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잡하고 속 보이는 깎아내리기 판친다
▲ 최근 청와대 인적쇄신을 앞두고 여의도에서는 정부 요직의 중용 대상이 되는 인물들을 깎아내리려는 온갖 소문이 돌고 있어 권력의 중심부에 들어가는 것이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
통상 청와대 인사문제에 대해 구체적 실명을 거론하지 않는 여당 고위 인사가 이처럼 ‘구체적으로’ 새 참모진 명단을 말해주자 현장에 있던 각사 기자들이 놀라움 속에 긴급히 소속사에 보고를 띄운 것이다.
그러나 이 소식을 청와대 측에도 문의한 기자들에게 돌아온 것은 “근거 없는 추측”이라는 실망스러운 답변이었다. 기자들이 다시 홍 원내대표에게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묻자 홍 원내대표는 “시중 소문을 전달한 것일 뿐”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홍 원내대표가 ‘소문’에 불과한 내용들을 거리낌 없이 기자들에게 전달한 이유는 뭘까. 해석이 분분하지만 특정 인물을 민정 수석에 천거하기 위해 기자들에게 여론을 떠본 것이라는 관측이 상대적으로 힘을 얻고 있다. 구체적으로 ‘광주 고향, 경기고-서울대 졸업, 강력부 근무경력’이라는 힌트를 줘서 기자들이 해당 인물을 찾아내게 한 뒤 이를 기사화하게끔 유도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여의도 일각에서는 문제의 인물이 정 아무개 검사라는 쪽으로 결론이 난 상태다. 지난 92년 서울지검 강력부에서 홍 원내대표와 근무했고 대검 마약과장을 지내는 등 ‘깡패 때려잡는 검사’로 이름을 날렸기 때문이다.
최근 여의도에서는 청와대 참모진 개편과 장관 경질을 앞두고 온갖 소문과 설(說)들이 횡행하고 있다. 앞서 말한 홍 원내대표 케이스는 자기와 인연 있는 사람을 부각시키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포지티브’한 사례로 보여 차라리 애교스럽기까지 하다. 반대로 상대방을 깎아내리려는 의도가 보이는 마타도어도 끊이지 않아 문제가 커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여권 중진 출신 A 씨를 둘러싼 소문. 여권 일각에선 그를 두고 정부 요직 중용이 예상됐으나 영남권-고려대 출신이라는 이유로 인선에서 제외됐다는 말들이 나돌았다. 한 발 더 나아가 A 씨가 뇌물을 받은 정황이 포착됐다는 괴소문도 떠돌았다. A 씨로서는 화도 나고 답답하기 그지없는 노릇이었다.
여권에서 청와대 수석급 후보군 중 하나로 거론되는 B 씨를 둘러싸고도 악성루머가 끊이지 않는다. “사귀는 여성이 한둘이 아니다” “자기 지역구에서 몰래 데이트를 즐기다 유권자들에게 발각됐다”는 식의 소문이 의원회관 주변에서 돌고 있다. 이는 B 씨가 재혼이라는 점을 확대재생산, 발목을 잡으려는 상대 측의 악의적 의도가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에서도 처음에는 B 씨와 관련한 소문을 심각하게 받아들였으나 사실 관계 확인 후 오해가 풀렸다는 전언이다.
모 부처 장관 후보로 거론되는 C 씨의 경우 “언론인들이 알고 있는 것과 달리, 튀지 못해 안달이 났다”는 식의 말을 여권 모 인사가 기자들에게 퍼뜨리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 인사는 이를 근거로 “결코 C 씨가 입각하는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다”며 험담을 쏟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입성 가능성이 점쳐지는 D 씨의 경우 ‘고교, 대학 중퇴임에도 학력을 속이고 있다’는 마타도어에 시달리고 있다. 소문의 근원지로는 과거 D 씨 때문에 총선 공천에서 탈락해 구원을 가진 정치권 모 인사가 지목된다. 친이계인 E 씨에 대해서도 ‘이중 플레이를 일삼다 결국 유력 중진 정치인으로부터 단단히 찍혔다’는 소문이 그치지 않았다. 여기에 F 씨의 경우 ‘부인이 범죄 혐의로 검찰에 내사를 받고 있어 요직 진출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소문에 시달리고 있다.
정치권에서 이처럼 검증되지 않은 갖가지 설과 얘기들이 오가는 것은 결국 그 배경에 누군가의 ‘자기 사람 심기’와 ‘상대방 견제’라는 포석이 동시에 깔려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괴소문’이나 ‘설’의 위력은 때로 엄청난 듯 보이지만 인사 검증과정에서 진상이 드러나고 자연스럽게 소멸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게 여권 관계자의 얘기다.
이 관계자는 “인사의 계절마다 여의도에선 설과 소문의 잔치가 벌어진다. 요즘처럼 정국이 어수선한 시기엔 더욱 그렇다. 그런데 다른 정치인에 대해 험담을 자주 늘어놓는 정치인들은 결국 그 부메랑을 자신이 맞더라. 안 좋은 소문을 퍼뜨린 ‘원죄’ 때문인지 본인도 남들 입에 자주 오르내리게 되는 것이다. 그런 걸 보면 세상인심이 역시 마음먹은 대로 호락호락하게 움직이지는 않는 모양이다”라고 말했다.
이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