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대한 후원금 지원한 일론 머스크 등 ‘예스맨’ 포진…1기 때 장녀 이방카 대신 두 아들 영향력 확대 전망
8년 전만 해도 정치계에서는 ‘초짜’나 다름없었던 트럼프는 어쩔 수 없이 공화당 내 기성세력에 의존해야 했다. 당시 혼자 힘으로 제 입맛에 맞는 정부를 꾸릴 수 없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결국 트럼프는 전직 주지사이자 공화당 핵심 인사였던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의 도움을 받아야 했고, 전반적인 정권 이양 작업을 그에게 전부 맡기다시피 했다.
트럼프는 훗날 이 선택을 후회했다. 자신이 진정으로 추구하고자 했던 포퓰리즘 의제에 제약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퇴임 후에는 오히려 몇몇 인사들이 재판에서 자신의 등에 칼을 꽂는 등 뼈아픈 배신을 당하기도 했었다.
그래서일까. 이번에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는 트럼프는 1기 때보다 대담하고 저돌적인 자세로 인선 작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그만큼 어느 정도 정치계에서도 잔뼈가 굵어졌고, 그 사이 든든한 후원자들과 정치인들과 두터운 친목을 다져놓은 덕분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 ‘액시오스’는 트럼프가 마러라고 리조트 안에 모의 상황실을 만들었다고 보도하면서 이곳에서 인수팀과 함께 주요 인사 후보들의 디지털 파일을 검토하느라 바쁘다고 전했다. 가령 상황실 안은 TV 모니터로 가득 차 있으며, 트럼프는 자신이 관심을 갖고 있는 후보들의 TV 출연 장면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실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측근들은 JD 밴스 부통령 당선인, 하워드 러트닉 정권인수팀 공동의장, 그리고 트럼프의 핵심 측근으로 급부상한 일론 머스크 등이다. 이에 대해 ‘데일리비스트’는 “내부자들에 따르면 트럼프는 전통적인 방식보다는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처럼 새 행정부를 구축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요컨대 워싱턴의 전통적인 고문들을 배제하고 그 대신 소셜미디어에서 대규모 팔로어를 보유한 비즈니스 외부인사들과 인플루언서를 선호하고 있다. 가령 현재 트럼프의 고문으로 활약하고 있는 인물들은 IT 업계 거물들부터 라스베이거스 웨이트리스(팁에 부과되는 세금을 없애자는 제안에 영감을 받아서)까지 다양하다.
회의에 참가한 한 관계자는 ‘폴리티코’ 인터뷰에서 “긍정적인 스타트업 문화”라고 분위기를 소개하면서 트럼프와 그의 팀이 “직위에 상관없이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최고의 인재들을 방으로 불러들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긍정적인 에너지와 창의성, 아이디어가 넘쳐난다고도 전했다. 공화당 한 관계자는 BBC를 통해 “트럼프는 사람들이 정신없이 뒤엉키며 아부하는 모습을 보는 걸 좋아한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트럼프의 최측근, 즉 백악관행 티켓을 거머쥐게 될 인사이더들은 누가 있을까.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든든한 후원금으로 승리를 이끈 억만장자들과 충성을 맹세하는 ‘예스맨’들이 대거 포진될 것으로 점치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인도계 출신 기업가인 비벡 라마스와미와 함께 정부효율부 공동 수장으로 내정된 일론 머스크다. 머스크는 심지어 트럼프의 ‘그림자 부통령’으로 불릴 만큼 현재 막강한 파워를 자랑하고 있으며, 지난 5일 선거일 이후 거의 매일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트럼프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머스크가 이렇게 실세로 떠오른 데는 선거 자금의 위력이 컸다. 그가 이번 선거에서 트럼프를 위해서 투입한 돈은 무려 약 1억 7200만 달러(약 2400억 원)였다. 매관매직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미국 정치에서 이처럼 기업가들과 정치인들이 가깝게 지내는 건 사실 드문 일은 아니다.
머스크 외에도 인수팀을 이끌고 있는 억만장자들로는 투자은행 ‘캔터피츠제럴드’ 회장이자 최고경영자(CEO)인 러트닉과 월드레슬링엔터테인먼트(WWE) 공동 창립자이자 전 CEO인 린다 맥마흔이 있다. 현재 정권인수팀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는 러트닉과 맥마흔은 각각 재무장관과 상무장관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러트닉은 ‘어프렌티스’에 출연하면서 트럼프와 친분을 쌓았고, 맥마흔은 이미 1기 트럼프 행정부에서 중소기업청장을 지낸 바 있다. 또한 2016년 대선 캠페인에서도 트럼프의 막강한 후원자였으며, 그가 퇴임한 후에는 수년간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 연구소’의 수장을 맡으면서 트럼프의 재선을 위한 전략을 세워왔을 만큼 대표적인 충성파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힌다.
대선 캠프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던 수지 와일스의 경우에는 일찌감치 백악관 비서실장으로 내정된 상태다. 베테랑 선거 전략가이자 플로리다에서 오랫동안 정치 활동을 해온 인물로, 2016년과 2020년 선거 운동 당시 플로리다에서 트럼프의 캠페인을 이끈 바 있다.
그런가 하면 지명부터 다소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인물들도 있다. 국방장관으로 지명된 피트 헤그세스의 경우가 바로 그렇다. 폭스뉴스 진행자인 헤그세스는 육군 주방위군 출신이라는 점 외에는 딱히 국방장관으로서 마땅한 이력이 없다. 심지어 과거 기괴한 발언을 일삼아 입방아에 오르내리기도 했었다. 가령 “세균은 사람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실체가 없다”면서 손을 씻지 않는다고 말했는가 하면,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당시에는 “건강한 사람들이 일부러 코로나19에 감염되는 ‘용기’를 보여줘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또한 학생들을 ‘세뇌’ 시키고 있는 '교육 카르텔'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그를 국방장관으로 지명한 트럼프의 결정에 대해 정치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능력보다는 충성심에 높은 점수를 주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수석 고문인 마크 칸시안은 “헤그세스는 하급 장교로서 경력이 있을지 몰라도 장관에게 필요한 고위급 국가 안보 경험은 부족하다”면서 “트럼프는 국방장관들과의 싸움에 지쳤고, 그래서 그에게 충성할 사람을 선택한 것 같다”라고 했다. 다만 경험 부족으로 인해 그가 실제 상원 인준을 통과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국토안보부 장관으로 지명된 크리스티 노엄 사우스다코타 주지사 역시 논란이 있는 인물이다. 목장주이자 농부이기도 한 노엄은 올해 초 출간된 자서전에서 반려견을 죽인 적이 있다고 고백하면서 비난을 받았다. 이로 인해 트럼프의 러닝메이트 후보에서 제외되기도 했다. 또한 책에는 안전벨트 착용을 반대하거나, 오토바이 갱단이 코로나19 법을 위반하는 것을 허용했다고 암시하는 구절도 있었다. 이런 논란에도 트럼프가 노엄을 선택한 이유는 그의 강경한 반이민 정책 때문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노엄은 트럼프의 무슬림 금지 법안을 전폭적으로 지지했으며, 바이든 행정부가 사우스다코타에 불법 이민자를 수용하자 이를 전면 거부하기도 했다.
백악관 선임보좌관 겸 연설담당관이었던 스티븐 밀러는 현재 백악관 정책 담당 부비서실장으로 거론되고 있다. 1기 트럼프 행정부에서 이미 강경한 이민 정책을 시행했으며,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추방 프로그램을 설계하기도 했다. 특히 2018년, 논란이 된 남부 국경에서의 이민가족분리 정책 및 무슬림 금지령 등 여러 정책 결정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가 돌아온다면 국경 지대에서는 다시 한 번 대대적인 추방 작전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백신 반대 운동가이자 환경운동가인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의 거취 역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무엇보다 그가 민주당에서 탈당한 후 무소속으로 출마했다가 결국 트럼프 지지를 선언한 만큼 트럼프가 그에게 새로운 보직을 마련해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가장 유력한 자리는 보건 분야다. 케네디 주니어는 트럼프가 취임하면 지역 수자원 시스템이 식수에서 불소를 제거하도록 추진하겠다고 주장했으며, 백신의 안전성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었다.
얼티밋파이팅챔피언십(UFC) 회장이자 트럼프의 오랜 친구인 데이나 화이트는 백악관 공보 비서관직을 맡을 전망이다. 트럼프는 수년 동안 화이트와 함께 UFC 경기장에 자주 모습을 드러냈으며, 특히 이번 선거 운동에서는 젊은 남성 유권자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종종 찾았다. 화이트는 2016년, 2020년, 2024년 선거 때마다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연설자로 나섰으며, 이번 승리 축하 무대에서도 짧은 연설을 하면서 친분을 과시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또 다른 축은 트럼프 가족들이 될 전망이다. 미국의 막강한 정치 가문으로 떠오른 만큼 과연 이번 정부에서 이들이 어떤 역할을 할지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은 자녀뿐 아니라 사위, 조카, 사촌 등 친인척이 백악관에서 다양한 공식 직함을 갖고 근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와 관련, ‘텔레그래프’는 “백악관과 공화당 내에서 트럼프 가족의 영향력이 더욱 확대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라고 말하면서 “재선에 실패한 후 측근의 변심을 경험한 트럼프가 가족에게 더욱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다만 가족 내 권력 역학은 트럼프 1기 때와 달라졌다. 1기 행정부에서는 장녀인 이방카(42)와 사위 제러드 쿠슈너(43)가 참모진 역할을 했다면, 2기 행정부에서는 장남인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46)와 차남인 에릭 트럼프(40)가 주축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방카는 2022년 11월 트럼프가 세 번째 대선 출마를 선언하자 “가정에 집중하겠다”라고 말하면서 물러섰으며, 그 후 선거운동 기간 내내 거의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앞으로 2기 행정부에 합류할지 역시 아직은 불분명한 상태다.
이방카의 빈자리를 메운 인물은 트럼프그룹 수석부사장인 트럼프 주니어다. 현재 정권인수팀 상임고문을 맡으면서 인선에 적극 참여하고 있으며, 폭스뉴스 인터뷰를 통해 “아버지보다 더 많이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기용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등 막후 실세로서 입지를 확고히 다지고 있다.
이런 그가 선거 전략에 깊숙이 개입했던 건 당연한 일이었다. 가령 친구인 JD 밴스를 트럼프에게 적극 추천해 부통령 후보로 낙점시켰으며, 케네디 주니어를 트럼프 진영으로 끌어들인 것 역시 그였다. 트럼프의 맥도날드 일일 알바 유세도 그의 작품이었다. “맥도날드에서 일했다고 주장하는 해리스보다 아버지가 맥도날드 메뉴를 훨씬 더 잘 안다”는 그의 발언 후 트럼프가 실제 맥도날드를 찾아 봉사를 했던 것이다.
이런 까닭에 그가 잠재적 대권 주자로 급부상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는 상태다. 트럼프처럼 강경 우파인 그는 공격적인 언사나 쇼맨십 등이 아버지와 유사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 대선 전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에서 그는 “나는 트럼프(아버지)만 있는 ‘마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는 원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면서 ‘마가 운동’이 단순히 트럼프라는 개인을 숭배하는 게 아니라, 공화당과 미국을 재건하는 운동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선거 운동에서 전폭적인 유세 활동을 벌였던 트럼프 주니어의 약혼녀 킴벌리 길포일(55)의 거취 역시 관심 대상이다. 둘은 2018년 트럼프 주니어가 전 부인 바네사 헤이든과 이혼한 후 교제를 시작했으며, 2020년 약혼했다. 검사 출신의 폭스 뉴스 앵커인 길포일의 전남편이 민주당의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57)라는 점도 인상적이다. 하지만 폭스 뉴스에 입사한 후부터 보수 성향을 드러내기 시작했던 길포일은 트럼프 주니어와 교제를 시작한 후부터는 완전히 트럼프 지지자로 변신했다.
다만 트럼프 주니어와의 사이에 적신호가 감지되고 있는 만큼 과연 길포일이 행정부에서 요직을 맡을지는 현재로선 불투명한 상태다. 지난 9월, 트럼프 주니어가 다른 젊은 여성과 함께 있는 모습이 포착되면서 한차례 불륜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당시 둘은 아무런 입장 표명은 하지 않았지만, 이후 선거 유세 현장에서 연신 긴장된 모습과 어색한 표정을 보이면서 의심에 불을 지폈다.
그리고 이런 이유에선지 당선이 확정된 후 승리 연설 무대에서도 둘 사이에서는 묘한 기류가 감지됐다. 어찌된 일인지 트럼프 주니어가 길포일과 나란히 서는 것을 피하려는 듯 무대 위에서 여러 차례 자리를 바꾸면서 갈팡질팡 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길포일에게서 등을 돌린 채 서있었고, 이에 대해 ‘데일리비스트’는 길포일이 ‘귀찮은 MAGA의 연인’이 됐다고 보도했다.
트럼프그룹 부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차남 에릭의 경우에는 사실 정치에는 거의 관여하지 않고 있는 모습이다. 오히려 더 주목을 받고 있는 인물은 아내인 라라 트럼프(42)다. 트럼프가 직접 공화당전국위원회(RNC) 공동의장으로 뽑았을 만큼 신망을 얻고 있으며, 비록 정치 경력은 전무하지만 이번 캠페인에서 선거자금 모금을 총괄하는 등 핵심 역할을 맡았다. 물리적으로 얼마나 가까운지가 권력의 서열을 나타내는 징후라고 가정했을 때 당선 승리 파티에서 트럼프의 오른쪽에 서 있던 사람이 라라였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CBS 폭스뉴스 등에서 프로듀서로 활동했던 라라는 정치적 야망이 상당한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2022년, 노스캐롤라이나주 상원의원 선거 출마 여부를 두고 고민했지만 결국 포기했다. 어쩌면 이번에는 꿈을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이 국무장관으로 발탁돼 공석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에 공화당 내에서는 라라가 그의 뒤를 이어 플로리다주 상원의원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는 추측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공화당의 안나 파울리나 루나 하원의원은 “라라가 그 자리에 가장 잘 맞는다고 생각한다”면서 “그는 트럼프의 승리에 큰 역할을 했다”고 덧붙였다. 머스크도 라라를 지지하고 있다. X(옛 트위터)를 통해 그는 “라라 트럼프는 정말 훌륭한 사람이다”라는 글을 올리면서 힘을 실어주고 있다.
한편 ‘데일리비스트’는 트럼프의 이런 정치 스타일을 가리켜 “트럼프는 최고의 엔터테이너다. 이게 바로 그가 대통령인 이유다”라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트럼프의 리얼리티쇼가 미국 정치를 영원히 바꿔놓았다. 트럼프의 백악관 복귀는 롱런하고 있던 리얼리티쇼의 재개와 다름없다. 미국인들은 대규모 휴먼 드라마의 엑스트라로 캐스팅된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이는 트럼프가 정계에 입문하기 전 16시즌 동안 장기 출연했던 NBC TV 쇼프로그램 ‘어프렌티스’를 일컫는 것이다. 이러한 쇼비즈니스 본능은 실제 트럼프의 정치 스타일에도 반영됐다. 전통적인 정책이나 외교 대신 비판과 대립으로 점철된 그만의 스타일을 탄생시켰으며, 심지어 행정부 내 갑작스러운 인사이동에도 “당신은 해고야!”라는 프로그램의 캐치프레이즈를 사용하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트럼프 지지자들은 유권자인 동시에 그의 팬이 됐다. 그들은 트럼프의 슬로건과 상징들, 즉 ‘MAGA’나 쓰레기봉투를 유니폼처럼 착용하고 있으며, 집회에 참석하는 행동 역시 마치 콘서트에 가는 것처럼 여기고 있다. ‘데일리비스트’는 이런 현상에 대해 “트럼프는 자신을 성공의 화신이자 역설적이게도 노동 계급의 투쟁에 동조하는 사람으로 어필하는 데 성공했다. 팬들은 이런 트럼프의 모순적인 면까지 사랑하고 받아들인다”라고 분석했다.
MZ세대 남성 표몰이…‘라이징 스타’로 떠오른 배런 트럼프
이번 선거에서 스타로 급부상한 또 한 명의 트럼프 패밀리가 있으니, 바로 막내아들인 배런(18)이다. 8년 전만 해도 어린 소년에 불과했던 배런은 이제는 심지어 일부 공화당원들 사이에서 차세대 리더로 거론되고 있을 정도로 존재감이 커졌다. 심지어 이베이에서는 ‘배런 트럼프 대통령 2044’라는 슬로건이 적힌 배지가 판매되고 있을 정도다.
뉴욕대 1학년에 재학 중인 배런은 이번 선거에서 처음 투표권을 행사했으며, 유세 현장에서도 몇 차례 무대에 올라 아버지의 곁을 지켰다. 지난 7월, 트럼프는 플로리다에서 열린 집회에서 배런을 정치계에 공식 소개하며 두 차례 기립 박수를 받기도 했다. 당시 트럼프는 청중을 향해 “배런이 꽤 인기가 많은 듯하다. 앞으로 다른 두 아들보다 더 인기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라며 의미심장한 농담을 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배런은 이번 선거에서 20대의 젊은 표심을 공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실제 트럼프는 정치적으로 우파 성향인 젊은 남성 유권자들을 확보하는 데 큰 도움을 준 사람이 배런이라고 공개적으로 말하기도 했다. 보도에 따르면, 공화당 컨설턴트가 인터뷰할 만한 온라인 팟캐스트 목록을 제시했을 때 트럼프는 “차라리 배런에게 전화해서 의견을 물어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배런은 아버지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인터넷 스타들을 여럿 추천했고, 결과적으로 이 전략은 제대로 적중했다. 이들은 모두 젊은 남성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은 유튜버들이었으며, 트럼프는 이들과 코카인부터 주먹다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이런 노력은 트럼프가 18~29세 사이의 남성들, 즉 MZ세대 유권자들과 소통하는 데 도움이 됐고, 그 결과 이들이 민주당을 외면하도록 하는 데 일조했다. 실제 선거 전 여론조사 데이터에 따르면 젊은 유권자의 과반수가 트럼프를 선택했다는 점만 봐도 이 전략이 얼마나 제대로 먹혔는지 잘 알 수 있다.
배런은 이미 트럼프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한 평론가는 “트럼프에 대한 여러분의 의견과 상관없이 한 가지 확실한 점은 배런이 귀족적인 외모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만약 배런의 머리에 왕관을 씌우고 그 앞에 어릿광대를 놓아도 아무도 의문을 품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트펌프가 일찌감치 배런을 대학에서 끌어내 백악관에서 자신을 돕도록 할 수 있다는 추측도 제기됐다. 하지만 이는 아내인 멜라니아를 생각하면 현실성은 없는 듯 보인다. 언론의 과도한 관심을 부담스러워 하는 내성적인 멜라니아는 평소 정치에 대해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었다. 지난 7월, 배런이 공화당 전당대회 대의원으로서 정치 무대에 데뷔하려는 것을 막은 사람 역시 멜라니아였다.
그럼에도 배런의 타고난 기질을 생각하면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정치에 발을 들이는 것은 이미 예정된 수순일지도 모른다. 아닌 게 아니라 멜라니아는 과거 인터뷰에서 아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배런은 아주 강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독립적이고 의견이 분명하며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다.” 당시 배런은 다섯 살 꼬마였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