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성폭행은 건강하다는 증거” 돼지발정제급 폭탄 여기에도…
“대지진이 도호쿠 지방에서 일어나서 다행”이라는 망언으로 결국 자리에서 물러난 이마무라 마사히로 부흥상. AP/연합뉴스
문제의 발언은 4월 25일 밤, 도쿄 도내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비롯됐다. 이날 이마무라 마사히로 부흥상은 동일본 대지진 피해와 관련해 “오히려 도호쿠(東北) 쪽이어서 다행이다. 수도권에 가까웠더라면 막대한 피해를 입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분명한 실언이었다. 가족을 잃고 지금도 피난 생활을 하고 있는 도호쿠 지역 주민들을 생각하면 가슴에 못을 박는 폭언임에 틀림없다.
같은 자리에 참석한 아베 총리가 “이재민들에게 상처를 입히는 극히 부적절한 발언이었다”며 즉각 사과했지만, 부흥상의 발언 내용은 순식간에 퍼지면서 비난이 쏟아졌다. 결국 아베 총리가 부흥상의 사표를 수리하는 것으로 부랴부랴 사태 수습에 나섰으나 논란은 쉬이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이마무라 부흥상뿐만이 아니다. 최근 아베 정권은 주요 인사들의 망언과 추문으로 빈축을 사고 있다. 지난 4월 16일에는 야마모토 고조 지방창생(활성화)담당상이 문화재를 소개하는 학예사를 ‘암’으로 표현하며 “쓸어버려야 한다”는 막말을 하기도 했다. 야마모토 지방창생담당상은 문제가 되자 발언을 철회하고 사과한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아베 총리의 강력한 입지에 취해 각료들이 긴장감을 잃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치평론가 고바야시 요시야는 “국회의원과 현직 각료의 발언은 무게 자체가 다르다”면서 “실언이 잇따르는 것은 아베 정권 기강이 그만큼 느슨해졌기 때문”이라고 반성을 촉구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도 일침을 가했다. 신문에 따르면, 정치가의 실언은 크게 4가지 패턴으로 나뉜다. 먼저 분위기를 띄우려다 너무 나간 탈선형, 야당과 언론의 추궁에 욱해서 맞서는 흥분형, 그리고 자신의 지론을 고집하는 확신범형 등이다. 이마무라 부흥상의 경우 거침없이 내뱉는 무신경형으로 볼 수 있다. 신문은 “아베 1강 독주 체제가 장기화되면서 국회에 ‘취객’이 점점 늘고 있다. 정권의 ‘여유’는 심각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흔히 “정치인은 말로 먹고 산다”고들 한다. 말 한마디로 박수를 받기도 하며, 말 한마디를 잘못해서 추락하는 정치인도 적지 않다. 일본 정치계에도 숱한 망언들이 존재한다. 특히 대지진으로 피해가 컸던 2011년은 민감한 시기였던 터라, 실언으로 옷을 벗은 장관도 여럿이었다. 예를 들어, 마쓰모토 류 부흥상은 2011년 7월 재해지를 방문해 “지혜를 내지 않는 놈은 도와주지 않겠다”고 막말을 했다가 임명 7일 만에 물러났고, 같은 해 9월 하치로 요시노 경제상업상은 피해 지역을 ‘죽음의 거리’라고 불러 논란 끝에 사임했다.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규마 후미오 방위상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2차 세계대전 중 미국이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것은 당연하다”고 말해 파문을 빚었다. 이 발언은 당시 야당과 원폭 피해자 및 단체들의 거센 반발을 사 결국 방위상 자리에서 물러나야만 했다.
‘망언 제조기’ 아소 다로 부총리(왼쪽)와 ‘원조 망언 정치인’ 이시하라 신타로 전 도쿄 도지사. 연합뉴스
사임은 면했지만, 발언을 몇 번이나 철회한 정치인도 있다. 일명 ‘망언 제조기’로 불리는 아소 다로 부총리는 “입만 열면 망언이 튀어나온다”며 국제적으로도 악명이 높다. “한국에 돈을 빌려주면 돌려받지 못할 것” “창씨개명은 조선인이 원해서 했다” “대만의 높은 교육 수준은 일본의 식민통치 덕분이다” 등 그간 왜곡된 역사관을 드러내는 발언들도 줄줄이 터져 나왔다. 압권은 2013년 7월, 한 강연장에서 내뱉은 말이었다. 아소 부총리는 “독일 나치 정권처럼 비밀리에 개헌을 추진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국제적인 비난을 샀다. 일본 네티즌들은 “나치를 본받자고 말하다니 망언 중의 망언”이라면서 “수치스럽고 부끄럽다”고 개탄했다.
정치인의 망언으로 자주 언급되는 것 중 하나가 오타 세이치 전 자민당 중의원의 일화다. 오타 중의원은 2003년 공개 토론회에서 “이런 얘기를 하면 화내겠지만, 집단성폭행은 아직 건강하다는 증거니까 괜찮다”라는 충격적인 말을 한 바 있다. 비난이 쇄도한 것은 당연지사. 오타 중의원은 그해 총선에서 패배했다.
일본의 유명 경제지 <비즈니스저널>도 ‘정치가의 차별 폭언’이라는 주제로 칼럼을 실어 관심을 모았다. <비즈니스저널>은 ‘원조 망언 정치인’으로 이시하라 신타로 전 도쿄 도지사를 꼽았다. 이시하라 신타로는 한국에서도 극우 정치인으로 통하는 인물. “한일합방은 한국인이 원했던 것”이라는 망언을 비롯해 “일본이 2차 대전을 벌인 덕분에 식민지 국가들이 해방됐다. 과거 침략전쟁에 사과할 뜻이 없다”는 등의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켰다.
북한 정세가 긴박하게 돌아가는 가운데서도 그의 막말은 이어졌다. “일본은 북한에 대해 무력공격도 불사해야 한다. 일본이 선제공격을 못하면 북한이 먼저 일본에 미사일을 발사해주면 좋겠다(주간포스트 2000년 12월 29일자)” “내가 총리라면 납치된 일본인을 되찾기 위해서 북한과 전쟁을 바로 시작하겠다(주간문춘 2002년 9월 6일자)” 등 과격한 언행을 일삼아왔다.
한편, 일본에 있는 화교 매체 <신화교보>는 이번 파문과 관련해 ‘실언으로 궁지에 몰린 일본 정치인’이라는 기사를 게재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다모가미 도시오 전 자위대 항공막료장(공군참모총장격)과 하시모토 도루 전 오사카부 지사를 들었다.
먼저 다모가미 도시오는 극우적인 발언으로 주목을 받아 일본정계에서 ‘기관총’이란 별명을 얻은 바 있다. “난징 대학살은 조작된 사건”이라고 주장하며, “한국여성 위안부 강제동원 문제 역시 또 다른 날조”라고 억지를 부렸다. 그러다 2008년 “일본은 침략국가가 아니었다”고 주장하는 논문을 발표. 큰 파문을 일으킨 끝에 경질됐다. 2014년에는 도쿄 도지사 선거에 무소속으로 입후보했다가 낙선했으며, 심지어 선거운동원에게 금품을 건넨 사실(공직선거법 위반)이 드러나 체포됐다.
하시모토 도루는 몇 년 전 ‘일본 우익의 총아’로 급부상해 차기 총리감으로까지 거론됐던 인물이다. 그러나 역시 입이 화근이 돼 추락하고 말았다. 치명타는 위안부 관련 망언이었다. 2013년 하시모토는 “왜 일본 위안부제도만 문제가 되느냐. 당시 세계 각국이 위안부제도를 갖고 있었다”고 말한 것이 전 세계적으로 파문을 일으키면서 인기가 급하락했다.
<신화교보>는 “최근 들어 일본사회가 우익으로 회귀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지만, 정치인의 극단적인 발언이 반드시 플러스로만 작용한다고는 할 수 없다. 일본인은 극언에 대해 노골적으로 싫다는 반대의사를 드러내진 않지만, 극언하는 정치인에게는 반감을 품는다. 이것이 일본의 민족성”이라고 덧붙였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