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채널 없어? 청와대 리모컨만 만지작
얼마 전 친박(친 박근혜 전 대표) 진영의 한 인사는 오는 7월 3일로 예정된 당 최고위원 선거에 친박 인사들이 출마하기는 어렵지 않겠느냐며 이같이 그 배경을 설명했다. 비록 당외 친박 의원들의 복당 문제 타결을 전제로 한 것이긴 하지만 당 대표 경선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의중을 밝혔던 박 전 대표가 불필요한 ‘오해’를 낳지 않도록 친박 의원들의 ‘자중’을 당부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5월 31일 현재 당 안팎에서 돌고 있는 관측을 종합해 보면 7월 최고위원 선거는 박희태 전 국회부의장, 정몽준 최고위원, 공성진, 김성조, 허태열, 박순자, 진영 의원 등이 출마를 검토하거나 이미 실질적 선거운동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가운데 허태열 의원은 지난해 경선 당시 박근혜 캠프의 직능부문을 총괄했고 김성조 의원은 국민참여를 담당했다. 박 전 대표의 지침이 적용되는 대상인 셈이다. 이들 두 의원과 더불어 진영 의원도 친박계 인사로 분류된다. 다만 진영 의원은 지난해 경선캠프에서 보직을 맡지 않았기에 박 전 대표의 ‘불출마 지침’에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해석이 나온다. 박순자 의원은 친이(친 이명박 대통령) 직계 의원으로 분류되고 공성진 의원은 친이계 중에서도 이재오 전 최고위원의 ‘대리인’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이 가운데 박희태 전 부의장과 정 최고위원이 사실상 당 대표 자리를 다툴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며 나머지 세 자리를 놓고 ‘마이너리그’가 펼쳐질 전망이다. 9000∼1만 명 수준으로 추산되는 대의원 선거인단이 1인 2표제로 선거를 하게 되는데 1등이 당 대표를 맡게 되고 2∼5위까지가 최고위원이 된다. 단, 여성 후보가 5위 안에 못 들어갈 경우, 이 여성 후보를 5등으로 간주해 최고위원직을 주게 되고 대신 ‘진짜 5등’을 차지한 남성위원은 6위로 밀리면서 최고위원직 도전에 실패하게 된다. 또 다른 여성 도전자가 없다면 사실상 박순자 의원은 최고위원이 확정적이라는 의미다.
지금까지의 판세를 분석해보면 박희태 전 부의장이 ‘대세론’을 등에 업고 우세를 점하고 있는 가운데 정 최고위원이 추격전을 벌이는 양상이다. 박 전 부의장은 원외 인사라는 결정적 핸디캡에도 불구, 당내 계파 화합의 적임자이면서 당 대표를 맡겨도 ‘다른 생각’을 하지 않을 인사라는 점에서 이상득계 등 친이 주류 측에서 후원을 하는 분위기다.
‘경쟁자’인 정 최고위원의 경우 당내 기반이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최고위원 선출시 30%가 반영되는 여론조사에서 타 후보를 압도하고 있으며, 호남·충청권을 중심으로 ‘바람’이 불고 있어 의외의 결과를 연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평이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한나라당 차기 대표는 결국 이들 두 사람 중에서 나오는 걸까. 물론 변수는 아직 남아 있다. 만일 7월 전당대회 이전 친박계 인사들의 복당이 이뤄질 경우, 서청원·홍사덕·김무성 의원 등 ‘당 대표’가 될 만한 관록의 인물들이 어떤 행보를 보이느냐가 관심거리다. 다만 현재로선 서청원·홍사덕 의원은 선별복당에서 후순위로 밀릴 가능성이 높으며, 김무성 의원은 본인 스스로 ‘복당시 백의종군’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는 점이 이들의 불출마를 점치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 지난 13일 한미FTA 청문회장에서 박희태 전 부의장과 안상수 정몽준 의원(왼쪽부터). | ||
덧붙여 박근혜 전 대표의 출마 여부도 끝까지 장담할 수 없는 주요 변수로 남을 것 같다. 여권 일각에선 쇠고기 재협상 논란 등이 가라앉지 않고 그 결과 민심이반 현상이 가속화할 경우 청와대가 결국 ‘국면 돌파용 카드’로 박 전 대표에게 손을 내밀 가능성도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정반대로 일부에선 지지부진한 복당 문제로 여권 핵심부에 실망한 박 전 대표가 전격적으로 출마 문제를 고려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 경우 측근들에 대한 ‘불출마 지침’ 또한 뒤집힐 수 있다. 향후 복당 문제가 얼마나 매끄럽게 매듭지어지느냐에 따라 박 전 대표의 행보가 달라질 것이라는 의미다.
마지막 변수는 국회의장 선거다. 현재 김형오 의원과 안상수 의원이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별 이변이 없는 한 김형오 의원이 무난하게 승리를 거둘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이 경우 안상수 의원의 ‘향후 행보’가 관심이다.
안상수 의원은 다선 의원이고 주요 보직을 두루 맡았음에도 당내 지지기반은 생각보다 견고하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반면 청와대 입장에서 보면 박희태 전 부의장, 정몽준 최고위원보다는 당과 청와대의 ‘가교 역할’을 더 원활하게 수행할 만한 인물이 바로 안 의원이다. 그래서 나오는 것이 청와대가 안 의원이 국회의장 경선에서 떨어질 경우 그를 당 대표 쪽으로 돌리지 않겠느냐는 시나리오다. 이 경우 “의장 경선에서 떨어진 인사를 어떻게 당 대표에 내보내냐”는 비판이 일 수 있다. 그러나 어차피 공천에서 탈락한 박 전 부의장이나, 입당한 지 채 1년도 안 된 정 최고위원이나 청와대 입장에서 보면 선뜻 당 대표에 앉히기 부담스런 인물들이다.
이와 관련, 지난 5월 29일 안상수 의원은 원내대표 퇴임 기자회견에서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의장(경선)에서 떨어진 사람이 당 대표에 나갈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의장 선거에서 낙선한 사람이 당 대표에 나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그런 문제는 본인이 선택할 사항 아니냐”고 답한 것. 또 “만일 안 의원의 경우라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을 던지자 “가정해서 얘기할 수는 없고, 제가 이긴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그런 점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고 답했다. 안 의원의 대답 그 어느 곳에도 ‘의장 선거 낙선 후 당 대표는 나가지 않겠다’고 못을 박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안 의원은 앞서 밝힌 대로 당내 지지층이 두텁지 않다는 점이 고민스런 부분이다. 만약 국회의장 선거에서 떨어진 뒤, 청와대의 ‘점지’를 받고 당 대표 경선에 나섰는데 여기서도 떨어진다면 개인은 물론 청와대로서도 체면을 완전히 구기는 ‘촌극’이 벌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결국 청와대로서는 박희태, 정몽준 등 몇 안 되는 카드를 놓고 전략적 고민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들 후보들이 꼭 마음에 들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다른 대안이 있지도 않다는 점에서 청와대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