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소자 전재용 ‘청소노역중’ 전무 이시형 ‘다스 근무중’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전 대통령에게는 친자녀가 없었다. 이 전 대통령은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와의 사이에 자녀가 없었고, 전처와의 사이에 아들 한 명을 두었지만 병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4·19혁명으로 이 전 대통령이 하야한 뒤 의원내각제를 실시하면서 윤보선 전 대통령이 취임했지만 5·16 쿠데타로 그 임기는 1년 남짓으로 끝났다. 윤 전 대통령은 이후 야당 지도자로 나서 독재 정권에 맞섰다.
윤 전 대통령의 장남인 윤상구 씨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독재정권에 맞서 싸우시니 경찰이나 정보부 사람들이 안팎으로 우리 집을 감시했다”며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윤 씨는 미국에서 사춘기를 보내며 자연스럽게 정치에 대한 관심이 멀어졌다. 윤 씨는 미국에서 건축학을 공부하며 대학시절을 보냈고, 지난 1983년 귀국해 건축자재 수입회사를 차렸다.
차남인 윤동구 씨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조형예술과 교수로 지내고 있었다. 지난 2000년대 초반 삼청동에서 피자집을 운영해 방문객들의 입소문을 타기도 했지만 지금은 다른 사람이 운영을 하고 있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자녀들은 단연 돋보였다. 장녀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오랜 시간 정치 생활을 하며 인기를 얻었고, 대한민국 첫 여성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차남인 박지만 씨는 산화철 제조전문업체인 EG를 운영하고 있으며, 차녀 박근령 씨도 육영재단 이사장의 이력을 갖고 있다.
육영재단을 둘러싸고 삼남매의 갈등이 세상에 드러나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 1982년 육영재단의 이사장을 맡았고, 이때 최태민 씨가 재단 고문을 맡았다. 최 씨가 측근을 요직에 앉혀 재단 운영을 조종한다는 불만이 나왔고, 결국 지만, 근령 씨의 항의로 박 전 대통령은 이사장에서 물러났다. 이때 박 전 대통령은 근령 씨와 연을 끊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에도 재단 운영권을 두고 지만, 근령 씨의 갈등이 깊어졌고 폭행, 통장 가압류 등 수십 건의 소송이 진행됐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남매의 거취에도 이목이 집중됐다. 박지만 씨 부부는 박 전 대통령이 구속되기 전 자택에 방문해 짧은 만남을 가졌다. 박 전 대통령이 구속된 뒤 지만 씨 부인인 서향희 변호사가 접견 신청을 하고 영치금을 내기도 했다. 박근령 씨는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이 인용됐을 때 억울한 입장을 밝혔으며 태극기 집회에 참여하기도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살해된 후 총리였던 최규하 전 대통령이 대통령으로 선출되지만 신군부의 압력으로 8개월 만에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최 전 대통령의 자녀들은 서울시가 매입한 최 전 대통령 가옥을 종종 찾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 전 대통령이 건축하고 거주했던 가옥은 지난 2009년부터 시민들에게 개방됐고 자원봉사자가 전시 해설을 담당하고 있다.
최 전 대통령의 장남 최윤홍 씨는 해설을 맡는 자원봉사자들에게 대통령 일가의 생활, 아들의 입장에서 바라본 아버지로서의 최 전 대통령을 주제로 한 강연을 하기도 했다. 가옥에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살던 차녀 영혜 씨가 부친인 최 전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도 전시돼 있었다.
최규하 전 대통령 가옥에 전시돼 있는 차녀 영혜 씨가 보낸 편지.
최 전 대통령의 차남인 최종석 씨는 지난 2011년 ‘대통령 자제임에도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의리를 중시해 따르는 직원이 많다’는 평을 받으며 한국투자공사 사장에 임명됐다. 그러나 지난 2015년 참여연대는 최종석 전 사장을 비롯한 전직 한국투자공사 임원들을 “재직 당시 위탁자산운용 규정을 위반하고 직접투자를 강행해 공사에 손해를 끼쳤다”며 검찰에 고발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는 아들인 재국, 재용 씨와 딸 효선 씨가 있다. 전효선 씨는 지난 2011년 서경대학교에서 학생 20명에게 교양영어를 가르치다가 예습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결석 처리해 반발을 샀다. 또 법학과를 졸업했으면서 영어를 가르쳤고, 당시 서경대 총장이 전 전 대통령의 후배라는 것이 알려져 편법 임용 의혹에 휩싸였다.
장남 전재국 씨는 시공사 대표로 있다. 얼마 전 출간한 전 전 대통령 부부의 자서전 역시 재국 씨가 소유한 자작나무숲에서 발행했다. 또 언론보도로 재국 씨가 지난 2004년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는 재국 씨가 부친의 미납 추징금 1672억 원에 대한 자진납부 계획을 발표하고 이행각서를 제출하기 훨씬 전의 일이다.
차남 전재용 씨는 탈세 혐의로 대법원까지 재판을 거쳐 벌금 40억 원이 확정됐다. 재용 씨가 벌금을 납부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고, 벌금 미납분인 38억 6000만 원을 해결하기 전까지 수감 생활을 이행하고 있다. 재용 씨의 하루 노역은 400만 원으로 환산돼 2년 8개월 동안 수감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결정이 났다.
재용 씨는 지난해 장기 노역장이 있는 원주교도소로 이감돼 수감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재용 씨는 봉투 접기와 취사 지원 등의 노역으로 하루에 400만 원을 받는다고 알려져 황제노역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교도소 측은 “교도소 내에서 봉투를 전혀 생산하지 않으며, 재용 씨는 교도소 내 쓰레기 등을 치우고 청소하는 노역으로 하루를 보낸다”고 밝혔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녀인 소영 씨는 아트센터 나비의 관장을 맡고 있다. 지난 1988년 최태원 SK 회장과 시카고 유학 시절 만나 결혼했지만 지난해 최 회장이 혼외자가 있다고 고백하면서 이혼 의사를 밝혔다. 최 회장은 “사업가 집안 출신인 자신과 장군의 딸인 노 관장이 성장배경, 성격, 문화, 종교 차이로 결혼 초부터 갈등을 많이 겪었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 2015년 11월 국회의사당 앞마당에서 열린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영결식에는 고인의 5남매가 모두 자리했다. 김 전 대통령의 부인 손명순 여사 옆으로 장녀 혜영, 차녀 혜경, 장남 은철, 차남 현철, 삼녀 혜숙 씨 등이 앉은 것. 김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 씨를 제외하면 매스컴을 통해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이다.
장남 김은철 씨는 오랜 기간 미국에서 사업을 하다 귀국해 국내에 거주하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의 빈소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는데 거동이 불편할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아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임종은 지켰으며 영결식에도 참석했다. 정계에 입문해 매스컴에 자주 오르내린 차남 현철 씨와 달리 장남 은철 씨의 존재가 거의 알려지지 않은 까닭은 평소 가족들에게 “권력 주변에 기웃거리지 마라”며 철저하게 관리를 해왔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세 딸 역시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이다. 모두 장기간 미국 생활을 해왔기 때문인데 김 전 대통령이 정권의 탄압을 피해 세 자매를 미국에 거주하도록 했다. 김 전 대통령의 측근들에 따르면 고인이 평소 세 딸에 대한 애정이 매우 각별했다고 한다.
유일하게 정계에 입문해 세간에 잘 알려진 차남 현철 씨도 미국 유학을 떠났었지만 귀국해서 쌍용증권에서 근무했다. 87년 대선 당시 김 전 대통령의 대선 선거운동을 도우며 정계에 입문해 92년 대선에서 선거 전략 등을 총괄했다. 김 전 대통령 재임 시절 ‘소통령’이라 불리기도 했던 현철 씨는 정권 말 한보비리에 연루돼 구속됐다. 이후 몇 차례 국회의원 선거 출마를 준비하기도 했지만 현재는 국민대 특임교수와 김영삼민주센터 이사를 맡고 있다. 최근에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후보로부터 영입 제안을 받아 눈길을 끌기도 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남인 김홍일 전 의원은 현재 파킨슨병을 앓고 있다. 걷는 게 불편해 휠체어를 타고 다니며 대화가 어려울 정도의 언어장애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2009년 김 전 대통령 서거 당시 병마가 짙게 드리워진 수척한 모습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차남 김홍업 전 의원은 지난해 서거 7주기 추도식을 주도하는 등 장남을 대신해 유족 대표의 역할을 맡고 있다.
요즘 매스컴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이는 삼남 김홍걸 씨다.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선대위에 합류하며 정치 일선에 뛰어들었다. 특히 지난해 1월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하면서 총선 출마설이 제기돼 눈길을 끌기도 했다. 그렇지만 불출마를 선언했고 현재는 더불어민주당 국민통합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 트위터에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에 대해 비판의 글을 연일 올리고 있다. 지난 4일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문재인 전 대표와 추미애 당 대표 등 지도부가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을 찾아 참배할 당시에도 김홍걸 국민통합위원장이 함께했다.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들은 연이어 각종 비리에 연루됐고 이로 인해 사법 처벌을 받으며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바 있다. 이런 논란은 노무현, 이명박 대통령의 자녀들에게도 이어졌지만 수사 과정에서 혐의가 입증되진 않았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아들인 노건호 씨는 지난 2009년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됐다. 박연차 태광실업 전 회장의 해외비자금원으로 알려진 홍콩 현지법인 APC계좌에서 노 씨에게 500만 달러가 흘러들어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 이때 노 씨는 “해외에서 어떻게 사업에 성공하는지 배우기 위해 박 회장을 찾아갔다”고 해명했다. 노 씨는 지난 2013년 다니던 LG전자를 퇴사해 베이징대학교에서 국제경제학 박사과정을 공부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아들 이시형 씨는 내곡동 부지를 매입할 때 대통령실과 함께 구입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내곡동 부지를 매입하면서 자신이 내야 할 부담액 일부를 대통령실에 떠넘겨 국가에 8억여 원의 손해를 입힌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지만 무혐의 처분됐다. 현재 이 씨는 이 전 대통령이 실소유자라는 논란에 휩싸여 있는 다스의 전무로 근무하고 있었다.
최영지 기자 yjchoi@ilyo.co.kr
‘서울대 부정 편입 논란’ 이승만 양자 이강석은 ‘50년대판 정유라’ 지난해 최순실 게이트의 시초가 돼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었던 정유라 씨의 입학비리가 있었다면 60년 전인 지난 1957년에는 이강석 씨의 입학비리가 서울대를 뒤흔들었다. 친자녀가 없었던 이승만 전 대통령에게는 양자가 있다. 이기붕 씨의 아들인 이강석 씨를 양자로 입양한 것. 이기붕 씨는 이승만 정권의 2인자로 불렸기 때문에 이강석 씨는 당시 양아버지와 친아버지의 권력을 양어깨에 업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지난 1957년에는 이강석 씨가 서울대 법대에 부정하게 편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씨는 서울대 편입을 요구했고, 서울대가 관련 조항이 없어서 안된다고 했다가 나중에는 결국 허용한 것. 이에 서울대 법대 학생들은 긴급 학생총회를 열고 이 씨를 포함한 부정 편입생들의 입학을 취소할 것을 학교 측에 요구했고 동맹휴학을 실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서울대 총장은 “이승만 대통령의 자제를 국립대에서 특별 고려하는 것은 총장의 재량”이라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이 씨는 편입학한 서울대를 돌연 중퇴하고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했다. [최] |
박정희 가옥 ‘썰렁’ 최규하 가옥 ‘북적’…방문객수 명암 서울 서교동 467-5번지에는 최규하 전 대통령의 가옥이 있다. 지난 1972년 최 전 대통령이 짓고, 대통령 퇴임 후부터 서거 전까지 최 전 대통령 부부가 거주하던 곳이다. 지난 2009년 서울시가 가옥 보존을 위해 가옥을 매입해 복원 및 수리를 거쳐 지난 2013년 10월 이후 시민에 개방됐다. 서울 서교동 소재의 최규하 전 대통령 가옥. 동교동에서 온 정 아무개 씨는 “동네 근처였는데도 그동안 사는 게 바빠서 한 번도 와보지를 못했다”며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고 나니 박정희 전 대통령보다 최규하 전 대통령이 더 생각나서 찾게 됐다. 대통령이셨던 분인데도 집 내부와 살림살이가 소박해서 놀랐다”고 말했다. 봉사자들은 “최근 사회적 분위기 때문인지 요즘 가옥을 찾는 분들이 더 많아졌다. 평일에도 많을 때는 30명 정도가 오신다”며 “방문객들 말을 들으면 신당동에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 가옥은 오히려 요즘 발걸음이 많이 줄었고 다 여기로 오신다고 한다”고 말했다. 최 전 대통령 가옥은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촬영장소로 더 유명해졌다. 관람시간에 맞춰 방문하면 1층 응접실, 영부인의 방 지하 창고, 부엌 2층 서재, 전시실 순으로 관람할 수 있다. [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