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북이 원정 오니 신기”…강 “평양서 안 쫄았어요”
경기가 끝난 후 남북한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기념 사진. 연합뉴스
[일요신문] 지난 4월 6일과 7일, 하루의 시간차를 두고 한반도에서 스포츠 남북대결이 벌어졌다. 앞선 6일에는 대한민국 여자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이 강원도 강릉에서 열린 아이스하키 여자세계선수권 대회에서 북한과 경기를 치렀다. 뒤이어 7일에는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이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본선 진출 티켓을 놓고 평양에서 북한과 다퉜다. 아이스하키 대표팀은 북한에 3-0 완승을 거뒀고 축구 대표팀은 난적 북한과 무승부를 이끌어냈다. 두 팀 모두 북한전을 잘 치른 데 힘입어 각각 세계선수권 우승과 아시안컵 본선 진출이라는 성과를 올렸다. 남북관계 냉각이 지속되는 상황 속에서 이 같은 태극 낭자들의 활약은 지켜보는 이들을 미소 짓게 했다.
이에 <일요신문>에서는 역사적 남북대결을 펼친 양 대표팀의 주축 선수인 박예은(20), 강유미(26·화천 KSPO 여자축구단)와 인터뷰를 통해 남북전 에피소드와 앞으로의 목표 등을 들어봤다. 세계선수권 이후 약 1개월간의 휴가를 만끽하고 있는 박예은과 지난 13일 오후 서울 노원 공릉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지난 11일 아시안컵 예선 최종전을 마친 강유미는 베이징을 경유하는 일정이 중간에서 지연되며 13일 저녁에서야 귀국했다. 14일에는 WK리그 개막이 이어지며 바쁜 일정을 소화중인 강유미와는 전화통화로 이야기를 나눠야 했다.
대한민국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수비수 박예은.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박예은은 아직 올해 만 20세의 어린 선수지만 이번 북한전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슬로베니아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에서도 북한과 경기를 치른 바 있다. 경험이 있는 만큼 경기를 치르기 전까지는 상대가 북한이라고 해서 특별한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그는 “우승을 목표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승을 위해 이겨야 할 팀 중 하나로 생각했을 뿐이었다”며 “다만 주변에서 ‘북한이랑 한다며’라고 기대감을 드러내 관심을 가져준다는 것은 좋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온다는 게 조금 신기하기도 했지만 게임은 게임이니까 이겨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도 덧붙였다.
여자축구 최초로 북한에서 경기를 펼치게 된 강유미는 평양이라는 도시가 주는 압박감에 두려움이 앞섰다. 강유미는 “먼저 ‘우리 편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를 응원하는 관중이 한 명도 없는 상황은 처음이었다”며 “그래서 팀원들끼리 더 똘똘 뭉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실제 팀원들끼리도 그런 얘기를 많이 했다”고 설명했다.
# 오래 기억에 남을 남북전
아이스하키와 축구 모두 각각 역사적인 경기였다. 아이스하키는 처음으로 한반도에서 치르는 맞대결이었다. 축구 또한 사상 최초로 평양에서 치러지는 경기였다. 경기가 치러지는 장소 또한 이들에게는 남다르게 다가왔다.
2018 평창올림픽 테스트 이벤트를 겸한 이번 세계선수권이 열린 강릉은 박예은이 나고 자란 고향이다. 그는 강릉에서 지내다 먼저 떠난 대표팀 동갑내기 절친 박종아에 이어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서울로 ‘하키 유학’을 떠났다. 박예은은 “강릉은 갈 때마다 좋다. 가족들이 모두 서울로 이사 왔지만 주말에 시간이 나면 종아랑 같이 강릉에 내려간다”며 “강릉에 있는 가족이 없지만 종아네 집이나 다른 친구집에서 잔다”며 웃었다. 그런 강릉에서 열리는 경기라 박예은에게는 더욱 특별했다. 경기장에는 ‘강릉의 딸’ 박예은과 박종아를 응원하는 현수막이 걸리기도 했다.
국제대회에서 여자 아이스하키는 북한에 번번이 발목을 잡혀왔지만 지난해부터 전세가 역전됐다. 선제골을 내줬지만 내리 네 골을 넣으며 역전승에 성공한 지난해 경기에서 북한 선수들은 유독 공격적인 모습을 보였다. 박예은은 “몸싸움도 심했다. 너무 거칠어서 북한이랑 경기하기가 싫었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윤덕여(왼쪽)과 공격수 강유미. 사진제공=강유미 제공
그의 말대로 이번 남북 맞대결은 3-0 무난한 승리였다. 박예은은 첫 번째 골을 자신의 손으로 만들며 더 큰 기쁨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는 “골은 언제나 기분이 좋다. 그래도 이번 골은 더 좋았다”며 “1피리어드에서 먼저 골이 들어가면 경기가 잘 풀리는데 내가 그 골을 넣었다. 또 파워 플레이 상황에서 나온 골인데 그동안 연습한 플레이가 나오며 골이 들어가서 더 통쾌했다”고 설명했다.
조수지와 이은지의 추가골에 힘입어 3-0으로 경기가 끝나자 북한 대표팀은 유난히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박예은도 경기를 마치고 인사를 위해 양 팀이 마주보고 섰을 때 북한 선수들이 눈물을 훔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이후에는 양 팀 선수가 기념사진도 찍었다. 특별할 것 없는 사진 촬영이지만 다시 한 번 남북 관계를 떠올리는 순간이기도 했다. 박예은은 “유럽 선수들은 적극적으로 먼저 다가오라고 손짓도 하고 어깨동무 등 스킨십이 자연스러운데 북한 선수들은 가만히 서있기만 했다”며 “우리는 이겨서 기쁜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지만 선수들을 자극할까봐 얌전히 사진을 찍었다. 종아가 다른 인터뷰에서 말했듯이 어깨동무도 해보고 싶었다”고 전했다. 또 “그동안 겪어본 대회 중 가장 많은 경찰을 본 것 같다. 강릉에 경찰이 그렇게 많은지 몰랐다. 그걸 보면서 북한팀이 우리나라에 온 게 더 실감이 났다”고 했다.
축구 대표팀이 직접 겪어본 평양은 우려한 것보다 생소한 느낌은 아니었다. 그는 “걱정이 많았지만 막상 평양에서 지내는데 크게 불편함은 없었다. 숙소도 편안했고 음식도 입에 잘 맞았다”고 했다.
생활은 북한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운동장만큼은 특별했다. 강유미는 “이름부터 ‘김일성경기장’이다. 경기장 전체에 관중이 꽉 찼다. 선수들은 서로 ‘다 우리 편이라고 생각하자’고 했다”고 설명했다.
평양에서 열린 아시안컵 예선전은 대한민국, 북한, 홍콩, 인도, 우즈베키스탄 등 5개 나라가 단 한 장의 본선 티켓을 놓고 싸웠다. 대회 전부터 대한민국의 본선행에 북한이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북한의 홈경기라는 점도 우려되는 부분이었다. 그럼에도 강유미는 “무조건 1위를 해야겠다는 생각”만 했다.
경기 시작 전 대기하는 터널에서부터 남북 간의 기싸움이 대단했다. 강유미는 “캡틴(조소현)이 ‘이기자’라고 소리치면 우리가 다같이 ‘어이‘하며 구호를 외치는데 북한에서 갑자기 ‘죽이러 가자’고 소리쳤다”고 전했다. 이어 “지소연 언니가 곧바로 ‘야 우리도 죽이자’라고 했고 경기장에 나가기 전까지 터널 안이 ‘야 죽여’ 같은 말로 시끌시끌 했다”며 웃었다.
이 같은 분위기는 경기로도 이어졌다. 경기 초반 대표팀은 페널티킥을 허용했지만 골키퍼 김정미가 선방을 하며 위기를 넘겼다. 이 과정에서 북한 선수와 김정미가 충돌하며 양 팀 선수들 간 다툼이 일어나기도 했다.
김정미의 페널티킥 선방으로 위기를 넘기는 듯했지만 대표팀은 전반 종료 직전 북한 성향심에게 선제골을 허용했다. 하지만 강유미는 “골을 먼저 먹었지만 질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았다. 수세에 몰려도 북한이 스스로 찬스를 날리거나 수비가 막아주면서 뒤집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경기를 떠올렸다.
강유미는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장슬기의 극적인 동점골 외에도 평양에서 애국가가 울린 순간을 꼽았다. 경기가 열리기 전부터 일부에서는 북한에서 애국가가 나올 수 있을지 궁금해 하는 이들이 많았다. 북한은 큰 무리 없이 경기 전 각 나라 국가를 틀어야 하는 국제축구연맹(FIFA) 규정을 따랐다. 그는 “원래 경기 전 애국가를 들으면 울컥하지만 이날은 더 심했다. 남북 대결이라 더 특별한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국가대표 동갑내기 절친 박종아(왼쪽)와 박예은. 사진제공=박예은
아이스하키 대표팀은 이번 세계선수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3부 리그 격인 디비전1 그룹B로 승격하게 됐다. 이 또한 대한민국 여자 아이스하키 사상 최초의 사건이다.
승격을 이룬 여자대표팀의 눈은 이제 내년 평창올림픽을 향하고 있다. 박예은은 “내가 살던 곳인 강릉에서 올림픽이 열리고 그 대회에 내가 참가한다는 게 아직까지 잘 실감이 안난다”고 말했다.
박예은은 평창올림픽 중 빙상경기가 열리는 강릉이 대회를 유치하기까지 모든 것을 가까이서 지켜봐온 산 증인이다. 지난 2010년과 2014년 대회 개최가 무산된 데 이어 2018년 대회 개최를 거머쥐는 순간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처음 아이스하키를 시작할 때 주변에서 ‘평창 올림픽 나가서 열심히 해’라는 말을 장난스레 했었다. 농담으로 주고받던 말이었는데 정말 중학생 때 대회 개최가 확정됐다. 그때까지만 해도 종아랑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냐’며 웃기만 했다. 그런데 지금 대표선수가 돼서 대회를 앞두고 있다.”
박예은은 고향에서 열리는 올림픽에서 꼭 좋은 성적을 내겠다는 다짐을 매일같이 반복하고 있다. 안팎에서 내놓는 현실적인 목표인 ‘1승’에 대한 생각도 확고하다. 그는 “1승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들 하신다. 개인적으로는 그 1승 상대가 일본이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박예은은 대회에서 내심 더 높은 곳까지도 노리고 있다. “1승보다 더 잘하고 싶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탑디비전(1부 리그) 대회를 영상으로 봤는데 입이 떡 벌어졌다”면서도 “강팀과 격차가 있지만 우리 팀은 항상 기적을 꿈꾼다”며 웃었다.
올림픽 이후의 목표도 확실했다. 우선 ‘하키 유학’을 위해 떠났던 캐나다에서 남은 학사 일정을 마무리해야 한다. 협회 지원으로 캐나다 하키 학교를 다니며 고교 과정을 마친 박예은은 현지에서 대학에도 진학했다. 1학년 과정을 마치고 고국에서 열리는 올림픽 준비를 위해 휴학계를 내놓고 훈련에 집중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는 “학교에 다니면서 틈틈이 대표팀에 합류해 세계대회에 나가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 “선수 생활 동안 이루고 싶은 목표는 이번 올림픽처럼 개최국 자격이 아닌 우리나라가 자력으로 본선에 진출할 수 있는 팀으로 업그레이드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이스하키 대표팀에 올림픽이 남아 있듯이 강유미와 축구 대표팀도 이번 결과에 만족하고 있을 틈이 없다. 여자 대표팀은 오는 2018년에는 아시안컵, 2019년에는 월드컵을 앞두고 있다. 강유미는 “아시안컵에서 5위 이내에 들면 월드컵 출전권을 따낼 수 있다”며 “개인적으로는 5위보다 더 나아가 3위 이상의 성적을 내서 다음 아시안컵 본선 진출권도 얻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대표팀에서 뛰거나 앞으로 합류할 동생들을 위해서도 중요한 문제”라며 동생들을 아끼는 마음도 잊지 않았다.
대표팀은 잠시 숨을 돌리지만 14일부터는 WK리그가 곧바로 이어진다.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여자축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현재, 기반이 탄탄하지 않은 WK리그를 더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됐다. 화천 KSPO 여자축구단 소속 강유미는 “우리 팀은 이번 시즌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하는 게 목표”라며 “열심히 해서 재밌는 경기 보여드릴 테니 많은 분들이 찾아오셨으면 좋겠다”며 WK리그 인기몰이에 대한 바람도 드러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남북 대결 주역, 서로에게 묻는다 각자 중요한 경기에 집중했던 박예은과 강유미는 다른 종목에서도 남북 대결이 펼쳐졌다는 사실에 대해 자세히는 몰랐지만 소식을 접하고 큰 관심을 보였다. 박예은은 축구 경기가 북한에서 열렸다는 사실을 들으며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고 강유미는 대결 소식을 들으며 곧장 ‘이겼냐’며 질문을 던졌다. 이에 두 선수는 각각 다른 종목으로 다른 장소에서 벌어진 경기에 대해 궁금증을 드러냈다. 이에 두 선수에게 받은 질문을 서로에게 물어 답을 듣는 방식으로 간접적인 대화를 완성했다. 지난 11일 평양 김일성 경기장에서 아시안컵 본선 진출을 확정하고 환호하는 여자축구 대표팀.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박예은 : 북한에서 경기가 열렸는데 골을 넣거나 경기가 끝났을 때 마음껏 기분을 표현하는데 혹시 눈치가 보이지는 않았나요? 강유미: 전혀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어요(웃음). 우리가 북한에 가기 전부터 이기지 못할 것이라는 부정적인 평가가 많아서 할 수 있다는 걸 꼭 보여주고 싶었어요. 경기에 집중해서 하다보니까 감정도 솔직하게 나왔던 것 같아요. 골이 들어갔을 땐 다 같이 뛰어다니며 좋아했고 경기가 끝났을 때도 비겼지만 마치 이긴 것처럼 기뻐했어요. 강유미 : 우리는 서로 ‘죽이자’라며 소리도 지르고 경기 중엔 싸움도 일어났는데 아이스하키도 기싸움이 있었나요? 박예은 : 아이스하키는 남북 대결을 축구보단 얌전하게 치른 것 같아요. 지난해 슬로베니아에서 만났을 때는 북한 선수들이 텔레비전에서나 볼 수 있었던 ‘X간나새끼’ 같은 욕도 많이 하고 몸싸움도 강하게 했었어요. 무섭기도 하고 북한 선수들이 밉기도 했어요. 그런데 이번 대회에선 그 때보단 경기를 편하게 할 수 있었어요.” [상] |
’세리에 A‘ 한광성 활약에 ‘남쪽 동지’들 “이 정도면 북흥민이네” 칼리아리 구단 홈페이지 메인화면을 장식한 한광성 칼리아리 칼초 공식 홈페이지 캡처. 지난 9일 밤(한국시간)에는 이탈리아에서 놀랄 만한 소식이 날아들었다. 이탈리아 축구 1부 리그 세리에 A 경기에서 북한 축구선수 한광성이 데뷔 골을 터뜨린 것. 지난 2011년 스위스 FC바젤에서 대한민국 대표 박주호와 북한 박광룡이 한 팀에서 활약한 이후 오랜만에 세계 프로축구 무대에 북한이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탈리아에서 축구 유학을 했던 한광성은 3월 초 칼리아리 칼초에 입단해 데뷔 2경기 만에 골을 기록했다. 비록 팀은 팔레르모에 2-3 패배를 당했지만 한광성은 북한 선수 최초로 유럽 5대 리그(스페인, 독일, 잉글랜드, 프랑스, 이탈리아)에서 데뷔해 골까지 넣으며 역사를 새로 썼다. 이에 소식을 접한 국내 축구팬들은 ‘레반동무스키(레반도프스키+동무), 북흥민(손흥민+북한)’ 등 유명 축구선수와 북한 관련 단어를 연결시킨 별명을 지어주며 즐거워하고 있다. [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