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이면계약서 작성·비용 문제 은폐·대선 전 배치 요구 등 의혹 ‘솔솔’
한미 당국이 서둘러 진화에 나섰지만 논란은 오히려 확산되는 모습이다. 트럼프 발언이 단순한 실수가 아닌, 고도의 계산에서 비롯됐을 것이란 주장에도 힘이 실린다. 대선 과정에서도 “10억 달러를 내느냐, 마느냐” 갑론을박이 일었고, 몇몇 후보는 “사드를 다시 미국으로 돌려보내자”라는 강경 발언도 내놨다.
이 과정에서 정치권을 중심으로 여러 의혹이 제기됐다. 한미 이면계약서 작성, 사드 비용 문제 은폐, 대선 전 사드의 조기 배치 요구 등이 그 내용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사실무근이라고 일축했지만 국회는 철저한 진상규명에 나설 채비를 갖췄다. 사드를 둘러싼 공방은 신임 대통령이 임기 초 풀어야 할 최우선 과제 중 하나로 꼽힌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가 배치된 경북 성주군 초전면 성주골프장 인근 소성리 주민들이 4일 오전 초전면 사전투표소에서 투표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연이어 터진 트럼프 쇼크
트럼프 대통령은 4월 27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에 사드 비용 10억 달러(1조 1300억 원)를 내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우리 국방부는 그동안 사드 배치에 대해 한국이 부지 및 기반시설을 미국에 제공하고 미국이 사드 전개 및 운영, 유지비용을 부담한다고 일관되게 얘기해왔다. 언론을 앞에 두고 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이 모든 것을 한국 부담으로 돌리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트럼프의 첫 번째 청구서 발언이 나왔을 때만 해도 정부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오바마 정부 당시의 한미 합의를 잘 몰랐을 수 있다”는 추측이 돌았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연이어 충격파를 날렸다. 4월 28일(현지시간) 또다시 워싱턴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주한미군 사드 배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왜 우리가 사드 배치 비용을 내야 하느냐. 정중히 말하건대 한국이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트럼프의 이 발언은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 대해 우리 정부가 “SOFA(주한미군지위협정) 규정에 따라 사드배치 비용은 미국 부담이며 한미 간 체결된 약정서도 있다”고 밝힌 뒤에 이뤄진 것이다. 워싱턴타임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사드 비용을 낼 수 없다는 한국의 입장을 맞받아쳤다(push back)”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정부 입장과 한국 국민의 반발을 충분히 인지한 상태에서 인터뷰를 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정부 당국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빈말이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의 본심이 나왔을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에서였다.
#청와대 해명 불구 논란 증폭
청와대는 비상이 걸렸다. 트럼프 대통령의 잇따른 발언이 나오자 30일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이 맥마스터 미국 국가안보보좌관과 전화통화를 해 오해를 풀었다며 이날 아침 출입기자들에게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보도자료엔 세 가지 내용이 담겨 있었다. 1.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은 맥마스터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요청으로 일요일이었던 30일 오전 9시(한국시간)부터 35분간 전화 협의를 가졌으며, 이 통화 때 주한미군 사드 배치 비용부담 관련해 한·미 양국 기합의된 내용을 재확인했다. 2. 맥마스터 보좌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최근 언급은 동맹국들의 비용 분담에 대한 미국민들 여망을 염두에 두고 일반적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한미동맹은 가장 강력한 혈맹이고 아태지역에서 미국의 최우선 순위이며 미국은 한국과 100% 함께할 것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확고한 메시지를 전달해 왔다 3. 김 실장과 맥마스터 보좌관은 북한의 탄도 미사일 발사 등 계속되고 있는 도발과 관련, 중국 등 국제사회와의 협력 하에 대북 압박을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한미 양측이 또다시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으면서 엉켜버린 ‘사드 실타래’는 더 꼬일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맥마스터 보좌관은 폭스뉴스 선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어떤 재협상이 있기 전까지 기존 협정은 유효하며, 우리의 국방에 관계된 문제는 재협상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내가 가장 하기 싫어하는 일이 미국 대통령의 발언을 부정하는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한미 안보 수장의 전화통화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논란이 확산하자 청와대는 또다시 필자를 비롯한 출입기자들에게 5월 1일 문자를 보내 진화에 나섰다. 청와대는 “맥마스터 보좌관의 언론 인터뷰 내용은 한미 간 기존합의가 유효하다는 것을 재확인한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미국은 재협상에 방점을 둔 듯한데도 청와대는 기존합의가 유효하다는 말만 되풀이한 것으로 수습을 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정확한 비용 부담 규정 따져보니
일단 대한민국으로 반입된 사드 체계는 국방부가 새로이 마련한 경북 성주의 주한 미군 기지내에 들어왔다, 그렇다면 주한미군기지로 들어온 무기 체계에 대한 한미 국방 분야의 관련 협정은 비용 문제에 대해 어떻게 규정하고 있을까. 주한미군의 한국 내 지위와 유지비용, 영토 사용 등의 전반적인 근거가 되는 규정은 1953년 서명된 한미상호방위조약 4조를 바탕으로 1966년 체결된 한미주둔군 지위협정(SOFA)이다. SOFA는 체결 이후 1991년과 2001년 일부 개정됐다.
이 중 주한미군 유지에 수반되는 경비의 분담에 관한 원칙을 규정한 제5조(시설과 구역-경비와 유지)에 따르면 ‘미국 측은 한국 측에 부담을 과하지 아니하고, 주한미군 유지에 따른 경비를 부담한다(제1항)’고 명시돼 있다. 2항은 ‘한국 측은 미국 측에 부담을 과하지 아니하고 시설과 구역을 제공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같은 SOFA 조항을 근거로 1조 원에 달하는 사드 배치 비용이 미국 측 부담이라는 입장을 우리 정부는 일관되게 밝혀왔다. 사드가 주한미군 장비인 만큼 직접적인 유지에 따르는 비용은 예외 없이 미국 측이 부담해야 한다는 논리다. 사드를 들여와야 한다는 첫 주장을 낼 때부터 “미국 측 부담이라는 유리한 조건인데 사드를 왜 반대하느냐. 이해할 수 없다”는 목소리를 국방부는 내왔다.
그러나 기존 SOFA 조항이 비용 문제를 말끔히 정리할 만큼 완벽한 것은 아니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SOFA 제5조에 대한 ‘특별조치’ 성격인 ‘주한미군방위비분담 특별협정(SMA)’을 미국이 들고 나오면 상황은 달라진다는 얘기다. 이 협정에는 주한미군 주둔에 관련된 경비 일부를 한국이 부담한다는 내용이 있다. 2014~2018년 한국 지원분을 결정한 최근의 협정은 2014년 2월 2일 체결됐고, 올해 한국이 부담하는 방위비 분담금은 9507억 원가량이다.
SMA는 제1조에서 대한민국 지원분은 인건비 및 군수비용 분담, 대한민국이 지원하는 건설로 규정해 놨다. 인건비 분담은 현금 지원이며, 군수비용 분담은 현물 지원 방식으로 이뤄진다. 우리 정부는 이를 근거로 사드 비용은 방위비 분담금 차원의 범주에 들지 않는다는 해석을 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SMA 규정을 들어 사드 비용을 우리나라에 부담시킬 수 있다는 걱정은 여전히 남는다. 군수비용 등의 명목을 들이밀거나 이르면 올해 말 시작될 것으로 보이는 SMA 협상에서 미국이 새로운 분담 카드를 내놓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관진 국가안보실장도 지난해 7월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 나와 사드 운용 비용에 대해 “미국 측에서 댈 것”이라면서도 “액수가 많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포괄적으로 주한미군의 인건비와 시설비에 포함된다면 (방위비 협상에) 들어갈 수 있다”는 해석을 내놨었다.
#사드 둘러싼 의혹 따라가보니
트럼프 발언으로 촉발된 사드 공방은 정부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 정부가 무언가 국민들에게 은폐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여론이 급속도로 퍼졌다. 사드 비용과 관련된 부분을 이미 통보받고도 이를 제대로 알리지 않은 것 아니냐는 보도도 나왔다. 또 새로운 정부에서 사드가 재검토 될 것을 우려한 특정 안보 라인이 대선 전 배치를 서두르기 위해 미국 측에 요구했다는 의혹도 뒤를 이었다.
특히 4월 16일 백악관 외교정책 고문이, 17일엔 국방부 대변인이 대선 전 사드 배치는 어렵다고 했는데 26일 기습적으로 사드 장비가 배치되면서 비공개 합의 가능성이 제기됐다.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비밀협상이 있었다면 작년에 체결한 (사드 관련) 약정보다는 올해 (4월) 16일부터 26일 사이에 열흘간에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했다.
대선 레이스에서도 주요 후보들은 이 점을 지적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는 “이렇게 중요한 전략적 무기를 무엇이 급해서 공사판 한 가운데 깔아놓는지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심 후보는 사드 배치를 “밀실협상에 따른 안보농단의 대표적 사례”라며 “진상규명 없이 원만한 동맹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문재인 후보도 4월 30일 “트럼프 대통령이 돈을 요구하는 것 보면 미국이 먼저 주한미군 무기로 사드를 들여오라고 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먼저 미국에 요구하고 부탁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면서 “정부가 우리 국민들을 속여 온 것이 아닌가하는 의혹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사드 배치 결정 과정도 다음 정부에서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최경철 매일신문 정경부장 겸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