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철 “타자 약올리는 투구 필요” 허구연 “포수 리드 아쉬워” 김용일 “절대 무리하지 말라”
그동안 류현진은 “기록보다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었다. 그러나 팬들로선 첫 승을 간절히 원할 수밖에 없는 상황. 세 차례 있었던 류현진의 등판을 지켜본 야구 전문가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류현진 투구의 아쉬움과 희망적인 부분에 대한 얘기를 들어봤다.
류현진이 13일(현지시간) 시카고 컵스와의 원정 경기에 선발 등판, 4⅔이닝 동안 홈런 2방을 포함한 안타 6개를 맞고 4점을 내줬다. 연합뉴스
# 정민철 “류현진한테는 짠물피칭이 필요하다”
류현진의 신인 시절부터 미국 진출까지 ‘이글스’란 테두리에서 선후배의 인연을 맺었던 정민철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올 시즌 류현진의 등판을 지켜보는 감정이 이성을 지배한다며 웃음을 보였다. 즉 해설위원의 시각보다는 선배, 형의 입장에서 류현진의 경기를 보게 된다는 것.
“난 올 시즌 현진이가 5선발 안에 들어가 25경기 출전과 160이닝 정도 소화해주면 성공적이라고 생각한다. 2년 동안 어깨, 팔꿈치 수술과 재활 등으로 공을 던지지 못했던 투수가 복귀해서 이전의 모습을 보인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현진이 경기를 지켜봐야 한다. 선수에게 너무 많은 걸 기대하게 되면 선수가 부담을 느낀 나머지 오버 페이스를 하게 되고, 그건 곧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이런 생각 때문인지 현진이가 공을 던질 때마다 마음을 졸이게 된다.”
정민철 위원은 사람들이 집착하는 구속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현진이는 원래 스피드로 야구하는 선수가 아니다. 그런데 자꾸 구속 얘기가 나오고 선수 귀에도 그런 말들이 들어가니까 신경을 안 쓸래야 안 쓸 수가 없을 것이다. 그 결과가 첫 번째 콜로라도 원정 경기 등판과 두 번째 시카고 컵스 원정 경기에서 나타났다. 1회부터 전력을 다해 던지니까 4회 넘어가면서부터 체력 저하로 구속이 떨어졌고, 얻어맞기 시작했다. 현진이는 원래 체력 분배를 잘해서 경기 중후반까지 구속을 유지하는 능력이 있다. 그게 현진이의 장점이었다. 그런데 앞선 두 경기에선 현진이가 체력 분배를 하지 못했다. 그걸 깨닫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나온 게 세 번째 등판이었다. 체력 분배를 하기로 마음먹고 들어갔기 때문에 6이닝까지 끌고 갈 수 있었다. 홈런을 3개나 맞으면서도 말이다.”
정 위원은 19일 콜로라도전에서 나온 피홈런 3개를 제외하고 피안타 중에는 정타 맞은 게 없다는 사실을 주목했다. 피홈런 3개 중 2개가 실투였다면 나머지 안타는 실투도 없었고, 제대로 맞은 게 아니었다는 얘기다.
“홈런이 문제가 아니다. 정타가 계속될 경우 투수들은 자기 연민에 빠지게 마련이다. 잘 들어갔다고 생각했는데 얻어맞으면 구위가 떨어졌다는 자각과 함께 연민을 느끼는 것이다. 지금까지 현진이의 투구 내용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체인지업 등 변화구 구사는 뛰어난 면도 있다. 앞으로는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할 것 같다. 내가 방송 중에 ‘짠물피칭’이란 단어를 사용했는데 홈런 등 장타를 맞기보단 볼넷을 주더라도 단타로 막는 법을 연구해야 한다. 그게 지금 현진이한테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류현진은 지금까지 LA 다저스 포수들 중 야스마니 그랜달, 오스틴 반스와 배터리 호흡을 맞췄다. 이전 A.J. 엘리스처럼 노련한 경기 운영의 묘가 아쉬웠던 젊은 포수들이다보니 포수 리드를 공격적으로 이끈 면도 없지 않다. 정 위원도 비슷한 의견을 나타냈다.
“아직은 그랜달이나 반스 선수가 류현진의 특성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고 본다. 2년 만에 복귀하는 선수라면 그에 맞는 리드를 해줘야 한다. 19일 콜로라도전에서 5회 아레나도한테 두 번째 홈런을 맞았을 때는 포수와 투수 모두 문제가 있었다. 1회 때도 속구에서 홈런이 나왔는데 또 속구를 던졌고, 홈런으로 이어졌다. 류현진 입장에선 오기로 더 그 공을 던졌을지 모른다. 이럴 때 포수가 투수의 심리 상태를 읽고 안정시켜야 한다. 그런 점에선 포수의 리드가 다소 아쉽긴 했다.”
정 위원은 지난 8일 콜로라도 로키스 원정 경기에 첫 등판했던 류현진과 경기 후 영상통화를 했다고 말한다. 274일 만의 정규시즌 선발 등판에서 기대 이상의 호투를 펼친 류현진의 표정은 한층 밝았다고.
“현진이는 원래 여론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스타일이다. 자기가 마음먹은 대로 마운드 운영을 하는 선수인데 2년의 공백이 그에게 여유를 주지 못하는 것 같다. 나로선 지금 이렇게 던지고 있는 류현진이 대단해 보일 정도이다. 어깨 수술 후 지금과 같은 경기력을 보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단, 한 번 더 언급하겠다. 꼭 ‘짠물피칭’을 해야 한다. 좀 더 게임을 즐기기 위해선 타자를 약 올리는 피칭도 필요하다. 그게 결코 도망가는 피칭은 아니기 때문에 한 템포 느리게, 천천히 가는 투구 운영을 해야만 한다. 만약 내가 포수 그랜달이나 반스의 연락처를 안다면 당장 문자로 그 내용을 적어 보내고 싶은 심정이다(웃음).”
애리조나 스프링캠프 때 류현진의 시범경기를 모두 현장에서 지켜봤던 허구연 해설위원은 류현진이 등판 이후 어깨나 팔꿈치 통증 없이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반가움을 나타냈다.
“지난 19일 경기에서 97개의 공을 던진 류현진을 보고 다음날 아침 몸 상태가 궁금했고, 걱정이 됐다. 그렇게 많은 공을 던진 게 수술 후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별다른 이상 증세가 없는 걸 확인하고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 류현진이 세 번째 등판에서 투구수를 거의 100구 가까이 끌어올렸다. 그만큼 건강에 자신이 생겼다는 의미라고 봤다.”
허 위원은 피홈런이 늘어난 배경에 대해선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속구에서 구속과 공 끝 움직임이 중요한 이유는 파울볼과 펜스 앞에서 잡힐 공이 홈런이 되기 때문이다. 구속과 회전이 좋으면 홈런이 나오지 않는다. 즉, 류현진의 피홈런 수가 늘어난 건 속구의 구속과 무브먼트가 좋지 않았다는 걸 얘기하는 것이다. 피홈런은 모두 속구에서 나왔다. 이 부분은 누구보다 공을 던진 선수가 잘 알고 있다. 분명 다음 경기에서 이에 대한 대비를 하고 나올 것이다.”
지난 겨울 류현진은 근력을 늘리기 위해 강도 높은 훈련을 소화했다. 그러나 정상적인 로테이션을 소화하고 강타자들을 상대할 만한 근력은 부족한 상태이다. 그게 구속 저하로 이어지고 있는 것. 허 위원의 설명이 이어진다.
“근력은 금세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지금 몸 상태에서 91마일의 공을 던진다는 게 대단할 정도이다. 앞으로는 류현진이 영리하게 경기 운영을 해나가야 한다. 야구에서 구속보다 중요한 게 제구이다. 커쇼도 제구가 흔들릴 경우 홈런을 얻어맞지 않나. 결정구를 속구로 사용하지 말고 변화구 위주의 피칭을 해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높은 볼은 다 얻어맞게 돼 있다. 낮게 제구되는 공을 던지면서 유인구로 타자들의 눈을 어지럽혀야 한다. 특히 중심 타자들을 상대할 때는 원 바운드되는 공을 던지는 것도 효과적일 것이다.”
허 위원도 다저스 포수들의 리드에 대해선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러나 투수가 경기 운영을 잘해야 포수도 빛이 나는 법. 문제는 속구 피홈런으로 류현진이 속구에 대한 자신감을 잃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속구를 던져 얻어맞게 되면 아무리 강심장이라고 해도 다음 경기에서 그 공을 더 잘 던지기가 어렵다. 류현진이 다음 경기에선 속구에서 장타가 나오면 안 된다. 다저스가 언제까지 류현진을 기다려줄지 모르겠지만 네 번째 등판에서는 지금까지의 실수와 문제점들이 반복되지 않고 보완 수정해서 효율적인 경기 운영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이게 지금 아주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류현진은 복귀전부터 원정 경기를 치렀고 두 번째도 시카고 원정 경기였다. 5선발을 맡다 보니 로테이션 상 어쩔 수 없는 스케줄이었다. 허 위원은 이 부분이 상당히 아쉽다고 말한다.
“그래서 류현진이 3선발 안에 들어와야 하는 것이다. 만약 복귀전을 다저스 홈에서 치렀다면 쉽게 풀려나갔을지도 모른다. 복귀전을 투수들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쿠어스필드에서, 그리고 지난 시즌 월드시리즈 우승팀인 시카고 컵스를 상대로 가장 추운 날씨에 두 번째 등판을 가졌다. 그런 경기 후 부상이 없는 게 다행일 정도이다. 앞으로 성적을 통해 선발 등판 순서를 앞으로 가져가야 한다. 그렇다면 이후 조금은 편안하게 스케줄을 맞춰갈 수 있을 것이다.”
# 김용일 LG 트레이닝 코치, “5일 간격 로테이션 잘 지켜야”
지난 겨울 류현진과 동고동락하며 재활 훈련을 도왔던 김용일 코치. 자식을 멀리 떠나보낸 부모의 심정으로 류현진의 등판 때마다 새벽잠을 떨치고 일어나 TV를 켠다는 그는 투구 내용보다 선수의 몸 상태에 더 집중해서 경기를 지켜본다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그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류현진의 상태를 설명했다.
“지금까지 류현진은 4일 쉬고 5일째 등판하는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다. 아직까진 류현진의 투구 후 회복력이 이전처럼 빠르지 않은 것 같더라. 지금은 시즌 초반이니까 5일 간격의 로테이션을 지키고 있지만 이런 상황이 거듭될수록 류현진의 체력이 얼마나 뒷받침해줄지 알 수 없다. 물론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류현진이 시간이 갈수록 5일 간격 로테이션에 적응할 것이라고 본다. 시카고 원정 경기에선 날씨가 7~8도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추운 날씨 속에선 관절의 유동성이 떨어지기 마련인데 그렇게 공을 던지고도 어깨에 통증을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류현진한테 직접 그 얘기를 듣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바람이 있다면 올 시즌은 성적을 올리려고 무리하지 않는 것이다. 올 시즌보다는 내년 시즌을 목표로 두고 욕심내지 않으면서 컨디션을 끌어올렸으면 한다. 급하게 서두른다고 해서 도움 되는 게 전혀 없다. 류현진이 이 점을 꼭 명심했으면 좋겠다.”
한편 류현진은 한 포털 사이트에 게재하는 자신의 일기를 통해 다음과 같은 소회를 밝혔다.
“지금은 어느 지역, 어느 팀, 낮, 저녁 경기 등등 경기 여건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주어진 상황에 내가 맞춰가야 한다. 좋은 경기, 좋은 성적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시즌을 마무리하는 게 나한테는 더 중요하다. 경기 결과에 안타까움이 커지고, 나 스스로 용서가 안 될 때도 있지만 수술 받은 선수가 복귀 시즌부터 잘하길 바라는 건 욕심이라고 생각한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