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급행’ 합승했다 ‘전대’서 굿바이?
“창피해서 얼굴을 못 들겠다.” “이렇게 가다간 당이 망한다.”
6월 23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손 대표가 던진 일성이다. 전당대회가 열흘 남짓 앞으로 다가왔는데도 민주당의 텃밭격인 광주·전남 지역이 시·도당 개편대회 날짜는 물론 대의원조차 확정하지 못한 현실을 개탄한 발언이다. 다분히 박 대표와 구 민주계를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손 대표는 이날 “말로만 화학적 결합을 얘기하면서 내 집만 챙기려는데 급급하고 말 다르고 속 다르다”며 “성동 갑 문제만 하더라도 얼굴을 들 수 없다. 정말 이대로 가다간 전당대회 치르다 당이 망한다”고 언성을 높였다. 서울 성동 갑은 당초 4·9 총선에 출마했던 최재천 전 의원이 지역위원장으로 낙점될 것으로 예상됐으나 구 민주계가 고재득 최고위원을 지원하면서 논란을 야기했던 지역구다.
박 대표와 구 민주계를 겨냥한 손 대표의 직격탄은 당내 계파 갈등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종반전으로 치닫고 있는 당권 전쟁과 맞물려 계파 간의 피 말리는 대혈투를 예고하고 있다. 손 대표의 공격에 구 민주계 역시 전면전도 불사한다는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구 민주계의 한 의원은 “손 대표야말로 4·9 총선과 7·6 전대 과정을 거치면서 ‘자파 챙기기’에 주력해 신주류 수장으로 자리매김한 장본인 아니냐”며 “그런 그가 구 민주계를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이면에는 전대 파행 위기를 구 민주계에게 떠넘기려는 얄팍한 노림수가 내포돼 있을 것”이라며 분개했다.
신주류와 구 민주계를 이끌면서 당내 최대주주로 부상한 손·박 대표가 전대를 코앞에 두고 자파 생존 전략과 맞물린 마지막 혈투를 펼치고 있는 형국이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손·박 대표가 4·9 총선을 앞두고 공멸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오월동주’를 선택했지만 당권 및 주도권 장악 향배가 결정되는 전대가 막바지로 치닫자 본색을 드러내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당 일각에서는 두 사람의 감정싸움이 심화될 경우 전대 파행은 물론 극심한 후폭풍에 직면할 수 있음을 우려하고 있다. 계파 갈등이 정체성 논란으로 비화될 수 있고 이로 인해 자칫 제2의 분열 사태로 치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각 계파들이 당명 개명 문제를 놓고 치열한 신경전을 펼치고 있는 것도 이러한 가능성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실제로 통합민주당은 당명을 ‘민주당’으로 개명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김원기 전대준비위원장은 6월 24일 “당이 이미 통합된 상황에서 ‘통합’을 당명에 넣을 필요가 없고 국민도 우리 당이 통합민주당인지 민주당인지 헷갈리고 있어 정리할 필요가 있다”며 당명 개명 필요성을 언급한 바 있고 조만간 최고위원회의에 정식 안건으로 상정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으로의 당명 변경은 이번 전대를 계기로 박 대표가 이끌고 있는 구 민주계와 열리우리당을 이어받은 대통합민주신당계가 화학적으로 결합한다는 상징적 의미와 함께 지난 1955년 창당된 ‘원조 민주당’의 정통성을 승계하겠다는 취지가 담겨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각 계파들은 당명 개명에 따른 이해득실을 따지며 날카로운 신경전을 펼치고 있어 난항을 예고하고 있다. 민주당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살리기 위해 반드시 ‘민주당’으로 개명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 이미 민주당을 약칭으로 사용하고 있고 그 약칭이 일반화된 만큼 굳이 개명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전자는 주로 구 민주계와 동교동계가, 후자는 열린우리당·대통합민주신당계가 주장하고 있다.
구 민주계와 동교동계는 민주당의 전통적인 텃밭인 호남권과 이 지역의 정신적 지주인 김대중 전 대통령의 후광을 등에 업고 당 주도권을 장악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반면 수도권 출신과 386 소장파들이 주축이 된 열린우리당·대통합민주신당계는 신주류로 입지를 구축한 만큼 ‘민주당’으로의 당명 개명은 ‘도로 호남당’으로 회귀할 수 있을뿐더러 또다시 김 전 대통령과 호남권 정치세력에 주도권을 뺏길 수 있다는 점을 들어 ‘개명 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손·박 대표를 중심으로 한 계파 갈등은 전대 막판 당권주자 간 단일화 및 최고위원 후보 간의 합종연횡 과정에서 정점에 다다를 것으로 보인다. 손 대표는 겉으로는 ‘전대 중립’ 입장을 표명하고 있지만 그와 신주류 측이 대세론을 구축하고 있는 정세균 후보를 지원하고 있다는 것은 이제 공공연한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을 정도다. 당권 주자가 없는 구 민주계는 추미애·정대철 후보와 자파 최고위원 후보들과의 합종연횡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박 대표와 구 민주계는 추·정 후보 간 단일화가 성사될 경우 단일후보를 적극 지원한다는 내부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이번 전대 결과에 따라 자파 생존과 자신들의 향후 정치적 명운이 엇갈릴 수밖에 없는 손·박 대표가 막판에 숨겨둔 복심을 드러낼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손 대표가 박 대표와 구 민주계를 겨냥해 공개적으로 비판을 쏟아낸 것도 이러한 관측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당 일각에서는 두 사람의 갈등이 감정싸움으로 비화될 경우 이번 전대는 계파 간 대혈투장으로 변질될 것이고 나아가 당 분열의 불씨로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4·9 총선 공천과 7·6 전대를 주도하면서 ‘밀실야합’이니 ‘자파 챙기기’니 하는 비판에 직면했으면서도 ‘찰떡’ 공조를 유지해 온 손·박 대표가 임기 막판에 ‘이별전쟁’을 준비하고 있는 형국이다. 과연 두 사람의 ‘오월동주’가 어떤 식으로 막을 내릴지 종반전으로 치닫고 있는 민주당 전대에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