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구를 살해한 소녀의 자기 소개서.귀여운 만화풍의 그림과는 대조적으로 성격은 “겉과 속이 다르다”고 쓰고 있다. | ||
사건 직후 이 여학생은 울부짖으며 경찰차에 타지 않으려 했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가 전하는 말에 따르면 “차 밖에 쭈그려 앉아서 울다가 그치기를 반복했다. 겁먹은 모습으로 부모를 찾았다. 겨우 진정시켜서 경찰서로 간 후에도 여전히 불안한 모습이었으며, 마실 것을 줘도 입에 대려고 하지 않았다”고 한다. 흉악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아닌 연약한 열두 살짜리 소녀의 모습이었다는 것.
가해학생인 A양의 진술을 토대로 작성한 살해 당시의 정황은 이렇다. A양은 교실의 커튼을 닫고, 손수건으로 동급생 B양의 눈을 가리려 했으나 B양이 거부하자 의자에 앉혔다. 그 후 뒤에서 왼손으로 턱을 잡아 얼굴을 들어올려 목에 문구용 칼을 대고 한 번에 그었다. 결국 B양은 목의 경동맥이 절단돼 숨졌다. A양은 “이라크인이 미국인에게 한 것처럼 했다”고 설명했다. 이라크에서 벌어진 ‘미국인 참수사건’을 흉내내 친구를 살해했다는 얘기다.
열두 살에 불과한 A양은 대체 왜 이런 끔찍한 짓을 저지른 것일까. 그가 직접 밝힌 동기는 이렇다.
사건이 일어나기 열흘쯤 전에 A양은 머리 모양을 바꿨다. 그런데 B양이 자신의 머리스타일에 대해 안 좋은 말을 했다고 한다. A양은 경찰 조사에서 “(B가) 머리 모양에 대해 기분 나쁜 말을 했다. 몸매나 외모, 성격에 대해서도…. 홈페이지에도 그런 말을 썼다. (B에게) 이젠 아무 것도 쓰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생각할수록 자꾸 화가 났다. 죽이고 싶었다”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원래 A양과 B양은 같이 과외활동을 하고 집에서는 서로 채팅을 할 정도로 친한 사이였다고 한다. 두 사람은 컴퓨터나 독서 등 공통의 취미를 가지고 있어 늘 어울려 다녔다. 그러나 둘의 성격은 사뭇 달랐다고 한다. 그들을 아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들의 관계는 대등한 친구 사이와는 거리가 있었다. B양은 밝은 성격으로 모든 아이들과 금방 친구가 되는 적극적인 성격이었다. 그에 비해 A양은 어두운 성격으로 B양 이외에는 거의 친구가 없었다. B양이 리더라면 A양은 그에 따르는 식으로, 두 사람 사이에는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기 힘든 상하관계가 존재했다고 한다.
또 한 가지 주목할 것은 A양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가 서로 엇갈린다는 점. 동급생들은 A양에 대해 ‘툭하면 화를 낸다’ ‘말버릇이 거칠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웃이나 친척들은 ‘인사도 잘하고 밝고 명랑한 성격이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반면 A양의 부모가 아동상담소에서 이야기한 딸의 성격은 또 다르다. “내성적이고, 싫은 일이 있어도 좀처럼 싫다는 말을 못하는 아이입니다.”
A양에 대한 사람들의 인상이 저마다 상당히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A양 본인이 쓴 자기소개서에도 나타나 있다. 학기 초에 쓰는 자기소개서의 성격란에 ‘겉과 속이 다른 것 같다’고 쓰고 있는 것. 이러한 차이가 단적으로 드러나 있는 것이 A양의 글이다
A양은 글쓰기에 흥미가 있었다. 학교에 제출한 작문의 경우 양이나 질에서 동급생들보다 훨씬 뛰어난 실력을 보이고 있다. 문체에도 독특한 유머가 담겨있고 상당히 많은 책을 읽은 것으로 보인다.
반면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소설은 사람을 죽고 죽이는 잔인한 내용을 담고 있다. 제목은 <배틀 로얄-속삭임>으로,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끈 영화 <배틀 로얄>의 영향을 많이 받은 듯하다. <배틀 로얄>은 작은 섬을 배경으로 중학교 3학년인 동급생 42명이 마지막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서로를 죽이는 내용이다. A양의 소설 역시 영화와 마찬가지로 서로 죽이고 결국에는 여자아이 한 명만이 살아남는다는 결말. 등장인물은 자신이 다니는 초등학교 학생들이다.
학교에 제출하는 작문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밝은 부분’이라면, 인터넷 소설은 오로지 자기만족을 위해서 쓴 ‘어두운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밝고 모범생처럼 보이는 A양의 내면에는 이처럼 ‘살의’가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A양은 사건 다음날 아동상담소에서 가정법원으로 송치되어 같은 날 저녁 소년감별소에 수용됐다. 앞으로 비행사실이 인정되면 아동자립지원시설에 수용되거나 자택에서 보호사의 지도 아래 생활하게 된다.
청소년 범죄가 급증하면서 일본은 지난 2001년 소년법을 개정해 형사처벌 연령을 16세에서 14세로 낮췄다. 그러나 A양과 같은 14세 이하는 여전히 처벌대상에서 제외된다.