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보 나와도 ‘아몰랑’…창립 기념일은 썰렁
미전실을 해체하면서 삼성 홍보조직에는 혼란이 생겼다. 지난 3월 19일 한 종합편성채널이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의 동생인 홍석현 전 중앙일보 회장을 홍 전 관장의 오빠라고 보도하는 오보를 냈다. 삼성의 기사 수정 요청이 없어 보도 열흘이 넘었음에도 기사는 수정되지 않고 있다. 미전실 출신 삼성 직원은 “대응할 주체도 명확하지 않고 계열사 간 자료 취합도 하지 않아 자기 계열사와 관련한 이슈가 아니면 언론 대응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며 “너무할 정도로 악의적인 보도가 나와 삼성전자 뉴스룸에 해명자료를 올려놓은 적은 있지만 그것도 직접적인 대응이 아니라 해명자료 하나 올려놓고 끝이었다”고 전했다.
삼성그룹의 공식 홈페이지와 블로그는 4월 3일 폐쇄된다. 삼성그룹의 사내방송사 SBC도 3월 2일을 마지막으로 방송을 중단했다. 대신 계열사별로 자체 제작 방송만 한다. 지난 3월 22일은 삼성 창립 79주년이었지만 삼성 계열사 사내방송 어디에서도 삼성그룹 창립과 관련한 내용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동안 창립기념일에는 특집방송 등을 통해 내부에서 기념해왔던 것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그룹 차원의 홍보 채널은 사라졌지만 앞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오너 일가와 관련한 소식은 삼성전자에서 맡을 것으로 보인다. 앞의 미전실 출신 직원은 “지금은 그룹이나 오너 일가와 관련한 이슈가 발생하면 계열사끼리 서로 눈치 보며 미루는 분위기가 강하다”며 “현재 이 부회장과 관련해서는 삼성전자로 복귀한 미전실 출신 홍보 직원들이 재판 관련 문의만 받고 있지만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 소속이니만큼 앞으로 그와 관련한 새로운 이슈는 삼성전자가 맡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삼성은 미전실을 해체하면서 대관업무 조직의 해체도 선언했다. 하지만 미전실 산하 대관조직만 해체하고 각 계열사의 대관조직은 유지하고 있다. 미전실 대관조직 역시 삼성전자에 모일 가능성이 높다. 비록 미전실을 해체했지만 그 기능이 삼성전자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이는 삼성그룹이 미전실을 해체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이후 재계에서 예상됐던 바이기도 하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미전실 산하의 대관조직만 해체하겠단 것이지 계열사의 대관조직까지 해체하겠다는 건 아니었다”며 “삼성전자뿐 아니라 모든 계열사가 공정거래위원회 같은 정부기관과 컨택포인트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서울 강남구 서초동에 위치한 삼성전자 사옥. 박정훈 기자 onepark@ilyo.co.kr
미전실 해체 후 삼성 사장단이 한 자리에 모인 적은 한 번도 없다. 2008년 7월 미전실의 전신인 전략기획실이 해체된 이후에는 사장단협의회가 가동됐다. 사장단협의회는 산하에 ‘브랜드관리위원회’와 ‘투자조정위원회’ 등을 두고 그룹 전반의 주요 현안을 논의했다. 하지만 미전실 해체와 동시에 사장단협의회마저 해체돼 계열사 간 교류할 수 있는 자리 자체가 없어진 것이다.
사장단회의 폐지와 계열사별 자율경영체제는 삼성물산, 삼성엔지니어링, 삼성중공업 등 재무 사정이 좋지 않은 건설중공업 계열사들에는 악재일 수 있다. 지난해 삼성 계열사들과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등 계열사 지원에 나섰다. 하지만 완전한 자율경영체제로 변화하면 예전과 같은 지원을 기대하기 어렵다. 삼성 건설중공업 계열사 관계자는 “미전실 해체가 당장 회사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면서도 “이제는 자사 실적이 우선이라 타 계열사가 우리를 얼마나 도와줄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구속수감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3월 18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 박영수 특별검사팀 사무실에 소환조사를 받기 위해 출두하고 있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삼성전자가 지주회사로 전환해 이 부회장의 지배력이 커지면 사장단협의회가 없어도 지주회사를 통한 계열사 관리가 가능하다. 그렇지만 지난 3월 24일,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은 삼성서초타운에서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지주회사 전환은 지금 실행이 쉽지 않아 보인다”고 밝혀 당분간 지주회사 전환이 어렵다는 뜻을 전했다.
장기적으로는 삼성전자가 그룹의 컨트롤타워가 될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재계 관계자는 “미전실 출신 직원들은 대부분 삼성전자 출신이며 삼성전자로 복귀한 후에도 소속만 바뀌었을 뿐, 이전 보직과 완전히 다른 보직을 맡은 직원을 찾기 힘들다”며 “언젠가 지주회사 전환이 된다고 봤을 때 미전실 출신 직원들을 중심으로 삼성전자 내부에 미전실과 유사한 조직이 생길 수 있다”고 전했다.
한편 미전실 출신 임원들의 보직 배치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미전실 해체 이후 실무자급 직원 200여 명은 원래 소속이던 계열사로 복귀해 맡은 보직을 이행하고 있다. 하지만 임원 50여 명은 계열사로 소속을 옮겼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보직을 받지 못해 대기하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 이후 대규모 사장단·임원 인사 대신 필요에 따라 수시로 인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전실에서 근무했던 한 임원은 “소속은 바뀌었지만 보직을 받지 못해 일 없이 앉아 있다”며 “보직과 임무를 받기야 하겠지만 그 때가 언제일지 지금은 정해진 게 없다”고 전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