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3선이냐 대권이냐’ 안희정 ‘여의도행 힘실려’ 이재명 ‘서울시장이냐 경기지사냐’
차기 대권 고지를 노리는 이들은 자신의 보완재 찾기에 나서야 한다. 5년이란 시간은 짧다. 혜성같이 변방에서 중앙으로 들어오는 타이밍을 비롯해 때로는 기다릴 줄 아는 정치적 절제도 요구된다. 그야말로 포스트 구도 안에는 정치백서의 모든 것이 들어있다.
대선후보들이 5월 2일 서울 상암동 MBC 스튜디오에서 선거관리위원회 주최로 열린 마지막 TV토론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국회사진취재기자단
제1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 가장 주목받은 인사는 대선 경선에 나섰던 이들이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안희정 충남지사, 이재명 성남시장은 현직 지방자치단체장이다. 2018년도 지방선거 출마 여부에 관한 입장을 밝히는 올해 연말까지는 운신의 폭이 좁다. 다만 물밑에선 차기 권력 고지 선점을 위한 포지션 싸움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원내인사인 김부겸 의원은 지자체장 3인방보다는 당권 도전 등 운신의 폭이 넓다.
박원순 시장은 ‘서울시장 3선’과 ‘차기 대선 도전’의 갈림길에 섰다.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중도 하차했던 박 시장은 이후 “재수는 했어도, 삼수는 안 했다”며 차기 대권 도전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범주류 한 관계자는 박 시장 향후 행보에 대해 “3선보다는 대권”이라며 “지자체장 3선은 대선의 걸림돌”이라고 잘라 말했다. 재선까지는 ‘전임 시장의 책임론’을 통한 위기 탈출이 가능하지만, 3선부터는 오롯이 본인 책임이라는 이유에서다.
여의도 안팎에선 박 시장이 올해 연말쯤 3선에 군불을 땐 뒤 내년 초 당 내부에서 세대교체론이 나올 경우 양보 수순을 밟을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이른바 ‘형님 리더십’을 발휘, 대선으로 향하는 시나리오다. 이후 박 시장은 ‘재보선 구원등판’과 ‘2020년 총선’, ‘차기 대권 직행’ 등에서 장고를 거듭할 것으로 보인다. 박 시장 과제는 경선 당시 우군이었던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 소속 운동권 그룹의 자기 세력화 여부다. 반대편에 섰던 당 주류 친문(친문재인)계와 관계 설정도 ‘박원순 운명’을 결정짓는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당 경선에서 2위를 차지했던 안희정 지사는 차기 대권주자 1순위다. 경선 때 ‘대연정’이란 브랜드를 제시, 중도·보수층 포섭 등 당의 외연 확장을 꾀하는 데 기여했다. 당 지지층 반발에도 끝까지 반대편을 끌어안은 셈이다. 보수진영에서도 거부감이 적다. 여의도 안팎에서 안 지사를 두고 “새 정권이 국면전환을 할 때 ‘안희정 국무총리 카드’를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점친다.
3선 도전도 가능하다. 다만 안 지사 최대 과제는 여의도 정치경험 쌓기라는 점에서 3선보다는 국회의원 도전에 힘이 실린다. 86그룹 한 관계자는 “안 지사에게 부족한 한 가지는 국회의원 경험”이라고 말했다. 친노(친노무현)에 속하면서 친문은 아닌 안 지사가 당 주류와 어떤 스탠스를 맞출지도 관심사다.
이재명 시장도 당 경선에서 선명성 부각을 통해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탄핵정국에서 촛불 아이콘으로 부상한 이 시장은 사이다 발언으로 낮은 인지도를 단숨에 뒤집었다. 탁월한 정무 감각과 함께 정책적 능력을 높게 평가받는 점도 강점이다. 기초자치단체장 신분인 이 시장의 경우 광역자치단체장에 도전장을 내밀 가능성이 크다. 당 비문(비문재인)계 의원실 보좌관은 “경선 당시 (차기) 서울시장직에 나설 것이란 얘기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다만 당 안팎에선 “경기도지사가 현실적”이라는 비판론도 만만치 않다. 당내 이재명계가 없는 상황에서 세력 구축 및 비주류 아이콘 벗기가 1차 과제다.
원내인사인 김부겸 의원은 ‘차기 당권 도전→대권 직행’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김 의원은 ‘추미애 체제’가 출범했던 2016년 8·27 전당대회 당시 당대표 1순위로 거론됐다. 하지만 그는 당권 대신 대권 도전에 나섰다가 친문계 벽에 무릎을 꿇고 중도 포기했다. 김 의원 불출마로 추미애 대표는 54.03%로, 이종걸 의원(23.89%)과 김상곤 전 경기도 교육감(22.08%)을 꺾고 민주당 사상 첫 TK(대구·경북) 당수가 됐다.
문재인 캠프 관계자는 “김 의원에게 기회는 많을 것”이라며 “‘바보 노무현’의 이미지도 있지 않으냐”라고 말했다. 추 대표의 임기는 2년이다. 다만 당이 위기에 빠질 경우 언제든지 조기 전대론이 급물살을 탈 수 있다. 김 의원의 등판이 앞당겨질 수 있다는 얘기다.
‘김부겸 불가론’은 넘어야 할 산이다. 이번 대선은 1987년 대선 전후로 기승을 부렸던 지역주의가 옅어진 선거였다. TK 지역주의 극복에 나섰던 김 의원으로선 자신의 강점을 극대화할 수 없는 정치적 환경이 만들어진 셈이다. 또한 전국 선거인 대권에서 TK에 갇힌 지역구 정치인 행보도 약점으로 꼽힌다. 동남권 신공항 논란 당시 ‘TK 반대론’을 폈던 것이 대표적이다.
비주류 구심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지도 관건이다. 김부겸계를 만들지 못한다면, 당내 경선조차 넘기 어렵다. 더구나 민주당의 대선 경선 룰은 앞으로도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를 채택할 가능성이 크다. 대중적 인지도에서 발목 잡힌 김 의원이 조직구축에 실패한다면, ‘당권→대권’ 플랜은 사실상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민주당의 ‘포스트 대선’ 구도의 첫 번째 분수령은 5월 16∼17일로 예정된 차기 원내대표 경선이 될 전망이다. 우상호 원내대표 임기는 5월 말까지다. 당 안팎에선 3선의 민병두·우원식·이춘석 의원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거론된다. 비주류인 민 의원은 문재인 캠프 공동특보단장을 맡아 선거를 지휘했다. 범주류인 우 원내대표는 민평련 지지를 받고 있다. 이 의원은 호남 3선이다. 당 최대 주주인 친문계의 조직적 투표에 따라 결정되는 만큼, 차기 권력구도의 복선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제2당인 자유한국당과 집단 탈당 사태를 맞았던 바른정당은 ‘보수 새판 짜기’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19대 대선을 불과 일주일 남기고 벌어진 바른정당 12명의 집단 탈당은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벌어질 ‘범보수 정계개편’의 신호탄이다. 보수진영 ‘골리앗’ 한국당이 ‘다윗’ 바른정당을 흡수할지가 관전 포인트다. 내년도 지방선거를 앞두고 보수발 원심력은 정치적 변곡점마다 증폭될 것으로 전망된다.
바른정당 탈당파들은 지역구 행사에 초대받지 못하는 등 냉랭한 지역민심이 집단행동을 결정하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여기에 한국당이 ‘직’으로 딜하면서 정계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이혜훈 바른정당 의원은 “한국당에서 꽃보직을 제안했다는 소문도 있다”고 폭로했다.
보수 궤멸 상태에서 존재감을 부각한 홍준표 후보를 시작으로, 아직도 건재한 친박(친박근혜)계, 사퇴 압박을 당한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와 비박(비박근혜)계 구심점 김무성 의원 등이 ‘포스트 대선’의 범보수 정계개편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펼칠 것으로 점쳐진다. 당분간 춘추전국 시대로 접어드는 범보수진영 정계개편 키 플레이어는 김무성 의원이다. 김 의원 움직임에 따라 보수통합 및 당권 경쟁 등 보수 정계개편이 새 국면을 맞을 수 있다는 얘기다.
국민의당과 정의당의 포스트 대선 키워드는 세대교체다. 국민의당은 ‘호남 주도권 찾기’라는 절체절명의 과제까지 안았다. 지난해 4·13 총선을 앞두고 출범한 국민의당은 사실상 ‘안철수당’이었다. 안철수 후보가 대선 내내 호남과 중도·보수층 충돌 사이에서 갈지자 행보를 보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선 이후 ‘호남이냐, 외연 확장이냐’의 갈림길에서 한쪽을 선택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안철수’ 한 명에 의존했던 타성에서 벗어나 대중성을 가진 정치인 찾기에도 당력을 집중해야 한다. 70대에 접어든 박지원 대표와 손학규 상임중앙선대위원장, 막판에 안 후보 지지에 나선 김종인 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역할론도 해결과제다. 이 과정에서 안철수계가 세대교체론을 들고 호남파와 충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민의당 차기 당권 후보인 정동영 의원과 김한길 전 의원 등의 역학관계도 국민의당 내부 권력구도의 분수령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진보정당인 정의당도 마찬가지다. 2004년 첫 원내진입 후 진보정당은 13년간 ‘노·심’(노회찬·심상정)에 의존했다. 진보정당 한 당직자는 “그간 ‘아직도 노·심이냐’는 말을 들을 때가 가장 뼈아팠다”며 “대선 이후 ‘진보 시즌3’에 대비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윤지상 언론인
2012년 대선 후엔? 새누리 ‘친박 호위무사’ 전진배치…민주 비노 ‘영욕’ 맛봐 2012년 대선 이후 여야 권력구도 재편은 상반됐다. 승리한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전신)은 ‘황우여 2기 체제’를 띄우며 친박(친박근혜) 체제 강화에 나섰다. 반면, 패배한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은 비노(비노무현)계 ‘김한길 체제’가 들어섰다. 이후 김한길 대표는 불과 8개월 만에 안철수 신당과 힘을 합쳐 새정치민주연합을 창당했다. 대선 승리 여부가 양당 운명을 가른 셈이다. 시간은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3년 5월, 당시 여당과 제1야당에는 권력구도 재편바람이 휘몰아쳤다. 18대 대선을 승리로 이끈 새누리당은 ‘황우여 2기’ 출범을 알렸다. 이명박(MB) 정부 1년 차인 2008년부터 그해까지 5명의 당대표를 배출한 새누리당에서 임기 1년을 넘긴 체제는 박희태 대표에 이어 두 번째였다. 특히 황우여 체제는 친박계 좌장인 최경환 의원을 원내대표로 선출한 가운데, ‘사무총장-홍문종’ ‘전략기획본부장-김재원’ ‘당 대변인 유일호’ 의원을 각각 임명했다. 친박 호위무사들이 전진 배치된 셈이다. 최고위원에는 주류인 정우택·유기준 의원 등이 포진했다. 이는 박근혜 정권 출범과 동시에 터진 ‘윤창중 스캔들’ 파문을 비롯해 잇따른 인사 실패 등 국정 난맥상을 친박 친정 체제로 극복하겠다는 의지였다. 한국당 한 관계자는 “10월 재보선과 2014년 지방선거의 주도권을 확보겠다는 친박계의 포석이었다”고 회고했다. 반면 민주당은 2013년 5·4 전당대회에서 ‘김한길 체제’가 출범했다. 김한길 당시 대표는 61.72%의 득표율로, 38.28%에 그친 이용섭 후보를 큰 표 차로 꺾었다. 최고위원에는 신경민(17.99%), 조경태(15.65%), 양승조(15.03%), 우원식(15.01%) 의원이 각각 선출됐다. 민주당의 ‘김한길 체제’ 출범은 전당대회를 치른 지 13개월 만이었다. 2012년 대선을 6개월 앞둔 민주당은 6·9 전대에서 이해찬 대표 체제 출범을 알렸다. 앞서 그해 4·11 총선 당시 한명숙 체제의 공천 파동에 이어 ‘이해찬(당대표)-박지원(원내대표)’ 담합 논란이 일어났지만, 대선을 앞두고 친노(친노무현)계는 이해찬 옹립에 나섰다. 그러나 총선에 이어 대선에서도 패배했다. 친노가 설 자리는 없었다. 비노계는 김한길 대표를 중심으로 당권 장악에 나섰다. 순탄치만은 않았다. 세력 면에서 우위를 점한 친노계 앞에 비노계는 정치적 변곡점마다 흔들렸다. 당시 김 대표가 2014년 3월 안철수 신당과 손잡고 새정치민주연합을 만든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았다.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 체제는 4개월 천하에 그쳤다. 두 대표는 손학규 구원투수 카드까지 썼던 7·30 재보선 참패의 책임을 지고 동반 사퇴했다. 2015년 12월과 2016년 1월 이들은 차례로 탈당을 선언했다. 대선 패배 이후 영욕을 맛본 셈이다. [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