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재-허웅-허훈, 차범근-차두리 부자 경기력도 닮은꼴…아버지가 롤모델이자 넘어야 할 벽
‘바람의 손자’ 넥센 이정후 선수와 ‘바람의 아들 이종범 해설위원. 일요신문 DB
[일요신문] 지난달 말 개막 이후 열기를 더해가는 프로야구에 ‘바람의 손자’ 열풍이 불고 있다. ‘바람의 아들’로 불리던 이종범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의 아들 이정후(넥센)가 연일 맹활약을 펼치고 있기 때문. “투수는 선동열, 타자는 이승엽, 야구는 이종범”이라는 김응용 전 감독의 말처럼 이종범 해설위원은 프로야구에서 역사를 써내려간 선수다. 필연적으로 주목받을 수밖에 없었던 이정후는 경기력으로도 기대에 부응하며 넥센의 주전외야수로 올라섰다. 이에 <일요신문>에서는 스포츠에서 큰 족적을 남긴 슈퍼스타와 부모에 이어 2대째 활약을 펼친 자녀들을 되짚어봤다.
# ‘깜짝 출연’ 초등생에서 프로야구 선수로
이종범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선수시절이던 지난 2008년 한 맛집소개 TV 프로그램에 자녀들과 함께 특별출연했던 경험이 있다. 이 해설위원은 “지금 야구를 하고 있는데 나보다 낫다”며 초등학교 4학년 아들 이정후를 소개했다. 프로그램 출연진 이수근의 ‘아빠만큼 야구 할 수 있을 것 같냐’는 질문에 이정후는 당당하게 “네”라고 대답했다. MC 정준하는 그를 가리키며 “10년 뒤에 사인 받아야 할 선수. 대표팀 최고 에이스가 돼 있을 것”이라며 너스레를 떨었고 10여 년이 흐른 현재 이는 현실로 다가왔다. 아버지와 함께 TV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초등학생은 2017 프로야구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아버지를 따라 방송에 출연했던 초등학생 이정후. 사진=MBC 드라마넷 <식신 원정대> 방송화면 캡처.
이정후는 시범경기부터 자신을 증명했다. 첫 경기부터 나서 2안타를 때려내더니 시범경기 12경기에서 33타수 15안타, 타율 0.455를 기록했다. 시범경기 대활약에도 신인 이정후에 대한 물음표가 사라지지는 않았다. 각 팀들이 전력을 다하는 정규리그가 시작되면 기세가 잦아들 것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실제 개막 후 첫 3연전에서는 백업과 선발을 오가며 5타수 무안타에 그쳤다.
시즌 개막 2주차부터 감을 찾은 이정후는 지난 4월 8일에는 2홈런까지 때려내며 지켜보는 이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4월 18일 현재 타율 0.339(9위), 20 안타(4위), 13 득점(4위) 등 각종 공격 지표에서 상위권에 올라 있다. 개막 후 1개월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신인왕 경쟁에서 단연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고교시절 이정후를 지도했던 이명수 휘문고등학교 감독은 프로에서 활약 중인 제자를 대견해 하면서도 더 좋은 성적도 낼 수 있으리라 내다봤다. 그는 <일요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예상보다 더 잘하고 있는 부분도 있지만 기회만 주어진다면 충분히 잘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넥센에서도 기회를 잘 주고 있는 상황 아닌가”라며 “자신만의 야구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한데 이정후는 그 과정에 있다고 본다. 앞으로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 농구대통령과 두 아들
야구에 이종범 해설위원이 있다면 농구에는 허재 국가대표팀 감독이 있다. 농구대잔치와 프로무대는 물론 국제대회에서도 맹활약한 허 감독은 ‘농구 대통령’으로 불린다.
허 감독의 두 아들도 아버지의 재능을 물려받아 농구선수로 활동하고 있다. 첫째 허웅은 2014년 원주 동부에서 데뷔해 프로에서 3시즌째를 마무리했고 둘째 허훈은 연세대학교 4학년으로 프로 데뷔를 앞두고 있다.
허재-허웅·허훈 3부자. 사진=허웅 인스타그램 캡처.
허훈은 아직 프로 데뷔를 하지 않은 대학생이지만 예비 스타로 각광받고 있다. 허훈은 그간 프로팀과 대학팀, 상무가 참가한 프로-아마 최강전에서 주눅들지 않는 모습을 보이며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어린 시절 패스나 개인기 등 천재성 면에서 형보다도 가능성을 인정받았던 바 있다.
이들 3부자는 지난해 6월 허 감독이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이후 국가대표팀에서 한솥밥을 먹기도 했다. 이들의 발탁을 놓고 특혜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두 아들은 평가전과 아시아 챌린지 등 경기력으로 자신들의 자격을 증명했다.
# 선수에서 지도자까지 같은 길…차범근-차두리 부자
축구에서는 ‘스타 부자’로 차범근-차두리 부자를 빼놓을 수 없다. 차범근 피파 20세월드컵 조직위원회 부위원장은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국내 최초로 독일 분데스리가에 진출해 10여 년간 308경기에서 98골을 넣었고 국가대표로도 136경기, 58골로 역대 최다골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90년대에는 지도자로 데뷔, 국가대표팀을 맡아 월드컵에 진출했고 프로팀에서 우승을 거두는 등 팬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TV 해설위원으로도 나서 ‘2002 세대’가 해설계에 등장하기 전까지 ‘시청률 불패’ 기록을 세울 정도였다.
국가대표 은퇴식에서 아버지와 함께 섰던 차두리. 대한축구협회 제공.
지난 2015년 현역에서 은퇴를 선언하고 독일에서 지도자 수업을 받던 중 울리 슈틸리케 감독의 부름을 받고 현재 국가대표 전력분석관에 임명됐다. 아버지가 갔던 선수-지도자의 길을 그대로 걷게 됐다.
# 거대한 벽, 아버지
기대 이상의 데뷔 시즌을 보내고 있는 이정후를 포함해 허웅-허훈 형제, 차두리 전력분석관도 국가대표에 뽑힐 정도로 아버지 못지 않은 뛰어난 기량을 발휘했다. 하지만 이들은 선수 생활을 시작한 어린시절부터 끊이지 않고 위대한 선수였던 아버지라는 벽에 부딪혀야 했다.
10여 년 전 그저 ‘연예인 구경’을 하려 아버지를 따라 방송 촬영장에 놀러갔던 초등학생 이정후는 연예인 삼촌들로부터 “국민적 영웅인 아빠 때문에 부담되겠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프로선수가 된 현재도 첫 홈런 등 매기록마다 ‘선수 이종범’과의 비교를 피하지 못하고 있다.
허웅도 언론 인터뷰에서 “아버지의 반만 따라가도 성공하는 것”이라며 “아버지 명예에 누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아버지를 언급한다. ‘스타의 아들’로 태어난 이들은 누구보다 먼저 주목을 받지만 조금이라도 부진하면 ‘OO의 아들이라는 죄’로 더욱 가혹한 질타를 받기도 한다.
은퇴식에서 서로를 끌어 안는 차범근-차두리 부자.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국가대표와 소속팀에서 모두 축복을 받으며 행복하게 선수생활을 마무리한 차두리는 은퇴 기자회견에서 아버지를 향한 존경심과 그의 아들로서 짊어져야 했던 짐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언제나 축구 인생의 기준은 차범근이었다. 그 사람을 넘고 싶었다. 나이가 들수록 그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는지 깨닫게 됐다. 차범근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차범근에게 졌다는걸 인정하게 됐다. 좌절도 했지만 그 후로 축구를 즐기고 나에게 없는 부분보다는 가지고 있는 많은 것들을 보게 됐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