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자들 ARS 인증번호 수집 등 ‘눈 도장’ 찍기 내부 경쟁 도 넘어
더불어민주당 19대 대통령 후보자 호남권역 선출대회에 참석한 문재인 전 대표가 1위를 차지한 뒤 인사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전북선관위에 따르면 최 아무개 교수 등은 지난 2월 12일 문 전 대표 지지모임인 ‘새로운 전북 포럼 출범식’에 학생 172명을 동원하고 행사 종료 후 식사 및 영화관람 등의 기부행위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학생들은 민주당 경선 ARS 인증번호를 수집해 보낼 것을 요구받기도 했다.
일부 민주당 지역위원회에서도 문 전 대표의 지지를 호소하며 ARS 인증번호를 수집한 사례가 발견됐다.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한 민주당 지역위원장은 제약회사 영업 담당자들에게 인증번호 수집을 요구하는 ‘갑질’을 했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문 전 대표 측은 “캠프와 관련 없는 일부 인사들의 개별적인 행동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자유한국당(한국당)과 국민의당 등은 일제히 문 전 대표를 비판하고 나섰다.
이미 당내 경선에서 크게 앞서고 있는 문 전 대표 진영에서 학생 동원 같은 사건이 발생한 것은 의외라는 반응이다. 현재 문재인 캠프에 참여하고 있는 한 관계자는 이 같은 문제가 발생한 것은 ‘과도한 내부 경쟁 탓’이라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는 “이미 경선에서 크게 앞서고 있는 상황에서 학생 동원 같은 거 안 해도 대세에 아무런 영향이 없다”면서 “문 전 대표나 핵심 캠프 관계자들이 그런 일을 지시할 이유가 전혀 없다. 뭐하러 그런 위험한 짓을 하겠느냐”면서 “지금 문재인 캠프에 합류하면 9287번째라는 농담이 나올 정도로 캠프 조직이 비대해지다보니 내부 경쟁이 치열하다. 일부 캠프 인사들은 경선 승리가 아니라 내부 경쟁에서의 승리가 목표가 되어버린 상황이다. 후보에게 눈도장 찍기 위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문 전 대표가 외연을 크게 확장하면서 대선 이후 치열한 자리다툼이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는데 대선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내부 경쟁이 도를 넘었다는 것이다. 한 민주당 지역위원장은 “(학생 동원 의혹과 관련해) 만약 우리 지역에서 행사를 하는데 객석이 휑하면 뒷말이 나오고 캠프 내에서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무리수를 두게 되는 것”이라며 “(ARS 인증번호 수집과 관련해서는) 경선에서 지역별 득표수가 나온다. 친문 지역위원장의 경우 자기 지역에서 득표수가 적게 나오면 당장 캠프 내에서 지역구 관리를 제대로 못했다는 눈총을 받게 된다. 본선에서 득표수가 적게 나오면 나중에 공천 심사 과정에서 마이너스 요인이 된다. 그러니 그런 방법까지 동원하게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지역위원장은 “사실 선거 때마다 잡음이 반복되는 것은 어느 한 후보만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대선이나 지방선거 등 전국 단위 선거가 있으면 지역위원회는 표를 모으는 하청업체가 되는 것 같다. 문제가 생기면 당이나 후보와는 관련이 없다고 선을 긋고 끝이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실적만 요구하니 문제가 자꾸 생기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문재인 캠프에서만 잡음이 발생한 것은 아니다. 지난 3월 20일에는 안희정 충남지사를 지지하는 청년 1219명의 명단이 발표됐으나 명단에 오른 상당수 인사의 명의가 도용된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됐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시청 소속 공무원들이 불법 선거운동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압수수색을 당하기도 했다.
정치권에서는 문재인 캠프 내부의 과도한 경쟁을 막을 대책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한 전직 국회의원은 “문 전 대표 측이 너무 캠프가 비대해져 향후 자리다툼이 벌어질 수 있다는 비판에 ‘자리를 생각하지 않는 자발적인 지지자들’이라고 답변하더라. 너무 순진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면서 “경선 과정에서 잡음이 나왔는데 본선에서 또 누군가 문제를 일으키면 문 전 대표 도덕성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대통령이 된다 해도 정통성 시비를 겪을 수 있다. 내부 단속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재명 후보 캠프 관계자는 “경선 과정에서 문 전 대표 측 부정행위에 대한 제보가 상당히 많이 접수되고 있다. 우리 지지자들이 굉장히 분노하고 있다”면서 “문 전 대표 측 부정행위 의심 사례는 계속 수집하고 있다. 이 시장이 우리는 한 팀이라고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은 적극적으로 문제제기를 하지 않고 있지만 개선되지 않으면 우리도 문제제기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호남 경선 이후 이 시장의 지지자들은 부정경선 주장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이 시장이 자제를 당부했지만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또 다른 이 시장 측 관계자는 “이렇게 경선이 끝나면 본선에서 우리 지지자들이 문 전 대표를 지지할 수 있겠나. 투표를 아예 포기하거나 심지어 상대 후보를 찍을 수도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 전 대표가 캠프 내부 문제를 너무 안이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앞서의 전직 의원은 “문 전 대표가 도의적 책임은 져야 한다”면서 “만약 대통령이 된 후 측근 비리가 발생해도 개인적인 문제라고 선 긋고 모른 척할 건가. 경선 과정에서 주변인물들이 저지르는 부정도 막지 못하는 후보가 집권 후 측근비리를 막을 수 있겠나”라고 지적했다.
이 전직 의원은 “문 전 대표는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선거법을 위반해 처벌받은 인사를 이번 대선캠프에 재기용하기도 했다. 캠프 내부 부정행위를 부추기는 행위”라며 “이제 문 전 대표는 경선에서 단순히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아름답게 승리하느냐가 중요한 문제가 됐다. 문 전 대표가 캠프 내부를 철저히 단속하고 그런 인사들과는 철저히 선을 긋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