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격탄될까 불발탄될까…“뚜껑 열어봐야”
3월 28일 만기출소한 김경준 씨가 이명박 전 대통령의 BBK 사건 연루를 증명할 ‘스모킹 건’의 존재를 주장하고 나섰다.
“결국 김경준의 입에 달렸다.”
이는 3월 28일 오전 만기 출소하는 김경준 씨를 면담하기 위해 청주외국인보호소로 향하던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던진 말이다. 박 의원은 BBK사건 재수사 가능성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앞서의 말을 전하며 “반드시 규명되어야 한다”라고 강한 의지를 밝혔다. 박 의원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BBK 사건 연루 의혹을 제기하다 허위사실공표죄로 실형을 살다 나온 정봉주 전 의원의 변호인이었다. 그는 이를 계기로 사건에 관심을 갖고 오랜 기간 추적해 왔다.
김경준 씨는 이날 오전 천안교도소에서 만기 출소했다. 2007년 11월 BBK 사건과 관련해 300억 원 대 회삿돈 횡령, 옵셔널벤처스 주가조작, 사문서 위조, 공직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된 김 씨는 2009년 5월 징역 8년(이 중 1년은 공직선거법 위반) 및 벌금 100억 원 형이 확정되면서 오랜 수감 생활을 이어갔다. 2015년 11월, 형이 만료된 김 씨는 벌금을 내지 못해 노역으로 1년 넘게 수감 생활을 이어간 끝에 이날 겨우 자유의 몸이 됐다.
김 씨는 이날 출소 뒤 청주외국인보호소로 신변이 인계됐으며 다음날 미국으로 추방됐다. 출입국관리법 46조는 5년 이상 징역 또는 금고의 형을 선고받고 석방된 자는 강제 퇴거될 수 있다. 본인 역시 미국에 있는 가족들을 만나고 싶다는 뜻이 강했다.
하지만 김 씨는 출국 직전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의 면담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했다. 박 의원이 면담 후 밝힌 김 씨의 입장은 대략 이러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당시 주가 조작은 유죄다. 이 전 대통령은 5:5 지분으로 이에 관여했고, 결정적 증거가 있다 ▲사건 수사 당시 검찰로부터 가족에 대한 협박을 받았고 ‘형 집행순서 변경’을 조건으로 회유를 받았지만 검찰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진상규명을 위해 직접 나설 것이며 조만간 언론 인터뷰 계획이 있다 ▲(차기 정부는) 정권 교체 후 진상규명을 위해 한국에 올 수 있도록 법적 조치를 해달라 등이다.
김 씨는 자신이 보유했다고 하는 ‘스모킹 건’을 직접 거론하며 거센 후폭풍을 예고하고 있는 상황이다. 2007년 한나라당 당내 경선 당시 박근혜 후보 측이 처음 제기한 이명박 전 대통령의 BBK 실소유주 및 주가조작 가담 의혹은 당시 대선 국면에서 야권의 파상 공세로 이어졌다. 하지만 2007년 12월 검찰은 ‘증거 부족’을 이유로 이 전 대통령에 대해 ‘혐의 없음’ 처분을 내렸고, 이듬해 2월까지 진행된 특검 역시 아무런 성과 없이 검찰의 수사 결과를 되풀이했다. 결정적 자료 중 하나였던 ‘광운대 강연’에서의 발언 역시 나경원 의원의 ‘주어가 없다’는 역대급 명언만 남기며 덮어졌다.
김 씨의 출소와 함께 정계는 다시금 분주해졌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와 여기서 비롯된 ‘몸통’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전격 구속이란 대사건 탓에 아직 불이 붙지 못하고 있는 모양새지만 점차 BBK 사건에 대한 재수사 가능성이 정계를 중심으로 공론화되고 있다. 어쩌면 차기 정권의 기획으로 이 전 대통령의 연루 의혹을 중심으로 한 BBK 사건의 재수사 가능성에 힘이 실릴 수도 있는 노릇이다.
바른정당 대선후보 유승민 의원(왼쪽)이 3월 30일 오후 서울 강남구 이명박 전 대통령 사무실을 방문, 이 전 대통령과 함께 환담장으로 향하고 있다. 유 의원은 2007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 측의 정책총괄단장을 맡아 BBK 의혹을 여러차례 제기했다.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현실론의 목소리도 이어지고 있다. 가장 먼저 거론되는 문제는 김경준 씨와 본인이 갖고 있다는 ‘스모킹 건’에 대한 신뢰 문제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김경준의 주장이 사실인지가 관건이다”라면서 “김 씨와 이명박 전 대통령 모두 거짓말을 했다고 본다. 만약 김 씨가 확실한 증거를 갖고 있었더라면 진작 폭로했을 것이다. 만약 훗날 검찰이 김 씨의 주장만 듣고 수사에 나선다면 정치적 파장은 무척 클 것”이라고 우려했다.
가상준 단국대 교수 역시 “김경준이 주장하는 증거가 뭔지 현재는 아무도 모른다”라며 “증거가 얼마나 논리적인지 봐야겠지만, 현재 향후 수사 가능성을 판단하는 것은 앞서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현실적 어려움 탓에 전략적 접근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거론된다. 정봉주 전 의원은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BBK 수사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이 전 대통령과 BBK는 공식이다. 하지만 이는 이 전 대통령의 취임 전 개인비리다. 특검 수사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제한 뒤 “그것보단 4대강 권력형 비리 수사를 통해 이면에 있는 BBK 사건에 접근하는 식으로 해야 한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한편 친이계 핵심 정두언 전 의원은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이미 세 번 수사하고 끝난 일이다. 더 이상 수사할 수는 없다”라며 “김경준의 말은 모두 거짓이다. 같은 사건을 여러 번 수사하는 것은 의미 없다”고 재수사 가능성을 일축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