별별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고 발끈했다. 노무현 재단 경남지역 위원회는 “막말 책임을 지고 모든 공직을 떠나라. 돌아가신 대통령에 관해 확인되지 않은 허위사실을 말하고 재판 중인 자신의 뇌물비리를 덮고자 하는 작태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지만 홍 지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마이웨이’ 중이다.
자유한국당 당내에서는 “반노 마케팅은 고도의 노림수다”는 평이 나온다. 한국당의 한 보좌관은 “치밀한 전략이다. 문 전 대표를 유력 대선주자가 아닌 단지 노 전 대통령 비서실장에 불과하다고 규정하는 프레임이다. 노 전 대통령 비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프레임을 짜놓고 약간의 팩트와 함께 문 전 대표를 코너로 모는 방식이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미완으로 끝난 것은 사실이지 않나. 문 전 대표 측에서는 상관없다고 하겠지만 노 전 대통령을 이용한 도덕성 공격은 문 전 대표 입장에선 취약한 부분이 있다”고 밝혔다.
반노마케팅이 보수 결집을 이끌어냈다는 해석도 있다. 허성무 정치평론가는 “보수층은 누군가 노 전 대통령을 공격하면 시원한 감정을 느낀다. 야권 입장에선 불쾌하겠지만 홍 지사의 거친 언행이 ‘사이다 발언’ 역할을 하고 있다. 야권에서 공격할수록 홍 지사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다. 문 전 대표를 공격해 보수결집을 이루면서 자신의 존재감도 부각시킬 수 있는 일거양득의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자유한국당 당직자 역시 “황교안 권한대행의 대권 불출마로 보수표가 갈 데가 없다. 홍 지사가 꺼낼 수 없는 얘기를 해주니까 속이 시원하다. 보수층들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공격이라고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홍 지사는 파죽지세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업체 <리얼미터> 3월 3주차 주간집계에 따르면 문 전 대표(36.6%)가 우위를 달리는 가운데 안 지사(15.6%) 안철수 국민의당 의원(12.0%) 이재명 성남시장(10.8%), 홍 지사(9.8%)가 각각 뒤를 이었다. 홍 지사는 2년 4개월 만에 최고치 경신하며 마의 지지율 10%에 성큼 다가섰다. 황 대행의 불출마로 생긴 ‘빈틈’을 홍 지사가 파고드는 모양새다.
(이번 주간집계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불출마 선언 이후인 2017년 3월 15일부터 17일(금)까지 3일간 전국 19세 이상 유권자 2만 3611명에 통화를 시도해 최종 2025명이 응답을 완료, 8.6%의 응답률을 나타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2%p였다. 자세한 조사개요와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http://www.nesdc.go.kr) 참조)
문 전 대표 측은 홍 지사의 반노마케팅에 대해 “신경쓰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문 전 대표 측 관계자는 “보수 결집 효과가 있겠지만 홍 지사는 군소 주자급이다. 노 전 대통령 얘기를 하면 할수록 중도층은 고개를 돌린다. NLL 포기 논란과 홍 지사의 막말은 색깔이 다르다. NLL 포기 논란은 문 전 대표의 안보관 문제와 이어지면서 어느 정도 개연성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홍 지사의 반노 마케팅은 특정 가치와 결부되지 않는다. 영향력이 적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홍 지사는 ‘성완종 리스트’ 사건과 함께 노 전 대통령을 언급해왔다. 그는 최근 ‘성완종 리스트’ 사건으로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검찰이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다. 대법원 판결을 앞둔 홍 지사는 최근 “없는 사실로 또 다시 뒤집어씌우면 노 전 대통령처럼 자살을 검토해보겠다”고 폭탄 발언을 했다. 홍 지사는 이틀 뒤 “노 전 대통령이 신격화돼 있는 것은 자기들(민주당)한테는 그렇겠지만 저는 정치적 반대자일 뿐이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이 의로운 죽음은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허성무 정치평론가는 “포지션상 유리한 측면도 있다. 노 전 대통령을 뇌물을 받은 사람으로 공격해서 자기 결점을 희석하는 전략이다. 홍 지사가 손해볼 일은 없다. 결백을 주장하면서 친노 주자들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리는 것은 영리한 전술이다”고 밝혔다.
물론 자유한국당 당내에서는 “오죽 공격할 것이 없으면 또 노 전 대통령인가”라는 푸념 섞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자유한국당의 한 비서관은 “집토끼를 결집하고 문 전 대표 진영에 붙어있는 지지자들을 떨어져 나가게 하겠다는 전략 같은데…솔직히 뒤집을 수 있겠나. 야권 주자들의 지지율 총합이 과반을 넘어가는 상황이다. 홍 지사가 문 전 대표를 공격할 만한 꺼리가 노 전 대통령밖에 없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귀띔했다.
문제는 ‘확장성’이다. 홍 지사의 반노마케팅이 ‘집토끼’표 결집에는 유리하지만 ‘산토끼’표를 놓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노 전 대통령 이야기는 가장 자극적이다. 언급을 하면 국민들이 일단 쳐다본다. 하지만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통합이다. 반노마케팅으로 반통합적인 행위를 하고 있는 사람을 누가 지지하나. 돈키호테식 대선으로 10%의 지지라도 안정적으로 받아보겠다는 계산이겠지만 그만큼 ‘안티 홍준표’도 늘어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홍 지사 측은 “반노 마케팅은 억측이다”는 입장이다. 홍 지사의 최측근은 “노 전 대통령을 이용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이야기를 의도적으로 꺼내지 않는데 자꾸 항소심에서 무죄를 받는 부분에 대해 출마 자격을 거론하기 때문에 홍 지사가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강조한 것뿐이다. 확장성 부분은 우리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